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주간지 공감

텅 빈 거리, 텅 빈 식당, 그리고 텅 빈 체육관. 세상에서 가장 사람이 많다는 뉴욕도 현재 텅 비어버리고 말았죠.

늘상 익숙하게 생각되었던, 어쩌면 짜증 나기까지도 했던 사람들이 부대끼는 거리는, 막상 텅 비어버리고 나니 그 소중함을 더 알게 된 것 같아요.

사람이 없는 것은 생동감이 사라진 거리. 그래서 인테리어 사진에는 꼭 사람이 등장한다죠? 디자인 칼럼니스트 김신 작가가 말하는 디자인적인 생동감이란 무엇인지 함께 읽어봐요!

거리에 다시 생동감이 넘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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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부터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했어요. 고양이는 비교적 신경이 덜 쓰이는 반려동물이라는 정보를 들었어요. 막상 키워보니 고양이는 사람을 가만히 두지 못하는 성격이라는 걸 알았어요. 책상에서 일을 하고 있으면 자꾸 옆으로 와서 놀아달라며 이 세상에서 가장 처량한 소리와 눈빛으로 나를 압박해요. 

고양이는 무료한 상태를 참지 못하는 듯했어요. 고양이에게 무료함이란 무엇일까요?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 세상이에요. 고양이는 사냥 본능이 있어서 하루에 몇 번씩 사냥 놀이를 해줘야 해요. 사냥 놀이는 장난감을 흔들어서 마치 그것이 사냥감인 것처럼 착각하도록 만드는 것이에요.

대부분의 고양이 장난감은 막대기고 그 끝에 깃털이 달려 있어요. 그것을 흔들어주기만 하면 몸을 웅크리고 긴장하며 공격 준비를 해요. 그러다 막대기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으면, 즉 움직이지 않으면 쳐다보지도 않고 지나쳐요.

고양이를 미물이라 치부하지만 사람도 고양이와 다를 바 없어요. 왜냐하면 사람도 고양이와 똑같은 생존 본능으로 살아가기 때문이에요. 사람도 움직이는 것에 본능적으로 반응해요. 움직이는 것은 사람의 목숨을 위협하는 맹수이거나 사람이 사냥해야 할 사냥감이에요. 그것에 각별히 신경을 쓰는 개체는 생존할 가능성이 높아요. 

따라서 움직이는 것에 호기심을 갖고 그 존재가 무엇인지 밝히면 뇌에서 도파민을 분출해 기분을 좋게 해줘요. 생존을 위한 일종의 보상 시스템이에요. 그런 움직임에 무딘 사람은 이미 맹수에게 목숨을 빼앗기거나 굶어 죽음으로써 그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전달하지 못해요. 따라서 사람을 포함해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모든 존재는 움직임에 매우 예민한 생명체인 셈이에요.

요즘 코로나19 때문에 많은 공공시설과 상업 공간, 각종 스포츠 경기장, 심지어는 거리조차 움직임이 뜸해졌어요. 3월 30일자 <뉴요커> 표지는 텅 빈 뉴욕그랜드센트럴터미널 의 그림을 실었어요. 이렇게 사람이 전혀 없거나 있어도 아주 드문 도시의 텅 빈 모습을 찍은 사진을 전 세계 언론사들이 앞다퉈 내놓고 있어요. 대단히 예외적인 상황이기 때문이에요.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흔히 ‘초현실적’이라고 묘사해요.

예를 들면, 사진기를 발명한 루이자크다게르가 1838년에 찍은 초기 사진이 그래요. 대낮에 파리 탕플(Temple)가를 찍었는데, 거리에는 아무도 없어요. 당시 사진기는 렌즈와 필름이 빛을 받아들이는 속도가 너무 느려서 무려 20~30분의 노출 시간이 필요했어요. 그에 따라 움직이는 행인과 말, 마차는 필름에 빛의 흔적을 남기기에는 너무 빨랐던 거에요. 움직일 수 없었던 단 두 사람, 구두를 닦는 사람과 그에게 구두를 맡긴 사람만이 사진에 나왔어요. 거리를 가득 메워야 할 어떤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오직 건물과 나무만이 눈에 들어올 때 그 도시는 적막함으로 가득 차게 되요. 대낮 도시의 적막이라는 아이러니가 초현실적 분위기를 낳는 것이에요.

이런 적막함을 즐겨 찍은 대표적인 사진가로 외젠아제 (Euge`ne Atget)가 있어요. 그는 사람이 돌아다니지 않는 이른 아침에 주로 사진을 찍어 거리가 텅 비어 있어요. 발터벤야민 은 “아제의 파리 사진들은 초현실주의 사진의 선구”라고 평가했어요. 아제의 파리 사진들은 굉장히 매혹적이에요. 그 매혹이란 고요함과 쓸쓸함, 그에 따른 왠지 모를 불안에서 와요. 사람이 없으므로 변화와 생동감이 없어요. 아제가 1899년에 찍은 드라공 거리는 사람들이 떠난 삭막한 도시를 보는 듯해서 초현실적이에요.

사람을 배제하는 대표적인 사진 장르는 건축 전문 사진이에요. 건축 사진에서는 건물의 형태와 표면, 비례, 실내의 가구, 조명, 바닥재, 커튼, 장식 등이 주인공이에요. 사진 속에 사람이 등장할 경우 그것에 먼저 눈이 가기 마련이므로 순수하게 건축만 감상할 수 있게 가능한 한 사람을 빼는 것이에요. 

건축 사진집을 계속 보고 있으면, 거대한 건물을 미술관의 오브제(상징적 기능의 물체)처럼 다루고 있음을 느낄 수 있어요. 사람이 배제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그나마 건물 외관 사진은 사진가가 완벽하게 건물 주변 상황을 통제할 수 없으므로 어느 정도 사람이 사진에 등장하는 것을 막을 수 없어요. 하지만 통제가 가능한 인테리어 사진은 철저하게 사람을 배제해요.

미국 건축가 필립존슨이 디자인한 유명한 글라스하우스의 공간 사진을 볼게요. 이런 종류의 전문적인 인테리어 사진은 대단히 세련되었어요. 동시에 상당히 공허한 느낌도 받아요. 마땅히 사람이 있어야 할 장소에 사람이 없기 때문이에요. 

게다가 그곳의 물건들은 너무나 반듯하고 깨끗하게 배열되어 있으며, 모든 사물의 가로세로가 수학적으로 정확하게 찍혀 있어요. 질서가 강박적으로 구축되어 있는 것이지요. 마치 순수한 진공의 상태를 보는 듯해요. 

그로 인해 사람의 흔적이 더욱더 완벽하게 제거되요. 사람이 없더라도 모자나 장갑, 파이프, 책 등이 우연한 모습으로 놓여 있으면 사진 속에서 인적을 느낄 거에요. 그것마저 없앤 것으로 이런 인테리어 사진은 매혹적인 사진임이 틀림없어요. 하지만 그것을 예외적이라고 전제할 때 매혹적이에요.

사람이 없다는 것은 변화와 생동감이 없는 것이며 따라서 차가운 이미지, 나아가 박제의 이미지에 가까워요. 그것을 잘 아는 가구 브랜드들은 카탈로그를 만들 때 특별한 방법을 써요. 각각의 아이템은 그 물건을 건조하게 찍지만, 표지 사진에는 가구들이 자연스럽게 배치된 공간을 배경으로 그곳을 점유한 사람들(더 정확히 말하면 가족)을 반드시 등장시켜요. 사람이 있는 공간속에서 독자는 안정감과 행복을 느끼며, 그로부터 구매 욕구가 더 생기기 때문이에요.

요즘 신문과 방송에서 흔히 보는 텅 빈 거리, 관람객 없는 축구장, 관객 없는 극장, 손님 없는 열차 사진에서 깨닫는 것이 있어요. 사람들이 북적대는 것, 평소 무관심하게 넘어가는 그 당연한 현상이 사람을 매우 안정되게 만든다는 사실이에요. 우리는 늘 뭔가가 끊임없이 움직이는 세상 속에서 그것을 특별히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는 듯해요. 하지만 무의식중에 우리의 몸은 그것을 끊임없이 느껴요. 주변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한 우리의 의식은 생존을 위해 본능적으로 깨어나고, 그 깨어난 의식이 살아 있음의 존재 방식이에요.

ⓒ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