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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그림의 승자는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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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가 생전에 자신의 유일한 스승이라 칭했던 프랑스의 화가 폴 세잔. '현대 미술의 아버지'로 불렸던 그는 피카소와 브라크가 이끈 입체주의 미술 사조의 탄생에 중대한 실마리를 제공했어요. 그의 예술 세계와 작품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볼까요?



평범한 일상 놀이로 사람들의 긴박한 대립 묘사

한 번쯤은 들어봤음직한 이름 폴 세잔. 그는 ‘현대미술의 아버지’로  불려요. 미술사학자들이 부여한 이 영예로운 칭호는 곧 현대미술이 세잔에게서 출발한다는 것을 의미해요.


고흐, 고갱과 함께 후기 인상주의 화가로 분류되는 세잔은 인상주의 그림의 약점으로 지적되던 형태의 비공고성(非鞏固性)을 극복하는 것과 동시에 사물의 본질 자체를 꿰뚫어 봐 극단적인 대상의 단순화를 시도했어요. 그 결과 그는 ‘모든 사물은 근원적으로 구와 원통, 원뿔로 환원된다’는 기하학적 실험과 함께 동일한 사물을 여러 관점에서 바라보는 다시점 (多視點)적 탐색의 결과를 캔버스에 구현함으로써 피카소와 브라크가 이끈 입체주의 미술 사조의 탄생에 중대한 실마리를 제공했어요


피카소의 ‘아비뇽의 아가씨들’(1907)로 대표되는 입체주의는 현대미술이 시작되는 시발점으로 이후 현대미술을 수놓은 다양한 미술 사조가 뿌리내리는 기폭제 역할을 했어요. 세잔이 현대미술의 아버지로 칭송받는 이유에요. 피카소는 생전에 “세잔이야말로 나의 유일한 스승”이라며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 그였음을 토로했어요. 


세잔이 추구한 사물의 본질에 대한 근원적인 탐색은 대상의 단순화로 이어졌고 그 결과 원근법적인 특성이나 입체감과는 거리가 먼 기하학적인 구성을 낳게 됐어요. 추상회화의 탄생에도 큰 영향을 미친 세잔의 그림이 냉정하게 계산된 이성적 사고의 산물로 여겨지는 이유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구와 원통, 원뿔로 귀착

세잔은 1839년 프랑스 남부 부슈뒤론주, 마르세유 북쪽에 위치한 올리브와 아몬드로 유명한 엑상프로방스에서 태어났어요. 출세 가도를 달리던 성공한 변호사이자 은행가를 아버지로 둔 덕분에 세잔은 순탄한 유년기를 보냈어요. 어릴 때부터 화가가 되고픈 바람과 달리 세잔의 아버지는 아들이 자신의 뒤를 이어 변호사가 되기를 바랐어요. 아버지의 강요로 세잔은 엑상프로방스대학 법학과에 입학했으나 딱딱하고 난해한 용어가 넘실대는 법률 서적이 눈에 들어올 리 없었어요. 


2년간의 방황 끝에 세잔은 어머니의 지원에 힘입어 아버지를 설득해 마침내 파리에서 그림 공부를 시작하게 돼요. 그러나 정규 미술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던 세잔은 국립 미술학교인 에콜데 보자르 입학에 실패하고, 무시험 입학이 가능했던 아카데미 쉬스에서 본격적으로 그림 공부에 매달려요. 


아카데미 쉬스는 이른바 비주류 화가 지망생이 모이는 곳으로 이때 만난 동료들이 르누아르와 모네, 피사로, 드가 등 훗날 인상주의 미술 사조에 한 획을 그은 거장들이에요. 중학생 시절에 만난 절친이자 프랑스 자연주의 문학의 창시자로 유럽 문단을 휩쓴 에밀 졸라의 우정 어린 격려와 인상파 동료, 특히 피사로의 영향으로 풍경화와 정물화의 세계에 눈뜬 세잔은 1877년 무렵 인상주의 화풍을 뒤로한 채 사물의 본질적인형태 탐색에 천착하면서 현대미술을 개척하는 길로 나아갔어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구와 원통, 원뿔로 귀착한다는 신념을 캔버스에 구현하기 위해 정물화를 집중 탐구한 세잔은 그림의 주제를 강조하는 대신, 대상과 인물의 형태 및 색깔의 변하지 않는 근원적 실체와 단순명료한 구도 포착에 매달렸어요. 전통적인 원근법과 입체감을 뒤엎는 세잔의 혁신적인 예술적 성과는 너무나도 유명한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1894~1895)로 화려하게 결실을 맺었어요.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은 모두 5점이 있는데, 파리 오르세미술관에 소장 중인 이 작품은 그중 마지막 그림으로 200점 넘게 그린 정물화와 ‘생트 빅투아르산’ 연작과 함께 세잔이 가장 좋아했던 소재였어요.


눈에 보이는 대상을 화가의 눈과 머리로 재해석하고 재구성함으로써 현대미술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맨 처음 밟는 데 성공한 세잔은 1906년 폐렴으로 죽을 때까지 병든 노구를 이끌고 그림에 대한 열정의 끈을 놓지 않았어요. 특히 그가 말년인 1905년에 그린 ‘목욕하는 여인들’은 2년 후 피카소가 완성한 ‘아비뇽의 아가씨들’ 작품에 영감을 준 것으로 알려졌어요.


출처폴 세잔,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 캔버스에 유채, 47.5×57cm, 1894~1895. 오르세미술관 소장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만물의 근원에 대한 집요한 탐색의 결과

오십 줄로 접어든 1889년, 세잔은 파리 생활을 접고 나고 자란 고향 엑상프로방스로 돌아갔어요. 어릴 때부터 농촌 지역인 고향의 농민들 생활을 보고 성장한 터라 세잔의 머릿속에는 늘 농민들의 소박하고 꾸밈없는 모습이 자리하고 있었어요.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모두 농민이에요. 세잔이 50대 때 그린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은 모두 5점의 연작으로 2명 또는 3명이 모델로 나와요. 5점 중 마지막 작품인 이 그림은 농부 2명이 마주 앉아 카드놀이 하는 장면을 묘사한 것인데, 세잔의 대표작이자 가장 유명한 걸작입니다. 인상파 미술의 성지로 불리는 오르세미술관에 소장중인 이 유화 그림은 세로 47.5cm, 가로 57cm로 아담한 크기에요. 그런데 이 그림에는 세잔이 평생 몰두했던 대상의 단순화, 간결하고 명료한 화면 구성, 절제된 색채 구사 등 만물의 근원에 대한 집요한 탐색의 결과가 고스란히 들어 있어요.


다른 그림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도 드로잉과 초상화, 수채화 등 수많은 습작 과정을 거쳐 유화로 완성됐어요. 당시 유럽의 농촌에서는 고단한 일과를 끝낸 농민들이 카드놀이를 하며 심신의 피로를 푸는 게 일상적이었어요.


먼저 화면 구성. 가운데 테이블을 두고 마주 앉은 두 사람의 모습이 공간을 둘로 나누는 대칭 구도를 이뤄요. 특히 테이블 가운데에 놓인 포도주병은 좌우 화면의 대칭성을 극대화해요. 카드를 쥐고 있는 두 사람의 양팔과 어깨, 고개를 약간 숙인 모습도 긴박감을 자아내는 구도의 대칭성을 증폭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어요. 간결한 화면 구도 구축에 공들인 세잔의 의도가 확연히 드러나요. 포도주병을 꼭짓점으로 테이블 위에 덮인 테이블보가 안정적인 삼각형 구도로 포진돼 있고, 말없이 카드놀이에 열중하고 있는 두 사람의 온화한 표정에서는 긴장감 대신 평화로운 농촌 풍경이 떠올라요. 승패가 갈리는 카드놀이의 긴박성과 대비되는 묘사가 아닐 수 없어요. 어두운 색의 옷을 입은 왼쪽 인물과 달리 오른쪽 인물의 옷을 밝게 처리한 것도 대비 효과를 위해서입니다.


왼쪽 사람이 물고 있는 담배 파이프와 손에 쥐고 있는 카드, 두사람의 셔츠는 모두 흰색인데, 이 또한 전반적으로 칙칙한 황토색풍으로 절제된 그림 속 다른 색깔과 대비됩니다. 두 사람의 머리를 볼까요. 구(球)처럼 보이지 않나요. 손도 마찬가지. 모자와 몸통, 팔과 다리는 원통처럼 묘사돼 대상의 단순화, 사물의 근원적 본질을 뒷받침하고 있어요. 단순하고 대칭적인 구도, 대상의 단순화, 간결한 배경, 절제된 색채 구사, 원근감이 느껴지지 않는 평평한 화면 처리 등 세잔이 추구한 현대미술의 개척 정신이 다 들어 있는 그림입니다.

©박인권_ 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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