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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속의 사냥꾼'이 한겨울 풍경화의 최고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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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직으로 우뚝 솟은 나무와 오른쪽 아래 수평구도로 펼쳐진 마을. 마치 스냅사진을 찍어 놓은 것 처럼 세부 묘사가 뛰어난 이 그림은 피터르 브뤼헐의 '눈 속의 사냥꾼'인데요. 


박인권 문화칼럼니스트와 함께 이 그림이 왜 한겨울 풍경화의 최고봉으로 불리는지 살펴볼까요?

▶피터르 브뤼헐, ‘눈 속의 사냥꾼’, 참나무에 유화, 117×162cm, 1565, 오스트리아 빈 미술사 박물관 소장

출처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풍속화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생활이나 풍습, 행사, 놀이 문화 등을 기록한 그림이에요. 그래서 풍속화를 보면 당대 시대상과 사회상의 진면목을 알 수 있죠. 풍속화가 사료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서양미술사에서 풍속화가 독립적인 장르로 자리 잡은 것은 16세기 후반부터예요.


그림의 독립적인 주제로 홀로서기에 성공한 풍속화의 역사는 플랑드르 지역에서 시작됐어요. 물이 범람하는 저지대란 뜻의 플랑드르는 오늘날 벨기에를 중심으로 네덜란드 서부와 프랑스 북부 일대에 걸친 땅이에요. 당시 플랑드르 지역에는 최초의 순수 풍속화를 개척한 주인공이 이름을 드날리고 있었는데, 그가 바로 피터르 브뤼헐입니다.


1525년쯤 합스부르크 왕조 브라반트 공국의 브레다(현재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브뤼헐은 하층민인 농부들의 생활을 놀랍도록 정교한 관찰력으로 치밀하게 묘사해 풍속화의 독립 장르 시대를 연 선구자입니다. 농민들의 삶의 현장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정밀하게 재현해내 ‘농부의 화가’란 별칭을 얻은 그는 세 가지 이유에서 풍속화의 대부(代父)로 불려요.


첫째 브뤼헐은 당시로선 파격적인 평범한 농민들의 삶의 원형을 그림의 주제로 내세웠습니다. 브뤼헐 이전의 어떤 화가도 서민들의 일상을 그림의 주체로 등장시킨 경우는 없었어요. 브뤼헐의 그림을 본격적인 풍속화 시대의 출발로 보는 까닭이에요.


둘째, 브뤼헐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봤을 때의 모습을 그린 조감도 시점을 구사했어요. 이 시점은 눈앞에 펼쳐지는 전체 장면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마지막으로 브뤼헐은 일상생활에서 이루어지는 서민들의 모습 하나하나와 그들의 행위의 아주 작은 부분까지도 스냅사진(순간 사진) 찍듯 세밀한 그림으로 재현해냈어요. 엄청난 인내심과 집중력을 발휘한 끈질긴 관찰의 결과예요.

눈 덮인 겨울 풍경의 백미

북유럽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이자 판화가인 브뤼헐은 자신이 태어난 마을 이름을 성(性)으로 삼았을 만큼 고향 사랑이 각별했어요. 10년이란 시간 동안 45점의 작품을 남긴 과작가(寡作家, 작품을 적게 짓는 작가)였지만 농민과 서민들의 애환을 해학적이고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내 풍속화의 거장으로 평가받습니다. 눈 덮인 겨울 풍경의 백미로 꼽히는 ‘눈 속의 사냥꾼’과 ‘농가의 결혼 잔치’, ‘네덜란드 속담’, ‘바벨탑’ 연작, ‘거지들’, ‘이카루스가 있는 풍경’, ‘결혼식의 꿈’, ‘장님’, ‘교수대 위의 까치’ 등이 대표작이에요.

눈 속의 사냥꾼’은 브뤼헐이 사계절을 주제로 제작한 6개의 연작 중 가장 유명한 작품입니다. 폭설이 내린 뒤의 마을 풍경을 배경으로 사냥을 끝내고 귀가하는 사냥꾼들과 노동하는 장면, 한겨울 놀이 문화를 담은 그림이에요. 브뤼헐이 마흔이던 1565년에 제작한 이 그림에는 다양한 군상의 인물들과 함께 눈으로 뒤덮인 겨울 풍경 속의 마을이 등장해요. 그림 전면(前面)에 사냥에서 돌아오는 세 명의 사냥꾼과 사냥개들, 그 왼쪽 사선을 따라 아이를 포함해 다섯 명의 사람이 보입니다. 그들은 지금 모닥불로 돼지털을 그을리고 있죠. 돼지 도살이 주로 1월에 벌어지는 연중행사였던 당시 풍습을 감안하면 1월의 풍경을 그린 것임을 알 수 있어요.


그런데 발목까지 차오르는 눈길을 걸어가는 사냥꾼들이 고개를 푹 숙인 채 한결같이 풀 죽은 모습입니다. 왼쪽 사냥꾼의 어깨에 매달린 작은 여우 한 마리, 그것이 오늘 사냥 수확의 전부이기 때문이에요. 주인의 마음을 알기라도 한 것일까요? 사냥꾼들의 뒤를 따르는 사냥개들도 고개를 처박고 힘겹게 걸어가고 있습니다. 사냥꾼 사이로 수직으로 우뚝 솟은 나무와 달리, 오른쪽 아래에 펼쳐진 마을은 수평 구도예요.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본 화가의 조감도적 시선 때문에 사냥꾼들과 마을이 거의 일직선을 이루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선과 수직, 수평 구도의 동시 출현, 가장 이상적인 풍경화 구도 덕분에 그림 속 분위기는 평온하기 그지없죠. 언덕 위의 사냥꾼들은 언덕 아래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고, 화가와 우리는 사냥꾼들을 내려다보고 있어요. 그래서 그림을 감상하는 우리의 마음도 평화롭습니다.

서양미술사 수놓은 풍속·풍경화의 이정표

이제 이 그림이 왜 한겨울 풍경화의 최고봉인지 살펴볼 차례예요. 그림에서 생명체는 모두 검정 일색이에요. 사냥꾼과 돼지털을 그을리는 사람들, 오른쪽 아래 얼어붙은 강 위에서 겨울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 나무와 나뭇가지 위에 앉아 있거나 하늘을 나는 새들까지 죄다 검정이에요. 반면 사냥꾼들이 걸어가는 언덕과 오른쪽 뒤로 보이는 산은 온통 눈으로 뒤덮인 하양이죠. 하나 더 있어요. 하늘과 꽁꽁 언 강은 회색 톤이 섞인 연한 녹색이에요. 생명체와 비생명체의 색을 각각 검정, 하양, 녹색으로 구분했는데 살 속을 파고드는 매서운 겨울 추위가 피부에 와닿을 정도로 실감 나게 느껴집니다. 특히 하양과 검정 같은 무채색의 대비를 통해 눈 덮인 겨울 풍경의 정취를 고조시킨 점이 압권이에요.


‘눈 속의 사냥꾼’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감상 포인트는 또 있습니다. 세부 묘사의 극치를 확인할 수 있는 장면들인데, 언덕 아래 강 위의 사람들이 그 열쇠를 쥐고 있습니다.


돋보기로 들여다보듯 얼음 위 사람들을 자세히 봐요.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 썰매를 끄는 사람, 아이스하키를 즐기는 사람, 컬링에 열중인 사람, 팽이치기에 열중인 아이, 얼음 위에 나뒹군 사람…. 450여 년 전에 우리가 알고 있는 겨울스포츠와 놀이 문화가 빠짐없이 등장한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하나 더, 그림 가운데쯤 강 옆으로 난 눈길을 지나가는 짐마차도 보이고 오른쪽 아래 작은 다리 위로는 한 아낙이 땔감을 머리에 지고 총총걸음으로 지나가고 있어요. 심지어 왼쪽 가운데의 집 지붕과 처마 아래, 오른쪽 아래 집 지붕에 매달린 고드름까지 가히 세부 묘사의 향연이라 할 만합니다.


서양미술사를 찬란하게 수놓은 풍속·풍경화의 이정표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작품이에요. 브뤼헐 작품의 3분의 1을 소장 중인 오스트리아 빈 미술사 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습니다.


© 박인권 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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