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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시간을 통일한 '이것'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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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 타보지 못했고 앞으로도 기회가 없을 것 같은 교통수단은 마차예요. 서부 개척시대에 황무지를 달리거나 유럽의 도시 사이를 다니던 우편마차 같은 것 말이죠. 


내가 꿈꾸는 마차 여행에 대해 정작 19세기 여행자들은 좋은 인상을 남기지 않았는데요. 자세한 내용 살펴볼까요?


1830년 9월 15일 첫 기차 여행

1876년 이탈리아 여행을 마친 괴테는 “치를에서 인탈로 우편마차를 타고 내려왔다. 경치는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우편마차는 내가 원하던 것보다 더 서둘렀다”라고 썼죠. 


또 8년 후 프랑스 작가 그자비에 콩트 드 메스트르도 “우편마차로 여행하는 사람들이 놓치는 많은 것들을 도보 여행자는 볼 수 있다”라고 썼지요. 둘 다 마차 여행에 불평을 한 것입니다.


말을 타고 달리는 사람들은 급한 소식을 전해야 하는 특별한 사람들이었어요. 말을 타고 빨리 달리기 위해서는 오랜 훈련과 강인한 체력이 필요했죠. 달릴 수 있는 거리에 한계가 있었어요. 그저 말은 또각 또각거리면서 천천히 걷는 정도였답니다. 


말을 타는 것은 단지 발이 아프지 않고 다리가 피곤하지 않으면서 뭔가 위엄을 뽐낼 뿐이었죠. 게다가 말을 타고 여행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어요. 짐을 실을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마차를 만들어서 여러 명이 함께 타고 지붕이나 뒤쪽에 짐을 실었죠. 장거리를 움직이려니 여러 마리의 말을 함께 묶어야 했고요.  시끄러운 말발굽 소리와 삐그덕거리는 바퀴 소리 그리고 심한 흔들림 때문에 우편마차 여행객들의 불평은 끊이지 않았답니다. 


그렇다고 해서 마차가 빨리 달린 것도 아닌데요. 평지에서조차 마차 속력이 시속 10km를 넘는 일은 드물었죠. 하루에 이동하는 거리도 40~60km로 한정되었어요. 


말이 자주 쉬어야 했고 승객 역시 달리는 마차에서 잠을 청할 수는 없기에 여관에서 짐을 풀고 숙박해야 했기 때문이에요. 여행가들이 불평을 늘어놓는 마차 여행조차 18세기와 19세기 초반이 되어서야 성행했죠. 

도로가 포장된 시기와 맞물리죠. 그렇다면 마차를 이용하기 전 사람들은 하루에 얼마나 이동할 수 있었을까요? 그냥 걸어야 했으니 우리가 걷는 것과 마찬가지 사정이었을 겁니다. 


빨리 걷는 사람들은 시속 6km까지도 걷지만 보통 사람들은 4km의 속력으로 걷죠. 물론 세계 최고의 마라톤 선수들은 시속 20km를 낼 수도 있어요. 속력은 아마 이게 한계일 것입니다. 거리도 마찬가지죠.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하루에 50km 이상 걸을 수 없죠. 


체력도 체력이지만 발바닥이 아파서 더 걷기는 어려워요. 요즘처럼 신발이 좋지 않던 시절에는 발이 더 아팠겠죠. 또 짐이 없이 맨몸일 때 이야기에요. 짐을 들거나 메고 이동할 수 있는 거리는 아주 한정되었답니다. 


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로 가는 호화 마차는 이야기가 조금 달랐죠. 23마리의 말이 3일 동안 650km를 달렸으니까요. 이 마차에는 호화스러운 가구와 오븐이 갖춰져 있었어요. 하지만 이 마차를 탈 수 있는 사람은 러시아 황제뿐이었죠.

 

사람이 제대로 된 여행을 하게 된 것은 순전히 기차 덕분이에요. 1825년 영국의 조지 스티븐슨은 석탄이 가득 실려 있는 운반 차량의 행렬에 증기기관을 연결했죠. 증기 엔진은 석탄을 20km 떨어진 항구까지 운반했지요. 


역사상 최초의 증기기관차를 본 사람들은 금방 깨달았죠. 석탄을 운반할 수 있다면 사람도 탈 수 있음을요. 1830년 9월 15일 증기기관차가 리버풀과 맨체스터 사이 46km 구간을 사람을 태우고 운행했어요. 마침내 기차 여행이 시작된 것이죠. 


이 열차는 순간 최고 시속 46km를 기록하기도 했지만 전체 구간 평균속력은 시속 23km에 그쳤습니다. 하지만 이름만큼은 최고였죠. 무려 ‘로켓호’였으니까요.

시계탑, 도시 한가운데서 철도역으로

△영국 그리니치천문대 표준시계│한겨레

마차망은 철도망으로 급속히 재편되기 시작했죠. 그러자 새로운 문제가 생겼는데요. 바로 시간표입니다. 1784년에 마차 여행에도 운행 시간표가 도입되었어요. 다만 출발 시간만 있었죠. 도착 시간이 없었어요. 승객들은 그저 출발 시간만 알고 있으면 됐죠. 


그런데요, 이때는 도시마다 시간이 달랐답니다. 태양이 가장 높이 떠 있는 시간이 정오였거든요. 그다지 큰 나라가 아닌 영국 안에서도 도시에 따라 최대 30분이나 시간이 달랐지만 상관없었어요. 


어차피 라디오도 없고 인터넷도 없는데 다른 도시와 내가 있는 도시의 시간 차이를 누가 신경이나 썼을까요? 철도는 달랐어요. 출발과 도착 시간을 표시해야 했지만 도시마다 시간이 다르니 불가능할 지경이었죠. 그래서 통일을 해야 했어요. 


어느 도시를 기준으로 삼아야 할까요? 철도 회사들은 합리적인 선택을 합니다. 자신들의 근거지가 되는 리버풀이나 맨체스터, 글래스고 같은 공업도시 대신 천문대가 있는 그리니치를 기준으로 삼기로 했죠. 이때가 1847년입니다. 


철도 회사들이 통일된 시간을 사용하자 다른 기관들도 따라 하기 시작했어요. 1880년 영국 정부는 아예 영국의 모든 시간을 그리니치를 기준으로 삼는 법률을 만들었답니다.

예전에는 모든 도시의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시계탑이 있었어요. 도시마다 시간이 달랐기 때문에 마차를 타고 온 승객들이 자신의 시계를 그 도시 시간에 맞춰야 했기 때문이죠. 철도망이 확장될수록 시계탑은 철도역 정면 벽으로 옮겨왔습니다. 


유럽 대륙을 여행하거나 미국처럼 큰 나라를 여행할 때 새로운 도시에 도착하면 시간을 바꿔야 했기 때문이죠. 아직도 기차역마다 커다란 시계가 있기는 하지만 그걸 들여다보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비행기를 타고 장거리 여행을 하더라도 휴대전화가 자신의 위치를 알아서 시간을 바꿔주기 때문이에요. 결국 전 세계인이 같은 시간을 사용하고 있는 셈입니다. 증기기관과 기차는 산업혁명의 핵심 동력이에요. 


인간이나 말의 힘으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힘을 만들었어요. 증기기관은 힘만 만든 게 아니에요. 전 세계인의 시간을 통일했죠. 굉장하지 않나요? 우리는 사상과 언어는 달라도 적어도 같은 시간 속에서 살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참, 그리니치천문대 입구 벽에는 시계가 달려 있는데 12시간이 아니라 24시간이 표시된 시계랍니다. 시간을 읽기 아주 불편하죠.

ⓒ 이정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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