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신동 봉제골목에서 공연이 끊이지 않는 이유
봉제골목이 밀집돼 있는 창신동에 새로운 문화예술 바람이 불고 있어요. 창신동은 세계적 예술가 백남준을 배출하고 박수근이 예술혼을 불태웠던 곳인데요.
문화예술을 통해 행복창조를 추구하는 사회적 기업 아트브릿지는 매달 마지막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에 창신동 곳곳을 찾아 다양한 공연을 하고 있어요. 문화와 예술을 즐기고 싶어 하는 누구나 가까이에서 공연을 보고 느낄 수 있도록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아트브릿지 신현길 대표를 만나봤습니다.
사회적기업 아트브릿지를 운영하는 신현길 대표는 창신동에 숨겨진 옛이야기를 마치 전래동화를 읽어주는 것처럼 설명했습니다. 봉제공장 밀집지역인 창신동을 돌며 지역에 얽힌 이야기, 창신동을 거쳐 간 예술가들의 흔적을 들려줬어요.
창신동 하면 봉제공장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아요. 실제 창신동 언덕을 올라가다 보면, 정신없이 옷감을 옮기거나 완성된 물품을 실어 나르는 오토바이들을 볼 수 있습니다. 1961년 평화시장이 생기고, 1971년 동대문종합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자연스럽게 창신동 일대에는 봉제공장이 모여들었어요. 동대문에서 주문한 옷들을 하루 이틀에 만들어서 납품하는 빠른 스피드가 창신동 봉제공장의 경쟁력이에요. 이러한 경쟁력은 창신동 노동자들이 헌신한 결과이기도 해요.
신 대표는 창신동 노동자들의 일상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처음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비탈길을 달리는 오토바이가 위험하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러나 신 대표는 “오히려 보행자나 운전자 모두 조심하기 때문에 사고가 다른 곳보다 적은 곳이 창신동”이라며 “자연스럽게 서로 배려하는 것을 배우는 곳”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박수근과 백남준의 예술혼이 숨 쉬는 곳
재봉틀 소리가 멈추지 않는 창신동에는 문화와 역사가 살아 숨 쉬고 있어요. 단종과 정순왕후, 박수근, 김광석, 백남준, 전태일. 어찌 보면 서로 관계가 없는 인물들이지만, 모두 창신동에서 자라거나 살거나 예술을 했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세계적 예술가 백남준이 나고 자랐으며, 자신만의 독창적 예술세계를 구축한 박수근이 예술혼을 불태웠고, 정순왕후가 강원도로 귀양을 떠난 단종을 그리워했으며, 전태일이 어려운 노동자의 삶으로 고뇌했던 곳이 창신동이에요. 영화 ‘아리랑’을 만든 나운규의 영화사 ‘나운규 프로덕션’이 자리했던 곳도 창신동입니다. 최근에는 박수근과 백남준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창신동은 꼭 한 번 들러야 하는 곳이 되었어요.
6·25전쟁이 끝났을 때, 박수근은 1952년부터 1963년까지 가족들과 창신동에서 살았어요. 그가 살았던 창신동 393-16번지에 그의 집은 남아 있지 않지만 박수근 집터를 알리는 표식이 설치되어 있어 그를 기억하게 합니다. 창신동 197-33번지에는 백남준 기념관이 자리하고 있어요. 1937년부터 1950년까지 13년 동안 백남준이 자란 곳입니다.
대학로에서 아동 연극을 만들던 신 대표는 2012년 이곳 창신동을 찾았을 때 이러한 예술가들의 향기에 크게 매료됐어요. 그는 대학로 사무실을 접고, 창신동에 ‘뭐든지 예술학교’를 만들었는데요. 가파른 비탈길, 재봉틀 소리와 오토바이 소음 속에서 자라는 어린이들을 위한 연극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시설입니다.
그가 설립한 사회적기업 아트브릿지는 ‘문화예술을 통한 사회적 행복 창조’를 목표로 우리 역사와 인물, 아시아 문화를 소재로 연극과 체험, 놀이가 결합된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역사를 소재로 한 연극을 제작하고, 아이들이 연극에 직접 참여하도록 교육과정을 꾸려가는 기업이에요.
신 대표가 아이들에 맞춘 공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일할 때의 경험이 크게 작용했어요.
이러한 취지로 전국에서는 관련 공연을 하고 창신동에서는 ‘뭐든지 예술학교’를 중심으로 지역에 적합한 공연과 교육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밥상처럼 어울리는 ‘문화밥상’
2017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하는 ‘문화가 있는 날’ 프로그램으로 선정돼 작년 5월부터 ‘창신동 문화밥상’을 진행 중이에요. 매달 마지막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에 창신동 곳곳을 찾아 다양한 공연을 하고 있는데요. ‘문화밥상’은 신 대표가 생각하는 문화에 대한 정의에서 시작합니다.
‘문화가 있는 날’에 도시락을 준비해 봉제공장을 찾아가 뮤지컬을 들려주면 반응이 어떨까. 일에 방해가 되지는 않을까. 창신동 문화밥상 프로그램은 동생의 학업을 위해 청춘을 봉제공장에서 불태우며 눈코 뜰 새 없이 부지런히 살아가는 우리의 누나들에 주목했어요.
이런 취지에서 시작된 ‘누나 고마워요’ 프로젝트는 추억의 도시락과 함께 뮤지컬 배우들의 공연이 이어집니다. 공연이 시작되면 반응이 뜨거워요.
문화와 예술을 즐기고 싶어 하는 누구나 가까이에서 공연을 보고 느끼게 하겠다는 기획 목적을 살린 결과인데요. 공연 참가자들은 “비록 창신동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은 다양하지만, 누구나 문화를 느끼고 싶고, 나아가 참여하고 싶어 한다”며 공연 소감을 이야기합니다.
지역 생활예술가 양성 목표
창신동 봉제길을 따라 주민들과 지역 문화예술가들이 함께 제작한 대형 인형과 여러 가지 창신동 관련 창작물을 전시하는 ‘행복한 봉제마을’ 전시회, 창신2동 주민센터 앞마당에서 지역 주민들과 직접 만든 밥상을 나누며 공연을 관람하는 ‘행복한 문화밥상’ 공연, 나만의 봉제 소품을 만들어보는 ‘드르륵 뚝딱 창신동 봉제공작소’ 등의 행사도 진행 중이에요.
이렇듯 생활 속에서 문화예술을 소박하게나마 향유하는 것이 창신동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신현길 대표는 단연 ‘창작의 기쁨’일 거라고 강조했습니다.
신 대표는 주민들이 지역의 생활예술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데 의미를 찾았어요.
지역에 터를 잡으면서, 특히 어린이들의 예술 참여를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는데요. 원래 아동 연극으로 시작해서인지 아이들에게 연극을 가르치는 데 큰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신 대표는 아이들에게 지역에 특화된 예술교육을 시켜야 하는 이유로 ‘자존감’을 들었어요.
신현길 대표는 지역의 꿈나무들이 연극을 연습하는 과정 속에서 역사의 인물을 익히고 자부심을 갖도록 이 작업을 계속해나가고 있습니다. 더욱이 연극을 하면서 길러지는 협동심도 중요한 교육 목표 가운데 하나입니다.
아트브릿지의 뭐든지 예술학교는 반복되는 일상생활 속에서 문화예술을 소박하게나마 향유할 수 있도록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데요. 이런 노력들이 창신동을 평범했던 봉제골목에서 예술혼이 살아 숨 쉬는 곳으로 재탄생하는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