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에 놀면 뭐하니? 책 읽자! 한가위 추천도서 7
이번 한가위는 고향 방문보다는 집콕이 우리 모두의 건강과 안전을 위한 최선이에요.
모처럼 건강한 휴식을 할 수 있는 추석 연휴에 차분하게 독서를 하며 지내는 건 어떠세요? 독서의 계절 가을에 읽기 좋은 책을 추천해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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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운영하는 책나눔위원회가 매달 일곱 권의 책을 추천하고 있어요. 문학, 인문예술, 사회과학, 자연과학, 실용 일반, 그림책·동화, 청소년 분야의 추천 도서는 여러분의 독서 욕구와 지적 호기심을 샘솟게 할 거예요. '공감'이 한가위를 맞아 책나눔위원회의 추천 도서를 독자 여러분에게 소개해 드립니다.
퀸 메릴
메릴 스트립은 어디서나 인생의 진정한 주인공이 되는 법을 아는 사람이에요. 카메라 앞에서는 모든 것을 연기 속에 불사르는 배우지만, 촬영이 끝난 뒤에는 평범한 사람의 길로 돌아오는 데 아무런 주저함이 없는 그녀의 모습은 우리에게 ‘비울 줄 아는 용기’를 가르쳐줍니다.
타인의 시선에 중독된 유명 인사가 아니라 오직 나의 삶에 꾸밈없이 충실할 수 있는 용기. 그것이야말로 현재를 충만하게 살아가는 최고의 지혜가 아닐까요. 메릴 스트립은 아카데미상 후보에 가장 많이 오른 배우일 뿐 아니라 반핵운동, 환경운동, 여성운동 등 수많은 사회운동가의 모습을 보여주며 더 나은 세상을 향한 발자국을 내딛고 있어요.
단지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을 더욱 아름답게 연주하는 힘을 지닌 사람, 메릴 스트립. 세상 모든 존재가 결국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일깨우는 그녀의 강인하고도 지혜로운 삶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눈부신 영감을 전해줍니다.
정여울 위원(<나를 돌아보지 않는 나에게> 저자)
도시로 보는 유럽사
역사가 백승종은 믿고 보는 저자예요. 그는 폭넓은 지식과 깊은 안목, 예리한 통찰력으로 시간과 공간을 가로지르며 역사를 소환해 우리의 삶을 성찰하도록 해주는데요. 그에게 역사는 늘 ‘지금, 여기’에 대한 반성적 사유로 연결돼요.
이 책에서 백승종은 유럽의 18개 도시를 충분히 사전 탐사하고, 여러 날 한 도시에 머물며 그곳에서 현지의 동료 학자와 함께 탐방하고 대화하며 느낀 소회를 충실하게 담았어요. 달달한 기행문이 아니라 통찰의 시선으로 과거와 현재를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그의 글은 튼실하고 담백해요.
그리고 ‘지금, 여기’에 대한 애정과 관심, 사유가 고스란히 배어 있어요. 그 결들이 켜켜이 박혀 있어서 읽는 내내 즐거움과 더불어 반성의 시간을 갖게 되죠. 코로나19로 당분간 해외여행이 불가능한 현실에서 오히려 이런 공간과 시간의 탐구를 누리는 즐거움은 작은 행복이 될 거예요. 관광지와 건물 기행이 아니라 사유의 자유로운 유영을 함께 누려보기 좋은 책이에요.
김경집 위원(인문학자)
마스크가 말해주는 것들
인류사가 코로나19 이전인 BC(Before Corona)와 이후인 AC(After Corona)로 나뉠 것이라는 농담이 우습지 않은 요즘이에요. 때로는 감지조차 어려운 인류의 역사라는 거시적 흐름은 물론이고 작은 지류인 우리의 일상, 그 미시적 경험 역시 심대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어요.
예전으로 완전히 돌아가기 어려우리라는 이야기가 ‘설마’를 넘어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불확실한 현재를 해석하고 불연속적 미래를 예측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어요.
사회, 경제, 정치, 교육, 문화 등의 현재와 미래에 관한 거대한 담론은 전 세계적 보편성의 영역이 된 감염병 세계적 유행(팬데믹)의 양상 아래 의미가 커요. 하지만 범위를 좁혀 코로나19가 우리 일상이 존재하는 사회적 특수성의 맥락 아래 어떻게 기능하고, 어떤 과제를 제시하는지 살펴보는 것 또한 의미가 있어요.
이 책은 코로나19와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모습의 사회학적 에세이예요. 짚어봐야 할 일상 속 코로나, 코로나 속 일상의 겉과 속을 진지하게 다뤘어요.
이준호 위원(호서대 경영학부 교수)
달콤한 나의 도시양봉
이번 달에는 어렵거나 무거운 과학이 아니라 우리 삶과 가까운 과학 이야기를 전해주는 책을 추천하고 싶었어요. 얼마 전 TV 채널을 돌리다 어떤 연예인이 반려동물로 집에서 꿀벌을 키우는 장면을 본 것이 이 책에 관심을 가진 이유예요.
수업시간에 전 세계적으로 벌이 급격히 줄고 있어 인류의 위기가 될 수도 있다고 가르쳤지만 벌을 어떻게 키우는지 전혀 몰랐던 나는 도시에서 벌을 키운다는 발상의 전환이 재미있어 이 책을 읽게 되었어요. 그 연예인은 서울 근교에 살면서 꿀벌을 키우고 있었지만 이 책을 읽으며 도시에서도 양봉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덤으로, 기능으로 분화되어 있는 다양한 벌과 그들이 함께 만드는 꿀벌의 사회에 대한 생태적 지식과 이해를 넓힐 수 있었어요. 이 책은 기자로 도시 양봉을 취재하러 나섰다가 양봉의 세계에 입문한 저자가 실제 2년 동안 서울에서 벌과 함께 살아간 이야기를 정리한 거예요. 벌과 꿀과 꽃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벌을 키우면서 내면이 치유되는 저자의 경험이기도 해요.
송기원 위원(연세대 생명과학부 교수)
나는 성을 가르칩니다
유아기 아이들이 몰래 서로 몸을 보여주며 노는 몸놀이를 한다는 걸 알게 되면 부모들은 당황하고 말아요. 자녀가 2차성징을 하는 청소년기에 이르면 여전히 많은 부모는 숙제하듯 ‘몸을 잘 지켜야 한다’고 결론짓는 성교육을 해요.
추천하는 책 '나는 성을 가르칩니다'는 부모라면 누구나 고민하는 성교육에 대한 책이에요. 어린아이를 키우는 엄마이자 성교육 강사인 저자는 아이를 기르면서 성범죄자, 성범죄 피해자, 청소년 등 다양한 이들을 대상으로 성교육을 하며 경험하고 느낀 점을 독자들과 공유하고 있어요.
자녀의 몸놀이에는 “엄마도 같이 할까”라고 반응하면 어떨까요. 청소년을 대상으로 성교육 과외가 성행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늘 곁에 있는 양육자가 성에 대해 진지하고 실질적으로 조언해주는 것일지 모르겠어요.
미래 세대가 성범죄의 가해자, 피해자로도 성장하지 않으려면 올바른 성교육은 필수인데요. 이는 청소년이 성평등(젠더) 감수성을 가진 성인으로 성장하는 것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요.
송현경 위원(내일신문 기자)
나의 과학자들
어린이 과학책이 쏟아지지만 대다수가 외국 책이고 좋은 창작은 찾기가 어려워요. 그런 가운데 눈에 번쩍띄는 책. 국내 어린이 과학 논픽션 분야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작가가 자신의 삶의 과정에서 만나고 영향을 받은 여성 과학자들을 소개해요.
무엇보다도 직접 배운 실크스크린으로 그들의 초상에 자신의 심상을 얹어 보여주는 얼굴들이 일품이에요. 우리에게 낯익은 마리 퀴리의 사진을 제쳐두고 작가는 온갖 자료를 뒤진 끝에 단체 사진 한 귀퉁이의 작은 얼굴을 끌어내왔어요. 그렇게 찾아낸 얼굴들은 독자에게 뭔가 개별적인 말을 건네요. 작가에게 그랬던 것처럼.
나의 경우는, 리제 마이트너였는데요. 스스로 과학에는 문외한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일지라도 과학이 인생의 지표가 되고, 과학자가 삶의 지도자(멘토)가 될 수 있다는 놀라운 깨달음을 주는 책이에요. 칠판 앞에서 가르치는 게 아니라 찻잔 앞에 놓고 하하 웃으며 옛이야기 들려주듯 하는 작가의 말투로 여성 과학자 29명의 삶을 들여다봐요. 세상이 조금 달라 보일 거예요.
김서정 위원(동화작가)
백석의 노래
말을 사용하는 능력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은 없어요. 문제는 그것을 기르는 방식이죠. 항상 쓰고 있어도 ‘고급의 수준’으로 향상시키려면 합리적인 방법과 노력이 필요해요. 그 가운데 하나가 낱말 익히기인데, 한국 사회는 그에 대한 인식이 무뎌요.
예컨대 영어를 공부할 때는 교본에 따라 어휘 학습을 앞세우면서도 국어 공부에서는 그러지 않아요. 이 책은 근래에 김소월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백석의 시 전편을 요즘 말로 바꾸고 해석하되, 낱말 풀이와 말뜻의 구조 분석에 주력하고 있어요.
지은이의 말을 빌리면 ‘겨레 삶과 말의 곳간’인 백석의 시를 맛보면서 오늘날 잃어가는 토박이말을 발견하고 또 익히게 해요. 한국 언어예술의 정수 중 하나인 백석의 시를 감상하며 국어 능력을 기르도록 도와주는 거예요. 101편의 시를 발표순으로 엮었기에 시인의 마음이 흐른 자취를 따라 순서대로 읽을 수도 있지만, 아무 데나 펼쳐 한 편씩 음미하며 한국인다운 정서와 언어능력을 발전시키기에 좋은 책이에요.
최시한 위원장(숙명여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