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비슷한듯 달라?" 17세기 포크의 탄생이 바꾼 칼의 디자인

조회수 2020. 8. 7. 10:1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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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가위 등 우리 주변에는 날카로운 도구가 많아요. 대표적인 것이 포크인데요. 포크가 없던 시절에는 끝이 날카로운 칼 두 개를 양손에 쥐고 식사를 했다고 해요. 하지만 포크가 생기고 칼이 고기를 고정하는 구실로부터 해방되자 칼의 끝이 부드러운 곡선 형태로 바뀌게 되었답니다. 이처럼 도구는 똑같은 기능이라도 사용하는 장소와 사람에 따라 도구의 디자인은 달라져요. 자세한 내용을 김신 디자인칼럼니스트에게 들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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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기자르는 가위의 디자인에 대해 비판한 월간 <디자인> 1985년 기사

지인들과 식당에 가서 불고기를 먹고 있었어요. 종업원이 가위를 가지고 불고기를 잘랐어요. 그때 함께 온 지인이 가위의 날카로움에 대해 지적했어요.


음식을 자르는 도구가 너무 날카롭다는 것이에요. 우리 주변에는 날카로운 도구가 많아요. 언제든지 그 날카로움을 인지할 수 있어요. 날카로움은 늘 사람을 심리적으로 위협해요.


주방의 칼조차도 나는 가끔 섬뜩할 때가 있어요. 설거지를 한 뒤 끝을 위로 향한 채 건조대에서 마르고 있는 칼을 볼 때 그래요. 고양이가 하루에도 몇 번을 싱크대에 올라가서 방황하는데 저기 찔리기라도 하면 어쩌지? 그런 걱정이 드는 것이에요. 하지만 그것의 편리를 알기 때문에 날카로움에 점점 무뎌지는 것이지 그 위협이 사라지는 건 아니에요.


그래서 그런지 한국의 음식 문화에서 날카로운 칼은 반드시 주방이라는 공간을 벗어나지 못 하도록 다스렸어요. 오늘날의 주방은 개방되어 있으며, 거실보다 중요한 집 안의 중심 공간이 되었어요. 과거 한국의 주거 문화에서 주방은 다른 방들과 단절된 폐쇄적인 공간이에요. 재래식 주거문화에서 그곳은 ‘부엌’이라는 말이 더 어울려요. 칼은, 정확히 부엌칼은 반드시 부엌에만 존재해야 하는 것이에요. 그곳에서 밥상이 차려지고 방으로 이동해요. 뭔가 잘라야 하는 음식이 있다면 부엌에서 완전히 자르고 해체한 뒤 밥상에 올라갈 수 있어요.

▶ 1851년, 아이작 싱어가 발명한 초창기 재봉틀은 산업용 기계처럼 생겼다.
▶ 싱어의 가정용 재봉틀은 부드러운 형태에 장식이 추가되었다.

동양의 젓가락 문화와 서양의 포크·칼 문화

흔히 젓가락 문화와 포크·칼(나이프) 문화를 비교할 때, 동양의 젓가락 문화에서는 고기 같은 음식이 잘게 잘린 상태로 나오는 것은 식사할 때 칼을 사용하지 않고 젓가락을 쓰기 때문이라고 분석해요. 롤랑 바르트는 일본을 다녀온 뒤 <기호의 제국>이라는 책을 썼는데, 이렇게 말해요. “음식물은 젓가락으로 집을 수 있도록 잘려질 뿐만 아니라, 젓가락도 음식물이 작게 잘려있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동양에서는 칼, 즉 사람을 위협하는 날카로운 도구가 긴장을 풀고 행복과 평화를 느껴야할 식탁에 오르는 것을 막고자 젓가락을 발명한건 아닐까요? 물론 이것은 역사적 근거가 없는 그냥 나의 추측일 뿐이에요.


반드시 칼을 사용해야 하는 서양의 음식 문화에서 칼의 존재가 하나의 문화를 만들어낸 걸보면, 나의 추측이 전혀 엉뚱하지 않다는 걸 느낄 수 있어요.


과거 유럽에서는 개인이 각자 자신의 음식용 칼을 지니고 다녔다고 해요. 악수는 자신의 손에 칼이 들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일이에요. 포크만 사용할 때는 다른 손에 칼이 있지 않다는 걸 증명하고자 다른 손, 대부분 왼손을 식탁 위에 올려놓는 것이 예절이었다고 해요. 칼을 식탁에 올려놓을 때도 칼끝이 자신을 향하도록 하는 것이 예절이었어요.


포크는 17세기 무렵 전 유럽에 보편화되었어요. 포크가 없던 시절에는 끝이 날카로운 칼 두 개를 양손에 쥐고 식사를 했어요. 포크가 생기자 칼디자인에 변화가 일어났어요. 칼이 고기를 고정하는 구실로부터 해방되자 칼의 끝이 부드러운 곡선 형태로 변한 것이에요. 이것으로도 안심이 되지않아 식사용 나이프에 한해 날을 무디게 했어요.


이 모든 예절과 디자인의 탄생은 언제든 무기로 돌변할 수 있는 식사용 나이프를 경계한 것이에요. 이렇듯 식탁 위 날카로운 도구의 존재는 함께 밥 먹는 이들을 심리적으로 불안하게 했어요. 따라서 식당에서 고기나 냉면을 자를 때 사용하는 가위를 보고 불안이나 위협을 느끼는 사람을 전혀 수긍하지 못할 일이 아니에요. 필자가 예전에 근무했던 월간 <디자인>에서는 1985년에 ‘냉면 자르고 불고기 자르는 가위가 원 이래서야…’라는 기사를 실으며 식당의 가위 디자인을 비판했어요. 기사에서 보면 가위가 재봉사들이 쓰는 가위인 것이에요. 1980년대에는 음식 자르는 가위가 따로 분류되지 않았던 모양이에요. 요즘에는 식당에서 이런 공장용 가위를 더는 쓰지 않아요. 그렇다고 딱히 재단용 가위와 크게 달라 보이지도 않아요. 왜 그럴까요?


숟가락은 삽, 포크는 삼지창의 축소형

▶ 산업용이 아니라 가정용으로 디자인한 올리베티의 발렌틴 타자기

공학자들에 따르면 도구는 바깥일의 요구로 탄생한 뒤 집 안으로 들어와 진화해요. 숟가락은 삽의 축소형이에요. 포크 역시 뜨거운 국물 요리에서 끓는 고기를 젓거나 꺼낼 때 쓰는 조리용 포크가 먼저 태어났어요. 이 조리용 포크는 두 개의 갈고리를 가진 크고 자루가 긴 도구였어요. 또 농기구인 삼지창이 있었어요. 이것이 축소된 것이 포크예요.


삽이나 조리용 포크가 숟가락과 식사용 나이프가 되면 반드시 그 디자인은 좀 더 순한 모양으로 변해요. 부드러운 형태가 되고, 기능적으로 필요하지 않은 장식이 붙어요. 재봉틀과 타자기 같은 현대적인 기계들 역시 처음에는 산업의 필요로 태어나 디자인이 대단히 기계적이고 투박하고 거칠었어요. 산업용 기계에 대해서는 예쁘게 다듬을 필요를 느끼지 않아요. 산업의 수요가 포화상태에 이르면 이런 기계들이 가정용으로 보급되요. 이때 비로소 부드러운 형태, 밝은 색상을 입어요. 에토레 소트사스가 디자인한 ‘발렌틴 타자기’는 이렇게 예쁘게 된 대표적인 타자기에요.


디자이너의 역할은 이렇듯 똑같은 기능을 하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장소와 사람에 따라 도구의 껍데기를 바꾸는 것이에요. 다시 말해 산업현장의 노동자들이 쓰는 도구와 가정의 식구들이 쓰는 도구를 구분해주는 것이에요. 더 나아가면똑같은 기능의 물건을 어린이용, 남성용, 여성용,귀족용 등으로 바꿔준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그 도구의 기능은 바뀌지 않아요.


여기서 위에서 언급한 의문으로 돌아가봐요. 왜 식당의 고기 자르는 가위는 여전히 큰 차이가 없을까요? 차이가 나는 디자인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에요.


핀란드의 유명한 피스카스 가위는 가정의 주방용 가위를 생산하는데, 오렌지색의 손잡이와 부드러운 형태, 짧은 날로 최대한 그 날카로움을 다스리고 있어요. 하지만 이런 디자인을 업소에서 쓰기에는 역시 너무 비싸다는 결론에 이르지 않을 수 없어요. 이것은 가정용인 것이에요.

▶핀란드 브랜드 피스카스의 주방용 고기 절단 가위들

ⓒ김신 디자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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