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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인상적이네!"라는 조롱에서 '인상파'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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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 서양미술사에는 ‘인상파(印象派)’라는 새로운 미술 사조가 태동했어요. 오늘은 인상파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클로드 모네'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참 인상적이네” 야유와 조롱 받아

△클로드 모네, ‘인상, 해돋이’, 48×63cm, 캔버스에 유채, 1872, 파리 마르모탕 미술관 소장│ⓒ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미술에서 인상파는 빛의 변화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사물과 대상의 순간적인 모습을 포착해 그리는 양식을 말하죠. 


모든 형태와 색은 고정적이고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비추는 빛의 양과 각도에 따라 순간순간 모습이 달리 보인다는 거예요. 


즉, 똑같은 사물이라도 동틀 녘에 보이는 것과 아침, 한낮, 해거름에 보이는 모양과 색깔이 제각각이라는 뜻이죠.


‘인상파’ ‘인상주의’라는 명칭의 유래는 프랑스 화가 클로드 모네가 1872년에 제작한 작품인 ‘인상, 해돋이’에서 비롯됐어요. 


이 작품은 1874년 전시회에 처음 출품됐는데, 당시 그림을 본 한 비평가가 기본과 원칙을 지키지 않은, 그림 같잖다는 조롱과 야유의 뜻으로 “참, 인상적이네”라고 말한 것이 계기가 됐었죠. 


모네가 인상파의 창시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것도 그런 이유랍니다.

1840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모네는 대서양 연안의 항구도시 르아브르(Le Havre)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으며, 이때 화가인 외젠 부댕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미술 수업을 받으며 그림의 기초를 다졌어요.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넘쳐나는 어린 시절을 항구도시에서 보낸 탓에 모네는 변화무쌍한 바닷가의 날씨를 체험적으로 알고 있었으며 이는 훗날 그가 자연에 대한 뛰어난 통찰력을 바탕으로 인상파를 대표하는 작가로 발돋움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자산으로 작용했죠.

△클로드 모네│ ⓒNadar·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1859년 모네는 미술에 대한 시야를 넓히고 본격적인 그림 공부를 위해 거처를 파리로 옮겼어요. 그곳에서 만난 카미유 피사로와 르누아르, 시슬레, 바지유 등은 모네와 함께 인상주의 사조를 이끄는 중심인물로 부상했어요. 


이 시기, 모네는 실내 화실이 아닌 야외에서 직접 빛의 변화를 관찰하며 즉흥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인상파 특유의 기법을 집중적으로 익혔죠. 


1871년에 터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을 피해 잠시 런던에 머무를 당시에 본 윌리엄 터너와 존 컨스터블 등 영국 풍경 화가들의 작품도 인상파 화가로서 모네가 추구한 밝은 색채 연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어요.

자신의 모델이자 아내 겸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었던 카미유 동시외가 병으로 사망한 지 4년 후인 1883년, 모네는 파리에서 북서쪽으로 약 80km 떨어진 시골 마을 지베르니에 정착했어요. 모네의 나이 43세 때였죠. 


모네의 지베르니 생활은 그가 죽을 때까지 43년간이나 계속됐어요. 이곳에서 모네는 ‘물체나 대상의 색깔은 빛의 영향에 따라 수시로 변한다’는 자신의 인상주의 화풍의 원칙을 끝까지 고수하며 오늘날 우리가 사랑하는 세기의 걸작을 연이어 창조했어요.

지베르니에 뿌리를 내린 지 10년이 지난 1893년, 모네는 새로 땅을 사들여 기존의 정원을 확장한 가운데 연못을 조성하고 그곳에 수련을 심는가 하면 연못 위를 가로지르는 일본 건축 양식의 아치형 다리를 세워 자신만의 지베르니 왕국을 완성했어요. 


이때부터 모네는 필생의 화두였던 ‘연작’ 작업에 몰두해요. ‘연작’은 동일한 주제로 제작한 복수의 그림인데, 너무나도 유명한 ‘수련’ 연작을 비롯해 ‘루앙 대성당’ ‘포플러나무’ ‘건초 더미’ 등이 모두 지베르니에서 탄생한 작품이에요.

인상주의 특징 오롯한 인상파 그림 효시

지베르니 왕국은 모네에게 끊임없는 예술적 영감을 자극하는 원동력이었어요. 해가 떠 있는 동안 모네는 쉼 없이 빛의 변화를 응시하며 그것에 따라 물체의 색깔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집요하게 탐색했어요. 이런 모네를 두고 ‘현대미술의 아버지’ 폴 세잔은 “신의 눈의 소유자”라고 극찬했어요. 하지만 하루 종일 빛의 상태를 쫓다 보니 모네의 시력은 점점 나빠지기 시작했어요. 


빛의 흐름을 추적하는 화가에게는 치명적인 백내장과 씨름하면서도 모네는 캔버스 앞을 떠나지 않았었죠.


1926년, 지베르니 왕국의 주인인 모네는 향년 86세로 세상을 떠났어요. 모네가 40년 넘게 머문 지베르니 정원은 현재 모네 기념관으로 지정돼 세계적인 관광 명소로 자리 잡았어요.


‘인상, 해돋이’는 인상주의 미술 사조의 유래로 알려진 작품으로 모네가 유년 시절을 보낸 르아브르 항구의 해 뜨는 찰나의 풍경을 야외에서 즉흥적으로 담아낸 그림이에요. 


작품의 제작 연도는 1872년이지만 2년 후인 1874년 전시회를 통해 처음 공개됐어요. 파리 마르모탕 미술관에 소장 중인 이 그림은 세로 48cm, 가로 63cm 크기의 아담한 사이즈로 캔버스에 유채로 그려졌어요.

빛과 공기, 주변 환경에 따라 물체의 색이 달리 보인다고 생각한 모네는 그리려는 대상에서 받는 즉각적인 인상을 재빨리 캔버스에 구현할 때 진정한 풍경이 완성된다고 믿었어요. 그래서 ‘인상, 해돋이’ 그림을 보면 종전의 풍경화와는 확연히 다른 점이 눈에 띄죠.

우선 안개가 잔뜩 낀 동틀 녘 항구의 모습에서 세세한 묘사를 생략했어요. 태양과 하늘, 바다, 물결, 몇 척의 배는 물론 그림 오른쪽 가운데쯤에 희미하게 보이는 건설 장비 등 모두의 형태가 뭉개진 듯 불분명해요. 


바다와 하늘의 경계도 모호해요. 윤곽선 대신 색으로 경계를 대체했어요. 대상의 색도 빛의 상태에 따라 계속 바뀌기에 눈에 보이는 찰나의 인상을 신속한 붓질로 해결했어요.


신속한 붓질은 그림 곳곳에서 나타나는 짧고 자유로운 붓 터치의 흔적에서 확인할 수 있어요. 우리가 보는 자연의 모습은 고정적이지 않고 순간순간 변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어요.

또 해 뜰 녘이라 아직 남아 있는 어둠의 기운을 검은색을 사용하지 않고 밝은색으로 표현했다는 점이에요. 


이는 어둠의 표현은 검은색으로 한다는 종전의 틀을 깼다는 점에서 파격적이에요. 뿐만 아니라 팔레트 위에서 물감을 섞지 않고 색을 서로 겹치게 채색해 색의 진동 효과를 이뤄내 순간적인 인상 포착에 성공한 거예요. 


그래서 이 그림에는 인상주의 화풍의 특징이 모두 담겨 있고 인상파 그림의 효시로 불리죠.


ⓒ 박인권 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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