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포도한 사람을 수박했다고?"

조회수 2021. 5. 6. 10:5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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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의미 지닌 말들

수박 포도 배추 무 오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과일과 채소들이죠. 누가 들어도 당연히 먹는 것으로 생각하는 이 단어들에 ‘~하다’를 붙이면 놀랍게도 전혀 새로운 뜻을 가진 말이 됩니다. 발음은 같지만 뜻은 다른 동음이의어가 있다는 건데요. 익숙한 소리에 낯선 의미를 지닌 말들, 어떤 게 있을까요?


과일

자몽 하면 상큼하고도 쓴맛이 느껴지는 과일이 먼저 떠오르지만 여기에 접미사 ‘~하다’를 붙이면 그 의미가 달라집니다. ‘자몽하다’는 ‘스스로 자(自)’와 ‘부끄러워할 몽(懜)’이 결합된 한자어로 ‘졸릴 때처럼 정신이 흐릿한 상태이다’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잠을 제대로 못자 자몽하다’와 같이 사용합니다.


대표적 열대과일로 달콤한 맛을 자랑하는 망고에 ‘~하다’를 붙인 ‘망고하다’는 순우리말이라는 데 한 번, 뜻이 세 가지나 된다는 데 두 번 놀랐는데요. ‘연을 날릴 때 얼레의 줄을 남김없이 전부 풀어 주다’, ‘살림을 전부 떨게 되다’, ‘어떤 것이 마지막이 되어 끝판에 이르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곧 다가올 여름의 대표 과일 수박과 포도 역시 동음이의어가 있습니다. ‘수박하다’는 ‘가둘 수(囚)’와 ‘묶을 박(縛)’이 결합된 한자어로 ‘붙잡아 묶다’라는 의미로 쓰입니다. ‘포도하다’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요. ‘달아날 포(逋)’와 ‘달아날 도(逃)’가 결합된 한자어는 ‘(사람이) 죄를 저지르고 도망가다’라는 의미지만 ‘사로잡을 포(捕)’와 ‘도둑 도(盜)’가 결합된 한자어는 ‘도둑을 잡다’는 의미를 지녀 앞의 단어와 상반된 뜻을 갖습니다. ‘수박하다’와 ‘포도하다’의 첫 번째 의미를 가진 단어를 연결해 ‘경찰이 포도한 사람을 수박했다(경찰이 죄를 저지르고 도망가는 사람을 붙잡아 묶었다)’와 같은 재미있는 예문도 만들 수 있겠네요.


가을 제철 과일인 배와 감도 동음이의어가 있는데요. ‘배하다’의 배가 ‘절 배(拜)’일 경우엔 ‘조정에서 벼슬을 주어 임명하다’로, ‘곱 배(倍)’의 경우엔 ‘어떤 수나 양을 두 번 합하다’는 뜻입니다. ‘감하다’도 ‘감’이 가진 의미에 따라 여러 상황에서 쓰이는데요. ‘거울 감(鑑)’인 경우는 ‘어른이 살펴보다’의 의미를, ‘정할 감(勘)’의 경우는 ‘죄 있는 사람을 처벌하여 다스리다’의 의미를, ‘덜 감(減)’으로 쓰일 때는 ‘물체의 길이나 넓이, 부피 따위가 본디보다 작아지다’의 의미를 지닙니다.


채소

시원하고도 아삭한 식감 때문에 사랑받는 ‘오이’에 ‘~하다’가 붙은 ‘오이하다’는 ‘거스를 오(?)’와 ‘귀 이(耳)’가 결합된 한자어로 ‘충고하는 말이 귀에 거슬리다’라는 전혀 새로운 의미가 됩니다.


배추, 무도 있습니다. ‘배추하다’는 ‘절 배(拜) 달릴 추(趨)’가 결합해 ‘지위가 높거나 귀한 사람 앞에 공손하게 총총걸음으로 나아가다’라는 의미가 됩니다. ‘무하다’는 두 가지 뜻이 있는데요. ‘없을 무(無)’가 사용되면 ‘없다를 예스럽게 이르는 말’이고 ‘바꿀 무(貿)’가 쓰이면 ‘이익을 보고 팔려고 물건을 이것저것 몰아서 사다’는 뜻이 됩니다.


이외에 ‘호박하다’는 ‘넓을 호(浩) 넓을 박(博)’이 쓰여 ‘크고 넓다’는 뜻으로, ‘고추하다’는 ‘상고할 고(考) 옮길 추(推)’가 결합해 ‘사실에 맞는가 맞지 않는가를 비교하여 생각하다’는 뜻을 지닌 말이 됩니다.


운동 종목

‘농구하더니만 축구한 노력이 한순간에 무너졌군!’ 누군가 이런 말을 한다면 열이면 열 ‘축구하던 사람이 농구를 했더니 잘 못하는군’이라고 생각할 텐데요. 운동 종목에도 동음이의어가 있습니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스포츠 1위’를 놓치지 않는 축구에 ‘~하다’가 붙은 ‘축구하다’는 ‘쌓을 축(築)’과 ‘얽을 구(構)’라는 한자가 결합해 ‘쌓아서 만들다’라는 전혀 다른 뜻을 나타냅니다.


코트 위를 뛰어다니는 두 팀의 경기 모습이 떠오르는 농구에 ‘~하다’가 붙은 ‘농구하다’는 ‘희롱할 롱(弄)’과 ‘입 구(口)’가 결합된 한자어로 ‘거짓으로 꾸며 남을 모함하고 고해바치다’는 뜻을 지닙니다. 따라서 앞 단락 첫 문장의 정답은 ‘거짓으로 꾸며 남을 모함하고 고해바치더니만 쌓아서 만든 노력이 한순간에 무너졌군’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밖에 물속을 헤엄치는 ‘수영하다’는 ‘빼어날 수(秀)’와 ‘꽃부리 영(英)’이 만나 ‘재주와 지혜가 뛰어나고 훌륭하다’라는 의미를, ‘유도하다’는 ‘필 유(誘)’와 ‘이끌 도(導)’가 만나 ‘사람이나 물건을 목적한 장소나 방향으로 이끌다’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이처럼 일상 속에서 자주 사용하는 의미 외에도 그 단어가 가진 의미는 우리의 지식을 뛰어넘는 경우가 많은데요. 과일을 먹으며 채소를 조리하며 운동을 하며 새로운 우리말까지 얻어갈 수 있다니 일석이조 아닐까요? 알면 알수록 신기하고 재미있는 우리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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