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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최초로 '디자인'한 것이 돌도끼라고?

조회수 2021. 1. 14. 21:1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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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의 역사를 뒤바꿔놓았다는 20세기! 오늘날의 보편적이고 대중화된 '디자인'의 시초라 불리며, 예술과 산업의 만남으로 디자인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시기라고 해요. 지금은 다양한 의미로 쓰이는 디자인, 최초로 사용됐을 땐 어떤 의미로 쓰였을지 함께 살펴볼까요?


▲ 독일공작연맹의 핵심 멤버인 페터 베렌스가 디자인한 AEG사의 전기 주전자

 ‘디자인’이라는 말은 그 쓰임이 엄청나게 다양해요. 디자인을 우리말로 하면 설계, 고안, 구상, 계획 같은 단어들이 떠오르는데요. 설계, 고안, 구상, 계획이란 가구나 자동차, 전자제품 같은 기능적인 사물에만 해당ㅎ지 않죠. ‘생활의 설계’라는 말이 있듯 손에 잡히는 물리적인 대상뿐만 아니라 추상적인 대상으로 확대되기도 해요.


한때 디자인 산업을 홍보한답시고 영국 총리 마거릿 대처가 각료들에게 “디자인하라 그러지 않으면 사임하라(Design or Resign)”라고 했다며 이 말이 디자인업계에서 한참 유행한 적이 있었는데요. 하지만 대처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 밝혀졌어요. 만약 그런 말을 했다고 하더라도 설마 각료들에게 디자인 산업에서 말하는 그 디자인을 하라고 지시했을까요?

이런 식으로 디자인의 개념을 확대하는 것이 디자인 산업 또는 디자이너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아요. 각료들이 디자인한다고 미술대학 디자인학과를 졸업한 전문가를 고용할 리 없지 않은가. ‘보디 디자인(body design)’이라는 말을 만들 수 있지만, 그것을 퍼뜨리는 사람은 디자인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헬스클럽 운영자들일 거예요. 오늘날 디자인은 설계, 고안, 구상, 계획을 의미하는 뜻으로 모든 분야에서 쓰이고 있지만, 그 말이 태어난 순간에는 뭔가 더 구체적이고 고유한 일에 적용되지 않았을까요? 


선사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그 모든 사물은 디자인되었다고 말할 수 있어요. 석기인이 만든 돌도끼도 디자인된 것이고, 오늘날의 첨단 스마트폰도 디자인된 것이죠. 우리는 돌도끼를 보면서 “저 디자인은 석기인이 만든 것치고 참 정교하군”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하지만 엄밀히 말해 영문 ‘디자인(design)’은 근대에 생긴 근대적인 개념인데요. 그것을 한번 추적해볼게요.


공예가와 산업체 운영자의 만남

 산업혁명이 일어나 공장에서 기계로 물건을 찍어내 대량으로 생산하기 전까지 이 세상의 물건은 모두 사람이 직접 손으로 만들었는데요. 그것을 ‘공예’라고 해요. 동서양의 모든 공예가들은 자신이 머릿속으로 구상하고 고안한 것을 자신의 손으로 만들었어요. 


직접 손으로 만들 경우, 그가 만든 것은 하나도 같은 것이 없었죠. 조선시대 도공이 귀신같은 솜씨로 수십 개의 사발을 빚을 때 언뜻 보면 그 사발들은 모두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어요. 또한 갑자기 예술 의지가 발동해 즉흥적으로 다르게 생긴 그릇을 만들 수도 있어요. 한마디로 그 모든 재료와 형태, 마감 상태, 즉 디자인은 도공의 통제 아래 있는 거죠. 이것이 공예가의 큰 자부심이고 즐거움이에요. 


하지만 기계가 물건을 생산하는 산업혁명이 일어나자 물건을 만들어내는 작업장이 급격한 변화를 맞이했어요. 직공들은 기계의 보조적인 수단으로 전락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그 물건의 고안과 구상에 전혀 참여하지 않았으므로 물건을 만드는 일이 하나도 즐겁지 않고, 애정을 가질 수도 없었는데요.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장주는 오로지 이윤만을 추구하므로 물건의 만듦새와 품질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요.


생산의 주요 수단은 기계이므로 숙련된 직공을 고용할 필요도 없어졌어요. 기계 기술은 사람이 오랜 시간 축적한 숙련된 솜씨를 무용지물로 만들었거든요. 기계 생산에 따라 물건의 질과 아름다움은 수공예 시대보다 후퇴해요. 하지만 소수의 귀족과 부유한 자본가는 여전히 몰락하지 않은 소수 공예가가 만든 화려하고 장식적인 물건을 소유하고 자랑했어요.

 산업혁명 시기의 이런 비인간적인 상황에 저항한 영국인 윌리엄 모리스는 수공예 운동을 일으켰어요. 질 좋은 물건을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만들겠다는 의도에요. 그는 ‘만인을 위한 만인의 예술’이라는 신념을 갖고 자신 같은 공예가들이 만든 아름다운 물건이 더 많은 이들에게 퍼지기를 꿈꿨죠. 그의 의지에 따라 예술공예 운동이 일어났지만, 공예가들이 만든 물건은 수량도 많지 않고 비쌀 수밖에 없었어요. 일반인이 사용하는 대부분의 생활용품은 공장에서 생산되었고, 그 미학적 가치는 형편없었어요. 좋은 물건을 만들 수 있는 재능을 가진 이들, 즉 공예가들은 공장을 무시했고, 그렇게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생활용품은 방치되었어요. 


20세기에 들어와 또 한 번 큰 변화가 일어났는데요. 영국과 프랑스에 이어 유럽에서 세 번째 산업국가로 발전한 독일은 어떤 나라보다 질 좋은 물건을 생산하고자 공예 교육에 힘썼어요. 무엇보다 영국의 공예가들이 기계를 거부하고 공장을 무시한 것과 달리 독일 공예가들은 기계의 도입을 수용했고, 공장의 생산에 참여하고자 했거든요. 1907년에 설립된 독일공작연맹은 공예가와 산업체 운영자의 만남을 주선하고 협력을 도모했어요. 공장의 물건은 이제 ‘디자인’되었어요. 여기에서 디자인이란 그것을 구상한 사람이 생산 현장에는 참여하지 않는 것을 말해요. 다시 말해 디자이너는 재료를 선정하고 형태를 구상하고 질감과 색채를 결정하지만, 공예가처럼 그것을 직접 만들지는 않는 거죠. 자신이 구상한 설계도를 공장에 넘기는 거예요. 


디자인을 산업 경쟁력의 무기로 활용 

 1919년 설립된 건축공예 학교인 바우하우스는 독일공작연맹에서 시작된 예술가와 산업의 만남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했어요. 특히 이 학교는 물건을 더욱 경제적으로 생산하는 일에 관심이 많았는데요. 왜냐하면 1차 세계대전의 결과 패전국 독일은 대단히 궁핍한 상태였기 때문이었어요. 그리하여 집이든 물건이든 기하학적인 형태로 아주 단순하게 디자인했어요. 그래야 생산 효율성이 높아지고 가격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죠. 재료 역시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하기 쉬운 것을 선택했는데, 예를 들면 늘 나무로만 만들던 의자를 강철 파이프로 만드는 식이에요. 


독일의 산업진흥 기관인 독일공작연맹과 디자인 학교인 바우하우스는 이렇게 모던 디자인의 탄생에 큰 역할을 했는데요. 이제 공장은 예술교육을 받은 이들로부터 외면받지 않게 됐어요. 공장에서도 미적으로 우수한 물건이 생산되었고, 그들이 추구한 혁신은 단지 산업 제품의 아름다움과 경쟁력에 그치지 않았어요. 영국의 예술공예 운동이 추구했던 이상, 즉 “더 질 좋은 물건을 더 많은 이들에게 보급하겠다”는 그 공동체적이고 민주주의적인 이상이야말로 20세기 초반에 등장한 디자인 개념의 핵심인 거에요. 


더니즘 디자인은 전후 미국에서 받아들여졌고, 전 세계적인 현상이 되었어요. 최대 최고의 산업국가인 미국은 디자인을 산업 경쟁력의 무기로 활용했다. 이제 디자인은 제품을 차별화해서 기업의 판매 곡선을 올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하지만 최초의 목표, 그 ‘착한’ 이상을 잊지 말아야 할 거예요. 

ⓒ김신 디자인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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