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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개월간의 대장정! 우여곡절 자전거 세계 여행기

조회수 2019. 9. 5. 17:4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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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15일 자전거 하나로 세계 여행을 떠난 박제민(32) 씨가 7년 4개월여의 일주를 마치고 2019년 3월 31일 귀국했습니다. 그의 우여곡절 자전거 세계 여행기 살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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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퀴로 지구 두바퀴 반
세계 일주 여정을 기록한 지도를 보여주는 박제민 씨│곽윤섭 기자

‘자전거 세계 일주하고 집으로 와야지’라는 어쩌면 단순하고도 무모한 생각으로 시작한 그의 여행은 총 10만 7800여km(지구 두 바퀴 반)라는 세계적으로도 손꼽힐 만한 이동 기록을 세우고서야 끝났습니다. 


귀국한 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4월 25일, 박 씨를 만나 그의 ‘자전거 세계 여행기’를 들어봤습니다. 철학을 전공하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그가 자전거 세계 일주를 꿈꾸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요? 


박 씨는 입대를 앞두고 있던 20대 초반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보자’는 생각에 무작정 자전거 전국 일주에 나섰는데요. 그러다 일주 중에 우연히 만난 사람의 이야기로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털어놨습니다.

“지리산 정령치 고갯길에서 마침 오토바이로 세계 일주를 하는 아저씨를 만나게 됐다. 세계 일주를 절반 정도 끝낸 뒤 일시 귀국한 상황이었는데, 곧 북남미 대륙으로 갈 거라고 했다." 


"당시만 해도 단 한 번도 외국에 나가본 적 없던 나는 그분이 들려주는 세계 일주 이야기들이 좀처럼 그려지지 않았다." 


"모르는 것에 대해 머릿속으로 마음대로 그려볼 수는 있지만, 그것은 현실과 다른 억지스러운 공상이나 망상처럼 느껴졌다. ‘멀리 떨어진 미국과 중국처럼 내가 가보지 못한 나라가 실존할까?’라는 의심과 호기심이 생겼다.” 


자전거 전국 일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박 씨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세계 일주라는 새로운 세상에 빠져들게 됐습니다. 


“걷기도 하고 수레를 끌거나 자전거, 오토바이, 자동차 또는 대중교통을 이용해 다양한 방법으로 세계 일주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대부분은 배낭여행을 하고 있었지만 나는 왠지 자전거 세계 일주가 하고 싶었다.” 

외로움과 싸우며 새 세상과 소통 
키르기스스탄

자전거 세계 일주에 대한 아쉬움을 간직한 채 입대하게 된 박 씨는 군 복무를 하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자전거 세계 일주에 관한 정보를 수집했습니다. 


그러나 비자나 국경 관련 정보 또는 물품·장비 정보만 알아볼 뿐, 더 자세하고 세부적인 방법들에 대해서는 일부러 알아보지 않았는데요. 


“‘누군가 했다면 나도 분명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앞서간 누군가가 터득한 세계 일주 방법에 대해 자세히 알면 나는 분명히 그 사람의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이는 나의 자유로운 상상과 행동을 가두는 감옥이 될 것 같아 꺼려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건방진 태도라고 여겨지는데 당시만 해도 혼자 이루고 싶은 의지가 컸던 것 같다.” 

굳게 마음먹은 덕분일까요. 제대 이후 박 씨는 ‘숨만 쉬고 일했다’ 할 만큼 열심히 아르바이트하며 나갈 채비를 해나갔습니다. 


“장기간 여행 중이라 하면 대부분 굉장히 좋은 직장을 다녔거나 부유한 가정일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전혀 아니다.(웃음) 자전거 세계 일주에 앞서 식당 서빙, 텔레마케터 등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비용을 모았다.”


그렇게 1년쯤 모아 자전거 세계 일주를 떠난 박 씨는 첫해에는 300만 원, 2년째는 400만 원, 3년째는 500만 원, 4년째에는 600만 원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의식주를 비롯해 비행기 삯과 비자, 보험이 포함된 금액으로 4년간 2000여만 원을 지출했다. 부족한 부분은 생일이나 기념일에 가족들이 조금씩 보내주는 용돈으로 충당했다.” 

이탈리아

박 씨는 대부분의 숙박을 텐트에서 해결했고, 교통비는 배를 타고 강이나 바다를 건너거나 대륙 간 이동을 위해 가끔 비행기를 타는 경우가 아니면 지출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자전거 수리 비용이 많이 들었는데 그나마 교통비보다는 저렴한 편이었다고 설명했는데요. 입장료를 내는 관광 지역에는 들어가지 않았고, 여행사를 통한 투어도 하지 않았습니다. 


“유명한 관광지들이 매우 특별하고, 또 예쁜 사진을 찍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왠지 재미가 없다는 것을 여행하는 과정에서 느꼈다. 개인 성향의 차이인 것 같다.” 


그 나라를 상징하는 유명한 장소도 내키지 않으면 들르지 않았다는 그가 꼭 지킨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현지 스타일의 식사였는데요. 

박 씨는 “식사는 꼭 현지식으로 먹고 지출했다. 한 끼에 1~3달러 수준인 나라들이 많았는데, 유럽에서는 1년 반 동안 하루 4끼 모두를 현지식으로 만들어 먹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캠핑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는데 가장 오랜 기간 연속으로 캠핑한 날이 30일이 넘기도 했는데요.


“장기 여행을 하는 사람 가운데 경험을 위해 또는 비용 절약을 위해 ‘카우치 서핑’ ‘웜 샤워’처럼 현지인 집에서 무료 숙식을 하는 커뮤니티를 활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나랑은 맞지 않아 못했다. 샤워는 이동 중 강이나 호수를 만나야 겨우 할 수 있었다. 그래도 면역력이 강해 죽지는 않았다.”(웃음) 

아시아 거쳐 유럽, 아프리카로 
티벳스님한테 받은 삭발│박제민

박 씨는 3년 11개월의 자전거 세계 일주 뒤 2015년 10월 28일 일시 귀국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절반 남은 세계 일주의 비용은 캐나다와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를 3년 정도 하며 충당할 생각이었는데요. 


하지만 아버지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혔고 아프리카 이후의 자전거 세계 일주 비용은 부모님이 전액 지원해주셨습니다. 


“워킹홀리데이에 대해 아버지 나름의 걱정이 있으셨던 것 같다. 이후 지원을 해주긴 했는데 죽지 않을 만큼의 금액만 보내주신 건 반전이었다.”(웃음)


“평소 운동에 관심 없었고, 지금도 땀이 나는 활동적인 일은 좋아하지 않는다.” 자전거로 전 세계를 누볐지만, 박 씨는 운동을 싫어한다는 의외의 취향을 털어놨습니다. 


그래서인지 박 씨가 처음 자전거 세계 일주를 떠난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는데요. 


“정작 출발할 때도 아버지는 확실히 믿지 못하신 거 같다. ‘이 작고 여리고 귀엽고 꽃 같은 막내아들이 중국에 가서 자전거로 어찌 여행을 하겠는가?" 


"일주일도 버티지 못하고 나 좀 데리러 오라며 국제전화 하겠지?’ 아마 이런 생각을 하지 않으셨을까 짐작한다.(웃음) 친구들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프랑스

박 씨는 2011년 11월 15일 인천항에서 중국 칭다오행 배에 자전거를 싣고 본격적인 자전거 세계 일주 길에 올랐습니다. 가족의 예상과는 달리 박 씨의 자전거 세계 일주는 계속됐는데요. 


“아시아를 거쳐 유럽, 아프리카에 다다르자 어느덧 3년 11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비행기, 기차, 버스 등의 이동 수단은 최대한 배제하고 자전거를 이용해 육로 국경 위주로 이동한 시간들이었다." 


"다만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래도 어머니는 약간의 짐작과 믿음이 있으셨던 것 같다.” 7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전 세계를 다닌 박 씨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나라를 묻자 “죄송하다. 답변을 드릴 수 없다”라는 반응이 돌아왔습니다. 


박 씨는 “사람들이 내게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어떤 나라가 좋았어요?’ ‘어떤 나라가 나빴어요?’ ‘어떤 나라가 위험해요?’인데 어떤 나라를 가든 똑같이 어린아이, 청년, 중년, 장년, 노년의 사람들이 있고 누군가는 사랑하고, 누군가는 미워한다." 


"결혼하고 이혼하고, 싸우기도 하고 밥도 먹고 다 비슷하게 살아간다. 어딜 가도 나름 다 살 만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개인적으로 여행하기 좋은 나라는 임금이 낮은 나라들이었다." 


"임금이 낮다는 것은 당연히 의료, 교육, 복지 수준이 낮다는 뜻이다. 그런 곳들이 여행하기에 더 재미있고 활기차고, 많은 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며 살기 좋은 나라와 여행하기 좋은 나라는 별개라고 설명했습니다. 

영국에 유독 관심 많은 아이의 사연 
뉴질랜드

아울러 그는 여행을 다녀온 뒤로 여러 가지를 새롭게 알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전 세계 200여 개국 76억 명이 넘는 인구 중, 경험에 미루어 짐작건대 51% 이상인 102개국 38억 명 이상의 사람들이 상하수도 시설이 없는 곳과 전기가 없는 곳에 주거하거나 월 소득이 30만 원(300달러) 이하로 이 중 한 가지 이상에 해당했다." 


"혹은 거기에 최소한의 의료시설과 교육시설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짧고 단순한 내 경험에 비추었기 때문에 현지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오류를 포함한 통계겠지만 분명한 것은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전 세계 인류 상위 49%에 속한다’는 것이다.” 


박 씨는 7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전 세계를 다니며 재미있는 일을 자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볍게 또는 함부로 말하기 힘든 것들도 있었는데요. 그런 그가 나라명은 밝힐 수 없다며 그 나라에서 겪은 일을 꼭 말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박 씨는 “가끔 누군가 ‘세상은 어때요?’ 혹은 ‘세계 일주를 어떻게 하니?’라는 질문을 하면 예전엔 항상 ‘세상은 너무 좋아요. 즐겁고 재밌고 행복하고 다양하고. 그러니 당신도 세계 일주할 수 있어요. 그냥 재밌게 하면 돼요’ 이런 식으로 얘기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한 아이와의 만남은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시각을 갖게 했습니다. 

엘살바도르

“어느 날 부유하지 않은 한 국가에서 한 아이를 만났다. 동양인을 처음 본 그 아이가 나에게 ‘신기하게 생겼다’며 관심을 보여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박 씨가 우연히 만나게 된 아이에게는 나이 터울이 많은 형이 한 명 있었습니다. 


그 형은 영국에 가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결국엔 갈 수 없었는데요. 학력, 재산, 신분 증명 등 수많은 서류를 준비했으나 태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취득한 국적 앞에서는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 아이는 내가 거쳐온 나라 가운데 유독 영국에 관심을 가졌다. 알고 보니 자신의 형 때문에 나에게 어떻게 영국에 다녀올 수 있었냐고 물었던 거다. 내 대답은 간단했다. ‘여권 보여주고 도장 받고 끝!’ 그리고 나는 그 아이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너의 형이, 그리고 네가 영국에 가지 못하는 것은 네 탓이 아니다. 네가 지금 이곳에서 겪는 일들도 네 탓이 아니다. 너의 아버지 세대와 할아버지 세대가 무엇을 했느냐로 인해 많은 것이 이미 결정돼 너에게 주어진 것뿐이다.' 


'너의 잘못이 아니니 아버지를 비난하고 할아버지를 비난해도 된다. 다만 30년 이후 그리고 60년 이후에 너의 아들이, 너의 손자가 여전히 너와 같은 일들을 이 나라에서 경험하며, 영국에 쉽게 가지 못한다면 그들은 누구를 비난해야 마땅할까?’” 

도전하는 이들에게 응원과 희망을 
부룬디│박제민

긴 얘기를 꺼낸 박 씨는 잠시 머뭇거리다 “우리가 지금 당연하게 누리며 사는 풍족하고 행복한 세상은 조상들이 피땀 흘려 이룬 것들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박 씨는 그런 만큼 우리 세대가 일궈낸 대한민국의 30년 뒤, 60년 뒤의 여러 가지 모습에 대해 다음 세대의 이성적인 평가가 기다려진다고도 했는데요. 


그러면서 “혹시 나와 내 친구들이 또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몫을 하지 못했다면 미안하다고 말해주고 싶고, 그때 가서 미안하지 않기 위해 열심히 살고 싶다”라고 덧붙였습니다.


귀국 후 한 달, 그동안 어떻게 지냈느냐고 묻자 박 씨는 “확실히 문명인으로 살기 위해서는 공인인증서, 휴대전화 개통 등 복잡한 일들이 필요하더라. 오자마자 보험 가입도 했다. 그런 행정 업무를 해결하느라 2~3주를 그냥 보냈다”라고 답했습니다.

인터뷰 내내 가족 이야기를 가장 많이 한 박 씨는 가족들과 보내는 일상에 대해서도 빠뜨리지 않았는데요. “세계 일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보니 미혼이던 작은누나가 결혼을 했더라. 새 가족이 된 매형과 귀여운 조카에게 ‘처음 뵙겠습니다’ 하고 인사했다.”(웃음) 


아울러 박 씨는 갑자기 나이 드신 부모님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안 좋았다며, 요즘 대부분의 일과는 못다 한 집안일을 도우며 부모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자전거 세계 일주 기간에 개인 블로그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해온 그는 앞으로 책, 강연 등으로 소통을 이어가고 싶다는 바람도 밝혔습니다. 


“사실 자전거 세계 일주에서 가장 힘든 점은 비용 문제가 아니라 외로움과의 싸움이다. 내 경험을 토대로 세상에 도전하는 모든 사람에게 따뜻한 응원과 희망을 주며 소통을 이어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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