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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화가' 렘브란트를 어둠으로 이끈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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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화가’로 불리는 렘브란트(1606~1669)는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와 함께 네덜란드가 자랑하는 국보급 화가인데요. 오늘은 그의 작품 '야경'을 한번 살펴보시죠!  


민병대 의뢰…인물 제각각 개성 넘쳐

17세기에 활동한 렘브란트는 네덜란드 미술의 황금시대를 이끈 주역으로 빛의 효과를 강조한 강렬한 명암대비와 인물의 개성과 심리 상태까지 표현한 초상화로 이름을 떨쳤죠. 

 

유화뿐 아니라 에칭과 드라이포인트 기법을 활용한 동판화 영역에서도 탁월한 재능을 발휘한 렘브란트는 평생 동안 자신의 초상화를 남겼는데, 초상화마다 당시 자신이 처한 현실적인 환경과 삶의 질곡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것처럼 담아내 초상화의 신기원을 이룩한 것으로 평가받아요.


특히 22세 때 제작한 자화상은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저술한 불후의 명작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모델로 전해져 유명세를 타기도 했어요. 


오스트리아 출신의 저명한 미술사학자인 영국의 에른스트 곰브리치(1909~2001)는 우리가 렘브란트라는 인물을 친숙하게 여기는 까닭은 그가 남긴 일련의 자화상 시리즈 때문이라고 평가했어요. 


곰브리치는 서양미술사의 고전으로 칭송받는 자신의 저서 <서양미술사>에서 “성공적인 화가였던 젊은 시절부터 파산의 비애 속에서도 불굴의 의지를 드러낸 쓸쓸한 노년에 이르기까지 전 생애에 걸친 놀라운 기록인 자화상들은 일종의 독특한 렘브란트의 자서전”이라고 주장했죠.

(서양미술사, E.H. 곰브리치 지음, 백승길·이종숭 옮김, 예경, 1999, 420쪽 참조) 


1606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근교 레이던에서 성공한 제분업자의 아들로 태어난 렘브란트는 학창 시절 그림 실기와 판화 제작 기법을 익힌 뒤 공방 생활을 거치면서 훗날 심리묘사의 대가로 불리는 초상화가로서 명성을 쌓아나갔어요. 


초상화가로 한창 잘나가던 1642년 자신의 대표작 중 하나인 단체초상화 ‘야경(야간순찰)’을 완성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작품 때문에 렘브란트는 초상화가로서 명성을 잃고 급기야 빚더미에 앉으며 외롭고 비참한 말년을 맞이하게 된답니다. 


올해는 렘브란트가 죽은 지 35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야경’을 소장하고 있는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은 7월 한 달간 진행된 ‘야경’ 작품에 대한 대대적인 복원작업의 전 과정을 온라인 스트리밍 영상으로 공개해 화제가 되기도 했어요.

△렘브란트, 야경, 캔버스에 유화, 379.5×453.5cm, 1642,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가로 453.5cm, 세로 379.5cm의 어마어마한 크기인 이 작품은 1642년 유화물감으로 제작됐죠. 그림에서 보다시피 20명 가까운 인물들이 등장하는 단체초상화죠. 일반적으로 야경 또는 야간 순찰로 알려진 이 그림의 정식 명칭은 ‘프란스 반닝 코크와 빌럼 반 루이텐부르크의 민병대’랍니다.


화면 가운데 붉은 어깨띠를 두르고 왼손을 내밀고 있는 사람이 프란스 반닝 코크로 민병대 대장이에요. 코크의 왼쪽, 눈부신 복장이 눈에 띄는 창을 들고 있는 사람이 빌럼 반 루이텐부르크로 민병대 대장의 부관이고요. 


렘브란트가 이 그림을 제작할 당시 암스테르담은 스페인 통제에서 막 벗어난 네덜란드의 신흥도시로, 민간인들 스스로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한 무장 자경단(自警團), 즉 민병대가 앞다퉈 결성되고 있었어요. 


이 그림도 코크 대장이 이끄는 민병대 대원들의 의뢰를 받고 렘브란트가 제작한 것이죠. 이 그림은 보는 순간, 2차원의 평면에 그려진 것이 맞나 할 정도로 역동적이고 풍부한 입체감이 확 다가오는데요. 등장인물들의 표정과 동작이 모두 제각각이기 때문이죠. 


입고 있는 복장의 형태와 색깔도 다 달라요. 하나같이 개성 넘치게 표현된 인물들이 마치 살아서 움직이는 것처럼 긴장감과 생동감이 느껴지는 것도 그 때문이죠.


코크 대장의 지휘 아래 어디론가 출동하는 민병대의 실제 상황을 보는 듯한 이 그림은 ‘빛의 화가’로 불리는 렘브란트의 화풍이 여실히 드러난 대표적인 작품이에요.


화면의 전체적인 톤을 어둡게 처리한 가운데 코크 대장과 루이텐부르크 부관에게 스포트라이트가 가도록 이들을 밝게 묘사했어요. 빛과 그림자의 대비 효과를 절묘하게 강조한 것이죠.


특히 뒤로 물러서는 느낌을 주는 검은색 제복을 입었는데도 코크 대장은 그림 밖으로 걸어 나오는 것처럼 보여요. 앞으로 내민 그의 왼손과 앞으로 내딛고 있는 오른발 때문이죠.


코크 대장 오른쪽 옆으로 밝게 처리된 소녀는 생뚱맞은데요. 허리춤에 거꾸로 뒤집힌 죽은 닭으로 보이는 물체를 차고 있는데, 민병대의 마스코트로 추정된답니다. 

생뚱맞은 소녀·짖는 개 등 주문자 비위 건드려

이 작품에서 렘브란트의 파격적인 화풍을 보여주는 요소는 또 있어요. 민병대 대원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거둬 주문 제작한 단체초상화인데도 렘브란트는 전통적인 단체초상화의 틀을 여지없이 깼죠. 


당시의 단체초상화는 인물들을 한 줄 또는 두 줄로 나란히 세워 근엄한 모습을 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관례였어요. 그러나 렘브란트는 인물들의 크기는 물론 비중을 모두 다르게 표현한 데다, 심지어 얼굴이 가려져 잘 보이지 않게도 그렸죠. 


이 모두가 단체초상화의 제작 관습을 거부하고 화가로서 강한 개성을 발휘한 렘브란트의 의도에서 비롯됐어요. 그림 오른쪽 아래에 북 치는 사람을 향해 짖고 있는 강아지를 슬쩍 집어넣은 것도 권위적인 분위기의 단체초상화 주문자들의 비위를 거스르게 했을 것이죠.

 

이 그림을 본 주문자들은 당연히 화를 냈고, 이후 초상화가로서 렘브란트의 인기도 시들해지기 시작했죠. 설상가상 ‘야경’이 제작된 해에 아내도 죽었어요. 


그림 주문이 끊기고 실의와 곤궁한 생활 속에서도 렘브란트는 내면의 심리묘사에 더욱 천착하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걸작들을 연이어 탄생시켜 대가다운 면모를 잃지 않았답니다. 

ⓒ 박인권 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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