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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 창의력의 핵심, 사고의 유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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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9일에 패션계의 거장 칼 라거펠트가 타계했습니다. 각종 미디어들은 그가 1933년에 태어나 85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나이는 늘 수수께끼였는데요. 창의적이었던 그와 창의력이 좋았던 사람들을 통해 나이와 창의력의 관계에 대해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수수께끼 같은 그의 나이

칼 라거펠트는 85세로 죽기 직전까지 현역 디자이너로 활동한 모습

2013년에 그의 생일이 되었을 때, 그를 사랑하는 친구들이 80세가 된 것을 축하하려 하자 그는 자신이 1935년생이라고 주장했습니다. 80세가 된 것이 별로 기분 좋지 않아서 그랬을까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2008년, 공식적인 생년에 따르면 75세가 되었을 때 그는 돌연 자신의 70세 생일을 자축한다고 발표했습니다. 1938년에 태어났다는 것인데요. 그의 진짜 나이는 몇 살일까요? 


사람들이 그의 진짜 나이를 궁금해할 때마다 그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1933년보다 일찍 태어났다고 말한 적은 없는데요. 


다시 말해 공식적으로 알려진 그의 나이보다 더 늙었다고 고백한 적은 없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창의성이란 늙음보다 젊음과 좀 더 친하다는 일반적인 통념을 증명해줍니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70대 중반 나이에 미술관을 설계를 시작했다.

창조적인 분야에서는 나이를 속이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요. 가장 유명한 사례로는 미국의 위대한 건축가인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있습니다. 그는 실제보다 두 살 어리게 자신의 출생 연도를 속이며 살아왔는데요. 


라이트는 미국 모더니즘 건축의 개척자로 알려졌지만, 그가 태어난 해는 무려 1867년입니다. 미국의 전설적인 열차 강도인 선댄스 키드가 그와 같은 해에 태어났습니다. 


선댄스 키드는 유명한 서부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의 주인공입니다. 그런 19세기 서부 개척시대 총잡이와 동시대 사람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데요. 


그 이유는 라이트가 91세까지 장수를 해서, 또 구겐하임 미술관 같은 전위적인 건물의 건축가라서 현대인의 이미지로 기억되기 때문입니다. 

수수께끼 같은 '고무줄 나이'

오슨 웰스는 26세에 영화 <시민 케인>을 감독했다.

그는 너무 일찍 모던한 디자인을 구사해 동시대 건축가들과는 전혀 다른 진보적인 모더니스트로 분류되었습니다. 그 모더니스트 그룹은 대부분 그보다 나이가 20살 이상 어린데요. 


미국 모더니즘 건축계에서 영향력이 큰 필립 존슨(1906년생) 같은 이는 라이트를 19세기 사람이라고 조롱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조롱을 예견했는지 그는 경력 초기부터 나이를 속였습니다. 


그리하여 그가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1890년대에 아주 일찍 성공한 건축가로 초기 경력을 꾸밀 수 있었는데요. 그의 나이 40대 중반에 침체기가 찾아왔습니다. 아마도 할 수만 있다면 2살이 아니라 20살이라도 어리게 속이고 싶었을 것입니다. 


팀 버튼 감독의 영화 <에드 우드>에서 영화감독을 꿈꾸는 주인공 에드 우드는 이렇게 말합니다. “오슨 웰스는 26살에 <시민 케인>을 만들었어. 난 벌써 30살이야.” 


창조적인 분야에서 야망을 가진 사람들은 어린 시절에는 이런 식으로 최고로 빨리 성공한 사람의 나이를 기준으로 꿈을 꾸고 그들과 견주어 자신의 성취를 판단합니다. 

월트 디즈니는 미키 마우스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기념비적인 애니메이션 <증기선 윌리>를 26세에 만들었습니다. 발터 그로피우스는 신화가 된 디자인 학교인 바우하우스의 교장이 되었을 때 36세이었습니다. 


하지만 야망에 비례해서 출세의 속도가 빨라지는 건 아닌데요. 대개는 이른 출세를 하지 못합니다. 나이가 들어도 별 진전이 없을 때 그들은 이제 늦은 나이에 꽃을 피운 사람들을 생각하며 위로를 찾는데요. 


앙리 루소는 40세에 진지하게 화가가 될 것을 고민하고 40대 늦은 나이에 전업 작가가 되었습니다. 박완서 역시 주부 생활을 하다 39세에 첫 소설을 발표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고령의 나이에도 창작 활동을 그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최근에 개봉한 <라스트 미션>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88세에 연출하고 연기한 영화인데요. 칼 라거펠트 역시 죽기 전까지 샤넬의 수석 디자이너로서 현역 디자이너였습니다.


칼 라거펠트가 말한 것처럼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인지 모릅니다. 내가 첫 직장에 입사했을 때 어떤 이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는 목소리나 행동이 너무나 노인스러웠고 직원들을 아이 다루듯이 대했는데요. 


나는 그가 60대인 줄 알았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당시 그 이사는 40대였는데요. 물론 겉모습이 늙었다고 생각까지 늙은 건 아닙니다. 분명한 건 육체의 나이와 생각의 나이는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건축 프로젝트 3분의 1이 82~91세 때 

알베르트 슈페어(왼쪽에서 두 번째)는 32세에 히틀러의 총애를 받았다.

나이가 들면 나잇값을 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창조적인 분야만큼은 예외입니다. 보들레르는 “천재성은 의지로 회복한 유년기”라고 말했습니다. 유년기의 특징은 무엇보다 사고가 유연하다는 것입니다. 


사고의 유연성을 유지하는 한 육체가 늙어도 창의력을 잃지 않을 수 있는데요. 운동선수와 달리 은퇴를 위한 적절한 나이가 존재하지 않는데요.

 

알베르트 슈페어는 히틀러의 인정을 받아 건축가로서는 엄청나게 젊은 나이인 32세에 제국수도건축감독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그가 구상한 베를린의 미래 계획 ‘게르마니아(Germania)’는 그리스 로마의 고전 건축물로 가득한 고대 도시로서 독창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는데요. 그저 독재자의 과대망상에 아첨하려고만 하는 태도로 어떻게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었을까요. 


그가 진짜로 창조적 능력이 결핍되어 그런 표절 같은 계획안을 만든 게 아닙니다. 삶의 태도, 즉 유연한 사고를 가로막는 그 태도에서 나온 것입니다. 나이가 젊다고 모두가 창의적인 건 아닌데요. 


그런가 하면 젊어서는 엄청나게 창의적이었던 사람이 늙어서 급격하게 창의성이 고갈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젊은 시절 그에게 명성을 안겨주었던 작품 스타일에 안주해 그것을 복제하는 데 머무르기 때문입니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40~50대의 긴 침체기 터널을 견딘 끝에 남들이 은퇴할 시기인 75세에 최고의 걸작을 남길 기회가 찾아옵니다. 구겐하임 미술관의 설계를 의뢰받은 것입니다. 


이제 그는 자신의 나이를 속일 필요가 없었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일이 그 시기에 찾아왔는데요. 라이트가 평생 동안 한 건축 프로젝트 중 3분의 1을 그의 말년 9년, 즉 82세부터 91세 사이에 했습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칼 라거펠트의 말이 빈말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나이가 어리다고 생각하고 그런 젊은이의 태도로 살아가는 것을 유지하는 게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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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_디자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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