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 디자인 속 소름돋는 비밀

조회수 2020. 2. 24. 18:4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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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시작으로 각종 영화제에서 수상을 이어가고 있어요. 그만큼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높은 주목을 받고 있는데요.


<기생충>이 주목을 받는 이유! 디자인적으로 한 번 풀어볼까요? 영화 속 '대비' 효과가 어떤 충격을 주는지 함께 알아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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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가장 작은, 움직이는 사람’ 네팔인 카젠드라 타파 마가르가 27세의 젊은 나이에 폐렴으로 사망했다는 기사를 보았어요. 기사 제목을 보면, 그가 가장 작은 사람이 아닌 거 같아요. 그러니까 움직이는 사람 중에 가장 작은 사람인 것이죠.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 스스로 서지 못하는 사람 중에 그보다 작은 사람이 있는 거예요. 사진을 보니 그는 서 있어요. 움직일 수 있는 거예요. 그런데 사진에는 혼자 서 있지 않아요. 누군가가 옆에 있어요. 그의 이름으로 검색을 해보니 대부분의 사진이 그래요. 그가 얼마나 작은지 ‘대비’를 통해 확실하게, 또는 더 강조해서 보여주려고 의도한 것이에요. 혼자 있으면 그냥 작은 아이처럼 보이기 때문이에요.


기사에 따르면 마가르는 키가 67.08cm이고 몸무게는 6kg이에요. 이는 생후 6개월 남자아이의 표준 키(67.6cm)와 몸무게(7.9kg)보다도 작아요. 인간은 크기나 무게와 같은 양을 특정한 단위의 숫자로 표시해 그 대상을 보지 않고도 물리적 정보를 짐작할 수 있어요. 


하지만 숫자 정보만으로는 그 양을 생생하게 느낄 수 없어요. 따라서 이미지를 제시해야 해요. 하지만 이미지는 실제 크기를 왜곡할 수밖에 없으므로(사진 속 대상은 실제보다 작아지거나 커진다) 역시 크기에 대해서만큼은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지 못해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대상을 묘사할 때는 문제가 되지 않아요. 하지만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대상을 보여줄 때는 달라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낯선 것, 특히 크기가 아주 중요한 대상을 어떻게 묘사할지에 대한 고민은 아주 오래된 것이에요.


비례에 따른 대비는 디자인의 핵심 기술

1255년에 영국의 역사가 매슈 패리스가 그린 코끼리 그림에 그런 고민의 흔적이 엿보여요. 이 코끼리는 프랑스 왕이 영국 왕에게 선물로 준 것으로 영국 땅을 밟은 최초의 코끼리에요. 패리스는 그렇게 거대한 동물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영국인들에게 어떻게 하면 그 크기 정보를 비교적 사실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그가 선택한 방법은 사람을 함께 그려 넣어 비례로 크기를 가늠하게 한 것이에요. 비례에 따른 대비는 정보 디자인에서 가장 빈번하게 사용하는 핵심적인 기술이에요.

▲1255년에 영국의 역사가 매슈 패리스가 그린 코끼리. 코끼리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영국인들에게 크기를 가늠하게 하려고 사람과 대비시켰다.

샤를 미나르는 정보 디자인 발전에 크게 기여한 프랑스의 토목기사예요. 그가 1869년에 디자인한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지도는 현대의 정보디자인에 엄청난 영감을 준 전설적인 그래픽이에요. 베이지색은 나폴레옹 군대가 러시아로 진격하는 길을 표시해요. 검은색은 러시아에서 후퇴하는 길이에요. 이것은 단지 진격과 후퇴의 경로를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아요. 경로를 표시하는 띠의 크기를 통해 군사 숫자의 변화도 함께 보여줍니다.


출발할 때 42만 명이 넘었던 군대는 돌아왔을 때 4000명에 불과해요. 주요 지역을 지날 때마다 띠의 굵기가 줄어들어요. 숫자 정보를 보지 않고도 띠의 굵기 변화만으로 원정대가 얼마나 참담한 패배를 했는지 한눈에 쉽고 정확하게 알 수 있어요. 역시 비례에 따른 대비가 그런 효과를 낳는 본질적 요소에요.

▲프랑스의 토목기사 샤를 미나르가 그린 나폴레옹 원정대 지도. 원정의 실패를 경로를 표시하는 띠의 굵기 차이로 쉽게 보여주었다.

신문이나 잡지의 보도사진 역시 특정 메시지를 쉽고 정확하게, 동시에 한눈에 전달해야 해요. 사진, 즉 이미지 정보는 많은 에너지를 들여야 이해할 수 있는 글과는 역할이 달라요. 그러다 보니 보도사진은 의도가 과잉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봐요.


대표적인 것이 특이한 신체를 가진 사람을 보여줄 때에요. 편집진은 키가 지나치게 크거나 작은 사람의 신체 정보는 반드시 대비를 통해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하려고 해요. 


이런 의도는 때로 심술궂다는 인상을 받아요. 첫머리에서 언급한 마가르는 키가 큰 미스 네팔여성들에게 둘러싸인 채 사진에 찍혔어요. 카메라를 최대한 낮춰 여성들이 상대적으로 더 크게 보이도록 했어요. 

▲세계에서 ‘가장 작은, 움직이는 사람’ 카젠드라 타파 마가르의 생전 사진. 작은 키를 강조하려고 키 큰 미스 네팔 세 사람과 사진을 찍었다.

2014년에 당시 최단신이었던 바하루드 당기(54.6cm)와 최장신인 술탄 코센(251cm)을 런던에서 함께 찍은 사진을 보세요. 그들은 엄청난 대비로 작은 사람은 더 작아 보이고 큰 사람은 더 커 보여요. 미국의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루이스하인이 찍은 ‘보호시설의 허약한 아이들’이라는 작품은 선천적인 장애인 두 아이를 찍었어요. 그런데 굳이 두 아이 다 옆모습을 찍은 이유는 두 아이 머리의 극단적인 대비를 더욱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2014년 당시 최단신이었던 바하루드 당기(54.6cm)와 최장신인 술탄 코센(251cm)을 런던에서 함께 찍은 사진

쉽고 선명하고 즐거운 커뮤니케이션 기술 ‘대비’

대비는 확실히 사람들의 눈길을 끌어요. 그것은 대상이 가진 어떤 성질을 극단화해 그 성질을 대단히 중요한 특징으로 만드는 것이에요. 예를 들어 조명을 얼굴 정면에 비추면 그 얼굴은 평평해져서 밋밋해 보이기 쉬워요. 특징이 사라지죠. 하지만 위나 옆에서 비추면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의 대비가 극명해져 눈의 깊이, 코의 높이, 이마와 뺨의 굴곡 같은 정보가 아주 선명하게 드러나요. 입체적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관객은 그런 입체적인 정보에서 대상을 더욱 잘 이해한다고 느끼는데, 그것은 정보가 더욱 두드러지게 다가오기 때문이에요. 정보가 특징화된다고 할 수 있어요. 


대비가 시각적으로 얼마나 강한지 잘 묘사한 시가 있어요. 요사 부손의 하이쿠(짧은 시)에요.

“붉은 꽃잎 하나가 소똥 위에 떨어져 있다 마치 불꽃처럼.”

일본의 하이쿠 시인은 누런 소똥 위에 떨어진 붉은 꽃잎에서 강렬한 인상을 받은 것이 틀림없어요. 그 강한 인상은 바로 대비에서 온 것이에요. 색의 대비, 또 똥과 꽃이라는 성질의 대비. 대비란 결국 어떤 대상을 눈에 띄도록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런 대비의 강조로 정보는 분명해지고 이해가 쉬워져요. 이해가 쉬우면 즐거움도 따라옵니다.


영화 <기생충>이 해외에서 그토록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는 영화가 부자와 빈자의 차이를 여러 장치를 통해 극명하게 대비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외국인들에게도 너무나 알기 쉽게 다가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대비란 역시 의도의 과잉, ‘극단화’라는 강조의 기술이므로 어느 정도 왜곡이 따를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에요. 하지만 강조하지 않고 쉽게 설명하고 이해시키기도 쉽지 않아요. 그러니 대비라는 기법은 디자인이든 사진이든 영화든 대중 커뮤니케이션에서 영원히 주목받지 않을까요?

©김신_디자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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