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도 불쾌해서 피해다닌 건물은?

조회수 2020. 8. 21. 11:0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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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창조자들은 낯선 곳, 이질적인 곳을 여행하며 영감을 얻기 시작했어요. 그 결과 전 세계 문명의 발달이 촉진되었죠. 하지만 요즘은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현대인은 수많은 문화를 즐길 수 있어요. 새로운 것이 나오면 실시간으로 전 세계로 퍼지면서 더는 낯선 것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는데요. 지금 시대에서 과거 창조자들처럼 새로운 혁신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에게 직접 들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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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돌프 로스가 디자인한 골드만 살라치 빌딩. 창문을 장식하지 않아 주변 건물들과 차별화 된다.

나는 TV의 신기함을 느껴봤어요. 내가 국민학교 다닐 때만 해도 집집마다 TV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어요. 국민학교 2학년 때 매주 방영하는 만화 영화 <마징가Z>를 친구 집에서 봤어요. TV가 얼마나 각별한 물건인지 기억해요. 하지만 내 아들은 TV는 물론 컴퓨터, 인터넷 등 온갖 첨단 문명의 이기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자랐어요. 그나마 우리 애는 초등학교 때 처음으로 휴대전화를 구경했다는 점에서 태어나자마자 휴대전화를 문지르는 2010년대 이후 출생 아이들과 다른 세대로 구분될 것이에요.


TV를 비롯한 집 안의 전자제품, 자동차, 비행기, 고층 빌딩, 인터넷 이 모든 것이 신기하지 않을 수 없어요. 하지만 우리는 그런 것들의 존재를 특별히 놀라워하지 않으며 마치 공기를 마시듯 다루고 살아가요. 처음 생겨났을 때의 충격은 잠시이고 금방 적응해요. 양식도 마찬가지예요. 20세기 초 현대적인 주택이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충격을 넘어 위협까지 느꼈어요. 그것에 대한 일반인의 반응은 조롱이거나 외면이었어요.


1909년, 오스트리아 빈에 혁신적 건축인 골드만 살라치 빌딩이 들어섰을 때 시민들이 보인 반응이 딱 그랬어요. 이 건물은 ‘장식은 죄악’이라고 주장한 급진적인 건축가 아돌프 로스가 디자인했어요. 이 건물의 표면에는 일체의 장식이 없어요.


서양의 고전 건축물은 반드시 창 주위를 장식해요. 창 옆에 가짜 기둥을 세우고 창 위쪽에 삼각형의 박공지붕 모양을 붙여요. 고전 건축에서 창문 하나하나는 독립된 작은 집처럼 보여요. 그러니 아무런 장식이 없는 창문이 시민들의 눈에 얼마나 허전하게 보였을까요? 


당시 빈 사람들은 이 건물을 눈썹이 없는 눈에 비유했어요. 신문의 만평가는 로스가 사각형의 구멍이 규칙적으로 뚫린 맨홀 뚜껑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 것이라고 비꼬았어요. 이 건물은 황궁으로 향하는 광장에 세워졌어요. 당시 오스트리아의 황제 프란츠 요제프는 이 건물을 보는 것이 너무 불쾌해서 일부러 광장을 피해 다녔다고 해요.


경험 못한 것을 전제로 하는 경이로움

▶ 1925년 지어진 슈뢰더 하우스는 당시로서는 과격한 모던 하우스로 주민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지금 보면 이 건물의 외관은 너무나 평범해요. 현대 주택은 대부분 벽이 평면적이고 창문 주위에 장식이 없어요. 이후 건축가들은 아돌프로스가 열어놓은 길로 간 것이에요. 그러니 현대인은 이 건물이 하나도 이상하거나 놀랍지 않아요.


1920년대 모더니즘 건축가들이 지은 평지붕도 마찬가지예요. 지붕이 평평하다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아주 오래전부터 그런 집이 존재했을 거라는 착각까지 일으켜요. 하지만 유럽에서 수평 지붕은 20세기에 처음 등장했어요. 유럽에 처음 나타난 수평 지붕의 모던 하우스들은 동네 주민들에게 빈축을 사기 일쑤였어요.


이처럼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성과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언제나 부정적이었어요. 이 반응은 마치 다른 인종을 처음 봤을 때의 느낌과 비슷해요. 사람들은 낯선 인종을 처음 마주했을 때 당황해요. 그리고 이상하거나 무섭다고 판단해요.


낯선 것에 대해서는 그것이 가진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기 마련이에요. 왜냐하면 그런 판단을 하기에는 너무 당황스럽고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과거 조선인이 백인을 처음 봤을 때 ‘코쟁이’ 라고 놀린 이유는 그것이 낯설고 이상해서 차라리 무시하고 조롱한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오늘날에는 어떤가요? 수많은 사람이 백인의 얼굴을 모방해 코를 높이고 쌍꺼풀을 만드느라 기꺼이 돈을 쓰지 않나요. 아무튼 한국인도 이제는 백인이나 흑인을 보고 놀라움이나 두려움을 느끼지 않아요.


경이로움은 아직 경험하지 않은 것을 전제로 해요.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지 않아 다른 인종, 다른 지역에 사는 동물, 다른 문화권의 건축과 가구를 본 적이 없고, 볼 기회가 없을 때 경이로움이 남아 있어요. 마찬가지로 디자인도 아직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어떤 재료와 기술이 남아 있을 때 새로운 것, 충격적인 것이 창조될 여지가 있어요. 모더니즘 역시 새로운 재료와 가공 기술이 완전히 낯선 양식을 태어나게 한 원동력이에요.


의자를 예로 들어봐요. 과거에는 나무로만 의자를 만들었어요. 새로운 것이 나오기에는 한계가 있어요. 그 뒤로 강철 파이프, 합판, 플라스틱 같은 새로운 재료와 가공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혁신적인 디자인이 뒤따랐어요.

▶ 로빈 데이가 1963년 디자인한 폴리프로필렌 의자는 당시로서는 플라스틱이라는 새로운 재료로 만든 혁신적인 디자인이었다. 과거의 혁신은 오늘날 평범하기 그지없다

낯선 것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

▶ 골드만 살라치 빌딩이 맨홀 두껑에서 영감 받은 건축이라고 조롱한 신문의 만평

건축 역시 마찬가지에요. 돌과 나무가 주재료였다가 19세기에 들어와 거대한 제련소에서 대량 생산되는 강철, 콘크리트 같은 재료의 출현이 비로소 모더니즘이라는 혁신을 가능케 했어요. 아울러 자동차, 비행기 같은 발명 역시 건축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어요. 새로운 개념의 물건은 요즘보다 19세기와 20세기 전반기에 오히려 더 폭발적으로 생겼어요. 기차, 자동차, 비행기 같은 이동 수단은 물론 영화와 라디오 같은 새로운 미디어, 온갖 가전제품도 대부분 20세기를 전후로 세상에 나왔어요. 따라서 19세기나 20세기 전반기에 태어난 사람들이 새로운 문명에 대한 경이로움을 훨씬 더 많이 느꼈을 거예요. 기술이 훨씬 발전한 오늘날의 사람들이 오히려 충격적인 경험을 덜 해요. 컴퓨터그래픽 기술이 발전해 CG 애니메이션이 막 나오던 1980~90년대의 놀라움을 21세기 아이들은 느낄 수 없어요.


게다가 기술은 보편화되고 있으며, 전 세계는 좁아졌어요. 과거의 창조자들은 낯선 곳, 문화적으로 이질적인 곳을 여행하며 창조의 자양분을 삼았어요. 서로 다른 문화가 만나는 곳에서 창조가 일어나기 마련이에요.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그런 문화적 융합도 아주 많이 진전되었어요. 그리하여 현대인은 동시에 수많은 문화를 즐길 수 있게 되었어요. 오늘 새로운 것이 나오면 실시간으로 전 세계로 퍼져요. 낯선 것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어요.


과연 이런 시대에 혁신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나는 그런 의문이 생겨요. 정말 인류가 보여줄걸 다 보여줬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증거는 요즘 건축, 디자인 잡지를 보면 잘 알 수 있어요. 늘 새로운 것을 보여줄 의무가 있는 잡지지만 새로운게 없어요. 돈과 기술을 잔뜩 쏟아부은 화려한 것들이 새로운 것을 대체하고 있어요. 아니면 새로운 척하고 있어요. 요즘 디자이너들은 과거를 새롭게 해석하는 것에는 능하지만 정말 새로운 건 좀처럼 내놓지 못해요. 21세기 건축가와 디자이너들은 그 전 세대의 건축가와 디자이너들이 보여줬던 창조를 결코 재현하지 못할 것이라 확신해요.


그들의 능력이 모자라서가 아니에요. 창조의 여지가 별로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에요. 20세기만큼 새로운 재료와 기술도 나오지 않을 것 같아요. 창조는 고갈돼가고 있어요. 마치 지구의 자원이 고갈돼가는 것처럼.

©김신 디자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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