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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홀로 죽음을 맞은 이유

조회수 2019. 12. 11. 15:1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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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과 우울증은 현대인이라면 한 번쯤 겪게 되는 문제인데요.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팽배한 현대사회에서는 이 외로움이란 질병이 쓸쓸한 고독사까지로도 이어진다고 합니다. 오늘은 고독사 그리고 외로움과 고군분투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위클리 공감 누리집 원문 기사 보러 가기

△ 옥상에서 재배한 작물을 수확해 함께 나눠 먹을 계획을 이야기하고 있다.

“안 보니까 좀 보고 싶은 것도 있고 연락 한번 할까 하다 참고 지냈어요. 동네 선배들 따라 낚시 갔다가 고기는 많이 낚았습니다. 혹시 낚시 좋아하는 분 없어요?”


“저는 잡아주면 먹는 거 좋아합니다. 하하하.”


“자, 이제 다른 분들도 어떻게 살아왔는지 이야기해볼까요?”


“5월까지는 매일 막걸리 두 병을 마셨어요. 공황장애 때문에 정신과에서 가끔….”


“공황장애는 어떻게 느껴지는데?”


“말씀드려도 이해하기 어려울 거예요.”


“이 모임 시작한 뒤로는 좀 낫재?”


“좀 낫습니다. 이제 차도 타고 왔다 갔다 합니다.”


“저는 이번 주에 마산에서 친구 만났어요. 초등학교 친구들이 다 마산에 있는데 만나보니 해마다 다르더라고요. 오는 숫자도 그렇고.”


“안 보이면 저세상 간 거잖아.”


“첫 모임 때는 좀 그랬는데 지금은 아팠던 이야기며 모든 이야기 다 하잖아. 반여2동에 혼자 사는 사람 진짜 많다고.”

이 대화는 오랫동안 관계를 맺은 친구들 사이의 이야기가 아니에요. 


부산 해운대구가 고독사 예방을 위해 진행하는 싱글 남성 모임에 참여한 이들은 대부분 50~65세에요. 중장년 남성 여섯 명은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서로 알지 못했죠. 


이들은 저마다 아픈 부분이 한 가지씩 있어요. 류머티즘, 간경화 같은 질병이나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죠. 11월 5일 부산 반여동에 자리한 반여종합사회복지관에서 싱글 남성들은 오래 알고 지낸 친구처럼 대화를 나눴어요. 


해운대구는 1인 가구들이 모임을 하고 공유 부엌을 이용할 수 있게 반여종합사회복지관에 ‘공감제작소’를 마련했어요. 


이날 모임에서는 술을 줄이겠다거나 집 청소를 꼼꼼히 하겠다는 다짐이 나왔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거나 응원의 박수를 보내기도 했어요. 이들은 이야기를 나눈 뒤 복지관 옥상에 마련된 텃밭에서 작물을 길러요. 텃밭 정리가 끝나면 함께 저녁을 먹고 헤어지죠.


해운대구 ‘123 프로젝트’ 눈길

△ 부산 반여동에 자리한 반여종 합사회복지관에서 모임을 하는 싱글 남성들과 박지택 복지2팀장(맨 오른쪽). 이번 주에 한 일과 다음 주계획, 다짐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해운대구가 이런 모임을 만든 이유는 고독사가 잇따라 발생하기 때문이었어요. 2017년 6월부터 2019년 3월까지 홀로 죽음을 맞이하고 뒤늦게 발견된 사례는 11건. 같은 기간 부산시 다른 지역에서 일어난 고독사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았어요. 해운대구에서 홀로 죽음을 맞은 이들은 모두 남성이고 이 가운데 65세 이상이 54.5%를 차지했죠. 


질병·실직·이혼 등으로 사회관계망이 단절된 남성 중장년층이 반여, 반송, 재송동에 밀집해 있는 것으로 나타나자 구는 ‘1인 가구, 이웃 공동체와 함께 더불어, 삶을 살다’라는 뜻에서 ‘123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고립되기 쉬운 중장년 남성 1인 가구를 공동체가 돌보고 자연스럽게 이웃과 어울릴 수 있도록 돕는 데 주안점을 뒀죠.


반여동에서 싱글 남성 모임을 주도하는 박지택(38) 복지2팀장은 “요즘은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면 집값이 더 싼 곳으로 옮긴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 아는 사람이 없어서 고립되고, 특히 신체적·심리적으로 약한 이들은 자신감이 없어 관계를 맺기도 어렵다”고 설명했어요. 


혼자 사는 외로움에 술을 마시고, 동네에서는 알코올의존자로 낙인찍히고, 다시 이웃을 사귀기 어려운 악순환에 빠지게 돼요. 


싱글 남성들이 모임을 통해 달라진 변화는 뭘까. “아무래도 모임 나올 때 거울 한 번 더 보고 면도도 하고, 평소 컨디션도 관리하게 되잖아요. 마음속에 있는 것을 쏟아내고 교류하면서 혼자가 아니라는 인식도 하고 소속감도 생기죠. 


일주일에 한 번 프로그램을 하는데 그사이에 서로 안부를 묻기도 해요. 고구마가 생기면 갖다주면서 요리하는 법도 알려주고요. 그게 ‘사람들의 힘’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박 팀장)


고독사를 예방하는 정책은 전국적으로 확대되는 추세에요. 부산에서는 ‘고독사 예방 및 사회적 고립가구 지원을 위한 조례’가 3월 제정됐고, 서울은 이보다 2년 앞서 ‘서울특별시 고독사 예방 및 1인 가구 사회망 확충을 위한 조례’를 제정했어요. 


그러나 이제는 정책이 무연고 사망자를 막는다는 단기적 방향에서 사회적 관계망 회복으로, 다시 정서적 문제인 외로움으로 확대되는 추세에요.


외로움 예방에 가장 앞장선 도시는 부산이에요. 부산시의회는 전국 최초로 ‘부산시민 외로움 치유와 행복 증진을 위한 조례’를 5월 제정했어요. 외로움의 고통을 치유하고 인간 존엄성을 회복하며 공동체적 삶을 실현하기 위해서죠. 


이 조례에 따라 부산시는 시민의 외로움 치유와 행복 증진을 위한 계획과 실태 조사로 ‘외로움 지표’를 개발하고, 시 차원에서 ‘외로움 치유와 행복 증진 위원회’를 구성할 예정이에요. 


부산시는 위원회 구성에 앞서 내년 초 산하 연구기관에 외로움 관련 용역을 발주할 계획이에요. 고독사 예방, 1인 가구, 독거노인 등 각각의 관련 정책들이 사회적 외로움 대응이라는 대전제 아래서 유기적으로 시행될 수 있어요.

영국 세계 최초 ‘외로움 장관’ 임명

△ 반여종합사회 복지관 옥상에서는 반여동 일대가 보인다.

“사람들은 금연이나 다이어트에는 노력을 기울이면서 사회적 관계를 강화하는 데는 거의 집중하지 않는다.” 비벡 머시 미국 공중위생국장은 2017년 9월 외로움이 심혈관 질환, 치매 발병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를 인용하며 외로움을 질병으로 다뤄야 한다고 지적했어요. 


경제적 양극화, 극단적인 개인주의와 배금주의, 노인 빈곤율 등의 영향이 외로움이라는 사회적 전염병으로 나타나죠.  


외로움을 국가 보건정책 의제로 다루는 국가 가운데 가장 선두에 선 나라는 영국이에요. 영국 정부는 2018년 1월 트레이시 크라우치 체육·시민사회부 장관에게 ‘외로움 장관’을 겸직토록 했어요. 세계 최초로 외로움 담당 장관을 임명한 것이죠. 


당시 테리사 메이 총리는 외로움 대응 부서를 만들고 사회관계망을 연결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도록 했어요. 영국이 그해 10월 발표한 ‘연결 사회’라는 전략 보고서에는 다양한 대책이 포함되었어요. 


2023년까지 외로움을 겪고 있는 환자를 대상으로 무료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요리 수업, 산책 그룹 등을 만들어 사람들을 연결하며, 각종 미술 단체 등을 투입해 사회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늘린다는 방침이에요. 


영국 국립우체국과 파트너십을 맺어 리버풀, 뉴몰든, 회트비 지역 우편배달부가 배달 지역의 소외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필요한 경우 가족이나 지역사회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도 포함되었어요.


이러한 정책이 만들어진 데는 ‘조 콕스 위원회 보고서’의 통계가 영향을 미쳤죠. 보고서를 보면, 9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늘 또는 자주 외로움을 느낀다”고 답했고 “한 달 이상 친구나 친척과 대화하지 않았다”고 대답한 노인도 20만 명에 이렀어요.


영국뿐만 아니다. 네덜란드 공공보건부는 외로운 노인들을 위해 2600만 유로의 예산을 편성했어요. 노인의 54%가 외로움을, 11%가 심한 외로움을 호소하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자원봉사자를 대상으로 외로움 징후를 감지하는 특별 교육을 실시했죠. 


아일랜드에서도 ‘외로움 태스크포스(TF)’가 출범했어요. 의사 출신인 키스 스와닉 공화당 의원과 자선단체 ‘얼론(Alone)’이 손잡고 팀을 꾸렸어요. 독일에서도 외로움 문제가 의제로 떠올라 변화가 시작되었어요. 


2월 사회민주당 내 공공보건 전문가인 카를 라우터바크 의원은 현지 매체 <빌트(Bild)>에 “보건당국 내 외로움 대책을 총괄할 책임자가 필요하다”고 말했어요. 기독교민주연합에서 가족정책을 담당하는 마르쿠스 바인베르크 의원도 “외로움 논의에 대한 금기를 깨야 한다”고 응답했어요.


행정안전부 포럼 열어 정부 차원 해법 모색

부산에서 외로움 예방 첫 조례가 제정됐을 뿐, 관련 정책이 본격적으로 나오지 않았어요. 그러나 사회적 고민은 갈수록 커지는 분위기죠. 정부 차원에서는 해법을 찾기 위해 ‘찾아가는 현장 포럼’이 9월 열렸어요.


행정안전부가 경상남도 사회혁신추진단과 함께 ‘외로움에 대처하는 공동체적 해법’이라는 주제로 경남 창원에서 주최한 포럼에서는 한국에서도 사회적 논의가 촉진돼야 한다는 의견이 모아졌어요.


높은 자살률도 외로움 문제에 시급히 대처해야 하는 이유로 꼽혀요. 보건복지부가 최근 공개한 ‘2019년 자살예방백서’에 따르면 2017년 우리나라 자살자 수는 1만 2463명이에요.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수를 뜻하는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리투아니아(26.7명)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치(25.8명)를 기록했죠. 특히 65세 이상 노인 자살률이 1위로 OECD 국가 평균(18.8명)보다 3배 이상 높은 58.6명이에요.


사회적 고립과 소외감이 오래 지속돼 부정적 사고와 행동을 심화시킬 때 외로움은 심각한 사회문제가 돼요. “외로움은 개인적 수준에서 타인으로부터 고립되었다고 느낀 결과로 나타날 뿐 아니라, 전염을 통해 사회적 네트워크 안에서 발현된다.” 미국 시카고대학의 존 카치오포 사회심리 생리학 교수가 발표한 논문 내용 가운데 일부에요. 


2009년 미국심리학협회가 발행하는 <성격 및 사회심리학>지에 게재한 논문에서 그는 외로움은 사회적 네트워크에 내재해 있다 구조적으로 확산된다고 설명해요. 외로움은 전염성을 띤다. 한국 사회에도 외로움이라는 사회적 고통이 이미 현실로 다가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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