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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 닮은꼴? 명화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에 숨겨진 비밀

조회수 2020. 6. 1. 13:4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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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페르메이르의 대표적인 작품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노란색과 파란색의 강렬한 색감과 소녀의 알 수없는 표정은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지금까지 강렬한 인상을 주고 있어요. 몇백년전의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우리에게 호기심을 주게 하는 이 그림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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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반고흐 미술관,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이른바 네덜란드가 자랑하는 3대 미술관이에요. 이 중 헤이그에 소재한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에는 ‘북유럽의 모나리자’ ‘네덜란드의 모나리자’라고 불리는 유명한 그림이 한 점 있는데, 바로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예요. 


1999년 미국 작가 트레이시 슈발리에가 동명으로 발간한 소설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널리 알려진데 이어, 2003년에는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영화까지 나와 선풍적 인기를 끌었어요. ‘ 진주귀고리를한소녀’ 는 그 명성과 달리 아주 작은 그림이에요. 세로 44.5cm, 가로 39cm밖에 안 되는 소품이에요. 


이 그림은 지금으로부터 350여 년 전인 1665년경 세상에 나왔어요. 그림을 탄생시킨 화가는 네덜란드 서부 자위트홀란트주에 있는 인구 10만여 명의 작은 자치도시 델프트에서 태어나 평생을 그곳에서 보낸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우리가 잘 아는 렘브란트(1606~1669)보다는 덜 익숙한 이름이지만 그와 동시대 인물로 17세기 네덜란드 미술을 빛낸 거장이에요. 


지금이야 서양미술사에 당당히 대가(大家)로 이름이 올랐지만 화가로서 페르메이르의 존재 가치는 사후 거의 200년 동안 유럽 미술계의 수면 아래에 묻혀 있었어요. 1632년생인 그는 1675년 심장병이 도져 43세의 나이로 사망했는데, 1866년 프랑스의 미술평론가이자 미술사가인 테오필 토레(1807~1869)가 기획한 전시를 통해 비로소 새롭게 조명을 받게 됐어요.


빛의 움직임 객관적이고 사실적 기록

페르메이르는 풍속화가에요. 사소하고 평범한 일상의 풍경이 그의 그림 전체를 지배하고 있어요. 그가 그린 일상의 풍경은 너무나 특별하지 않다는 점이 특별해요. 페르메이르는 일반적인 풍속화에 나타나는 시대정신이 담긴 풍속이나 당대의 트렌드를 알 수 있는 사회상을 주제로 삼지 않았어요. 그는 지극히 하찮은 일상 속에서 예술성을 추구했으며 그것을 통해 회화 고유의 근원적인 가치 탐색을 성공적으로 정착시켰다는 점에서 20세기에 와서야 눈을 뜨게 된 현대미술의 정신을 앞장서 구현한 인물로 칭송받아요. 그 매개체는 ‘빛’이에요.


페르메이르의 그림을 보면 그가 빛을 얼마나 자유자재로 다루는지, ‘빛의 마술사’가 따로 없는 그 놀라운 솜씨에 감탄을 하게 되요.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나 ‘우유를 따르는 하녀’, ‘회화의 우의, 알레고리’ 등 그의 대표작들에서 빛은 대상의 표현을 위한 종속변수가 아니라 그 자체가 온전하게 그림을 구성하는 독립된 주체로 등장하고 있어요. 인물이나 물체에 비치는 빛의 각도와 양, 빛의 강약을 능수능란하게 조절함으로써 공간적인 느낌이나 깊이는 물론 원근법적 효과까지 얻어낸 것이에요. 그래서 그의 그림 속 빛은 화가의 묘사력을 돋보이게 하는 보조 수단의 역할을 뛰어넘어 주도적인 독립변수로 기능해요.


회화의 세계에서 빛을 다룬 화가는 여럿 있어요. 그러나 드러운 빛의 움직임을 객관적이고 사실적으로 기록한 이는 페르메이르가 거의 유일하다는 평가예요. 바로 이런점 때문에 페르메이르의 그림 속 평범한 일상은 결코 평범하게 다가오지 않고 진한 여운을 남겨요. 특히 그가 파란색과 노란색을 의도적으로 즐겨 사용한 것도 빛의 움직임이 자아내는 극적인 효과를 배가시키는 데 기여했어요. 훗날 빛과 물체, 빛과 색채의 역학관계 탐구에 몰두한 인상파 화가들에게 페르메이르의 그림이 연구 대상이었던 점은 자연스러워요.

▶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캔버스에 유채, 44.5×39cm, 1665년경. 네덜란드 헤이그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소장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연금술사처럼 빛을 다룬 화가

큰 눈망울을 한 소녀가 우리를 쳐다보고 있어요. 배경에는 칠흑 같은 어둠만 있을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적막강산의 배경 때문일까, 밝은 빛을 고스란히 받은 소녀의 얼굴은 화면을 압도적으로 점령해요. 배경과 얼굴의 극명한 명암대비로 소녀는 우리를 향해 성큼 다가오는 듯해요. 평범한 모습의 소녀, 단순 간결한 구성, 빛과 어둠의 극적인 대비… 이게 다일까요?


소녀의 눈과 입을 자세히 보세요. 화면 밖을 응시하는 맑고 밝은 눈빛, 살짝 벌린 채 불그스레 빛나는 입술. 우리에게 뭔가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아요. 정지된 한순간의 소녀의 얼굴 표정은 그래서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 동적으로 다가와요. 눈망울과 입술에서는 묘한 관능미까지 느껴져요. 물감의 집적(集積)에 불과한 평범한 소녀의 모습에서 어쩌면 이토록 생명력이 배어나올까요. 화가의 실력이 놀라울 따름이에요. 


그 비결은 소녀의 얼굴 전반을 줌인하듯 가득 채우고 있는 ‘빛’에 있어요. 연금술사처럼 빛을 다룬 화가는 세 부분에 승부를 걸었어요. 모두 흰 점처럼 보이는데, 두 눈의 홍채 가장자리와 왼쪽 입가 및 아랫입술 가운데, 진주 귀고리의 왼쪽 부분이에요. 흰색 점을 찍는 방식으로 부드럽게 빛나는 빛의 속성을 사실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눈동자도, 입술도, 진주 귀고리도, 마침내 소녀도 반짝반짝 빛나는 생명력으로 충만한 것이에요. 흰색으로 처리한 옷깃과 푸른색 터번, 금빛 색조의 두건과 노란옷도 밝게 빛나는 빛의 효과를 상승시키는 도우미로서 손색이 없어요.


소녀가 누구인지, 존재가 알려지지 않아 신비성이라는 세평까지 덤으로 보장받은 이 그림은 또 ‘모나리자’ 작품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최초로 선보인 스푸마토 기법 (색깔 사이의 경계선을 명확히 구분 지을 수 없도록 부드럽게 옮아가게 하는 기법)까지 감상할 기회를 우리에게 선사했어요. 윤곽선을 흐릿하게 뭉개듯 그린 눈가와 입술 언저리가 그 지점이에요. 눈썹이 없어 무모증 환자처럼 보이는 점도 모나리자와 닮았어요.

 ⓒ 박인권 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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