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봐도 봐도 모르겠는 이 디자인이 미술관에선 인기 만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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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의 디자인 전시회에 가보면 도무지 무슨 용도로 쓰는 물건인지 모르겠다고요? 미술관은 모호한 디자인을 좋아해요. 왜 그럴까요?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카스틸리오니, 이탈리아 디자인의 거장>이라는 전시가 열리고 있어요. 디자인 전시는 대중에게 참으로 낯설어요. 왜냐하면 원래 전시의 기능에 적합한 예술과 달리 디자인은 근본적으로 다른 역할이 있기 때문이에요. 


디자인은 20세기 산업사회 대량생산의 산물이에요. 대개 사회와 가정에 보급돼 어떤 기능을 하도록 되어 있어요. 즉 예술 작품은 처음부터 전시를 위해, 다시 말해 순수하게 시각적 감상의 대상으로 태어나는 데 반해 디자인은 감상이 아닌 인간의 생활 속에서 일을 하도록 만들어져요. 쓸모가 없어지면 디자인은 버려져요. 


이런 신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디자인 전시가 열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미술관의 영역 확대라는 변화의 결과에요. 미술관 역시 자본주의적 속성을 지니고 있어 끊임없이 수집품 (컬렉션)을 확장해요. 그 과정에서 건축, 공예,디자인처럼 생활의 실질적 쓸모에 봉사하는 분야를 포섭하는 것이에요. 


그렇다고 시장이나 백화점에서 팔리는 모든 물건을 대상으로 관대하게 문을 열어준 건 아니에요. 기본적으로 미술관의 문턱은 무척 높아요. 미술관 컬렉션이나 전시의 대상이 되려면 엄격하고 까다로운 조건을 통과해야 해요.


쓸모없는 것을 찬양하는 미술관?

그 조건은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어요. 그것을 다 열거하기에는 지면이 부족해요. 이 글에서는 그중 하나 ‘모호성’, 즉 ‘모호한 디자인’을 들고자 해요. 미술관은 왜 모호한 디자인을 좋아할까요? 모호한 디자인은 왠지 생활의 실질적 쓸모가 약화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에요. 


미술관은 기본적으로 순수한 것, 즉 쓸모없는 것을 찬양해요. 물론 미술관이 쓸모 있는 것도 쓸모없게 만드는 강력한 작용을 하는 곳이기도 해요. 미술관이 그런 무용의 효과를 발휘하더라도 처음부터 대상 자체가 왠지 쓸모없어 보이는 걸 선택한다는 것이에요.

▶(왼쪽) 일반적인 레몬즙 짜개의 기능적 형태 / (오른쪽) 필리프 스타르크가 디자인 한 레몬즙 짜개 '주시 살리프 (Juicy Salif)'

이해하기 쉽게 구체적인 예를 볼게요. 하나는 프랑스 디자이너 필리프스타르크(필립 스탁)가 디자인한 ‘주시살리프’라는 레몬즙 짜개이고, 다른 하나는 일반적인 레몬즙 짜개에요. 이 둘 중에 전시적 가치를 지닌 사물이 무엇 같은가요? 누구나 주시 살리프라고 생각할 거에요. 


주시 살리프는 모양이 기능적인 사물처럼 보이지 않고 조각품 같아요. 그것을 처음 보면 무슨 용도의 물건인지 모르겠고, 용도를 알아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도 애매해요. 이것이 바로 모호한 디자인이에요. 비평가들은 이런 디자인을 ‘실험적’이라고 표현해요. 미술관은 바로 이런 실험적인 디자인을 좋아해요. 실험적 디자인의 핵심 가치는 모호성에 있어요. 


영화 <기생충>의 포스터도 일반적인 포스터와 달리 모호한 매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명확하지 않은 시각적 표현은 늘 사람들을 궁금하게 하고 그것에 시선을 머물게 하는 효과가 있어요. 제품 디자인도 마찬가지에요. 모호한 형태, 모호한 색상, 모호한 기능은 사람들로 하여금 뭔가 생각하도록 만들어요. 


이탈리아 디자인은 대체로 그런 성향이 많아요. 그것은 독일의 합리적인 디자인과 비교하면 쉽게 알 수 있어요. 바우하우스로부터 이어진 독일의 합리주의 디자인은 어떤 사물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 디자인을 통해 명확하게 보여주어야 한다고 믿어요. 


독일을 대표하는 디자이너 디터 람스가 그의 유명한 ‘디자인 10계명’에서 한 다음의 말들을 음미해볼게요. “좋은 디자인은 제품을 이해하기 쉽게 한다.” “좋은 디자인은 불필요한 관심을 끌지 않는다.” “좋은 디자인은 정직하다.” 이 말들은 디자인은 자명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려요. 형태가 어떤 용도인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게 해야 하고, 쓸모없는 장식 행위나 기교로 군더더기를 만들면 안 되요. 디자인은 정직하게 자기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에요.


미술관 높은 문턱 넘은 이탈리아 디자인

반면 이탈리아의 거장 아킬레 카스틸리오니의 대표작인 메차드로 의자를 볼게요. 이 의자는 스툴(등받이와 팔걸이가 없는 작은 의자)인데, 일반적인 형태와는 굉장히 다른 구조에요. 좌석은 기존에 대량생산되는 트랙터 의자를 그냥 가져왔어요. 받침대가 특이한데, 캔틸레버(기둥 하나만으로 하중을 지탱하는 구조)를 적용해 탄력성을 갖게 했어요. 일반적인 스툴은 좌석과 받침대가 수직으로 만나고 3개 이상의 다리가 받치기 때문에 탄력이 없어요. 셀라스툴은 더욱 특이해요.

▶(왼쪽) 아킬레 카스틸리오니가 디자인한 '메차드로 (Mezzadro)' 스툴 / (오른쪽) '셀라 (Sella)' 스툴

자전거의 안장을 좌석으로 만들었어요. 이 스툴은 탄력이 없지만 대신 받침대가 둥글어서 오뚝이처럼 흔들려요. 서서 작업하는 사람이 잠시 엉덩이를 기댈 수 있게 디자인한 것이에요. 두 스툴 모두 기존 스툴과 만드는 방식은 물론 형태, 기능성까지 완전히 차별화된, 즉 실험적이고 모호한 디자인이에요.

▶'아크로 (Acro)' 조명

카스틸리오니의 대표작인 아크로 조명은 또다른 모호성을 띄어요. 이 조명은 딱 보면 조명이긴 하지만, 그 분류가 모호해요. 천장에 매달려서 내려오는 행잉 램프(hanging lamp)인가요? 마루 위에 세워두는 플로어 램프(floor lamp)인가요? 갓 부분만 떼어서 보면 분명 행잉 램프지만, 전체를 보면 플로어 램프에요. 


서양은 우리나라처럼 천장에 딱 붙은 빌트인 조명을 거의 쓰지 않아요. 다시 말해 서양의 집에는 특정 공간 전체를 대낮처럼 밝히는 용도의 조명이 없어요. 주로 식탁위에 설치하는 행잉 램프는 특정한 사물(식탁)을 비추는 데 반해, 대부분 거실 바닥에 놓는 플로어 램프는 간접적으로 은은하게 공간의 분위기를 만드는 용도로 그 쓰임이 구별되요. 이런 용도가 다른 두 가지 조명을 모호하게 결합한 것이에요. 


이처럼 이탈리아의 디자인 전통은 정직한 기능주의, 모호함을 허용하지 않는 자명한 합리주의에서 벗어나기를 좋아해요. 유머를 담으려 하고, 상징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실험적으로 새로운 제작 방식과 형태와 색상을 창조해요. 그런 디자인 접근방식을 개척한 인물이 바로 아킬레 카스틸리오니에요. 그런 이유로 이탈리아의 디자인은 미술관의 높은 문턱을 넘을 수 있는 것이기도 하지요. 

ⓒ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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