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끝나면 제주 바람맞으러 가볼까?! 제주 오름!

조회수 2020. 5. 15. 09:4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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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의 영향으로 해외 여행 수요가 국내 여행 수요로 대체되고 있는데요. '국내 여행 관련 책'이 여행도서 분야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오르고 있다고 해요.


제주도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며 시원한 바닷바람과 함께 힐링하고 싶은 마음이 드신다고요? 여러분의 답답한 마음을 위로 해줄 치유의 기운을 담아 이번에는 제주도 이야기로 랜선여행 떠나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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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에요. 거침없는 바람이고 바람은 기운이에요. 바람이 강할수록 강한 기운이 느껴지고 서귀포 앞바다에서 불어와요. 수많은 바다의 사연을 품은 바람은 제주 오름의 부드러움과 포근함을 한껏 머금고 비탈을 타고 올라와요. 바람 소리가 거칠어요. 바닷바람은 오랜 용암의 빈틈을 뚫고, 억센 풀잎의 저항을 헤치며 밀려와요.


“여기가 제주 368개 오름 가운데 가장 강한 기(氣)가 느껴지는 지점입니다.”


바람을 마주 하며 두 손을 앞으로 둥글게 내밀고 무릎을 구부린 채 눈을 감아요. 오름의 기운을 느끼는 자세를 따라 해요. 코로 조심스럽게 들이쉰 바닷바람은 기도를 타고 허파 속으로 파고들어요. 바닷바람의 기운을 아랫배로 내려보내요. 거친 바람 소리가 온몸에 전달되요. 발바닥에서 기운이 차올라요. 아래로부터 올라온 땅기운과 위에서 내려간 바다 기운은 배꼽 근처에서 합쳐지며 휘몰아 돌아요. 한동안 눈을 감았어요.


신선이 보름달을 보는 듯한 ‘군산오름’

얼마만큼 시간이 흘렀을까요? 눈을 뜨니 새파란 바다가 눈이 부시게 출렁여요. 제주 남쪽 바다가 한눈에 들어와요. 뒤로는 한라산이 든든히 버티고 있어요. 문득 궁금해졌어요. “왜 여기가 기운이 강하게 느껴지는 장소인가요?”


“풍수지리적으로 보면 최고의 명당입니다. 동서 양쪽에 봉우리가 자리 잡고 그 사이를 능선이 부드럽게 이어줍니다. 멀리서 보면 마치 두 신선이 밝은 달을 바라보는 형국입니다. ‘쌍선망월형(雙仙望月形)’입니다.” 두 신선이 사이좋게 보름달을 바라보고 있는 형국이라….

▶ 두 신선이 달을 바라 보고 있는 형국의 군산오름 정상을 관광객들이 오르고 있다

이 오름의 이름은 군산오름 이예요. 제주 남서쪽 서귀포시와 안덕면의 경계에 자리해요. 오름의 형상이 진을 친 군막형이라 군산(軍山)이라고 불러요. 제주 오름 전문가 신영대 교수(제주 관광대)가 설명해요. 제주 오름 가운데 비경(秘景) 세 곳을 안내해달라는 부탁에 신 교수가 처음으로 꼽은 오름이예요. 그는 풍수지리에도 밝어요. 제주 오름을 풍수로 풀이한 책 <제주의 오름과 풍수>를 쓰기도 했어요. 


군산오름의 정상 근처는 금장지(禁葬地)로 묘소를 쓰면 안 되는 곳이예요. 이곳에 조상의 산소를 쓰면 후손에게 재앙이 온다는 곳. 명당인데 묘를 쓰면 안 된다니…. 신 교수는 명쾌하게 설명해요. “마을로 내려오는 지맥의 혈(穴)에 묘를 쓰면 개인에게는 복이 오나, 마을의 안녕을 깨고 원인 모를 재앙을 마을에 안겨준다고 믿었기 때문에 금장 신앙이 생겼어요,” 전체를 위해 개인의 안녕을 뒤로한 것이예요.


추사 김정희가 거닐던 안덕계곡

제주도에는 군산오름 외에도 별도봉과 산방산이 금장지로 꼽혀요. 이들 오름의 중간중간에는 묘소가 많아요. 정상에는 묘를 못 쓰니 중턱에라도 묘를 썼기 때문이예요. 군산오름에 오르려면 안덕계곡을 거쳐야 해요. 


안덕계곡은 한겨울에도 짙은 녹음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예요. 웅장한 바위가 시선을 압도하고, 활엽 상록수가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빼곡해요. 안덕계곡을 품은 창고천은 오래전부터 물 맑고 풍광이 가장 빼어난 곳으로 소문나 있었어요. 조선시대에 제주 대정현으로 귀양 온 추사김정희(1786~1856)가 자주 거닐었던 계곡으로, 계곡 입구에는 ‘추사 김정희 유배지’라는 팻말이 눈에 들어와요.

▶ 추사 김정희가 제주 유배 시절 자주 거닐었던 안덕계곡의 깊은 연못

제주에서 만난 추사. 반갑다는 생각이 들면서, 55세의 늦은 나이에 제주도에 귀양 와서 9년을 살았던 추사의 아픔이 진하게 다가와요. 지금은 제주가 치유의 땅이 되었지만 조선시대에는 최악의 귀양지였어요. 조선시대 유배 가운데 가혹한 조처인 절도안치(絶島安置) 중에서도 가장 중한 처벌이 제주도 귀양이었어요. 절해고도에서 서서히 죽어가라고 보낸 귀양 조처였어요. 


조선시대 500년 동안 제주로 유배된 사람은 200여 명이고, 추사가 귀양 온 대정현까지 유배된 ‘죄인’은 30여 명. 대정현은 제주에서도 가장 남쪽이니 더는 멀리 보낼 수가 없었던 셈이예요. 당시 병조참판 자리에까지 올랐다가 당쟁에 밀려 고문당하고 유배까지 온 추사는 서예를 탐구하며 귀양의 고통을 잊으려 했을 거예요. 전설에 따르면 추사는 제주의 제자들에게 큰 그릇에 물을 담아 오라고 한 뒤, 먹을 갈아 종이가 아닌 그릇 물에 일필휘지로 글씨를 써 내려갔다고 해요. 그런데 추사가 물 위에 쓴 글씨가 물에 풀어지지 않고 한동안 그 형태를 유지했다고 하니, 추사 서예의 깊이를 짐작할 만해요.


추사체의 영감을 준 ‘단산오름’

신 교수는 내친김에 군산오름 가까이 추사가 머물렀던 집과 젊은이들에게 글을 가르쳤던 향교, 그리고 추사체의 영감을 준 단산오름에 가보자고 이끌어요. 제주에 유배 온 사람들은 대부분 그 시대를 대표할 만한 지식인이었기 때문에 제주 사람들은 앞다퉈 이들과 사귀려 했고, 자녀 교육 등을 부탁했다고 해요. 


추사는 당시 대정의 갑부 강도순 집에 몇 년간 머물며 유배 생활을 했어요. 지금 그곳에는 추사기념관이 있어요. 강도순 초가집은 제주4·3 때 불타버리고 빈터만 남았으나 그 후 고증에 따라 다시 지었어요. 추사의 오랜 동갑내기 친구로 제주에 위로 방문까지 했던 고승 초의선사(1786~1866)와 추사가 마주해 차담 나누는 모습을 재현한 방도 있어요.


추사가 후학을 가르쳤던 대정향교 마당에는 추사의 ‘세한도’에 그려진 실제 모델인 커다란 소나무가 아직도 있어요. 신 교수가 대정향교를 풍수로 설명해요. “대정향교는 봉황이 둥지로 돌아와 보금자리를 튼 비봉귀소형(飛鳳歸巢形)을 이루고 있어요. 이런 지형은 성인군자를 많이 배출한다는 명당으로 유명하죠. 특히 향교 뒤를 받치고 있는 단산 북쪽의 맥이 강하게 대정향교 대성전으로 내려오고, 향교 앞 광활한 평야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어요.” 


아마도 제주에 귀한 눈발이 날리던 날, 추사는 향교 마루에서 소나무를 보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을 거예요. 빈집 한 채의 양옆으로 소나무와 잣나무가 고고하게 서서 대칭을 이루는 ‘세한도’에서 추사는 감정을 절제하며 텅 빈 여백으로 고독한 유배 생활에서 느낀 비애의 감정을 표현했어요.


 맑은 호수 물에 비치는 ‘영아리오름’

단산오름에 올라요. 가파르고 험해요. 제주 오름 가운데 험하기로 손꼽혀요. 하지만 258개의 계단을 치고 올라 단산 정상에 이르면 사방이 광활해요. 한라산에서 내려온 한 가닥 오름 맥이 산방산으로 이어져 잠시 멈췄다가 단산과 송악산을 지나 마지막으로 마라도로 연결되요. 추사는 단산의 뾰족한 모습에 영감을 얻어 추사체를 완성했다고 해요. 거센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사방을 둘러봐요. 파노라마처럼 펼쳐져요. 가까이로는 산방산이, 멀리로는 한라산이 입체적으로 펼쳐져요. 거친 바다는 멋진 배경이예요.


“백호맥인 금산오름은 아름다운 여인이 거문고를 타는 형상인 옥녀탄금형(玉女彈琴形)의 지세입니다.” 아마도 추사 역시 가쁜 숨을 내쉬며 이곳에 올랐으리라.

▶ 제주 서귀포의 영아리오름 정상에는 커다란 용암덩어리가 자리잡고 있어 신비감을 고조시킨다.

신 교수의 세 번째 오름 비경은 영아리오름으로 단산에서 멀지 않아요. 영아리의 ‘아리’는 산이라는 뜻의 만주어고, 영은 영산(靈山), 즉 신령스러운 산이라는 뜻이예요. 오름 중간에 호수가 있어요. 맑은 호수 물에 오름이 거울처럼 투영되요. 신비해요. 


“용이 엎드려 물을 마시는 와룡음수형(臥龍飮水形)의 형국입니다.” 영아리오름의 정상에는 커다란 용암 덩어리가 자리 잡고 있어요. 화산 폭발 때 날아온 거예요. 신 교수가 부채를 들고 태극권을 선보여요. 한라의 기운과 태극권의 기운이 부드럽게 만나요. 그는 40대부터 중국 각종 유파의 태극권을 사사했고, 국제 태극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태극권의 고수예요. 그의 손에 있는 파란 부채의 날랜 선이 한라산 끝자락을 경쾌하게 타격해요. “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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