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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에서 대박 난 '이것'의 정체

조회수 2019. 9. 2. 12:4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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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풍기가 돌아가요. 여러 대가 한꺼번에 도는데요. 선풍기에는 기름때가 잔뜩 묻어 있어요. 기름때뿐만이 아닌데요. 쇳가루와 먼지도 함께 진득하게 묻었어요. 오랜 세월의 흐름을 짐작하게 해요. 


더운 기운이 ‘확확’ 나죠. 풀무질 때문인데요. 쇠를 달구는 가마의 열기를 올리는 풀무질은 간헐적으로 계속돼요. 자세한 내용 살펴볼까요? 


위클리 공감 홈페이지 원문 보러 가기

눈짓·몸짓만으로도 손발 척척

석노기 대장장이가 자신이 만든 호미를 들어 보이고 있다.

둔탁하게 쇠와 쇠가 부딪치는데요. ‘딱딱딱딱’. 쇠는 두드릴수록 단단해져요. 담금질이죠. 그리고 매질이에요. 붉게 달궈진 쇳덩이는 담금질과 매질을 통해 점차 모습을 찾아가요. 대장장이의 이마에 굵은 땀이 흘러요.  


이마뿐만이 아닌데요. 육체에 있는 모든 땀구멍에서는 달궈진 몸뚱이의 온도를 낮추기 위해 수분을 열심히 내뿜어요. 달궈진 쇠를 고정하는 집게를 잡은 팔뚝은 오랜 노동의 숙련과 단련이 ‘뚝뚝’ 묻어나요. 강인함이 있고, 단호함이 있어요.

 

비교적 넓은 대장간은 한낮의 폭염이 들어오길 주춤거릴 정도로 가마에서 내뿜는 열기가 강력해요. 그리 더운 대장간에서 묵묵히 일하는 대장장이는 두 명인데요. 서로 이야기가 없어요. 아무런 대화 없이 각자의 일을 하는데요. 


오직 힘들게 돌아가는 오래된 선풍기의 회전 소리를 배경으로 쇠를 단단하게 만드는 담금질과 매질의 소리만 실내 공간을 채워요. 두 대장장이가 쇠를 다룬 지 모두 50여 년이 지났어요. 평생을 대장간에서 보낸 셈이죠. 


농경사회에서는 최고의 공장이었던 대장간은 컴퓨터가 지배하는 현대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사업장이에요. 젊은 대장장이도 거의 없는데요. 이 영주대장간의 대장장이는 모두 60대 이상 어르신들이에요. 


오랜 연륜 탓인지 서로 간 ‘언어’라는 소통의 수단이 별로 필요하지 않아요. 그냥 눈짓만으로도, 약간의 몸짓만으로도 충분히 소통이 가능해요.

영주대장간의 작업장

영주대장간은 한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대장간인데요. 무려 40여 가지 농기구를 생산하죠. 낫·호미·쇠스랑·식칼·초랭이·도끼·거름대·작두 등 농업에 필요한, 손으로 만들 수 있는 기구는 모두 생산해요. 


이 영주대장간은 국내에서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데요. 이유가 있죠. 세계적인 전자상거래 사이트 ‘아마존’에서 팔리는 대박 상품을 생산하기 때문이에요. 명품 농기구를 만들어요. 

 

‘MADE IN KOREA’가 선명히 찍힌 농기구를 아마존에 올리는데 최고의 제품으로 꼽히죠. 그 농기구는 바로 호미에요. 아마존 원예용품 ‘톱10’에 ‘영주대장간 호미(Youngju Daejanggan ho-mi)’라고 이름을 올렸어요. 


한 해 3000개 이상이 팔리는데요. 아마존뿐만이 아니에요. 이베이 등 해외 쇼핑몰에서도 잘 팔려요. 한국에선 6000원 하는 호미 한 자루가 해외에선 20달러(2만 3000원)에 팔려요. 주문량을 생산량이 따라가지 못해요. 


정원을 대부분 가꾸는 미국인들에게 호미는 ‘신기’했죠. ‘ㄱ’자로 꺾인 원예 기구가 그들에겐 처음인데요. 써보니 손목에 힘을 많이 주지 않아도 땅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었어요. 


유튜브에서 호미를 쓰는 동영상이 유포되며 짧은 시간에 호미는 정원을 가꾸는 미국인들의 애호품이 됐어요. 

판매 대행사에서 10년 전부터 납품

불에 달궈진 쇠붙이를 잡는 집게들

김을 매는 데 주로 쓰이는 호미는 한민족 고유의 연장이에요. 서양에는 없다는 이야기죠. 우리 호미는 서유구(1764∼1845)의 <임원경제십육지>에 동서(東鋤·동쪽 나라의 호미)라고 표현됐어요. 


부등변 삼각형인 날의 한쪽 모서리에 목을 이어 대고 거기에 자루를 박은 독특한 형태의 연장인 호미는 통일신라시대의 안압지 출토 유물에 이미 있었죠. 고려시대의 호미는 오늘날의 호미와 똑같은 모양이었어요. 


호미를 땅에 콕 찍어 잡아당기면 흙밥이 잘 뒤집어져요. 어떤 농기구도 이렇게 효율적으로 인간의 노동력을 땅에 전달하지 못했죠. 영주대장간의 주인은 석노기(65) 대장장이에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상급학교의 진학을 포기한 채 대장장이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으니 50년 이상의 경력자에요. 그러니 그가 만드는 호미에 ‘최고 장인 석노기’라는 도장을 새기는 데 부족함이 없어요. 


아마존 납품은 그가 의도한 것이 아닌데요. 그의 농기구 판매를 대행하던 회사에서 아마존에 납품을 10여 년 전부터 시작했고, 2018년 호미를 다루는 동영상이 유포되며 대박 났어요. 6월 28일 영주대장간에서 만난 석 씨의 표정은 밝았어요. 


평생 쇠만 두드렸는데 이제 세상이 알아주기 때문이죠. 평생을 고집스럽게 살아온 자신에게 자부심이 생긴 것은 당연해요. 인터뷰를 하는데 딸이 휴대전화에서 동영상을 돌려 아버지에게 보여줘요. 

석노기 대장장이(오른쪽)가 동네 어르신과 오후 작업을 시작하고 있다.

“아버지, 얼마 전에 찍어간 동영상이 뉴스에 나와요.” 뉴스는 한국말이 아니에요. 영어죠. <로이터>가 와서 취재한 영주대장간을 소개하는 뉴스인데요. 짧지 않은 길이의 뉴스에는 대장간 모습과 땀을 흘리며 담금질하는 석 씨의 모습, 그리고 호미를 설명하는 리포팅이 이어져요.


“초등학교 졸업 이듬해인 1968년부터 대장장이로 살았습니다. 그러니 50년이 넘네요. 하하.” 석 씨에게는 초등학교 졸업장이 없어요. 고향이 논산인 석 씨는 가난한 농사꾼의 3남 1녀 중 막내죠. 


초등학교 6학년 2학기 때 육성회비를 내지 못하자, 담임선생님은 집에 가서 육성회비를 가져오라고 재촉했어요. 매일매일 계속되는 재촉이 듣기 싫었는데요. 가난한 집안이라 부모님에게 달라고 말해도 소용없음을 어린 나이에도 충분히 알았어요. 


그래서 학교를 가지 않기 시작했죠. 졸업식에도 안 갔어요. “졸업 처리는 됐겠죠. 확인은 안 했어요.” 당연히 중학교 진학은 포기했어요. 마침 가까운 인척이 대장간을 운영했는데요. 놀지 말고 와서 기술을 배우라고 했어요. 먹고 재워주고 일당을 줬어요. 돈을 모았고, 기술도 배웠죠.

  

“어린 나이에 꿈을 가졌어요. 비록 남들처럼 공부를 계속하지 못하지만 열심히 기술을 배우고 돈을 벌어 내 대장간을 갖자고 다짐했어요. 남들처럼 장가도 가고, 내 집을 마련하자고 마음먹었어요. 그리고 대장장이로는 1등이 되자고 결심했어요. 그것이 내 꿈이었지요.”

7번 가마 들락날락 담금질, 매질 수천 번

가마 불에 달궈지는 낫

악착같이 모은 돈으로 23세 때 영주에 대장간을 세웠어요. 보증금 2만 원에 월세 3000원의 좁은 공간이었죠. 좁지만 열심히 일했어요. 5평으로 시작한 영주대장간은 매년 규모를 키워갔는데요. 


세월이 흐르며 전국에 대장간이 사라지기 시작했죠. 농업이 기계화되고, 농업인구가 줄어들며 대장간에서 만든 철제 농기구의 수요가 감소한 탓인데요. 대장간도 간판에 ‘대장간’이라는 이름을 피했어요. 


‘농기구 연구소’ 등의 새로운 이름을 붙였죠. 대장간이라는 이름이 낙후하고 전근대적 이미지를 주기 때문이었는데요. 그러나 석 씨는 대장간이라는 이름을 고수했어요.

 

“남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기술도 있었고, 대장장이로 자부심도 있었어요. 아이들 사춘기가 되면 아버지가 대장장이라는 것을 결코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당부했어요. 나쁜 짓 하나 하지 않고, 떳떳하게 돈 벌었다고 이야기했어요.” 


그가 만드는 호미의 재료는 화물차에 주로 쓰이는 판스프링이에요. 판스프링은 강철판 여러 개를 겹겹이 쌓아 차량 바닥에 부착해 충격을 흡수하는 쇳덩어리로 만든 장치죠. 석 씨는 스프링 공장이나 재활용업체에서 가져다 써요.

석노기 대장장이는 아마존에서 호미 주문이 쇄도하자 한국의 아주머니들이 아마존 밀림 속에서 주문 하는 줄 알았다고 했다.

스프링을 제작하고 남은 자투리 스프링이나 폐차 스프링을 재료로 쓰는 것이죠. 재질 자체가 견고해 호미 재료로 제격이에요. 먼저 판스프링을 호미 크기에 맞춰 사각형으로 잘라요. 


그리고 이 사각형 쇳덩어리를 가마 불에 넣었다가 빼내 두드리고, 다시 불에 넣었다가 빼내 두드려요. 불에는 7번 정도 들어갔다 나오고, 기계로 매질은 수천 번 해요. 호미 형태가 잡히면 겉면을 가공해 매끈하게 만든 뒤 나무 손잡이를 끼워요. 


손바닥만 한 쇳덩어리가 호미 한 자루로 바뀌는 시간은 30분 정도죠. 대장간에서 일하는 70대 동네 어르신 한두 명이 도와주면 하루 100여 자루를 만드는데요. 그래도 주문을 따라가지 못한답니다.


“영주대장간의 호미가 인기 있는 이유는 손으로 일일이 두드려가며 만들기 때문에 다른 호미보다 날이 정교하고 튼튼합니다”라고 석 씨는 설명해요. 싸구려 중국산과는 차이가 크게 난다는 것이죠. 


2008년 불에 탄 숭례문을 복원할 때 석 씨는 나무에 박는 대못을 제작했어요. 전국의 각종 축제 때도 단골 초청 손님이에요. 서울역사박물관과 남산골한옥마을에서도 대장간 시연을 했어요. 2018년에는 경북 최고 장인으로 인정받기도 했죠.

 

“영주대장간에서 만들지 못하면 전국 어느 대장간에서도 만들지 못합니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농기구지만 혼을 담아 만듭니다.” 자부심이 대단한데요. 기름때와 땀으로 찌든 그의 티셔츠 등판에는 ‘서울올림픽 개막 3주년 기념’이라는 글자가 선명해요. 28년 된 티셔츠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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