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에도 책임이 필요해' 생활동반자법의 필요성

조회수 2020. 5. 14. 11:0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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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꼭 결혼을 하지 읺더라도 동거를 하는 연인 관계 또는 친구 관계가 많지요? 서로의 외로움을 채우는 새로운 형태의 가구가 급격히 늘어났어요. 


이제는 책임을 갖는 동거 관계에 필요한 법과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데요.


이들을 뒷받침하는 제도의 필요성을 '외롭지 않을 권리'라는 책에 설명한 작가가 있어요. 바로 황두영 작가입니다. 인터뷰를 통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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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동반자는 서로 약속한 ‘동거 돌봄 관계’

▶황두영 작가가 4월 23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사옥에서 더불어 잘 살수 있는 사회를 제안하며 독자들에게 하트를 만들어 보이고 있다.

Q.

책 부제에 ‘혼자도 결혼도 아닌 생활동반자’라고 관계를 설명하고 있어요.

A.

생활 동반자는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싶은 연인일 수도 있어요. 또 이혼이나 사별 후 더는 친족관계를 만들고 싶지 않은 사람도, 노인과 장애인처럼 돌봄이 필요한 이들도 대상이 될 수 있어요. 즉 혈연이나 혼인으로 이뤄진 민법상 가족이 아닌, 두 성인이 합의 아래 함께 살며 서로 돌보자고 약속한 ‘동거 돌봄 관계’를 뜻해요.

Q.

동거하는 사람들이라고 하면 흔히 젊은 남녀를 떠올리는데, 책은 더 다양한 계층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A.

생각보다 많은 노년층이 생활 동반자 관계로 살고 있어요. 60대에 만나 20, 30년을 같이 사는 경우가 많아요. 겉보기엔 부부 같지만 혼인신고는 안 한 사이죠. 최근 방송인 김구라 씨가 새로운 인연과 함께 살고 있다고 공개했어요. 


다양한 동거에 대한 현실적인 필요성이 대중문화에서도 확산돼가는 분위기예요. 수명이 길어지면서 결혼이 아닌 다양한 관계로 함께 사는 사람도 늘어날 수밖에 없잖아요. 그 관계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거나 피해가 없도록 보호할 필요가 있는 거죠.

Q.

생활 동반자 법 논의의 핵심을 ‘고독’으로 보며, 대한민국의 외로움은 이미 끓어넘치고 있다고 표현했어요.

A.

시장에서는 폭증하는 1인 가구를 자유와 낭만을 갖춘 새로운 생활 방식처럼 꾸미지만, 실제로는 외로움을 꾸역꾸역 삼킨 채 살아요. 불안정한 경제 상황, 누구와 같이 사는 게 민폐인 여러 환경, 너무 높은 결혼 장벽, 가부장적 가족문화 등으로 ‘어쩌다’ 비자발적으로 1인 가구가 되는 경우가 대다수거든요.




가족 간에 물리적, 감정적으로 서로 돌보지 못하거나 돌봄을 거부하는 상황도 빈번하고요. ‘고독’은 일시적으로 지나가는 개인의 기분이 아니라 실재하고 있어요. 객관적 조건으로 인해 너무 많은 사람이 고독한 상태가 되면 그건 사회문제이자 정책적 과제로 봐야 해요. 고독이, 외로움이, 돌봄을 주지도 받지도 못하는 많은 사람이 어쩌면 한국의 가장 큰 정책적 과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외로움에 대처하는 더 나은 정책적 선례

Q.

객관적 조건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외롭고 고독해졌을까요?

A.

IMF 외환위기를 겪으며 한국인은 마치 기업처럼 ‘가족 구조조정’에 나섰어요. 시간은 없고 미래는 불안한데 가족으로서 해야 할 책임은 너무나 크기 때문이었죠. 결혼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빠르게 증가했어요. 그 결과 2000년 1인 가구는 222만 가구로 전체 가구 수의 15.5%를 차지했는데, 2017년에는 562만 가구로 28.6%가 됐어요. 2015년 이후 1인 가구는 대한민국의 가장 보편적인 가구 형태가 된 거죠. 인구 대비로는 국민의 11.6%가 혼자 사는 셈이에요. 가족 구조조정과 더불어 급격한 고령화는 1인 가구 폭증의 큰 원인이죠.




특히 45~64세 중년층에서 1인 가구가 가장 많이 늘고 있어요. 통계청 인구주택 총 조사에 따르면 45~54세 1인 가구는 2000년 24만 6000가구에서 2017년 89만 가구가 되었고, 55~64세 1인 가구도 2000년 29만 3000가구에서 2017년 95만 9000가구가 되었어요. 65세 이상 혼자 사는 노인은 2000년 54만 4000가구에서 2017년 137만 1000가구로 증가했고요. 가족구조조정이 부른 ‘돌봄공백’이 커지고 있는 거죠.

Q.

사회적 외로움과 돌봄 공백의 해결책으로 ‘생활 동반자 법’을 제안했어요.

A.

생활 동반자 법이 우리 사회의 모든 돌봄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고독에 대처하는 더 나은 정책적 선례가 될 거라고 봐요. 혈연가족도 부담스러워하고 혼인도 안 하겠다는 현실에서 서로를 돌보며 함께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사회의 보물 같은 존재예요. 믿고 사랑하는 사람과 돌봄을 주고받는 ‘서로 돌봄’은 정부의 재정과 행정적 부담을 줄이면서도 국민의 행복 총량을 늘릴 수 있으니까요.




서로의 필요를 충족해 주는 유연한 결합을 원하는 목소리는 점점 커지는데 우리 법과 정책은 이에 대한 명칭조차 없는 실정이에요. 낡은 가족제도의 틀로 서로 돌보며 사랑하고 살 수 있는 사람을 더 외롭게 두어 선 안 돼요. 이제는 서로에 대한 책임을 갖는 동거 관계에 필요한 법과 정책을 만들어야 할 때가 왔어요.

Q.

그럼 생활 동반자 법은 어떻게 접근하나요?

A.

가족을 구성하는 방식의 무게감을 어떻게 덜 것인지 고민해야 해요. 덜 부담스러운 방식으로 함께 살고 서로를 돌보는 방법을 찾아야죠. 혈연과 혼인이라는 이유로 모든 의무를 지는 가족이 아닌, ‘같이 사는 즐거움’을 나누는 사람들로 가족을 다시 생각하는 맥락 위에 생활 동반자 법을 만들어야 합니다. 생활 동반자 법은 가족제도가 다 담아내지 못하는 다양한 사연과 요구를 그대로 인정하며 더불어 서로를 돌보는 마음을 조직화하는 또 하나의 기본 제도예요.


생활 동반자 법이 생기면 달라지는 것들

Q.

점점 커가는 돌봄 공백과 그에 따른 고독의 사회적 비용을 생각하면 생활 동반자 법은 시급하게 도입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A.

점점 늘어가는 1인가구, 특히 가장 빠르게 늘어나는 노인 1인 가구의 돌봄 공백은 밑 빠진 독처럼 우리 사회의 복지 인력과 예산을 위협하고 있어요.

Q.

2012년부터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일하며 생활 동반자 법 입법을 추진했어요. 그러다 국회를 나오고 나서야 책을 통해 생활 동반자 법을 대중에게 알렸어요.

A.

19대 국회 때 토론회를 했는데 여론 형성은 안 된 채 비판이 너무 거셌어요. 그사이 생활 동반자란 단어는 널리 알려졌는데, 생활 동반자 법에 대해서는 정확히 모르더라고요. 허무맹랑한 소리가 아닌, 우리 사회가 가진 깊고 넓은 외로움의 중요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걸 원 없이 설명하고 싶었어요. 또 좀 더 수준 있게, 깊이 있는 반대에도 부딪히면서 대중적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싶고요.

Q.

 생활 동반자 법이 적용되면 뭐가 달라지나요?

A.

그동안 엄마, 아빠, 동생, 아내, 남편 사이에만 가능했던 법적 권리들이 동반자 관계에서도 가능해집니다. 대표적으로 주거권을 행사할 수 있고 사회보장, 세금 혜택을 받을 수 있어요. 또 국민 건강보호법, 소득세법, 의료법 등에서 생활 동반자가 가족에 준하는 권리를 갖게 개정되거든요. 특히 둘 사이가 틀어졌을 때 가정폭력 보호와 약자가 경제적 손해를 보지 않도록 보호받을 수 있어요.


지금 외롭다면, 생활 동반자 법이 필요할지도…

▶황두영 작가가 자신의 책 <외롭지 않을 권리>를 선보이며 밝게 웃고 있다.

Q.

 ‘생활 동반자 법의 입법은 한국 민주주의가 새로운 단계로 들어서기 위한 주요한 과제’라고 강하게 주장했어요.

A.

한국 민주주의의 다음 단계는 ‘국민의 차이를 어떻게 안정된 제도에 담아낼 것인가’에 있다고 봐요. 좋은 국가의 역할은 국민이 원하는 행복을 찾아 살 수 있도록 터전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각자 살고 싶은 대로, 원하는 방식으로, 원하는 사람과, 원하는 기간만큼, 원하는 거리감으로 가족을 꾸려도 안정적인 사회가 되도록 만들어나가는 게 일 잘하는 국가 아닐까요. 고독하고 다양한 국민을 위해 우리 사회와 정치권이 한발 더 나아갈 때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Q.

반대쪽 주장대로 생활 동반자 법은 가족의 가치를 무너뜨리고, 혼인과 출산을 줄어들게 할까요?

A.

다양한 동거 관계를 법적으로 인정하면 더욱 결혼을 안 할 것이고, 출산율이 떨어지며, 우리 사회의 근간이 무너질 거라고 우려를 많이 했어요. 우리 법이 허용한 동거의 방식이 결혼뿐이라 누군가와 같이 살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결혼하는 것이라면 정말 진지하게 ‘가족법의 재건축’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생활 동반자 법에 대한 이런 두려움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가족의 위기’가 아니라 ‘가족법의 위기’에 처해 있음을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Q.

생활 동반자 법을 ‘보수적인 정책’이라고 소개한 뜻과 연결되는 지점 같아요.

A.

가족을 이루도록 장려하고, 서로에게 더 책임을 갖고 정착하도록 독려하는 법인 생활 동반자 법은 당연히 ‘보수적인’ 법이죠. 우리 사회를 더욱 안정시킨다는 의미에서 보수적입니다. 생활 동반자 법은 기존의 경직된 가족제도를 떠난 사람들을 제도 안으로 끌어들이는 법이에요.




그들이 우리 사회에서 탈락하지 않고 사회를 더 신뢰하고 함께 미래를 만들어나갈 수 있도록 하는 법이죠. 우리가 만들어온 사회복지제도에 더 많은 사람을 포함시키고, 개인으로서 또 가족 구성원으로서 보장받아야 한다고 여겨온 권리를 더 많은 사람이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법이에요.




책 말미에 저자는 생활 동반자 법이 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지 한 번 더 강조해요. ‘우리 헌법은 국민이 자신의 방식대로 행복한 삶을 만들어가도록 보장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생활 동반자 법은 이런 헌법 정신을 제도로 구체화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외로움이 보편적인 만큼 생활 동반자 법도 보편적일 것이다. 당신이 지금 외롭다면, 어쩌면 생활 동반자 법이 필요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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