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4일에 잠든 로마인들이 10월 15일에 깨어난 이유

조회수 2019. 11. 1. 14:5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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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2년 10월 4일(목요일) 잠자리에 든 로마인들은 그 어떤 사람의 예외도 없이 10월 15일(금요일)에야 깨어났어요. 도대체 열흘 동안 로마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혹시 왕실의 생일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앙갚음으로 아름다운 숲속의 공주와 백성을 잠재웠다는 그 마녀가 다시 로마에 나타나서 저주를 퍼부은 것일까요? 그럴 리는 없죠. 그렇다면 로마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위클리 공감 누리집 원문 기사 보러 가기


10월 4일 다음이 10월 15일였던 까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사람들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일어났지요. 단지 달력에서 열흘이 사라졌을 뿐이에요. 로마의 권력자가 달력에서 과감히 열흘을 없앴어요. 


주인공은 그레고리우스 13세. 그는 1572년 로마 교황에 즉위하자마자 달력 개혁에 나서 마침내 10년 만에 율리우스 달력을 폐지하고 그레고리 달력을 도입하는 개혁을 완성한 거예요.


사람이라면 달력이 필요하죠. 사람들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어 하거든요. 무인도에 상륙한 로빈슨 크루소가 섬에 정착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를 인정한 뒤 가장 먼저 한 일이 바로 자기만의 달력을 만드는 것이었죠.


달력은 계절의 변화를 미리 알려줘요. 태양과 달, 별의 운행을 관찰하던 사람들은 계절을 알려주는 데는 태양만큼 편한 게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리하여 태양력이 시작되죠. 그런데 태양은 하나지만 태양력은 하나가 아니었어요.

1년이 들쭉날쭉했던 옛 로마 달력

옛 이집트 사람들도 우리처럼 1년이 365일인지 알았어요. 나일강이 정기적으로 범람해 농부들에게 파종할 시기를 가르쳐주었는데 그 간격이 대략 365일이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365는 나누기 힘든 불편한 숫자였어요. 그래서 한 해를 360일로 간단히 정하고는 나머지 5일은 오시리스 신화를 만들어 축제를 벌였어요. 정말 편리하고 유쾌한 방법이죠.


한편 로마인들은 매우 이상한 달력을 썼어요. 1년이 열 달에 304일이다가, 나중에 열두 달로 바뀐 다음에는 평년은 355일, 윤년은 382일이었어요. 


달력이 자연의 변화를 알려주지 못할뿐더러 1년의 길이가 제각각이어서 세금과 이자를 낼 때 불만이 생겼고 관리의 임기도 들쭉날쭉했었죠.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이집트의 태양력을 도입하면서 자신들이 사용하던 달 이름을 붙였다. 율리우스 대리석상│ 한겨레


로마의 새로운 권력자가 된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달력을 정비할 필요를 느끼고 이집트의 태양력을 도입하면서 자신들이 사용하던 달 이름을 붙였어요. 


그런데 이상합니다. 문어(Octopus)의 다리는 여덟 개인데 October는 8월이 아니라 10월이고, 모세의 십계(Decalogue)에는 열 가지 계율이 있는데, December는 10월이 아니라 12월이거든요. 어떻게 된 영문일까요?


원래 로마의 한 해는 지금의 3월(March)에서 시작해 2월(February)에 끝났어요. 그런데 새해에 집정관으로 취임하기로 되어 있던 카이사르가 빨리 취임하고 싶은 욕심에 March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당시 11월이던 January를 1월로 정해버렸어요. 


그래서 엉뚱하게 옥토버는 10월로 그리고 디셈버는 12월로 밀린 거예요.

권력을 잡은 자는 시간도 지배해요. 율리우스는 달력 개혁을 기념해 자신의 생일 달인 7월에 자신의 이름 율리우스(영어의 July)를 붙였어요. 


율리우스의 후계자인 아우구스투스도 권자에 오르자 자신의 생일 달인 여덟 번째 달에 자신의 이름(영어의 August)을 올렸고요. 그런데 여덟 번째 달은 작은 달이었어요. 아우구스투스는 불쾌했죠. 그래서 원래 29일이던 2월에서 하루를 가져와 8월을 31일로 늘렸어요. 덕분에 7, 8월은 연달아 큰달이 되고 2월은 28일이 되었죠. 


큰달과 작은달이 들쑥날쑥하고 이름이 제멋대로 바뀐 거야 대수가 아니에요. 그런데 이왕 고치는 거 정확히 고쳤어야 해요. 이 무렵 이집트의 과학자들은 시간의 길이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어요. 


지구는 정확히 365일 만에 태양을 한 바퀴 돌아주지 않아요. 실제로 지구가 공전하는 데는 365일하고도 5시간 48분 46초가 더 걸리죠.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이 자투리 시간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았어요. 한 해는 365일에 대략 4분의 1일이 더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그는 4년에 한 번씩 하루가 더 긴 윤년을 두었어요. 비록 한 해를 11분 14초 더 길게 잡았지만, 이 작은 차이가 무슨 대수냐고 여겼죠.


율리우스 달력은 모든 사람을 만족시켰고 기독교의 확장과 함께 전 유럽으로 퍼졌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율리우스 달력에 대한 의심이 생겼으며, 16세기가 되자 달력에 대한 불만이 폭발할 지경에 이렀어요.


문제는 기독교 최대의 명절인 부활절이었어요. ‘춘분(3월 21일)이 지난 뒤 보름달이 뜨고 난 후에 오는 첫 번째 일요일’이 부활절이죠. 그런데 기원전 45년부터 율리우스가 간단히 무시한 11분 14초가 매년 쌓여 부활절이 점차 이상해졌어요.

무시한 11분 14초가 쌓이고 쌓여

16세기에 이르자 달력에는 3월 21일로 나와 있지만 실제로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날은 3월 11일이었거든요. 달력이 열흘이나 느린 거예요. 그래서 1582년에 열흘을 달력에서 지워야 했던 것이죠.


열흘을 지우면서 윤년 규칙을 정교하게 바꾸었어요. 새 규칙에 따르면 옛날과 마찬가지로 4로 나눌 수 있는 해는 윤년이지만 100으로 나눌 수 있는 해는 윤년이 아니고, 또 400으로 나눌 수 있는 해는 다시 윤년이에요. 율리우스력의 시대가 끝나고 그레고리력의 시대가 시작되었죠.


하지만 저항이 없다면 그건 개혁도 아니겠죠. 로마의 영향력에 있던 나라들은 로마와 함께 달력을 바꾸었지만, 개신교 국가나 로마에서 멀리 떨어진 나라는 율리우스 달력을 더 오랫동안 사용했어요.

러시아는 1919년에야 새로운 달력을 도입했어요. 이때는 달력의 오차가 13일로 벌어진 다음이죠. 그래서 러시아 10월 혁명 기념식은 11월에 열리고 러시아정교회의 성탄절은 1월 7일인 거예요. 


우리나라는 음력 1895년 11월 16일 다음 날이 그레고리우스 달력에 따른 양력으로 1896년 1월 1일이었습니다.


율리우스는 달력을 개혁했어요. 하지만 11분 14초라는 정말 짧은 시간을 무시했죠. 그 결과 개혁은 다시 개혁되어야 했어요.


우리는 개혁이 일상인 혁신의 시대에 살고 있어요. 아주 작은 것에 세심한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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