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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할 때에는 인사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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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 110건, 기술 독립 쾌거를 이루어낸 이동통신 부품 업체가 있어요. 회사 로비엔 인포메이션 데스크 대신 커다란 카페가 있고 직원들이 직접 에스프레소 기계에서 커피를 뽑아 마시는 이너트론이 그 주인공이죠! 이 회사에 대해 자세히 살펴볼까요?


전체 수출의 78%를 일본에

△부품 하나로 시작해 지금은 완제품으로 수출하는 PIM 측정장비

조학래 이너트론 대표는 회사 창립 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글로벌 측정 솔루션 기업인 텍트로닉스(Tektronix)에 납품했던 2003년을 꼽았어요. 


2002년 회사를 설립한 뒤 국내에서 영업을 시작했지만 인맥과 접대 위주의 영업 관행에 승산이 없다 판단하고 1년 동안 유학했던 일본으로 눈을 돌렸죠.

여기저기 문을 두드린 끝에 텍트로닉스의 일본 연구소에서 ‘계측기에 들어가는 통신 부품을 개발할 수 있겠냐’는 제안을 받았어요. 


“일반적으로 지원되는 연구개발비도 없이 일종의 테스트였지만, 기회를 받은 것만으로도 눈물 날 정도로 고마웠죠. 지금이라면 그렇게 안 했을 겁니다. 우리같이 작은 기업은 검토도 안 해줄 거라는 걸 아니까요.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그때는 어디든지 가서 겁 없이 부딪쳤어요.”


6개월을 매달린 끝에 겨우 개발에 성공해 텍트로닉스에 샘플을 보낼 수 있었는데요. 다행히 텍트로닉스의 자체 테스트를 통과했다는 연락을 받고 연구소에 다시 들어갔죠. 


“텍트로닉스 담당자가 납기일을 묻기에 무리하면 2주도 가능한데 넉넉잡고 ‘4주’라고 답했어요. 그런데 ‘기존 업체는 12주가 걸리는데 진짜냐’며 깜짝 놀라더라고요."

"기존 구매 단가가 얼마 정도 되냐고 조심스럽게 물으니 정확한 가격은 이야기 못 해준다면서 ‘3만…’이라고 말끝을 흐려요." 


"3만 엔(약 30만 원)이 아니라 3만 원이라고 해도 이익이 많이 남을 것 같아서 ‘2만 7000…’ 이렇게 말을 꺼냈더니 담당자가 반색하면서 ‘2만 7000엔이면 좋다’고 해 정말 놀랐죠. 물량이 크진 않았지만 10배 이상 대박을 내면서 큰 도움이 됐어요.” 

△인천 송도 경제자유구역에 있는 이너트론 사옥은 큐브 형태의 독특한 외관과 직원을 위한 각종 편의시설을 갖춰 2017년 인천시가 ‘인천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장’으로 뽑았다.

텍트로닉스에 납품하기 시작하면서 일본 진출의 물꼬가 터졌어요. 히타치, 후지쓰 등 일본 대기업들도 텍트로닉스 계측기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텍트로닉스에 납품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거래를 트는 데 도움이 됐죠. 


PIM 측정장비, RF 필터 등 이동통신 기지국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을 잇따라 수출하면서 2006년 중소기업청으로부터 수출유망중소기업에 선정됐고, 2013년에는 1000만 달러 수출의 탑을 수상했어요.


올해 4월에는 중소벤처기업부가 지정한 2019년도 글로벌 강소기업에 뽑히기도 했어요. “텍트로닉스에 납품했던 부품 개발에 6개월이 걸렸는데, 지금은 몇 시간이면 개발할 정도로 기술력을 키웠습니다." 


"수학에 비유하면 더하기, 빼기 수준에서 지금은 미분, 적분까지 올라온 거죠. 그런데 같이 시작했던 그 많던 업체들이 지금은 한두 곳만 남고 다 망하고 없어요. 수출 쪽으로 빨리 전환하길 잘했구나 싶습니다.”


조 대표는 “요즘 고용노동부 등 여러 부처에서 ‘일본의 수출규제로 어려움은 없냐’는 연락을 많이 받는다”고 했는데요. 2018년 이너트론의 수출액 가운데 78%를 차지할 정도로 일본과 거래가 많기 때문이죠. 그는 올해 2월 미쓰비시가 납품을 중단시킨 일을 조심스럽게 털어놓았어요.

△이너트론 연구실

“미쓰비시와 함께 2018년 개발해놓고 올해 본격적으로 납품하려던 게 있었어요. 일본 기업들은 납품을 시작하면 거의 그냥 가는데, 갑자기 올해 예상 물량을 못 준다고 해서 놀랐거든요. 2018년 10월 대법원 판결이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는 그땐 생각을 못 했어요.”


조 대표는 8월 초 일본에 건너가 거래 기업들을 방문했어요. “일본 기업들은 우리에게 ‘걱정하지 마라’ 하는데 사실 걱정은 되죠. ‘아베 총리가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 ‘정치 논리로 사업하는 사람들 골탕 먹여서 되냐’ ‘자기 지지율 때문에 그런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이너트론은 2010년부터 시작된 일본과 중국의 영토(센카쿠 열도 등) 분쟁으로 중국 기업과 납품 경쟁에서 반사이익을 얻었죠. 최근에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으로 미국 시장에서 덕을 보고 있어요. 


“국제 정세에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애매합니다. 일본 이동통신사인 소프트뱅크와 NTT 도코모에 납품하는 제품이 있는데, 기간 통신망이라 일본 정부와 연관도 있고 하니 영향이 없긴 어렵겠죠." 


"이번 일로 일본에서 한국 기업을 배제하더라도 가격이 1.5배 비싼 자국 제품을 계속 쓰긴 힘들 겁니다.” 

직원 111명 가운데 연구인력만 45명

그나마 이너트론에 다행인 건 몇 년 전부터 일본뿐 아니라 미국, 유럽, 남미 등으로 수출 지역을 다변화하기 시작했다는 점이에요. 또 일본 대기업이 거래처를 바꾸려면 금형도 새로 파야 해서 엄청 번거로울 것으로 조 대표는 예상했어요.


“금형비를 받고 개발을 시작했기 때문에 인천 남동공단의 협력업체들이 금형을 갖고 있거든요. 게다가 우리 특허가 제품에 들어가 있어요. ‘이 제품에는 우리의 특허 기술이 들어가 있습니다." 


"만약 같은 제품을 중국 업체에서 구매하면 우리 특허를 침해하게 되는 겁니다.’ 일본 기업의 친한 담당자한테 농담처럼 살짝 얘기하면 다들 상장 기업이기 때문에 시끄러워지는 걸 싫어해서 중국 제품을 안 삽니다.”


이너트론의 제품 가격이 중국 기업보다 15~30% 비싼데도 일본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특허에요. 현재 이너트론이 보유한 특허는 국내외에서 모두 110건에 달해요. 특허출원과 유지 비용만 연간 1억 원이 들어가죠.


특허 관리하는 전문 인력도 따로 있어요. 현재 직원 111명 가운데 연구인력만 45명인데요. 조 대표는 “전에는 부품만 납품했던 PIM 측정장비를 이제는 완제품까지 개발해 전량 일본에 수출하고 있다”며 “이런 건 중국 기업들도 쉽게 따라올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어요. 

이너트론에게 일본과 분쟁은 위기이자 기회죠. 국내 대기업들은 반도체 웨이퍼 가공할 때 사용하는 ‘다이아몬드 슬러리’의 상당량을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는데요. 다이아몬드 슬러리를 생산하는 몇 안 되는 국내 업체 가운데 하나가 이너트론이에요.


“지금 상황이 일본 수입산을 대체할 수 있는 국내 기업들에는 기회가 될 수 있어요. 우리도 일본 다이아몬드 슬러리를 쓰는 대기업에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물론 일본 쪽에서는 조용히 영업을 잘해야 하고요.” 최근 이너트론이 주력하는 제품은 무선 마이크 시스템이에요.


야구장이나 대형 강당에서 방송하면 이 시스템이 음성신호를 디지털신호로 변환하고, 중간중간 있는 가오리 모양의 안테나가 신호를 전달해 멀리까지 깨끗하게 들리게 해요. 현재 국내에서 쓰는 제품의 99%가 미국과 독일 제품이죠.


“조달 시장에서 국산으로 둔갑해서 들어가는 수입산이 많아요. 심지어 거래만 중개하고 커미션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국산이 수입산을 대체하면 시설투자, 연구인력, 생산인력, 국내 영업인력 등이 선순환되거든요. 그래서 제조업이 중요한 겁니다.” 

“부품·소재 제조기업 지원 더 많아졌으면”

△이너트론 사옥 입구 갤러리에서 열린 신진 작가 5명의 합동 전시회. 조 대표는 “낮에는 노동하고 밤에 그림을 그리는 젊은 작가들에게 사옥 한쪽을 작업실로 제공한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조치로 국내 부품·소재 기업에 쏠리는 관심에 대해선 반가우면서도 할 말이 많다고 했는데요. 지금까지 소프트웨어, 게임 등 정보기술(IT)이나 바이오 업종이 받았던 조명을 제조업은 받지 못했다는 것이죠.


“심지어 벤처캐피털도 제조업 투자는 꺼렸어요. 지금도 창업하는 사람 가운데 제조업은 드뭅니다. 직접 개발하지 않고 일본에 로열티 주고 쉽게 장사하는 대기업이 얼마나 많습니까?" 


"부품이나 소재 기술 개발에 투자하고 해외 나가서 경쟁하는 기업의 중요성을 느끼고, 관심과 지원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이너트론은 창업한 뒤 12년 동안 인천 남동공단에 있었어요. 낡은 샌드위치 패널 건물 3층에 세 들어 있었죠.


“지금도 거기 있는 분들에게 실례되는 표현이지만 ‘탈출’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직원들이 너무 싫어하는 거예요. 해외 출장 갔다가 회사에 출근한 직원들이 우울하다고 할 정도였어요." 


"신입 사원 뽑는데 회사 앞에서 전화로 ‘어느 건물이냐’고 물은 뒤 돌아간 지원자만 4명을 봤어요. 언젠가는 직원이 오고 싶어 하는 회사를 꼭 만들겠다고 다짐했어요.”


2017년 인천 송도 경제자유구역에 마련한 사옥은 큐브 형태의 독특한 외관과 직원을 위한 각종 편의시설을 갖춰 그해 인천시가 ‘인천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장’으로 뽑았어요. 


8월 13일 오후 로비에 들어서니 흔한 인포메이션 데스크 대신 커다란 카페가 자리 잡고 있었는데요. 커피 전문점에서나 보는 커다란 에스프레소 기계에서 직원들이 직접 뽑은 커피를 즐기고 있었죠. 

△로비에 있는 카페에서 직원들이 에스프레소 기계에서 직접 뽑은 커피를 즐기고 있다.

“에스프레소 기계를 저도 다룰 줄 알고, 직원 대부분이 다 해요. 일반 아메리카노 만드는 건 3분만 하면 배우는데, 젊은 친구들은 입사하기 전에 알바를 많이 해서 거의 다 만질 줄 알더라고요. 손님이 오면 담당자가 직접 커피 뽑아서 대접하죠.” 


매주 공급받는 로스팅 원두는 직원들이 제품을 정했어요. 원두뿐 아니라 구내식당 케이터링 업체도 직원들이 직접 골랐죠. 음식 단가뿐 아니라 임대료와 각종 비용 등 모든 조건이 더 나았던 중소기업도 있었지만, 직원들은 음식만 맛보고 대기업을 선택했어요. 


“직원들한테는 계약 조건을 얘기 안 했어요. 우리가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젊은 직원들은 이런 걸 크게 생각합니다. 에스프레소 기계와 카페 인테리어까지 해도 2000만 원이 안 들었는데, 몇 년 동안 키운 직원이 회사를 그만두면 2000만 원이 아니라 몇 억이 날아가는 거잖아요.”  


사무실 문 앞에는 독특한 문구들이 적혀 있었는데요. ‘퇴근할 때는 인사하지 않습니다 - 퇴근할 때 눈치 주지도 말고 받지도 맙시다.’ ‘휴가에는 사유가 없습니다 - 휴가 신청 시 사유는 묻지도 말하지도 않습니다.’ 


여러 번 지시했지만 인사하는 문화가 완전히 없어지지 않자 사무실 문에 인쇄해놓은 것이죠. 

예전 같으면 ‘하면 된다’ ‘1%의 영감과 99%의 노력’ 같은 구호가 있었을 작업장 복도에는 그림들이 걸려 있었어요. 조 대표의 설명은 간단했죠. 


“직원들이 구호를 싫어하거든요.” 사옥 입구는 아예 갤러리로 꾸며놓고 미술 작품을 전시하고 있었어요. 낮에는 노동하고 밤에 그림을 그리는 신진 작가 5명에게 2018년 9월부터 사옥 한쪽 약 330㎡ 공간을 레지던시로 제공해왔죠. 


구내식당과 카페도 마음껏 이용하게 했어요. 지금은 마지막 합동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데, 전시된 작품의 90%가 이미 판매됐죠.  


“그림은 우리가 구매하기도 하고 협력업체 고객들이 많이 사시는데, 특히 외국 손님들이 깨어 있는 회사라며 높이 평가해요. 남동공단 시절부터 봐왔던 일본과 미국 담당자들은 이너트론이 어떻게 고생해서 여기까지 왔는지 아니까 더 좋아하시는 거예요." 


"저는 실업계 특성화고를 나왔기 때문에 힘들게 노동하는 땀의 가치를 잘 알거든요. 공단이 탈출할 곳이 아니라 가고 싶은 곳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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