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DMZ를 걸어야 하는 이유

조회수 2019. 9. 16. 13:5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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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우리 국민과 전 세계인들은 판문점에서 일어나는 역사적인 장면을 지켜봤습니다. 정전협정 66년 만에 사상 최초로 당사국인 북한과 미국의 정상이 군사분계선에서 두 손을 마주 잡았고 미국 정상이 특별한 경호 조치 없이 북한 정상의 안내로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 땅을 밟았습니다. (중략) 그에 앞서 저는 트럼프 대통령과 군사분계선으로부터 불과 25m 거리에 있는 최전방 GP를 방문했습니다. 한미 양국의 대통령이 함께 DMZ(비무장지대)를 방문한 것은 사상 최초입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6월 30일 판문점 회동과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이 7월 2일 국무회의에서 발언한 내용이죠. 분단의 아픔을 담은 비무장지대는 남북 평화 분위기가 조성되는 가운데 자연의 위대한 생명력으로 거듭나고 있어요.


아울러 역사와 자연, 평화가 공존하는 비무장지대를 둘러보는 DMZ 평화의 길(이하 평화의 길) 체험이 인기를  끌고있죠. 자세한 내용 살펴볼까요?   


위클리 공감 홈페이지 원문 보러 가기

열흘 새 주인 24번 바뀐 격전의 백마고지

평화와 안보의 현주소를 생생하고 특별하게 경험할 수 있는 평화의 길은 9·19 남북군사합의에 따라 감시초소(GP) 철거, 유해발굴 등 긴장 완화 노력이 이뤄지는 고성(동부), 철원(중부), 파주(서부) 3개 지역에서 시작해요. 


아름다운 자연과 더불어 백마고지 전적지, 유해발굴 지역 등 남북전쟁의 아픔이 깃든 분단의 땅을 돌아보는 철원 코스는 15.0km로 3시간이 소요되죠. 화산암이 분출해 이뤄진 용암대지 철원평야 사이로 한탄강이 흘러요. 


철원 구간은 백마고지 전적비에서 A통문까지는 차량으로 이동하고 A통문부터 화살머리고지가 보이는 B통문까지는 DMZ 남측 철책을 따라 3.5km를 걸어서 이동하는 경로인데요. 그곳에서부터 비상주 GP까지 차량으로 이동한답니다.


“4월 27일 고성 구간이 최초로 개방됐고, 6월 1일부터 철원 구간이 개방됐습니다. 그리고 철책선 안으로 들어가서 군인들이 경계근무를 서는 비상주 초소가 국민에게 개방되는 것은 바로 이곳 철원이 최초입니다." 

△‘DMZ 평화의 길’ 철원 코스

"DMZ의 특성상 방문객들의 주의가 필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첫째, 안전한 여정이 되기 위해 저를 포함한 진행 요원의 안내에 철저히 따라주시기 바랍니다." 


"경로를 벗어나는 단독 행동을 포함, 철조망을 만지거나 하는 작은 행동이 여러분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곳을 지키는 군인들의 작전 수행에 큰 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둘째, DMZ는 사람의 손길이 최소화된 생태 보전 지역입니다. 실수로 버려진 음식물이나 설탕 음료가 이곳 동식물들의 터전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셋째, 담배를 비롯해 화재를 일으킬 수 있는 어떤 위험 요소도 각별히 주의해주시기 바랍니다." 


"‘DMZ 평화의 길’은 우리가 모두 만들어가는 길입니다. 다시 한번 여러분의 협조를 부탁드리며, 이제 저를 따라 이동하겠습니다.”

코스가 시작되는 백마고지 전적비 주차장 앞에서 안내를 맡은 해설사가 관광객들에게 설명해요. 그를 따라 중부전선 최전방으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으로 이동하죠. 


DMZ 안에서 이뤄지는 모든 활동은 유엔군사령부 관할이에요. 군인도, 민간인도 엄격한 출입 통제를 받기 때문에 정전 이래로 DMZ가 민간인에게 개방된 적은 한 번도 없었죠. 


7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누구도 발을 들여놓을 수 없는 단절의 땅이었기에 청정 자연이 고스란히 보존된 ‘생물자원의 보고’지만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일촉즉발의 화약고 같은 땅이기도 했어요. 전쟁 기간 중 가장 치열한 고지 쟁탈전이었던 ‘백마고지 전투’가 벌어진 땅을 바라보는데요. 


백마고지 전투는 1952년 해발 395m의 이름 없는 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국군 제9사단과 중공군 제38군 3개 사단이 벌였던 전투를 말하죠. 열흘간 무려 12차례의 공방전이 이어지며 고지의 주인이 24번이나 바뀌었을 정도로 격전이 벌어졌어요. 


철원평야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백마고지 전망대를 지나 DMZ로 들어가는 공식 통로인 A통문(59통문)에 도착하죠. 이곳에서 해설사는 군사분계선, 남방한계선, 비무장지대 그리고 민통선의 개념에 대해 설명을 이어가요.

남북 공동 시범 유해발굴 화살머리고지

△ 화살머리고지 정상 GP

“우선 휴전선으로 보통 알고 계시는 군사분계선 MDL(Military Demarcation Line)를 기준으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에 따라 남과 북 사이에 생긴 선이지요. 군사분계선에는 철조망도 장벽도 없습니다." 


"1953년 정전협정에 따라 한반도 서쪽에서 동쪽까지 일정한 간격으로 총 1292개의 군사분계선 표지판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70년의 세월로 인해 녹슬고 철판만 남은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바로 이 MDL을 기준으로 남과 북으로 각각 2km 위치한 곳에 남방한계선과 북방한계선이 있습니다. 그리고 남방한계선과 북방한계선 사이에 놓인 4km의 완충지대가 비무장지대(DMZ, Demilitarized Zone)입니다."


"DMZ는 정전협정 당사자인 유엔군사령부 관할이기 때문에 지금부터 우리는 그 규정에 적용을 받는 것입니다. 남방한계선은 동쪽의 고성에서 서쪽의 파주까지 한반도의 허리를 가르며 248km에 걸쳐 빈틈없이 세워져 있습니다." 


"19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나무 기둥에 철조망을 두른 목책이었다고 합니다. 남북 간 긴장이 높아지며 목책은 철책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여러분이 서 있는 이곳에 철책선이 없는 걸까요? 지도상에 표시된 남방한계선과 실제 철책의 위치는 약간 다릅니다."

△2018년 12월 28일 고성 통일전망타워 개관식

"냉전을 거치면서 남북이 각각 관측이 용이한 지점을 확보하고자 조금씩 다가선 결과지요. 여러분은 조금 더 해안선을 따라 이동하신 후에 철책을 만나게 될 겁니다. 마지막으로 민통선은 남방한계선 남쪽으로 5~20km 지점에 자리한 민간인 출입 통제선입니다." 


"1954년 2월, 미국 육군사령관 직권으로 휴전선 일대의 군사작전과 군사시설 보호, 보안 유지를 목적으로 만들었습니다. 민통선 안 마을의 주민은 군사시설보호법에 따라 일정한 절차를 거쳐 농사를 짓거나 하며 생활합니다.”


C통문을 거쳐 비무장지대의 GP로 들어가게 되는데요. 통문은 비무장지대 안에 있는 GP와 외부 세계를 연결하는 유일한 문이죠. 통문을 통과하지 않고 비무장지대를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없어요. 


통문은 트럭 한 대가 간신히 통과할 수 있는 크기로 평소에는 겹겹의 자물쇠로 잠가두죠. 이곳은 병력이 상주하지 않는 비상주 GP로 상황이 발생하면 지체 없이 병력이 출동해요. 


북한군 GP는 인공기와 최고사령관기를 함께 게양하는 경우가 많지만, 한국군 GP는 유엔 협정을 준수하는 감시초소라는 상징으로 태극기와 유엔 깃발을 상시 내걸고 있답니다.

△‘DMZ 평화의 길’ 고성 코스

이어 유해발굴 장소인 화살머리고지로 이동해요. 화살머리고지로 들어가는 통문 앞 한국군 상황실 외벽에는 ‘조국의 품으로 반드시 모시겠습니다’라고 적인 대형 현수막이 붙어 있죠. 


화살머리고지는 오른편 3km 지점에 있는 백마고지와 함께 6·25전쟁의 격전지로 ‘9·19 남북군사합의’에 따라 남북이 시범적 공동 유해발굴에 합의한 장소이기도 해요. 


이 합의에 따라 한국 정부는 2018년 10월 1일부터 유해발굴에 필요한 출입로와 수색로 확보를 위한 지뢰 제거 작업을 진행하고 도로를 만들었죠. 정전 이후 65년 만에 처음 열린 땅이니 지뢰와 불발탄이 도처에 널려 있었어요. 


제거한 폭발물만 1800발이 넘을 만큼 위험하고 힘든 작업이었죠. 자국이 선명한 철모와 수통 등 주인의 마지막을 대신 말해주는 유품들도 함께 발굴됐어요. 


누군가의 귀한 아들, 아버지, 남편이었을 이들의 삶을 간직한 물건이었죠. 본격적인 유해발굴이 이뤄지기 전이었지만 이 과정에서 국적도, 신원도 알 수 없는 13개체의 유해가 발견됐답니다.

통일전망대 서면 금강산 봉우리 첩첩이

화살머리고지에는 국군 전사자 200여 구와 미군과 프랑스군 등 유엔군 전사자 300여 구 유해가 매장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돼요. 해발 281m 높이의 화살머리고지에서 정전협정 체결 직전까지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죠. 


화살머리고지는 1952년 유엔군 프랑스대대가 한국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장소 중 하나이기도 해요. 이 전투에서 44명의 프랑스 병사가 전사했죠. 이곳에서 청춘을 바친 프랑스대대 참전용사 장 르 우(Jean Le Houx)의 유해도 발굴됐어요.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당시 유엔군 프랑스대대에 자원한 장 르 우 참전용사는 1951년 12월부터 1953년 1월까지 한국에 파병됐고 프랑스대대의 주요 전투에 모두 참전했어요. 


프랑스 한국전참전용사협회장인 파트릭 보두앙(생망데 시장 겸 하원의원)과 장 르 우 참전용사의 유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2017년 11월 1일 장 르 우의 유해 봉환식이 열렸죠. 

봉환식에는 피우진 국가보훈처장과 줄리앙 드뤼프 주한프랑스대사관 수석 참사관도 자리를 지켰어요. 또 다른 코스는 금강산과 설악산을 연결하는 고성 코스에요. 


고성 A코스(7.9km)는 2시간 30분, B코스(7.2km)는 1시간 30분이 소요되는데요. 금강산 육로 관광이 시작된 역사의 현장인 고성 DMZ는 금강통문을 거쳐 금강산전망대에 도착하죠.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해금강과 금강산 풍경은 도보 여행에 나선 이들에게 말로 다할 수 없는 감동을 선사해요. 


통일전망대에서는 금강산 최고봉인 비로봉과 일출봉, 채화봉, 옥녀봉, 신선대, 구선봉, 해금강, 감호 등 계절마다 다른 진풍경을 감상할 수 있죠. 


DMZ 평화의 길은 2019년  4월 27일 고성 지역을 시작으로, 6월 1일 철원 지역에 이어 마지막으로 8월 10일에는 파주 지역도 개방됐답니다.

남쪽 끝 역이 북쪽 첫 역 되는 그날 그리며

평화, 사랑, 화합을 테마로 한 평화열차의 별칭은 ‘DMZ train’(이하 평화열차)이죠. 역사와 자연이 만든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땅, 60여 년 전 전쟁의 상처로 남겨진 땅에서 세계적 생태 보고로 거듭난 비무장지대를 달리는 테마열차에요. 


한반도의 허리를 가른 군사분계선을 기준으로 남북이 2㎞씩 물러나 만들어진 비무장지대를 달리는 열차를 타면 분단의 현실을 마주하게 돼요. 


1953년 7월 27일 이후 사람의 발길이 끊긴 땅, 비무장지대를 가로지르는 강과 하천의 물줄기를 바라보면 ‘길은 이어져야 한다’는 감정에 잠기죠.


평화와 생태, 분단의 역사 현장으로 떠나는 평화열차는 2014년 5월 4일 경의선, 8월 1일 경원선 운행을 시작했어요. 경원선은 현재 운행이 중단된 상태죠.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휴전선 민간인 통제구역을 운행하는 평화열차는 국내 관광 열차 가운데서도 승객이 많은 편인데요. 수도권에서 당일치기로 접경지대를 볼 수 있는 특성 때문이죠. 


여기에 2018년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판문점 선언으로 60여 년 동안 끊어져 있던 철로 연결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 것도 한몫했어요. 분단의 현실과 아픔을 체험할 수 있던 평화열차는 이제 한반도 평화의 염원을 담아 달린답니다.

문 대통령-김 위원장 판문점선언 훈풍

평화열차 내부에서 승객들은 역사를 체험할 수 있어요. 객실 상부의 공간을 갤러리로 활용해 근현대사 사진 작품을 상시 전시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죠. 


비무장지대 철책선을 붙들고 오열하는 것처럼 보이는 노인의 얼굴, 전쟁으로 실업률이 높아진 가운데 일자리를 찾아 거리로 나선 1950년대의 젊은이들, 이산가족의 비극을 담은 사진 등을 보면 수십 년 전으로 돌아가는 시간 여행을 하는 착각에 빠져요. 


3량, 136석으로 구성된 평화열차의 내외부 또한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이 담겼는데요. 내부는 평화를 상징하는 바람개비, 자유를 상징하는 풍선, 평화누리공원의 연꽃을 모티프로 디자인됐어요. 


열차의 외관에는 동양인과 서양인, 아이와 어른이 서로 손을 맞잡은 모습이 그려져 있죠.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매일 1회 왕복 운행하는 평화열차는 서울, 문산, 운천, 임진강, 도라산역에 각각 정차해요. 


오전 10시 08분 용산역을 출발, 11시 43분 도라산역에 도착하며, 다시 오후 16시 27분 도라산역을 출발해 오후 17시 54분 용산역으로 돌아오는 코스랍니다. 임진강을 지나 도라산역에 내린 뒤 도라산 평화공원, 통일촌, 도라전망대, 제3땅굴 등을 둘러볼 수 있죠. 


임진강역에서 헌병의 인원 점검을 받고 시속 20km 내외로 천천히 민간인 통제구역 안으로 들어가요. 평화관광을 하기 위해서는 임진강역에서 이뤄지는 신원확인용 신분증을 반드시 제시해야 한답니다.

수~일 날마다 1회 용산~도라산역 왕복

오른쪽 차창으로 한국전쟁 당시 국군포로가 남으로 돌아올 때 건넜던 자유의 다리가 스쳐 지나가요. 특히 임진강역과 도라산역 사이의 임진강 철교를 지나는 ‘DMZ train 감동의 10분’ 구간은 평화열차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죠. 


도라산역은 2002년 김대중 대통령과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이 방문해 한반도 통일을 염원하는 상징적인 장소가 되기도 했어요. 도라산 평화공원에서는 해설사가 동행해 전시관, 생태연못, 꽃사슴 쉼터 등 생태관광이 이뤄지죠. 


도라전망대에 오르면 비무장지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데요. 군사분계선 남쪽에 자리한 대성동 자유의 마을, 개성공단이 눈앞에 펼쳐지죠. 마지막으로 제3땅굴에서는 도보와 모노레일 코스로 나뉜답니다.

 

경의선 허리가 잘려 어쩔 수 없이 마지막 역이 된 도라산역, 이곳은 더 나아가려는 철도의 꿈이 멈춘 곳이에요. 


남북을 잇는 정기 열차가 없기에 경기도 파주시 장단면 노상리에 자리한 도라산역이 남쪽의 마지막 역이 됐지만 언젠가 이곳이 북쪽으로 가는 첫 번째 역이 될 날을 소망해요.

ⓒ 사진 행정안전부·문화체육관광부·코레일관광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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