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학과 교수가 추천하는 해산물 맛집 BEST 170

조회수 2019. 9. 2. 12:4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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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경대 해양학과 허성회 교수가 최근 발간한 <해산물 맛집과 해양생물 이야기>에는 자신이 세운 몇 가지 원칙을 토대로 엄선한 해산물 맛집들이 소개돼 있는데요. 


35년간 다닌 해산물 맛집 1000곳 가운데 170곳을 선정한 것이랍니다. 자세한 내용 살펴볼까요? 


위클리 공감 홈페이지 원문 보러 가기

1000곳 가운데 170곳 선정

허성회 교수가 <해산물 맛집과 해양생물 이야기>를 소개하며 활짝 웃고 있다.

허 교수의 책은 단지 맛집 소개에 그치지 않는데요. 해양생물이 어떤 환경에서 살아가는지, 부산의 식당들이 특정 해산물 요리를 많이 선보이게 된 배경과 생태환경 변화에 따라 특정 종류의 해산물 맛집들이 사라지는 과정을 짚어요. 


허 교수의 책은 부산의 식도락 문화 보고서이기도 해요. 6월 18일 찾아간 부산 대연동의 허 교수 연구실은 사방에 검은색 서류철이 꽂혀 있었죠. 


쪽지 시험부터 학생들의 리포트까지 그는 35년간의 교수 생활을 모두 기록으로 정리해놓았어요. “지나온 흔적을 간직하고 싶다는 마음에 기록 자체를 좋아한다”고 말했어요.


-1000곳의 식당 가운데 170여 곳을 선정했다. 그동안 다닌 식당들을 어떻게 기억할 수 있었나요?

=1984년 3월 부산수산대(현 부경대) 해양과 교수로 와서 35년간 근무했어요. 식당 명함들을 보관했는데 날짜, 동행인, 먹은 음식, 금액 등을 썼어요. 


세어보니 1000개가 넘어요. 치과의사 친구가 있는데 부산의 치과의사들을 위한 <부치신문>에 칼럼 연재를 권유해서 ‘부산의 맛집’ 칼럼을 9년 넘게 썼어요. 


부산에서만 먹을 수 있는 해산물 요리가 책에 소개돼 있는데요. 부산 기장군 일광면 칠암리에 가면 먹을 수 있는 말미잘 매운탕이 대표적인 음식이에요. 


말미잘과 함께 붕장어를 갈아 넣고 된장을 풀어 끓인 탕이죠. 말미잘은 씹었을 때 물컹하면서 오돌토돌하기 때문에 소 도가니뼈와 식감이 비슷한데요. 해산물을 넣은 탕은 얼큰하고 시원하답니다.

말미잘매운탕│허성회 교수

-이 지역에선 어떻게 말미잘을 먹게 됐나요?

=말미잘은 바다 얕은 쪽 바위에 붙어 있어서 떼기 어려워요. <니모를 찾아서>라는 영화 아시죠? 니모의 실제 어류 이름은 흰동가리예요. 니모가 사는 곳이 말미잘 촉수 안이죠. 


이 말미잘을 어디서 구했는지 궁금해서 식당 주인에게 물어봤어요. 의외로 낚시로 잡힌대요. 붕장어를 잡는 어선들이 칠암에 많은데, 긴 낚싯줄에 낚시를 100~200개 달아서 미끼를 끼웁니다. 


붕장어가 좋아하는 새우나 갯지렁이 등을 끼운 뒤 새벽에 낚싯줄을 올리면 붕장어 사이사이에 말미잘이 잡혀오죠. 말미잘은 바위에 살지만 모래하고 갯벌이 섞인 곳에도 숨어 살아요. 


갯벌을 수시로 들락날락 움직이는데 미끼 먹으려다 낚시에 걸린 거죠. 말미잘이 잡히면 예전엔 다 버렸는데 제가 책을 통해 소개한 식당에서 요리를 개발했어요. 한동안 이 집만 팔다가 주변 식당도 말미잘 요리를 팔기 시작했고요. 


-부산의 서민적인 음식이 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데요. 피란민이 많이 모여들면서 한국전쟁 당시 먹기 시작한 음식들도 소개돼 있고요.

=부산의 대표적인 요리가 곰장어구이에요. 어민들이 곰장어 잡히면 재수 없다고 버렸는데 한국전쟁 때 먹을 게 없었잖아요? 


버리던 물고기를 그냥 먹긴 뭣하니 연탄불에 구워 먹게 됐고, 그게 맛있어서 자갈치(시장)에서 곰장어구이가 탄생한 거죠. (고등어구이를 뜻하는) ‘고갈비’는 1970~80년대 많이 먹던 음식이에요. 


부산 광복동에 가면 미화당이라는 백화점이 있었는데 그 뒷골목이 고갈비 골목이었죠. 서민, 학생들이 저녁마다 꽉꽉 자리를 차지했어요. 한때 유명했는데 지금 딱 두 집이 남아 있어요. 


부산을 상징하는 ‘시어(市魚)’가 고등어예요. 고등어구이 하면 제주도를 생각하겠지만, 전국 어획량의 80%가 부산으로 들어와서 전국으로 흩어져요. 고등어를 잡는 ‘대형 선망어’ 본부가 여기 있죠.

낙동강 하굿둑 맛집 지형 바꿔

집풀곰장어구이│허성회 교수

1987년 부산 하단동에서 명지동을 연결하는 낙동강 하굿둑이 생기면서 나타난 생태 변화는 해산물 맛집의 지형을 바꿔놓았어요. 강과 바다가 만나는 ‘기수 지역’이 사라지면서 민물장어와 재첩이 사라졌는데요.


밤마다 “찹쌀떡~”이라며 떡을 팔던 아저씨들의 소리처럼, 부산에서는 동네마다 “재첩국 사이소~”라고 외치던 아주머니들의 소리가 들렸답니다. 재첩이 사라지면서 재첩국 식당도, 동네마다 재첩국을 팔던 이동 상인도 보이지 않게 됐어요.


-산란기가 되면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민물장어도 먼 길을 여행한다는 걸 처음 알게 됐어요.

=원래 이름이 뱀장어인데 민물장어라고 불리죠. 알을 낳으러 바다에 가요. 괌섬 아시죠? (알을 낳을 때는) 거기까지 가는 신비한 물고기예요. 


새끼 자어를 ‘댓잎장어’라고 하는데, 이놈이 헤엄을 치는 게 아니라 해류를 타고 북쪽 크루시오를 건너와요. 그리고 중국, 대만, 일본, 한국으로 흩어지죠. 댓잎 모양의 장어가 우리나라의 큰 강 입구에 도착하면 투명한 실뱀장어로 바뀌죠. 


10㎝ 미만인데 그 조그만 몸으로 상류를 올라가서 10년 동안 살아요. 물고기도 먹고 곤충도 잡고했죠. 낙동강에도 한때 많이 왔는데 하굿둑을 막아서 새끼가 못 올라오게 된 거죠. 지금은 자연산 뱀장어가 줄어들었어요. 


재첩도 강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오염이 덜 된 ‘기수 지역’에 살아요. 낙동강 하굿둑이 막히기 전에는 전국에서 가장 많이 생산했는데 지금은 사라졌죠.


-다른 지역에서는 미역국이 국의 한 종류지만 부산에선 메인 요리로 삼는 식당들이 있어요. 왜 그런가요?

=기장군에서 잡히는 미역이 과거부터 유명했어요. 전통이 이어지면서 전국 최상품 미역 가운데 하나가 기장 미역이지요. 서울 쪽에서는 미역국에 소고기를 많이 넣는데 여기서는 조개 종류를 넣어요. 가자미를 넣기도 하고요. 


10여 년 전에 부산 남천동에 ‘오복미역’이라는 미역국 전문 식당이 인기를 끌면서 분점이 생겼어요. 또 다른 음식점 풍원장이 미역 정식을 내놓았고 역시 인기를 끌었죠. 가자미, 조개, 소고기 등 미역국에 넣을 재료를 선택할 수 있어요. 저는 그중에서 가자미 미역국을 좋아한답니다.

일과 삶의 균형 '워라밸' 35년

6월 18일 부경대에서 만난 허성회 교수

-학교에 장학금도 오랜 기간 내오신 걸로 알고 있어요.

=IMF 외환위기가 왔을 때 실직하는 분들이 많이 생겼잖아요? 예전에는 ‘미국 가서 박사 학위 받았으니까 교수가 됐지’라고 생각했는데, IMF 때 새삼 학교의 고마움을 느꼈어요.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을 막연히 하고 있다가 2002년에 논문을 많이 써서 부경대 학술상을 받았어요. 상금으로 받은 500만 원을 기부했어요. 그 뒤로 매달 월급에서 20만 원을 떼어 17년 동안 냈어요. 


가끔 목돈이 들어올 때가 있잖아요? 부산 문화방송에서 주는 ‘부산 문화대상’을 받아서 상금 1000만 원을 또 기부했지요. 그렇게 1억 6000만 원 이상 장학기금을 모았고 이자로 학생들에게 돌아간 장학금이 3000만 원이 넘어요. 


비밀로 하고 있었는데 7, 8년 전 학교 측에서 스승의날에 저를 소개하는 보도 자료를 냈어요. 다른 교수들에게도 자극이 됐는지 그때부터 장학기금 모으는 교수가 여러 명 생겼지요. 


-8월 정년 퇴임을 앞두고 있는데 책을 발간하셨어요.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예고하는 것 같은데요?

=존경하는 분 가운데 연세대 김형석 교수님이 계세요. 올해 만 100세가 되었는데 1월 1일 <아침마당>이라는 TV 프로그램에 나오셔서 강연을 했어요. 


“100세를 살아오면서 인생을 되돌아보니 전성기는 65~70대였다”는 말이 가장 귓가에 남았어요. 저도 65~75세를 전성기로 삼고 싶은 생각이 들었죠. 


전공이 해양생물이고, 취미가 맛집 탐방이기 때문에 이런 분야에 대한 책을 더 쓰고 싶어요. 부산부터 강원도 고성까지 해안가를 다니면서 어촌을 소개하고 싶기도 해요. 전공도 살리면서 해양생물에 대해 쉽게 소개할 수 있다면 그 또한 보람 있지 않겠어요?

그는 퇴임을 앞두고 쓴 수필에서 담백한 회고를 남겼는데요. ‘즐겁고 보람 있는 시간이었다.’ 35년의 교수 생활을 마치면서 어떤 아쉬움이나 미련이 없는 얼굴로 말했어요. 


“논문도 200편 넘게 썼고, 동호회 활동 하면서 교수들과도 정말 친하게 지냈어요. 학생들에게도 그런 이야기를 해요. 자투리 시간을 잘 활용해서 공부도, 하는 일도, 취미 생활도 열심히 하라고.”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워라밸’을 허 교수는 35년 전부터 지켜나가고 있었어요. 지치지 않고 열심히 일하고, 재미있는 삶을 추구하며, 이웃을 돕는 일에도 최선을 다하던 그는 이제 작가라는 또 다른 시작을 앞두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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