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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들이 퇴근 후에 깎는 '이것'

조회수 2019. 11. 12. 17:2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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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일상에 지친 사람, 나를 챙길 시간이 없는 사람, 혹은 나를 돌아볼 여유가 생겼는데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 문화체육관광부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과 함께 운영하는 ‘2019 직장인 문화예술교육지원 사업’은 바로 이런 이들을 위해 마련됐어요! 자세한 내용을 살펴볼까요?

위클리 공감 누리집 원문 기사 보러 가기


직장인 문화예술교육이란?

△10월 18일 경기도 고양시 대화동 ‘예온’ 스튜디오에서 강사 신유안 작가가 참가자들과 함께 사진수업 ‘당신의 시간’을 진행하고 있다.




“누구든지 가능하죠. 다만 여기 와서 자신에게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를 검토하진 않았으면 좋겠어요. 잘 못해도 희열을 느끼는 이들이 있잖아요. ‘내가 지금 직접 하고 있어!’ 중요한 것은 재능이 아니라 재미예요. 아이들 놀이, 숨바꼭질에 재능이 있어야 하나요? 잘 놀면 되는 거죠.”


“자기 삶에 불만이 있거나 삶의 전환을 꿈꾸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파악해나가는 시간이 될 수 있어요.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직장인들은 정체성을 잊고 살잖아요. 퇴근 후라도 자신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이끄는 강사들은 이 사업의 의미와 매력을 이렇게 설명해요. <위클리 공감>은 총 6개 프로그램 가운데 ‘나무를 깎고 시간으로 쓰다’(목공예), ‘손을 움직여 마음을 엮다’(바느질 공예), ‘당신의 시간’(사진) 수업 현장을 들여다봤는데요. 분야는 달라도 모든 프로그램이 추구하는 본질은 똑같았어요. 


퇴근 후 쉼표 있는 삶은 (직장이 아닌) 나를 위해, (남과 비교하지 말고) 나를 돌아보고, (남이 주는 것이 아닌) 내가 만든, 나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었죠.



‘2019 직장인 문화예술교육 지원 사업’은 바쁜 일상에 지친 직장인들이 문화예술을 통해 일과 여가의 균형을 찾고, 문화예술 감수성을 높일 수 있도록 음악·무용·사진·우드카빙·캘리그래피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퇴근 후의 직장인과 함께하는 특화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이에요. 문화체육관광부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하 교육진흥원)과 함께 올해 9월 말부터 시작해 11월까지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있죠.


이번 사업은 교육진흥원이 주관하는 기획 프로그램과 취향 공유 모임을 주도하는 민간 온라인 플랫폼 ‘남의집 프로젝트’가 협업해 진행하는 프로그램으로 이뤄져 있어요. 프로그램에 따라 2~4회차로 구성되는데 참가비는 회당 1만 원이고, 모든 회차에 다 참석해야 해요. 참가 신청은 ‘2019 직장인 문화예술교육’ 누리집(www.arte-edu.kr)에서 받고 2019년 프로그램은 대부분 마감됐어요.


‘기획 프로그램’은 직장인들이 자신의 손, 눈, 귀 등을 통해 새로운 감각을 열어보고 감각의 균형을 찾을 수 있도록 안내해요. 일상의 소리를 기록하고 직접 스피커를 만들어 감상하는 ‘나의 플레이어’(사운드 아트), 반복적인 작업으로 생각을 단순화하고 몰입의 단계에 빠져보는 ‘나무를 깎고 시간으로 쓰다’(목공), 시간의 관점에서 나의 일상 속 숨은 시간을 사진으로 포착하는 ‘당신의 시간’(사진) 등 모두 6개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답니다.

‘남의집 프로젝트’와 협업하는 프로그램은 평소 접하기 어려운 예술가의 작업실에서 퇴근 후 함께 문화예술 활동을 진행하는데요. 집과 회사를 잇는 출퇴근길을 인공위성이 되어 바라보고, 일상 속 특별한 모습을 찾아보는 ‘공간 읽기’(시각예술), 각자 불안을 느끼거나 두려운 것을 모아 나만의 괴물을 만들고 퇴치법까지 완성해보는 ‘나만 아는 괴담, 내가 만드는 괴물’(독립출판), 이름을 통해 자신을 생각해보고 이름의 의미와 느낌에 맞춰 자신의 이름을 디자인하는 ‘알파벳으로 그려보는 그리운 이름’(캘리그래피) 등 7개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문체부와 교육진흥원 측은 “올해 진행한 직장인 대상 문화예술교육 지원 사업 경험을 바탕으로 2020년에는 더 많은 직장인이 참여할 수 있도록 모집 기간을 상반기로 바꾸는 등 운영 기간을 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어요.

목공 '나무를 깎고 시간으로 쓰다'

△김영표, 진예, 원해아 씨(왼쪽부터)가 각자 깎던 숟가락을 들어보이고 있다.




10월 14일 저녁 7시 충남 천안시 서북구 두정동 ‘공간사이’에 마련된 우드카빙(Wood Carving) 교육장으로 퇴근한 직장인들이 하나둘씩 모였어요. 


이들은 10월 7일에 이어 이날 두 번째로 ‘나무를 깎고 시간으로 쓰다’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인데요. 이 프로그램은 문화체육관광부가 교육진흥원과 함께 9월부터 시범 운영하는 ‘2019 직장인 문화예술교육 지원 사업’ 중 교육진흥원이 주관하는 기획 프로그램으로 남머루 씨가 진행을 맡았어요. 


남 씨는 “서울 성미산 마을에서 ‘어제의 나무’라는 공방을 운영하면서 우드카빙 워크숍도 진행하는 나무 작업자”라고 자신을 소개했어요.


참가자들이 모두 모이자 남 씨는 본격적인 작업을 하기에 앞서 손과 팔, 어깨 위주로 스트레칭을 하고 연필을 한 자루씩 깎으며 손을 풀 것을 권했어요. 


2시간이 넘도록 칼을 쥐고 나무를 깎는 일이 만만치는 않을 거예요. 곧이어 숟가락 깎기에 돌입했어요. 


남 씨는 숟가락 깎기에 대해 “우드카빙의 시작이다. 숟가락을 깎아내는데 덜어낸 만큼 비워지고 담기더라. 숟가락은 밥과 나를 이어주는 동그랗고 기다란 선이다. 밥을 먹기 위한 도구이기도 하고, 숟가락을 깎는 동안 밥을 먹는 나를 상상하게 하는 도구다. 또 숟가락은 생애 최초의 도구이자, 생애를 관통하며 계속 쓰는 도구다. 그런 숟가락을 ‘깎아 쓴다’는 것은 우리의 삶에 나를 더욱 깊이 들어가게 하는 일”이라고 말했어요.

"우리 삶에 나를 더욱 깊이 들어가게"

△숟가락 깎기에 필요한 재료와 도구. 후크 나이프, 블랭크, 카빙 나이프(왼쪽부터)



대학 친구와 함께 우드카빙을 배우러 온 원해아(33) 씨는 “아빠가 목수였어요. 침대 등 가구를 만들어 팔기도 했는데 오빠는 목수 일을 배웠지만 나는 다칠까 봐 하지 말라고 한 기억이 나요.”며 후크 나이프를 들고 숟가락의 앞머리를 파내기 시작했어요. 왼손 약지에 붕대가 감겨 있었는데요. 원 씨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아, 이거요? 조금 다쳤는데 집중해서 칼질하다 보니 금세 잊어버렸어요. 아프지 않아요. 어릴 때 연필을 잘 깎지 못했는데 아빠는 몇 초 만에 뚝딱, 그것도 예쁘게 깎아 주셨거든요. 지금 이 숟가락을 다 만들면 아빠에게 선물로 드릴 생각이에요. 우드카빙의 가장 큰 매력은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스트레스 해소에 그만이죠. 맨날 집과 회사만 오가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상도 큰 스트레스인데 칼질을 하고 있으면 내가 뭔가를 이뤄낸다는 성취감이 들어서 너무 좋아요. 진정한 자유는 하고 싶은 걸 다 하는 게 아니라 하고 싶지 않은 걸 거절할 수 있는 것인데, 우드카빙은 남이 시켜서가 아닌 내가 선택해서 온 것이니 좋아요.”


옆에서 재빠른 손놀림으로 작업을 하던 원 씨의 친구 진예(31) 씨도 직장인이에요. 해외영업부에서 일하고 있다는 진 씨는 “인터넷 검색을 하다 이 프로그램을 보고 오게 됐다. 집에선 아이 엄마, 밖에선 회사원이라 나라는 존재감이 작았는데 이걸 하는 시간에는 집중이 되면서 자아를 찾는 기분이 든다. 지인 중에 탁구를 잘 치는 사람이 있는데 ‘핑팡’ 하는 소리가 좋다고 했다. 나는 나무를 깎는 ‘사각사각’ 소리가 너무 좋다. 나무 향기도 좋고. 남편이 열심히 배워 오라고 했다. 익숙해지면 집에서 쓸 국자도 만들 생각이다. 그런데 작품이 너무 잘 나오면 아까워서 못 쓸 것 같다”면서 웃었어요.


남 씨는 2018년에 나무 작업을 하면서 떠오른 생각을 모은 책 <카빙노트, 나무로 살림-느린 시간으로 나무를 깎다>를 냈어요. ‘어제의 나무’ 누리집에 그가 올린 소개 글이 있답니다.

“나무로 살림은 나무를 살림이고

사람을 살림이기도 합니다.

나무로 살림은 숲에 기대어 사는

모든 생명의 살림이기도 합니다.

나무를 깎아 살림을 만드는

모순된 이 행위 역시 살림입니다.

우리가 깎는 나무들이 다시 살림이 되어

숲이 되기를 바랍니다.”

△남머루 강사가 우드카빙의 재료인 나무의 강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남 씨는 이날 참가자들에게 숟가락을 계속 깎으라고 하면서 이야기를 들려주듯 강의도 병행했어요.


"결과물에 매몰되지 않아야 해요. 예쁜 숟가락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돼요. 정확한 한 칼이 쌓이고 쌓여… 칼과 나무 중에 하나만 움직이는 것이죠. 지난주에 칼 이야기를 했고 오늘은 나무 이야기를 할 건데요. 깎으면서 이야길 들으면 좋겠어요. 이게 나이테인데 의미심장해요. 봄과 여름엔 쑥쑥 자라 춘재가 되고 가을과 겨울엔 추재가 되죠. 넓은 면과 진한 선이 합쳐져 한해살이가 되는 거예요. 이걸 좀 인문학적으로 보면 시간이에요. 시간의 집합체로 읽어볼 수 있어요."

"중요한 것은 재능이 아니라 재미"

△남머루 강사가 한 참가자에게 후크 나이프 쓰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참가자들은 인문학이 녹아든 우드카빙 강의를 들으면서 어느새 익숙해진 손으로 칼질을 이어갔어요. 또 다른 참가자 김영표(30) 씨는 뒷머리 깎기에 이어 앞머리 깎기를 하고 있어요.


김 씨는 “평소 관심이 있었지만 미술, 음악 같은 분야와 달리 우드카빙은 접할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에 너무 좋은 프로그램을 만났다. 무엇보다 잡념이 없어져서 좋다. 반복 동작을 계속하다 보면 무념무상의 경지에 이른다. 회사 동료들에게 이야기했더니 참여하고 싶다는 사람이 많았다. 앞으로도 이런 프로그램이 계속 이어지면 좋겠다”라고 말했어요.

△한 칼, 한 칼이 쌓이면서 나무 조각이 숟가락으로 바뀌고 있다.

남 씨에게 초보자도 우드카빙을 배울 수 있는지 물었어요. 그는 “누구든지 가능하다. 다만 여기 와서 자신에게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를 검토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잘하면 재미가 생기겠지만 그 잘함이 재미를 지속시키진 않는다. 잘하지 못해도 희열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지금 칼로 나무를 깎고 있어!’ 소질… 중요한 것은 재능이 아니라 재미다. 아이들 놀이, 숨바꼭질에 재능이 있어야 하나? 잘 놀면 된다. 손에 힘이 없다면? 힘없으면 없는 만큼만 깎으면 된다. 작가들이 95%의 완성도에 이른다면 초보자라도 75%까진 올라간다. 다만 누구는 두 달 걸리고 누구는 석 달 걸릴 뿐이다. 숟가락을 깎을 수 있으면 주걱, 도마 등 웬만한 살림 도구 모두 가능하다. 크기와 소요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이라고 말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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