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댓글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뷰 본문

공감

"40년 동안 사비들였다고?" 국내 최대 규모 한택 식물원의 탄생기

169,480 읽음
댓글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식물원에 가본 적 있나요? 식물원에는 정말 다양한 꽃과 나무가 있는데요. 식물원은 그냥 단순히 식물을 구경하는 곳만은 아니라고 해요. 병을 고치는 약 중 70%가 식물에서 나온다고 하는데요. 식물원은 식물의 종자를 보관하고 연구하는 역할도 하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식물원이 필요한 것이죠.

용인에 세계 각지를 돌며 일궈낸 국내 최대 식물원이 있어요. 북한에만 자생하는 식물은 중국에서 구해 올 정도로 이 식물원 원장님의 식물에 대한 사랑과 관심은 정말 대단한데요.

오늘은 공감에서 국내 최대 식물원인 한택 식물원 원장님과 인터뷰했어요. 언제부터 이렇게 식물을 모으기 시작했는지부터 어떻게 이 많은 식물들을 모을 수 있었는지 알아볼게요. 


▶(왼쪽부터) 흑산도 비비추/ 에키네시아/ 매미꽃

생김새가 이슬람교도의 터번을 닮았다고 해서 튤립인데요. 복스럽고 둥근 꽃잎이 사랑스러워요. 꽃말이 대부분 사랑과 닿아 있어요. 보라색 튤립의 꽃말은 영원한 사랑이고, 빨간색 튤립은 사랑의 고백이에요. 노란색 튤립은 헛된 사랑, 하얀색 튤립은 실연이죠. 사랑은 결코 투자나 투기가 아니지만, 튤립은 인간의 헛된 투자를 유혹한 꽃이에요.

400년 전 네덜란드에서는 튤립이 최고의 투자 대상이었다고 해요. 암스테르담에 증권거래소가 들어서고 자본이 대량 유입되며, 당시 신비의 꽃으로 불린 튤립에 투기 광풍이 불었어요. ‘화단에 튤립이 몇 송이나 있는지’가 부의 기준이 됐어요. 튤립 한 송이 가격이 당시 집 한 채, 황소 네 마리, 돼지 여덟 마리 가치였어요. 당연히 누구나 튤립 재배에 뛰어들었죠.

그러나 공급이 수요를 앞지르고, ‘단순한 꽃을 비싼 돈 주고 살 필요가 있나?’ 하고 깨달은 순간 가격은 폭락했어요. 최고치의 1% 수준에 가격이 형성됐고, 금보다 비싸던 튤립은 휴지 조각이 됐죠.

한택식물원의 이택주(80) 원장이 굳이 튤립 이야기를 꺼낸 것은 한때 식물이 인간의 욕망을 휘젓고, 부를 이루는 헛된 대상이 되기도 했다는 사실을 상기하기 위해서예요.

식물(植物)의 가장 큰 특징은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인데요. 땅에 심어져 있다. 동물(動物)은 움직인다. ‘정지’와 ‘이동’이라는 대치되는 개념이 동식물의 본질적인 차이예요. 움직이지 못하고, 말도 못 하고, 자신의 의사도 밝히지 못하는 식물은 동물인 인간이 보기엔 답답하죠. 인간이 꽃을 사랑하지만 대부분 일방적인 사랑이에요.

이 원장에겐 이런 상식이 안 통해요. 그는 평생 식물과 대화하며 살아왔기 때문이죠. 식물의 아픔을 느끼고 즐거움을 함께했어요. 같이 온몸으로 햇빛을 반겼죠. 남들이 보기엔 길가에 난 하찮은 풀이지만, 그에겐 모두 이름이 있고 보듬고 함께할 사랑의 대상이었어요.

▶(왼쪽부터) 미국 수 국 애나벨/ 수국/ 산수국/ 참나리


20만 평 규모 식물원 개인이 직접 일궈

경기도 용인시 비봉산 기슭에 자리 잡은 한택식물원은 모두 66만㎡(약 20만 평) 규모예요. 현재는 23만 550㎡(약 7만 평)만 일반에게 개방된다. 이 넓은 식물원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아닌 개인이 일구었어요. 흔히 이 원장을 만난 이들은 의심 없이 이렇게 이야기하는데요. “부모님을 잘 만나셨네요.”

이런 규모의 식물원을 당대에 가꾸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죠. 당연히 조상에게 물려받은 것이라고 지레짐작하기 마련이에요. 그냥 식물원도 아니에요. 국내 최대 규모의 자생식물원이죠. 한민족, 한반도의 식물을 모아놓았다는 뜻이에요. 개인이 거의 40년간 사비를 들여, 수입종이 아닌 자생종을 모았다는 것에 진한 감동이 몰려왔어요.

▶선인장

7월 16일 오후 이 원장은 한택식물원을 이곳저곳 다니며 세 시간 동안 직접 설명했어요. 팔순의 나이인데 허리가 조금도 굽지 않았죠. 식물원 비탈을 오르는 발걸음이 깃털처럼 가벼워요. 쉼 없이 꽃과 풀과 나무에 대해 이야기해요. 무려 1만여 종의 식물이 대부분 그의 손을 거쳐 이곳에 자리 잡았어요. 소매를 걷고 팔뚝을 보여줬어요. 손목 근처에 뼈가 불거져 있어요. 평생 호미질을 해서 생긴 ‘훈장’이에요.

그가 식물에 쏟은 집념을 숫자로 확인해볼게요. 그가 수집한 모란이 350종류이고, 작약은 120종류예요. 예수가 못 박혀 숨진 십자가의 재료로 기독교인들이 성스럽게 여기는 산딸나무는 무려 480종류가 이 식물원에서 자라고 있어요. 전 세계 식물원 가운데 가장 많은 종류를 모았다고 자랑했어요.

인공으로 만든 정원에는 물속에 뿌리를 두고 자라는 거대한 나무가 하늘을 향해 가지를 뻗고 있어요. 빽빽하게 심어놓기만 한 것이 아니에요. 식물원을 걷다 보면 탁 트인 공간에 잔디가 잘 가꿔져 있죠. 여유며 여백이었어요. 숲 속에 의자도 많아요. 틈나는 대로 앉아서 숲과 공감하라는 뜻이라는데요. 이 원장의 철학이고 의지에요.

▶알리움 퍼플 센세이션


유럽 30여 개국 배낭여행하며 식물원 탐방

자생식물만 있는 것은 아니에요. 열대식물을 모아둔 실내 식물원에는 소설 <어린 왕자>에 나오는 바오바브나무도 있어요. 높이가 10여 m에 이르는 열대 선인장만 모아둔 실내 정원도 있죠.

직접 외국 현지에 가서 구입해 화물선에 실어 날랐어요. 북한에만 자생하는 식물은 중국에 가서 구해왔어요. 다들 미친 짓이라고 했어요. 그는 왜 수백억 원을 들여 이런 식물원을 평생 만들었을까요? 애초 그는 식물과는 전혀 관계없었어요.

“용인이 고향입니다. 서울공고와 한양대에서 토목을 전공했어요. 졸업하고 설계회사에 취직해 도시설계를 했지요. 여관방에서 잠자며 돈을 벌었어요. 정말 열심히 살았어요. 그때의 로망은 고향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초원에서 소를 키우며 사는 것이었어요. 남진의 노래 ‘님과 함께’처럼 말이죠.” 그 노래 가사는 이렇게 시작해요.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 년 살고 싶어/….’

▶한택식물원을 가꾼 이택주 원장

이 원장은 설계 일을 하며 번 돈으로 고향에 조금씩 땅을 샀어요. 30대 중반 도시 생활을 접고 목장을 시작했어요. 초원을 가꾸고 소를 키웠어요. 현실은 노래와 달랐어요. 솟값이 폭락했어요. 소 한 마리를 150만 원 주고 사다가 3년 키웠더니 90만 원이 됐어요. 미국 쇠고기가 수입되는 바람에 망했어요.

목장을 포기하고 나무를 심기 시작했어요. 그러나 나무는 심는다고 그냥 자라는 것이 아니었어요. 말라죽었어요. 전문가를 찾아다녔어요. 국내에는 나무 전문가가 없었어요. 유럽 30여 개국을 배낭여행하며 각 나라의 식물원을 구경했어요.

“그때 결심했어요. 내 평생 노력으로 ‘번듯한 식물원을 만들겠다’고….”

▶연꽃


자생식물은 살아 있는 생명 문화재

한택식물원에는 1만여 종의 식물이 자라요. 이 가운데 한반도에만 자라는 자생종은 3800여 종. 식물원을 처음 만들 당시 외국종은 살 수가 있는데, 자생종은 파는 곳이 없었어요. 돈이 된다는 조경수를 제쳐놓고, 자생식물을 찾아 전국을 헤맸어요. 설악산, 지리산, 태백산, 한라산, 울릉도, 진도 등 국내 구석구석을 다녔어요.

그때는 산에서 자생식물 채취하는 것을 법으로 규제하지 않았어요. 설악산 향로봉에서만 자라는 ‘난쟁이붓꽃’, 울릉도에서 자라는 ‘두메부추’ ‘섬귀노루’, 한라산에서 자라는 ‘비로용담’ 등 낯선 식물이 이 원장과 대화를 시작했고, 함께 생활했어요. 주왕산 암벽에 자라는 ‘둥근잎꿩의비름’을 수집하려 하다 추락해 큰일을 당할 뻔했어요.

그런 노력으로 한택식물원은 국내 희귀식물의 보물창고가 됐어요. 가시연꽃, 개병풍, 노랑만병초, 단양쑥부쟁이, 대청부채, 독미나리, 백부자, 연잎꿩의다리, 층층둥글레, 털복주머니란, 홍월귤, 날개하늘나리, 솔붓꽃, 제비붓꽃, 각시수련 등등. 한택식물원이 관리하고 있는 멸종 위기 식물이에요.

도와주는 이가 있었어요. <대한 식물도감>을 쓴 이창복(1919∼2003) 선생, <한국식물도감>을 펴낸 이영노(1920∼2008) 선생. 이영노 선생과는 동강할미꽃, 태백기린초, 둥근잎정향나무 등 신종을 10개 이상 발견했어요.

▶바오바브나무 앞에서 관람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1980년 일본이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가입하면서 일본에서 야생화 붐이 크게 일었는데, 80년대 중반 이후 한국으로도 번지며 한택식물원이 주목받기 시작했는데요. 국내 야생화에 대해 알아볼 곳이 한택식물원이 유일했어요.

“한국은 ‘종자 빈국’입니다. 국제경쟁력이 약해요. 병 고치는 약의 70%가 식물에서 나옵니다. 식물원은 그 종자를 보존하고 연구, 교육하는 보물창고 같은 곳입니다. 그러니 자생식물은 살아 있는 생명 문화재라고 할 수 있어요.”

영국은 1만 8000여 종, 독일은 3만여 종, 미국은 5만 종의 종자에 대한 권리를 지니고 있어요. 전 세계적으로는 30만 종. 이 원장이 아직도 식물원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예요.

ⓒ 이길우


작성자 정보

공감

대한민국 정책정보지

    실시간 인기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잠시 후 다시 시도해 주세요 Please try again in a mo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