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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 왕따였던 청년이 CEO가 될 수 있었던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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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호 대표는 초등학교때부터 고등학교때까지 이어진 왕따로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지만, 현재는 어엿한 토론진행자 퍼실리테이터 겸 화장품 회사 CEO 로서 외로운 청년들에게 희망을 안겨주는 일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청년들에게 '희망의아이콘' 이 되기 까지의 이야기를 김민호 대표를 직접 만나 들어보았습니다. 지금 바로 만나볼까요?


▶김민호 대표가 자신이 CEO로 있는 화장품 회사의 제품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 대표는 여기서 나는 수익을 사회에 환원할 계획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종교에 심취하셨어요.
나중에 들어보니 어머니 나름의 사정이 있었는데,
여러 상황 탓에 그때 방치가 됐습니다.
초등학교 2~3학년 때 까지만 해도
'씻는다'는 개념이 없을 정도로 보살핌을 받지 못했습니다.

대구광역시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김 대표는 당시 1년에 한두 번 명절때만 씻어 냄새가 날 수 밖에 없었고, 당연히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왕따는 중학교 때까지 10여년 동안 이어졌다고 합니다.


서툰 자신을 이해해준 고등학교 친구와의 인연

김 대표는 고등학교때는 다행이도 집에서 먼 곳에 진학하게 되어, 거기서 만난 친구 한 명을 알게 되었는데요. 친구를 사귀어 본 적이 없어 서툰 김 대표를 언제나 이해하고 손을 내민 그 친구 덕분에 조금씩 생각이 변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나를 위하는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다는 게
정말 행복한 거였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인간관계가 익숙하지 못한 김 대표는 군대 시절 집단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기도 했다는데요. 당시 김 대표보다 두 달 고참이 '군 생활 최대 미스터리 중 하나가 네가 안 죽고 제대한 거다' 라고 말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 고참이 김 대표 몰래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하는데요. 그런 도움이 없었다면 김 대표는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로 살았을거라고 말했습니다.


자발적인 토론 활동으로 정당 활동 까지 참여

전역 후 김 대표는 재수학원에 등록하여 입시 공부에 매진하였습니다. 그 가운데 #논술수업 이 김 대표의 흥미를 끌었고, 수업에 '대의제 민주주의' 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직접 민주주의' 주제가 나왔다는데요.

마침 당시 내가 있던 대구를 포함해
전국적으로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집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에 대한 글을 읽다가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현장이 펼쳐진 걸 보고 뭔가에 이끌리듯 집회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이후 김 대표는 시민참여 학습 모임과 당시 새롭게 만들어진 정당 활동에도 참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정당 활동을 위해 서울에서 온 분들이 ‘토론’이라는 문화를 알려주며, ‘목소리가 큰 어른’이 이긴다고 생각했던 김 대표에 참여와 토론 과정을 통해 민주주의를 실현한다는 점을 깨닫게 하였다는데요. 김 대표에게는 그런 과정들이 신문물로 느껴졌다고 합니다.


청년들을 위한 일에 대한 갈망

여러 활동에 참가하며 '사랑의 연탄나눔운동' 에서 간사로 생계를 유지했던 김 대표는 정당이 자리 잡기까지의 과정이 순탄치 않은 것을 지켜보며, 실망감을 느끼기도 했다고 하는데요. 김 대표는 서울로 올라와 고등학교 시절 유일한 친구에게 신세를 지면서 물류 관련 회사에서 1년 반 정도 일만 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대구에서 김 대표에게 토론 문화를 소개해준 토론 전문가 이병덕 ㈜코리아스픽스 대표가 다시 만나보자는 제안에 나갔다가 그날로 토론 현장에 투입되었고, 100명, 200명, 500명 원탁토론장에서 퍼실리테이터 역할을 하면서 점차 직업이 되었다는데요. 시의회 의정지기단과 지역 협동조합 활동도 병행했지만 모두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활동은 아니었기에, 토론이 끝난 뒤 차비가 없어 집으로 걸어오는 날에는 많은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몇 시간 걸으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나처럼 지역에서 활동하고 싶어 하는 청년들에게 디딤돌이 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했습니다.

수소문 끝에 2015년 당시 용인에서 활동하는 시의원이 지역에서 활동하고 싶어 하는 청년들을 김 대표에게 소개한 덕분에 곧 뜻이 모여 ‘용인청춘놀이터 협동조합’을 설립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청년에게 필요한 사업을 하겠습니다’ 등의 목표가 있을 뿐 구체적인 내용이 없었고, 여러 어려움으로 결국 자리 잡지 못했다고 하네요.


화장품 회사 운영하며 청년들에게 희망 주고 싶어

하지만 김 대표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최근 그때 사람들이 다시 만나 당시 불분명했던 사업들을 구체적으로 재정비하고 청년을 위한 토론과 퍼실리테이터 교육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아울러 지역 생산자 가운데 판로를 확보하지 못한 이들에게 판매와 컨설팅 제안도 검토 중이라고 합니다.


또한 김 대표는 화장품 회사 CEO로도 새 출발을 했습니다. 생산은 대기업에 위탁했지만, 판매와 홍보까지 모두 자신이 도맡아 하는 1인 기업으로, 좋은 제품 그 의미의 이상을 담고 있는데요. 매출 수익을 청년에게 환원하고, 더불어 다문화 가정 등 사회 소외계층에 무료로 화장품을 나눠줄 계획까지 있다고 합니다.


김 대표는 “가장 큰 목적은 청년협동조합 을 장기적으로 운영할 수입원을 창출하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학교 밖 청소년에게 자신감 을 주고 싶었어요. 그들에게 손을 내밀면서 ‘내가 만드는 게 화장품이라 이것밖에 줄 수 없지만, 우리 사회는 당신들을 지켜보고 응원한다’는 메시지와 보내고 싶고요. 저도 그들에게 아무도 손을 내밀지 않을 때도 유일하게 손 내밀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라고 말했어요.


끊임없는 도전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희망이 되기위해 열정을 불태우는 김민호 대표의 앞날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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