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비밀스런 공간을 만들어주는 의자가 있다?

조회수 2020. 10. 26. 16:2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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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면 아이들이 커다란 의자에 폭 들어가 이야기 나누는 장면이 있어요.  


이 장면에 나오는 '알파 셸 에그 체어'는 의자임에도 불구하고 주변과 분리되어 ‘방 속의 방’을 연상시키는데요. 이렇게 아늑하고 나만의 비밀스런 공간을 만들어 주는 의자의 디자인은 어떤 것들이 있는 지 함께 알아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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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퍼시스가 최근에 출시한 플레이웍스는 의자 위에 스크린을 부착할 수 있어 독립된 공간을 만들 수 있다.

아들이 고등학생이 되자 독립하려는 의지가 강해지는 걸 느끼는 중입니다. 가족 여행을 피하는 것은 물론 외식조차 사정을 해야 겨우 따라나서요. 명절이 되어 친지들이 집에 오면 혼자 방에 들어가 문을 닫아요. 


저도 다른 친지의 집에 갔을 때 그 집 아이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걸 본 적이 많았어요. 최근에는 아들이 침대를 옮겼죠. 방문을 열면 바로 침대가 보였는데, 그것이 싫었던 거예요. 지금은 창 쪽으로 침대를 옮겨서 문을 열어도 바로 침대가 보이지 않아요.

우리 아이는 가족의 시선으로부터 자기를 숨기고 싶어 해요. 어쩔 때는 밤새도록 누군가와 전화를 하는데, 그럴 때면 부모의 귀를 차단하고 싶어서 이불 속으로 들어가 웅웅 소리를 내며 통화해요. 그러니까 침대의 이동은 그 작은 공간에서조차 부모의 눈과 귀로부터 가장 먼 곳으로 도망한 거죠. 아이는 언젠가는 부모의 집을 떠나 자신의 집을 마련하고 독립할 거예요. 지금은 그럴 능력이 없으므로 되도록 집 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 최대한의 프라이버시를 구해야 해요.

예전에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는데, 아주 흥미로운 장면이 있었어요. 주인공 아빠가 집에 들어와 어린 아들을 찾다가 아들 방문을 열어요. 그러자 앉은 사람의 몸을 완전히 감싸주는 커다란 의자의 등받이만 보여요. 그 의자가 회전을 하고 정면을 보여주는데, 아들과 여자 친구가 의자 속으로 폭 들어간 모습이 확인돼요.

▶스페인 디자이너 하이메 아욘이 디자인한 21세기의 셸 의자 쇼타임 체어
▶사무 공간에서 독립된 공간을 제공하고자 디자인된 영국 노턴사의 버즈비 체어

독립된 공간을 보장받고 싶은 욕망

아빠와 간단히 몇 마디 나눈 뒤 아들은 다시 의자를 회전시켜 아빠를 외면해요. 그리고 문을 닫아달라고 말하죠. 아빠는 문을 닫으려다 멈칫하고 살짝 열어두고 사라져요.

아들은 프라이버시를 강화하려 하고, 아빠는 마지막 감시의 여지를 남기려고 해요. 이것은 부자간의 갈등이라기보다 자연스러운 현상이에요. 결국 이 어린 아들도 커서 떠날 거예요. 하지만 집에 있는 동안만은 독립된 공간을 보장받고 싶어 할 거예요.

이때 영화의 소품으로 나온 의자는 알파 셸 에그 체어에요. 셸 에그 체어에 영감을 준 것은 핀란드 디자이너 에로 아르니오가 디자인한 볼(Ball) 체어인데요. 말 그대로 공처럼 둥글어서 그 안에 몸을 숨길 수 있어요. 1970년대에는 플라스틱 기술의 발전으로 이런 종류의 셸 구조, 즉 조개나 소라 같은 둥글고 딱딱한 껍데기로 아늑한 공간을 만들어내는 의자가 다수 출시되었어요.

이런 종류의 의자들은 소음을 차단하고 몸은 은폐할 수 있다는 점을 부각해 매출액을 높였어요. 셸 구조의 의자로 가장 유명한 명품은 덴마크 디자이너 아르네 야콥센이 디자인한 에그 체어에요. 이 의자 역시 달걀 모양으로 몸을 감싸서 편안함과 조용함, 외부로부터 차단된 느낌을 주죠. 이는 방이라는 커다란 공간으로부터 독립된 또 다른 공간이라는 개념을 제공해요. 유년 때는 자기 방이 있어도 엄마 아빠의 침대 속으로 들어오다가 커서는 집 안에서조차 독립된 공간을 찾는 청소년에게 딱 맞는 가구인 거예요.

아이의 이런 태도는 마치 고양이를 보는 것 같은데요. 우리 집 고양이는 이제 1년 넘게 같은 집에서 살았으니 이 집을 자기 집으로 느끼고 편안하게 생활할 만도 해요. 하지만 여전히 사방을 경계하죠. 조그만 움직임에도 화들짝 놀라 등허리를 꼿꼿이 세우곤 해요.

무엇보다 늘 숨을 곳을 즐겨 찾아요. 아기 때는 책꽂이 속, 책 위의 작은 틈 속으로 들어가 잠을 잤어요. 몸이 커져서 그곳으로 더는 들어갈 수 없자 자기 집은 물론 소파 뒤나 옷장 속 등 사방이 막힌 또 다른 공간을 찾아 들어가고요. 왜 그럴까요? 고양이에게 인간의 집은 일종의 자연, 즉 언제든지 위협이 될 수 있는 곳이라 여기기 때문일 거예요.

아들도 몸과 의식이 자라고 감수성이 예민한 나이가 되면서 가장 편안한 집이라도 누군가가 있다면, 그것이 부모라고 해도 불편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되면 고양이가 사방이 막힌 공간, 즉 편안하고 안전한 곳을 찾듯 사춘기 청소년도 노출되지 않는 곳, 간섭으로부터 차단된 곳을 찾는 것이죠.


▶핀란드 디자이너 에로 아르니오가 디자인한 볼 체어는 셸 에그 체어에 영감을 주었다.
▶덴마크 디자이너 아르네 야콥센이 디자인한 에그 체어는 셸 구조 의자 중 가장 유명하다.

집의 본질은 ‘아늑함의 구현’

집의 본질은 벽을 쌓고 지붕을 막아서 자연으로부터 경계를 만드는 거예요. 그런 경계는 생존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요. 그런 다음 창문을 뚫어 밖의 정보를 주시하고요. 추위와 더위, 비와 눈을 막는 것은 물론 시선과 소리를 차단한 뒤 자기 자신은 사방을 주시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집의 본질이에요. 


인류 초기의 집인 동굴부터 동시대의 초고층 펜트하우스까지 모두 그 본질을 강화해왔죠. 그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아늑함의 구현’이라고 할 수 있어요. 집은 아늑해야 해요. 볼 체어와 에그 체어류 의자들은 집의 그러한 본질을 의자로 압축했어요. 따라서 이 의자들은 집 속의 집인 셈이에요.

이렇게 집에서조차 아늑한 공간을 찾는 인간의 본성이 다른 곳을 간다고 달라질 리 없어요. 시스템 사무 가구에서는 파티션이 그런 역할을 하죠. 이른바 큐비클(cubicle: 파티션으로 사방을 막아 전체 사무실에서 분리되고 독립된 사무 공간)이 현대 사무실에서 태어난 건 이런 인간의 본성상 필연적인지도 몰라요. 하지만 큐비클은 또한 직원 간 소통의 부재를 가져와 최근에는 기피하는 경향이 있어요. 사무 공간을 개방적으로 만들되, 개인 업무에 집중하고자 하는 직원들을 위해 별도로 폐쇄되고 독립된 의자를 들여놓기도 해요.

최근 의자들이 자주 보여요. 오늘날 사람들은 개방된 곳에서도 방해받지 않는 독립된 공간을 갖고 싶은 욕망이 많아요.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에 등장한 알파 셸 에그 체어. 영화에서 주인공 아들의 방에 놓여서 ‘방 속의 방’을 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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