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주림과 추위 속에서 강제 이주된 고려인의 역사를 아시나요?

조회수 2021. 5. 7. 10:5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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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일에 그려진 육중한 기차는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요? 종착지도 알지 못한 채 기차에 태워져야만 했던 이들은 어디로 흩어진 걸까요?
출처: 김병학
▶고려인 화가 문 빅토르가 기증한 수채화 ‘1937년 강제이주열차’. 이 작품을 바탕으로 타일 벽화가 제작되어 전시관 벽면에 부착됐다.

문화관 입구에 붙은 타일 벽화가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이 타일 벽화는 카자흐스탄 고려인 화가 문 빅토르가 기증한 작품을 바탕으로 제작됐는데요. 1937년 강제 이주 열차를 그린 것이죠.


1937년 9월 스탈린의 소비에트 정부는 고려인 약 2,500명을 일본군 스파이란 죄목을 씌우고 사살한 뒤 고려인 사회를 공포에 떨게 했습니다. 약 17만 명의 고려인이 짐짝처럼 기차 화물칸에 태워져 강제 이주됐는데요. 강제 이주와 이주 첫해 정착하는 과정에서 2만 명 정도가 굶주림과 추위로 숨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고려인들은 기차를 타고 한 달 넘게 6,000㎞가량 달렸어요. 이들은 들어본 적 없는 알지 못한 곳에 도착해야만 했죠.

출처: 김병학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 안에 자리 잡은 월곡고려인문화관 ‘결’과 고려인역사유물전시관 ‘숨결’의 전경

고려인 유물과 역사를 전시하는 상설 전시관이 2021년 5월 20일 문을 엽니다.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 안에 자리 잡은 월곡고려인문화관 ‘결’과 고려인역사유물전시관 ‘숨결’은 고려인들의 강제 이주를 그린 타일 벽화를 지나야 내부로 들어설 수 있어요. 이곳은 광산구의 지원으로 설립되며 국내에 귀환한 고려인 동포들이 과거 국권 회복을 위해 노력한 독립투사의 후손이라는 것을 입증해나갈 새로운 역사 공간으로 자리매김할 전망입니다. 이 문화관을 건립하기까지 수년간 유물을 수집한 김병학 관장을 만났어요.


'고려일보' 기자로 일하며 고려인 자료 수집

출처: 박유리
▶월곡고려인문화관, 고려인역사유물전시관의 김병학 관장

김 관장은 재소 고려인 사회에서 유일하게 모국어 신문을 펴낸 '고려일보'에서 1995~1996년, 2000~2003년 기자로 일했습니다. 2004~2016년 카자흐스탄 한국문화센터 소장을 지내기도 했는데요. '고려일보'에서 일하면서 고려인의 역사와 문화예술의 중요성에 눈을 뜬 그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고려인 관련 자료들을 모았어요. 몇 년 후 유물수집가 최아리따 씨와 만나면서부터 전적으로 유물 수집과 정리에 전념했죠.


“2007년 '재소 고려인의 노래를 찾아서 1·2'라는 고려인 구전 가요를 모아서 책을 냈어요. 이 책을 접한 최아리따 씨가 제게 연락을 줘서 그가 수집한 유물을 함께 정리했습니다. 소련이 붕괴된 직후부터 유물을 모으기 시작한 그는 한자를 몰랐고 한글도 필기체로 써버리면 읽기 어려운 데다 내용을 이해하기는 더더욱 힘들었거든요.”


김 관장이 말을 이었습니다. “최 씨가 연해주에서 수집한 자료는 국한문 혼용이 많은데 제가 자료를 분류하고 정리했어요. 최 씨의 꿈은 (고려인) 역사박물관을 만드는 것이었죠. 카자흐스탄에는 많은 민족이 있어서 박물관을 건립하기 힘들었고 국내 어디라도 좋으니 알아보자고 했어요. 우리나라에 고려인 박물관을 열 수 있는지 알아보는 과정에서 그가 돌아가셨어요. 2014년 봄이었습니다.”

출처: 김병학
▶(왼쪽) 한진의 중편소설 <공포>(1989)는 고려인 강제 이주 참상을 고발한 작품, ▶(중간) 고려인 2세 한글문학가 한진(오른쪽 여자), ▶(오른쪽) 고려인 1세대 작가 김해운의 <동북선>(1935)의 육필원고

고려인들의 유물은 남겨진 게 많지 않아요. 강제 이주 과정에서 다량의 물건이 당국에 압수되거나 후환이 두려워 고려인들이 자체 폐기했기 때문이죠. 강제 이주 과정의 공포는 고려인 작가인 고 한진의 소설 '공포'에서 이렇게 묘사됩니다.


“1937년 가을 쏘련 연해주의 조선 사람들은 한날한시에 모두 승객이 되었다. 수십만 명이 동시에 기차를 탔다. 얼마나 많은 차량이 들었을까. (…) 남녀노소 한 사람도 남지 못하고 다 고향에서 쫓겨났다. 차에서 태어나는 애도 있었다. 그것들은 나서 귀신들이 물어갔다. 출생신고도 사망신고도 할 필요 없었다. 이 세상에 왔다가 땅 한 번 밟아보지 못하고 사라져갔다. 오직 어머니 가슴속에 피멍울만을 남기고. 많은 노인과 어린 것이 철도 연변에 묻혔다.”


광주시 광산구청 도움으로 박물관 열어

고려인박물관이란 개념이 생소한 상황에서 박물관 건립까지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최 씨가 2014년 숨진 뒤 그가 수집해온 유물을 놓고 러시아에서 매입을 시도한다는 이야기가 들렸어요. 하지만 최 씨의 자녀들은 오래도록 모친과 함께 일해온 김 관장이 이 일을 이어받기를 원했고 결국 김 관장은 개인적으로 어려운 재정 문제를 해결하고 모든 유물을 인수했습니다.


2016년 10월에 귀국했지만 유물을 보관하는 게 쉽지 않았는데요. 김 관장이 개별적으로 수집해놓은 고려인 유물도 많았어요. 귀국한 뒤 세 번의 이사를 했는데 김 관장의 집은 거주공간이 아니었습니다. 사실상 유물창고였죠. 집의 대다수 공간을 유물이 차지한 가운데 김 관장은 최소한의 공간에서 지낼 수밖에 없었어요.


박물관 건립을 알아보던 과정에서 광주 고려인마을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광주시 광산구청과 협업이 시작됐습니다. 항일독립 고려인들의 문화재를 보존하자는 취지였는데요. 국내에 다수의 고려인마을이 있지만 광주의 고려인마을은 유독 공동체성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고려인) 연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광주 고려인마을만이 공동체적 성격으로 남아 있다고 해요. 임금체불을 당한 고려인 한 사람을 이웃들이 도와줬고 그런 소문이 나면서 고려인들이 알음알음 모여든 거죠. 마을공동체 분위기가 있어요. 라디오 방송국, 미디어센터, 종합지원센터, 지역아동센터 같은 시설이 많이 있죠.”


국가지정기록물 등 유물 1만 2,000점 수집

개관을 앞둔 문화관 ‘결’이 보유한 고려인 유물은 상당합니다. 전시관 1층은 고려인마을 조성과 현재에 이르기까지 역사를 한눈에 보고 이해할 수 있는 ‘고려인 이동경로 지도’와 고려인 선조의 항일역사를 입증하는 홍범도·김경천 장군의 사진과 유품 전시공간, 주민소통공간의 역할을 할 커뮤니티실 등 3개의 상설 전시실로 구성돼요. 전시관 2층은 국가지정기록물 제13호로 등재된 유물을 만나볼 수 있는 국가지정기록물전시실, 기획전시실, 특별전시실 등으로 꾸며집니다.


“(고려인이 모여 살던) 연해주 시절부터 소련 붕괴 시점까지 사진 4,000점, 문서 1,000점, 서적 800~900점, 육필 원고 수백 점, 신문이 수백 매입니다. 육필 원고의 경우 분류 기준을 못 정해서 수백 점이라고 밝히고 있어요. 의복, 생활용품, 주방기구, 장신구 등을 다 합치면 수집한 유물이 1만 2,000점 정도 됩니다.”

출처: 김병학
▶한진의 희곡 <폭발>(1985)은 고려인이 생산한 모든 장르의 문학작품 중 5·18을 다룬 유일한 작품이다.

김 관장이 수집한 유물 가운데 23권은 2020년 국가지정기록물 13호로 지정됐어요. 이 가운데 21권이 육필 원고, 2권은 사진첩인데요. 국가지정기록물은 민간이 생산한 기록물 중에서 국가적으로 보존가치가 있는 기록이에요. 정부가 기록물을 지정해 보존을 지원합니다.


“고려인 1세대 희곡작가 김해운의 희곡 작품 8권, 고 한진 작가의 희곡 작품 8권에 소설 1권, 고려인이 불렀던 가요를 필사한 가요집 2권, 고려인 1세대 소설가 중 가장 뛰어나다고 알려진 김기철의 중편소설 2권, 연해주 시절부터 현재까지 고려극장과 관련된 각종 사진들, 1970년대까지 고려극장에서 활동한 배우 개인의 사진첩이죠. 이 가운데 세 권은 너무 낡아서 성남 국가기록원이 복원·복제 작업에 들어갔어요.”


광주의 고려인마을은 고려인의 강제 이주를 담은 연극 ‘폭발’을 상설 공연할 예정입니다. 이 연극은 고려인마을 대표 공연콘텐츠인 ‘나는 고려인이다’(윤경미 작), ‘나의 고향 연해주, 타쉬켄트, 광주’(윤경미 작)와 함께 광주 고려인마을을 찾는 관람객에게 정기적으로 공연되는데요. 긴 세월을 유랑해온 고려인들의 삶을 보여줄 예정이에요. 고려인 문화관은 무료로 입장할 수 있으며 개관기념으로 일제강점기 고려인의 한글 사랑을 엿볼 수 있는 ‘고려사범대’를 소개하는 기획전이 열립니다.


“개관 당일 각종 문화단체들이 소규모 음악회 등을 열 거예요. 다만 코로나19 때문에 관람객을 제한해야 하는데 이 부분은 논의 중입니다. 미디어센터에서 고려인 관련 영화도 상영하고 중앙아시아 음식 체험도 준비 중입니다.”


“다 같이 화합하고 평화롭게 살아갔으면”

출처: 김병학
▶카자흐스탄 문학을 국내에 번역 출판해온 김병학 관장이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으로부터 감사장을, 카자흐스탄 국립중앙박물관으로부터 ‘국민의 존경’ 메달을 받았다.

김 관장은 최근 카자흐스탄 문학을 국내에 소개해온 공로로 카심 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으로부터 감사장을 받았어요. 카자흐스탄 국민 시인 아바이 쿠난바예프의 시 100여 편을 번역한 '황금천막에서 부르는 노래'를 2020년에 출간한 공로가 인정받은 것이죠.


또 고려인 리 스타니슬라브 등 현지 시인 10명의 시를 모아 '모쁘르마을에 대한 추억', '초원의 페이지를 넘기며'를 펴냈는데요. 김 관장은 카자흐스탄 국립아카데미 중앙도서관의 ‘국민의 존경’ 메달과 문화부 장관 감사장도 받았습니다.


고려인 유물 수집에 오랜 시간 공을 들인 그가 한국 사회에 바라는 바는 무엇일까요?


“고려인의 후손들이 국내에 많이 들어와 살면서 나름대로 한국에 적응하고 사랑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다만 한국어가 서툴러서 소통에 어려움이 있죠. 우리가 포용해서 고려인들의 항일운동 역사나 1920~1930년 학술·문화적 성취를 잘 알게 되면 이들을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을 거예요. 고려인들의 이야기를 만나고 공감하면서 다 같이 화합하고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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