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의 대가 몬드리안, 왜 직선과 사각형을 고집했을까?

조회수 2020. 8. 28. 10:0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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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의 대가라 불리는 몬드리안의 작품들은 모두 각져 있다는 사실, 알고계셨나요? 면과 선 모두 사각형 틀 안에 맞춰 조화를 이루고 있는데요. 곡선이나 대각선을 찾을 수 없어요. 몬드리안이 왜 직선과 사각형의 매력에 빠진건지 자세한 내용을 함께 알아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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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터르 몬드리안, ‘브로드웨이 부기우기(Broadway boogie-woogie)’, 캔버스에 유화, 127×127cm, 1942~1943. 뉴욕현대미술관 소장│ⓒ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추상미술은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이나 사물의 형태를 최소화하고 점, 선, 면과 색의 특징을 이용한 미술 사조로 19세기 말에 잉태돼 20세기 들어 본격적인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어요. 


보이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전통적인 미술의 가치와 개념을 전복한 추상미술은 크게 뜨거운 추상과 차가운 추상 두 가지로 나뉘는데, 전자는 작가의 주관적·즉흥적인 감정과 열정을 비구상적인 형태와 색채로 드러낸다고 해서 서정적 추상이라고도 불러요. 반면 후자는 수학적 논리에 따라 선과 면을 기하학적으로 분할해 최소 단위의 형태와 색채로 나타낸다고 해서 기하학적 추상으로 부르기도 해요. 뜨거운 추상과 달리 감정의 절제, 조화, 질서 등을 강조해요.


즉흥적이고 자유로운 감정 표현이 특징인 뜨거운 추상의 대표적인 화가로는 바실리 칸딘스키(1866~1944, 러시아)와 잭슨 폴록(1912~1956, 미국)이 있어요. 감정의 절제, 조화, 질서 등을추구하는 차가운 추상은 네덜란드 현대미술의 영웅 피터르 몬드리안(1872~1944)이 대표적이에요.


선과 면만 가지고도 훌륭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사실을증명한 그는 삼원색(빨강, 파랑, 노랑)과 무채색(흰색, 검은색, 회색), 수직선, 수평선, 정사각형, 직사각형이 만나 창출한 단순성과 조화, 질서, 객관적 사실성 등을 열쇳말로 하는 신조형주의의 창시자로 유명해요. 


신조형주의는 구상적이고 재현적인 일체의 기존 기법을 멀리해요. 몬드리안이 고안한 신조형주의 양식은 미술은 물론 디자인과 현대건축 분야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어요.


신조형주의로 꽃피운 신지학(神智學)

1872년 네덜란드 중부 위트레흐트주의 아메르스포르트에서 태어난 몬드리안은 아마추어 화가인 아버지와 전업화가인 큰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곧잘 그림을 그렸어요. 


불세출의 추상화가 몬드리안이 탄생하는 데에는 두 가지 중요한 동력이 작용했는데, 그중 하나가 암스테르담 미술학교 시절에 접한 신지학(神智學)이었어요. 신지학은 세상 만물의 기저에는 변하지 않는 보편적인 지혜, 즉 우주를 지배하는 법칙이 있다는 믿음 아래 신의 영역과 영적인 존재를 연구하는 종교적·철학적 사상인데, 사물의 본질적인 실체 탐구에 관심이 많았던 몬드리안을 단숨에 사로잡았어요.


신지학은 몬드리안이 창안한 이른바 신조형주의로 나아가는 씨앗 역할을 한 것이에요. 작품 활동 초기에 몬드리안이 주로 그린 것은 풍경화와 정물화였으나 신지학의 매력에 빠지면서 화풍도 조금씩 달라질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어요. 실제로 몬드리안은 파리로 떠나기 2년 전인 1909년 신지학협회 회원이 되었어요.


나머지 동력 하나는 파리로 떠나던 해인 1911년 암스테르담에서 직접 본 입체파 작품이었어요. 사물을 완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입체주의 작품은 몬드리안의 몸속에서 꿈틀대던 불변의 우주 법칙에 다가가고자 하는 예술적 욕망을 활활 타오르게 부추겼어요. 입체파 작품에 대한 체험은 몬드리안이 파리행을 결심한 동기이기도 했어요.


1938년까지 파리를 중심으로 왕성한 작품 활동에 매진한 몬드리안은 2차 세계대전의 포화를 피해 1940년 미국으로 망명했으며 뉴욕 시절인 1942~1943년 그 유명한 ‘브로드웨이 부기우기’를 세상에 내놓았어요. 신조형주의로 압축되는 차가운 추상 회화의 완결판이자 대표작인 이 그림을 완성한 이듬해 뉴욕에서 72세로 세상을 떠났어요.


지천명(知天命)을 눈앞에 둔 1920년대 초, 몬드리안은 불변의 진리 탐구에 대한 예술적 성과를 정리한 내용을 <신조형주의 선언>이라는 책으로 냈어요. <신조형주의 선언>은 몬드리안을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았어요. 삼원색과 무채색, 수직, 수평선 및 사각형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비례 균형미와 단순 절제미는 유럽 각국의 화가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데 이어, 1936년 뉴욕현대미술관에서 개최한 <입체파와 추상미술> 전시를 계기로 몬드리안의 명성은 미국 전역으로 뻗어나갔어요.


4년 뒤인 1940년, 뉴욕 땅을 밟은 몬드리안은 화가로서 화룡점정의 결실을 맺는 전기를 맞이해요. 당시 뉴욕은 최첨단 거대 도시를 상징하는 마천루의 도시였어요. 도시 전반을 감싸는 활기찬 분위기와 자유분방한 뉴요커들의 움직임, 자유롭고 경쾌한 재즈 음악의 유행, 레고 블록과도 같은 도시계획은 몬드리안이 갈망한 수평, 수직 두 직선의 만남과 사각형으로 대변되는 순수한 본질 그 자체인 ‘차가운 추상화’의 완결판을 구현하기에 최적의 환경이었어요.


뉴욕의 분주하고 활달한 이미지 극대화

그러면 몬드리안은 왜 유독 직선과 사각형의 매력에 빠진 것일까요? 그것은 그의 모국, 네덜란드의 지형적 조건에서 찾을 수 있어요. 네덜란드는 국토의 4분의 1이 해수면보다 낮아 국토 간척사업이 불가피한 지형이에요. 간척사업으로 형성된 국토는 직선모양으로 사방이 수평, 수직선으로 이어지는 형세고, 간척사업의 핵심 동력은 풍차였어요. 풍차를 이용해 둑 안에 갇힌 바닷물을 퍼 올려 땅으로 개간했어요.


풍차 역시 몸통과 날개가 수직, 수평선 모양이에요. 반듯하고 정돈된 느낌이 강한 수직, 수평선에 익숙한 네덜란드인들은 기울어진 사선을 불안하고 불길한 징조로 여겼어요. 몬드리안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는 우주의 본질을 직선과 사각형에서 찾았고, 뉴욕은 그의 예술혼을 찬란하게 꽃피우는 강력한 에너지가 됐어요.


‘브로드웨이 부기우기’는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빨강, 노랑, 파랑의 삼원색과 흰색과 회색 계통의 무채색을 띤 크고 작은 사각형들이 질서정연하면서도 활기차고 경쾌하게 화면을 장식하고 있어요. 수평과 수직선 위의 노란색 택시들이 질주하는 모습이 떠오르고, 뉴욕의 밤거리를 눈부시게 비추는 빨강과 파랑 네온사인 불빛이 시야를 가득 채워요.


그런가 하면 중앙과 좌우상하, 네 모서리 할 것 없이 그림 전체에서 기하학적으로 정교하게 계산된 비례와 균형감이 압도적으로 다가오고, 삼원색과 무채색, 평화롭고 안정적인 수평선과 역동적이고 발랄한 수직선의 조화로운 배열은 신나는 재즈 음악과도 닮았어요. 실제로 몬드리안은 재즈 음악인 부기우기의 리듬에 맞춰 춤추기를 좋아했어요.


특히 종전 그림과 달리 완고한 분위기의 검은색을 전격적으로 배제함으로써 뉴욕이라는 도시의 밝고 분주하고 활달한 이미지를 극대화한 점이 돋보여요. 정지된 2차원의 평면 위에 물감의 집적만으로 우주 만물의 근원적인 정신을 군더더기 하나없이 압축한 걸작인 이 그림은 뉴욕현대미술관에 가면 볼 수 있어요.

© 박인권_ 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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