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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쌀부대에 그림을 그린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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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재료 하면 어떤 게 떠오르나요? 흔히 크레파스나 색연필, 물감, 붓 등을 생각할 수 있는데요.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 일상생활 속에도 수많은 미술재료가 존재해요. 면봉이나 컵 등 다양한 질감을 가진 소재로도 그림을 그릴 수 있는데요. 쌀부대, 밥상 등에 그린 이종구 화가의 작품은 어떨까요? 1980년대 농촌 모습을 담은 그의 이야기를 이준희 건국대 현대미술학과 겸임교수와 살펴볼게요.


▶이종구, ‘연혁-아버지’, 부대종이에 아크릴릭, 85×110cm, 1984

2021년은 신축년, 소띠 해입니다. 징글징글했던 경자년은 쥐띠 해였죠. 왠지 쥐보단 소가 더 친근하고 정감이 가죠? 어감도 그렇지만 두 동물에 대한 깊고 오랜 선입견 때문인 거 같아요. 옛날 동화책에나 나올 얘기지만, 곳간 양식을 야금야금 축내는 쥐보단 농사일을 우직하게 도와주는 소가 훨씬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으니까요.


이처럼 소는 인간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줍니다. 지구상 수많은 동물 종 가운데 인간과 아주 가깝고 심지어 사육되는 짐승들이 있죠. 우리는 이것을 ‘반려동물’ 혹은 ‘가축’이라고 불러요. 개나 고양이가 반려동물의 으뜸이고 돼지, 소, 양, 염소, 말, 토끼 등이 포유류 가축의 대명사에요. 게다가 닭, 오리, 거위, 타조 같은 조류를 비롯해 붕어, 잉어, 송어, 미꾸라지 같은 민물 어류 또는 광어, 우럭, 심지어 다랑어 같은 바다 어류까지 그야말로 육해공 가릴 것 없이 가축의 종류는 다양해요. 이런 가축은 철저히 인간 입장에서 길들이고 개량돼왔어요. 그 결과 가축의 일생은 고기뿐만 아니라 알, 가죽, 털, 뼈, 심지어 내장까지 아낌없이 인간에게 헌납되었죠. 때론 기계 동력 못지않은 노동력을 제공해주기도 해요.


그런데 최근 사정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어요. 지구환경 파괴를 걱정하고 나아가 생태주의적 입장에서 인권 못지않게 동물권도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차츰 늘고 있죠. 자발적으로 채식주의를 실천하는 이들이 대표예요. 그들은 인간이 자연에 대해, 특히 동물에게 가하는 착취와 폭력을 멈춰야 한다고 외칩니다.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인 까닭에, 인간에 의해 자행된 생태의 불평등은 머지않아 부메랑으로 인간에게 돌아올 것을 경고하고 있어요. 당연한 진리, 인간은 자연을 이길 수 없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소 그림 이야기를 하려다 잠시 옆길로 샜어요. 다시 소 얘기로 돌아올까요? 소띠 해를 맞아 소가 등장하는 그림을 생각했어요. 먼저 이중섭이 그린 ‘황소’가 떠올랐지만, 그보다 더 강렬한 이미지로 남은 그림이 있어요. 그건 바로 ‘농민 화가’로 널리 알려진 이종구의 '소'입니다.


‘농민 화가’라는 수식어를 넘어서

이종구는 30년 넘게 농민과 농촌을 주제로 그림을 그려온 화가예요. 한국 사회의 급격한 산업화 과정에서 농촌(사람들)이 겪은 현실을 사실적으로 기록해왔어요. 1954년 충남 서산시 대산읍 오지리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이종구는 중앙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모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묵묵히 그림 농사를 짓고 있어요.


그가 처음부터 농촌을 주제로 한 것은 아니었어요. 1979년 군 제대 후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에 들어섰을 무렵은 대통령이 암살당하고 계엄령이 선포되는 등 매우 혼란한 시기였고, 이때 한국 미술계 주류는 형식이 앞선 모노크롬(단색화) 회화였습니다. 

▶이종구, ‘속 농자천하지대본-연혁’, 부대종이에 아크릴릭, 170×100cm, 1984

출처서울시립미술관

이종구는 이런 상황에서 내용이 빈약한 추상회화에 거리를 뒀어요. 대신 차가운 도시 이미지를 극사실적인 초현실주의 화법으로 그렸죠. 그런데 뭔가 부족한 느낌을 받아 정체성과 뿌리에 대한 고민은 더욱더 깊어졌어요. 이 과정에서 자신이 농촌 출신임을 깨닫고, 평생을 농부로 살아온 아버지와 고향 땅 오지리 사람들의 모습에서 작업의 실마리를 찾았는데요. 1984년부터 아버지와 농촌을 주제로 한 작품에 매진했어요.


특히 이 시기 그림은 쌀부대 위에 그렸어요. 1984년 작 ‘연혁-아버지’는 아버지를 소재로 삼은 첫 작품이자 쌀부대에 그린 최초의 그림이에요. 쌀을 담는 부대 종이는 미술에서 흔히 사용되는 재료가 아니지만, 농민과 농촌의 삶을 직접적으로 대변해주는 효과적인 상징물입니다.


1986년에 그린 ‘속 농자천하지대본(續 農者天下之大本)-연혁’은 아버지의 일생과 농촌 현실이 짙게 각인된 작품이에요. 농부 아버지에 대한 경의와 척박한 농촌 현실에 대한 비판 의식이 복합적으로 담겨 있습니다.

'소'를 의인화해 농민 희로애락 담아내

이후 이종구는 아버지 한 개인에 대한 주제를 넘어 점차 가족으로 넓혀갔어요. 나아가 고향 땅 오지리 사람들과 농촌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농민 전체의 삶으로까지 확장했는데요. 소가 주제로 등장한 배경도 이런 맥락에서 헤아릴 수 있어요. 소는 농촌과 뗄 수 없는 동물이며 소는 농민을 대변한다는 거예요.


이종구는 이런 소를 의인화농민의 희로애락을 담아냈어요. ‘아버지의 소’라는 작품은 1986년 ‘소값 파동’ 직후 그린 거예요. 이때 작업 노트엔 이렇게 적혀 있었죠. 


“3년 전 800만 원을 주고 산 소가 50만 원이 밑돌게 떨어진 요즘에도 한결같이 논두렁의 흔한 풀조차 농약 기운이 있다고 마다하며 들풀을 골라 먹이시는 아버지의 애정과 희망을 나의 약은 계산으로 어찌 헤아릴까.”

▶이종구, ‘아버지의 소’, 부대비닐에 유채, 80×100cm, 1986

출처맥향화랑

1990년대 중반 이후 이종구의 그림은 인물화에서 정물과 풍경화로 다시 한번 변모했어요. 1995년 부친의 타계가 계기였을지도 모릅니다. 실제 밥상 위에 쌀과 밥그릇, 수저와 젓가락을 그린 정물화도 있고 볍씨, 낫, 고무신과 슬리퍼, 정화수가 담긴 사발 등을 그린 그림도 있어요. 2000년대엔 폭 3m가 훌쩍 넘는 대형 캔버스에 우리 산하의 풍경을 그렸어요. ‘백두대간-아, 지리산’, ‘백두대간-덕유산 향적봉에서’가 대표작이에요. 그뿐만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 초상화(2008년)와 가수 김광석 20주기 추모 기념 음반(2006년)에 실린 김광석 얼굴 역시 이종구 작품이에요. 민중미술을 넘어선 이 시대 진정한 리얼리스트, 그가 바로 화가 이종구입니다.


©이준희 건국대 현대미술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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