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결혼하면 다 잘 살아요!"

조회수 2019. 9. 4. 13:5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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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예약하러 가세요? 마산에서 제일 오래된 결혼식장이죠. 거기서 결혼하면 다 잘 살아요.
제 친구들 중에도 형편이 어려워서 그곳에서 결혼한 친구가 꽤 있거든요. 사장님이 참 한결같아요. 이 지역 입장에서 그 예식장은 큰 자부심이죠.
제 인사도 좀 전해주세요.

8월 23일, 경남 창원시 마산 기차역에 내려 택시를 타고 ‘신신예식장’을 말하자 택시 기사 입에서 연신 예식장 자랑이 이어졌죠. 어떤 사연이 있는지 함께 살펴볼까요?


위클리 공감 홈페이지 원문 보러 가기

“너무 가난해서 돈 버느라 늦깎이 결혼”

△신신예식장 건물 밖에서 손을 흔드는 백낙삼 씨(왼쪽)와 최필순 씨.

기차역에서 자동차로 약 15분 거리에 있는 마산합포구 몽고정길 121번지, 그곳에는 ‘완전 무료, 사회봉사’라는 입간판을 세워둔 신신예식장이 있었어요. 1층에서 결혼사진 등을 구경하고 2층 예식장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밟자 위층에서 누군가 발소리를 듣고 인사를 건넸죠. 


“어서 오세요. 신신예식장입니다. 환영합니다.” 택시 기사가 “한결같다”고 말한 그 인물, 백낙삼(87) 씨였어요.백 씨는 1967년부터 지금까지 형편이 어려운 이들을 위해 무료 예식을 진행해왔죠. 


2월에는 이 공로를 인정받아 제8기 국민추천포상 국민훈장 석류장을 수상했어요. “먼 길 오느라 고생했다”며 직접 끓인 백초차를 건네는 그의 미소에서 더없는 따뜻함이 느껴졌죠. 


“어서 오세요. 손님! 소생 예식장 앞길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습니다. 불러주시면 곧바로 오겠습니다.” 자리를 비울 때 전화번호와 함께 문 앞에 놓아두는 쪽지에선 손님에 대한 배려가 엿보였어요.  


“요즘 시대에 누가 그럴까 싶지만 의외로 형편이 어려워서 결혼식을 못 올리는 이들이 많아요. 그런 분들에게 행복을 전하고자 시작한 일인데 이렇게 상도 받으니 더 기쁘고 감격스럽습니다.” 수상 소감을 묻자 그는 이렇게 자신을 낮췄어요.


옛 정취가 듬뿍 묻어나는 마산합포구 골목길에 자리한 3층짜리 신신예식장은 올해로 문을 연 지 52년이 됐어요. 100여 명 하객을 수용할 수 있는 웨딩홀, 신부 대기실, 폐백실 등 결혼식장에 필요한 건 알차게 다 갖추고 있죠. 

△백낙삼 씨 부부가 신신예식장 예식홀에서 포즈를 취했다.

사진값만 내면 예식장 대여는 물론이고 신랑 턱시도, 신부 드레스, 메이크업, 폐백 음식까지 결혼식에 드는 모든 비용이 무료에요. 이번 수상을 계기로 앞으로는 사진값도 안 받기로 했죠. 신신예식장에서 결혼한 이들은 지금까지 모두 1만 3500쌍이나 돼요. 


백 씨가 결혼식 진행 및 주례, 사진사로, 백 씨의 아내 최필순 씨가 예복 대여와 피팅, 부케 제작, 폐백 음식 준비 등을 맡죠. 


이곳에서 예식을 올린 이들은 “부부께서 내 가족 일처럼 마음을 다해 결혼식을 준비해주시기 때문에 대형 결혼식장에서 찍어내듯 진행하는 결혼식과는 의미가 다르다”고 입을 모아요.  


무료 결혼식장을 운영하게 된 이유를 묻자 백 씨는 “저도 너무 가난해서 돈 버느라 31살에 늦깎이 결혼을 했다”며 개인적인 사연을 털어놨어요. 


“1953년 중앙대학교 교육학과에 입학했지만 졸업 1년을 앞두고 형편이 어려워져 학업을 중단했어요. 산전수전 다 겪으며 일을 시작했는데 어느새 31살이 된 겁니다. 당시엔 일찍 결혼들을 했으니 그 나이면 ‘영감’이라고 불렀죠." 


"고향 사람들이 나서서 중매를 섰고, 지금 아내와 시골 초가집 마당에서 꿈처럼 백년가약을 맺었습니다. 근데 너무 가난해 방이 없었어요." 


"처가에서 신부를 데려오지 못하고 약 1년 동안 떨어져 지냈죠. 길거리 사진사로 밤낮 안 가리고 뛰어다닌 끝에 달세방 하나 얻어서 살림을 차렸습니다.”

“30년 만에 은혜 갚는다며 돈 보내와”

△백낙삼 씨 부부가 신신예식장의 역사가 담긴 ‘신신사기(新新史記)’를 펼쳐보고 있다.

부부는 살림을 차리고 5개년 계획을 세웠어요. 사진 한 판에 20원 하던 시절, ‘실패하면 죽는다’는 각오로 하루에 200원, 한 달에 5000원, 1년에 5만 원을 모아 점포를 얻기로 마음먹었죠. 


비가 오면 비닐우산을 팔거나 지게를 지고 산에 가서 나무를 해다가 팔면서 부족한 돈을 채웠어요. 그해 8월 늦은 여름, 4만 원이 모여 점포를 얻게 됐죠. 그리고 1년 만에 집 한 채 살 수 있는 30만 원이 모였어요. 


“이제 우리 집 사서 나가자고 했더니 아내가 그러더군요. 형님 집 먼저 사드리자고요. 아버지, 형님, 형수님, 조카 9명이 단칸방에서 그야말로 누우면 발이 코에 닿을 정도로 힘들게 살았거든요. 너무 고마워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 뒤로 일이 잘 풀렸어요. 1년 만에 이 자리에 대지 7평 목조 2층 건물을 구입해서 ‘카메라센터’라는 네온사인 간판을 달았습니다. 1층 방은 부모님께 드리고, 우린 2층 사진관에서 지냈죠. 마룻바닥이었지만 내 집이라 행복했습니다." 


"그로부터 1년 뒤 바로 옆 철근 콘크리트 2층 빌딩을 당시 142만 원에 구입했고, 저처럼 돈이 없어 결혼 못 하고 애태우는 분들을 돕고자 ‘완전 무료, 사회봉사’라는 슬로건 아래 예식장을 꾸렸습니다. 1967년 6월 1일. 사진값 6000원만 받고 개방했죠.” 


신신예식장의 ‘신신(新新)’은 백 씨가 가난으로 힘겨웠던 청년 시절 사진사로 일한 장소인 서울 한강 근처 ‘신신보트장’에서 따온 것이죠. 

△신신사기

백 씨는 “그때 ‘신신’이라는 어감이 참 좋더라고요. 결혼식장에서 부부 둘이 손잡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거니까 의미도 딱 맞고요”라며 웃었어요. 이후 예식장은 방방곡곡 소문이 퍼져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죠. 


1985년 1월 20일은 총 17쌍이 결혼식을 올린 역사적인 날로 기록돼 있어요. 백 씨는 중국, 일본, 미국, 프랑스, 필리핀, 태국, 아르헨티나, 베트남, 러시아, 캄보디아, 미얀마 등 외국인 결혼식 주례도 많이 했죠.  


오랜 세월만큼이나 이 예식장에서 식을 올린 이들의 다양한 사연도 차곡차곡 쌓였어요. 백 씨는 ‘신신사기(新新史記)’라는 큰 책자를 보여줬는데요. 사진과 자료, 편지 등 50여 년 동안 신신예식장의 기록을 모은 자료집이죠. 


“생활고로 결혼을 못 하고 있다가 선생님 덕분에 70세 백발이 다 되어 결혼식을 올리게 됐다며 고마움의 편지를 보낸 사람도 있어요. 얼마 전에는 누가 돈을 입금했더라고요. 보이스 피싱인가 하고 덜컥 겁이 났는데 30년 전에 이곳에서 결혼했다는 분이었어요." 


"그땐 너무 어려워서 보답도 못 했는데 지금은 부자 소리 듣는다고, 이제야 은혜 갚는다며 보내온 거죠. 가족사진, 리마인드 웨딩 사진, 영정 사진 등 찍어줄 테니 편하게 또 오시라고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이젠 제대로 비용 지불하고 사진 찍겠습니다’라고 하더라고요."


"이렇게 잘 살고 있다는 얘기 들으면 더없이 행복하고 좋아요. 서울에서 큰 사업을 해서 형편도 넉넉한데 굳이 이곳에서 결혼하겠다고 온 커플도 있어요. 수억 원 들이는 결혼식보단 검소하게 하고 싶어 이곳을 택한 거죠. 마음이 참 예쁘죠. 사진을 보면 다 기억이 납니다.” 

중퇴한 대학 62년 만에 졸업장

신신예식장은 영화 촬영 장소이기도 해요. 2014년 영화 <국제시장> 속 덕수(황정민)의 여동생 끝순이(김슬기) 결혼식 장면을 이곳에서 촬영했죠. 


백 씨는 “제가 덕분에 배우로도 데뷔를 했다니까요. 영화에서 ‘자, 여기 보세요. 찍습니다’라며 사진사로 나온 사람이 바로 접니다”라며 활짝 웃었어요. 

 

그간 호국보훈 가족 대상, 개업 20주년을 기념해 100쌍 대상으로 사진값 안 받고 완전 무료 결혼식 제공 등 신신예식장 이름으로 이벤트도 많이 해왔어요. 1988년에 백 씨는 동네 어른들의 추천으로 국민포장(효자)을 수상했죠. 


그때 받은 상금 50만 원에 사비 50만 원을 더해 ‘신신장학회’도 만들었어요. 형편이 어려워 학업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돕고 싶었죠. 


“예식장 커피 자판기에서 나오는 수익금으로 장학금을 줬는데 자판기도 고장이 나고, 자판기에서 커피 꺼내 먹는 이들도 줄어서 1992년까지 하고 접었어요. 제 소원이 하나 있다면 그때 접은 신신장학회를 재건하는 겁니다.”


백 씨의 사무실 한쪽에는 그가 학사모를 쓰고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이 있는데요. 2015년 중앙대학교는 그간의 봉사활동 정신과 실적 등을 인정해 입학한 지 62년 만에 백 씨에게 졸업장을 수여했죠. 백 씨는 이 사진을 유독 흐뭇하게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어요. 


“그동안 정말 고생 많이 하고 살았는데 이 사진 찍으며 천추의 한을 풀었습니다. 결혼식 주례 때 멘트들은 조금씩 다 다르지만 강조하는 건 하나예요. 열심히, 부지런히 노력해서 행복하게 잘 살라는 거죠. 열심히, 부지런히 노력하면 좋은 날 올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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