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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사진이야? 그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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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르네상스 미술을 빛낸 초상화의 거장 '한스 홀바인'을 아시나요? 경이로운 관찰력과 정교하고 치밀한 사실적 묘사력, 인물의 신분과 특징, 성격까지 짐작하게 하는 화면 구성으로 마치 카메라로 찍은 듯한 정교한 그림으로 유명해요. 


16세기 초상화의 백미로 불리는 그의 작품 ‘대사들’을 전문가의 설명으로 함께 감상해볼까요?


▶한스 홀바인, ‘대사들’, 참나무에 유화, 207×209.5cm, 1533, 런던 내셔널갤러리 소장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16세기, 독일에 걸출한 초상 화가가 한 명 있었어요. 독일에서 태어난 독일인이지만 스위스 바젤을 거쳐 런던에서 주로 활동했으며 화가로서 꽃을 피운 곳도 런던이요, 삶을 마감한 곳도 런던이에요. 그는 잉글랜드 튜더 왕가의 두 번째 국왕으로 영국 국교인 성공회를 창설한 헨리 8세(1491~1547)의 궁정화가로 활약하면서 전성기를 구가했어요. 


그의 이름은 한스 홀바인. 독일 르네상스 미술을 빛낸 초상화의 거장이에요. 서양미술사에서 초상화의 마술사로는 우리가 잘 아는 렘브란트(1606~1669)가 첫손에 꼽히고 있어요. 그러나 렘브란트보다 100년도 훨씬 전에 태어난 홀바인의 그림을 보노라면 세 가지 이유에서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어요.


경이로운 관찰력과 정교하고 치밀한 사실적 묘사력, 인물의 신분과 특징, 성격까지 짐작하게 하는 화면 구성이 그것이죠. 세 가지 이유를 완벽하게 입증한 작품이 홀바인의 대표작이자 16세기 초상화의 백미로 불리는 ‘대사들’(1533)이에요. 

대사와 주교의 넘볼 수 없는 권위 상징

‘대사들’은 홀바인이 그린 초상화 중 이견의 여지가 없는 최고의 그림이에요. 이 작품이 홀바인 초상화의 군계일학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어요.  


우선 그림 속 인물과 대상, 배경 하나하나가 마치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듯 놀라울 정도로 치밀하고 사실적으로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는 점이죠. 오늘날의 최첨단 디지털카메라로 포착한 이미지라 해도 군말이 없을 사실성의 극치를 보여주는 이 그림이 16세기 유화물감으로 그려진 것이라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에요.


다른 하나는 그림 속 다양한 소품과 상징적 물건, 기이한 형상, 바닥의 무늬를 통해 등장인물들의 신분과 지위, 특징, 나아가 인간 사회의 세속적인 욕망과 삶의 유한성을 적시했다는 데 있어요. 화려한 녹색 비단 커튼을 배경으로 2단 선반 탁자 양쪽에 두 남자가 서 있어요. 왼쪽 인물은 영국 주재 프랑스 대사 장 드 댕트빌로 홀바인에게 이 그림을 그려달라고 주문한 당사자예요.


고급스러운 흰 담비 털로 만들어진 망토와 왼손을 탁자 위에 걸치고 있는 당당한 모습에서 거칠 것 없이 잘나가는 고위급 외교관임이 느껴져요. 나이는 고작 29세, 젊은 나이에 정치적으로 성공한 엘리트 공무원임을 알 수 있어요. 홀바인은 댕트빌이 오른손에 들고 있는 칼집 한구석에 그의 나이를 의미하는 ‘29’라는 숫자를 새겨 넣는 재치를 발휘했어요.


오른쪽 인물은 댕트빌의 친구로 가톨릭 주교인 조르주 드 셀브. 댕트빌보다 네 살 아래로 셀브 역시 20대에 종교계 거물로 성장한 프랑스 교단의 실세예요. 셀브의 오른팔 밑에 깔린 책에 적힌 숫자 ‘25’로 나이를 확인할 수 있어요.


세로 207cm, 가로 209.5cm라는 압도적인 규모의 그림에서 짐작할 수 있듯 두 사람 모두 실물 크기로 그려졌어요. 그림의 바닥에 장식된 모자이크 무늬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바닥 모양과 똑같은데, 대사와 주교의 넘볼 수 없는 권위를 상징해요.

치밀하게 계산된 알레고리식 묘사

홀바인의 치밀하게 계산된 알레고리식(추상적 개념을 그것과 유사한 이미지로 표현하는 형식) 묘사는 가운데 탁자에 놓인 갖가지 물건에서 절정을 이루고 있어요.


댕트빌의 왼팔 뒤로 천구의가 보이고, 그 옆으로 원통형의 휴대용 해시계와 황동(놋쇠)으로 만든 듯한 사분의(四分儀), 휴대용 사분의, 다면 해시계가 줄지어 놓여 있어요. 셀브 주교의 오른팔 뒤로 조금 기이하게 생긴 것은 태양광선 각도 측정기구인 토르카툼이에요. 공통점은 모두 천체 관측에 사용되는 도구라는 거예요.


그런데 다면 해시계가 가리키는 날짜와 시간이 4월 11일 10시 30분으로 특정되어 있어요. 왜일까요? 바로 헨리 8세와 왕비 캐서린이 이혼한 날과 이혼 서류에 서명한 시간을 나타내기 위한 홀바인의 의도된 도상학적 장치예요.


당시 헨리 8세는 자신의 이혼을 반대한 교황청에 맞서 가톨릭교회 탈퇴를 선언한 가운데 파국을 막기 위한 프랑스 국왕의 특사 자격으로 런던에 파견된 인물이 댕트빌과 셀브였던 거예요. 결별의 위기에 놓인 가톨릭교회와 영국의 대립과 갈등을 기막힌 알레고리식 표현으로 드러낸 홀바인의 재능이 놀라워요.



탁자 아래쪽 선반에는 익숙한 지구의가 눈에 띄고 지구의 앞으로 수학 교본과 교본에 끼워진 삼각자, 기타 비슷하지만 생뚱맞게 생긴 악기, 펼쳐진 찬송가가 보여요. 악기 이름은 류트인데, 중세와 근대 이슬람 음악에서 유행한 현악기예요.


자세히 보면 류트의 줄이 끊어져 있는데, 이 또한 유럽 종교계의 이상 징후를 암시하는 장치예요. 탁자 선반 위 물건들은 댕트빌과 셀브, 두 사람 모두 해박한 과학 지식과 풍부한 문화예술 소양을 갖춘 지성인임을 대변하는 소도구들이에요.


홀바인의 계산된 알레고리 탐구는 계속되고 있어요. 그림의 맨 왼쪽에서 위로 끝까지 올라간 지점에 어렴풋이 물체가 하나 보여요. 커튼 속에 살짝 숨겨놓은 이 이미지는 십자가상이에요.


당시 종교 상황을 시사하는 동시에 전지전능한 하느님 앞에서는 모두가 한낱 미물에 그친다는 메시지예요. 권불십년, 인생무상으로 귀결되는 동서고금의 절대적 진리이자 교훈은 홀바인이 절묘하게 그림 속에 툭 던지듯, 엉뚱한 곳에 그려 넣은 수수께끼 같은 형상에서 화룡점정으로 치닫고 있어요.


그림 맨 아래 가운데 비스듬히 걸쳐져 곧 넘어질 것 같은 희한하게 생긴 물체가 바로 이 그림에 내재된 다양한 알레고리의 백미예요. 그냥 보면 아무리 봐도 형상 조회가 불가능해요.


실체 파악의 실마리는 그림 옆쪽에서 이 형상을 사선 방향으로 훑어 내려가듯 보는 데서 발견돼요. 형상의 실체는 다름 아닌 해골이에요. 물체를 왜곡해서 실제와는 다르게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왜상(歪像) 기법으로 그려졌기 때문이죠.


해골은 죽음의 다른 말이에요. ‘죽음을 생각하라’는 뜻의 라틴어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를 홀바인은 왜상 기법으로 당대 권력자들에게, 또 우리에게 전하는 거예요. ‘죽음’ 앞에서는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법이죠. 부귀영화의 부질없음과 현세의 허망함을 한시라도 잊지 말라는 홀바인의 가르침은 500년 세월을 훌쩍 넘어서도 메아리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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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책주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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