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밤 운치 뿜뿜, 시(詩) 들려주는 앱 '시간' 개발 스토리

조회수 2018. 10. 10. 10:5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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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가을이 깊어지면 노래 한 소절, 시 한 구절에도 왠지 센티멘털해지곤 하는데요. 이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감성을 불어넣는 아름다운 시(詩)를 시와 어울리는 배경음악과 함께 들을 수 있는 플랫폼이 있습니다.


읽는 시가 아니라 일상에서 공유되는 듣는 시를 제공하는 스타트업 '시간(詩間)' 강지수 대표를 만나봤습니다.


출처: C 영상미디어

언젠가부터 한 손으로 스마트폰을 쥔 채 무언가에 몰두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지극히 평범하게 다가오는데요. 보다 자극적이고 빠르게 소비할 수 있는 콘텐츠가 쏟아지면서 바쁜 일상의 짧은 여유를 누릴 수 있는 방법이 됐기 때문이에요. 대개 음악과 영상, 만화 등을 소재로 한 ‘스낵 컬처’입니다. 애써 해석하거나 이해하지 않아도 다채로운 이야기를 흡수할 수 있는 게 장점이에요. 


다만 이런 콘텐츠는 ‘읽는 행위’와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들게 합니다. 문학을 다루는 스낵 컬처를 찾기 힘든 이유이기도 해요. 문학은 책으로만 접할 수 있으며, 책은 재빠르고 쉬운 소비가 어려운 영역이라는 생각에서입니다. 이에 대해 강지수 ‘시와 시 사이 시간’(이하 시간) 대표는 편견이라고 말하는데요. 책은 문학의 대표적 매개체일 뿐, 유일한 매개체는 아니라고 말해요. ‘시간’을 시작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시간은 시 낭독 음원을 직접 제작하고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으로 제공하는 스타트업이에요. 시 시(詩)와 사이 간(間)을 합쳐 만든 회사 이름은 이곳의 목표를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인데요. 강지수 대표는 ‘시와 시 사이, 나의 시간을 나답게’라는 슬로건 아래 시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다소 추상적으로 들리기도 하지만, 언제 어디서나 시를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싶다는 지향점을 명확히 하고 있어요.

눈코 뜰 새 없는 누군가의 일상에 ‘시적 순간’을 주고 싶었어요. 뭐랄까, 내가 속한 상황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잖아요. 제3자 입장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상황처럼 말예요. 시가 그 순간을 주는 수단이 됐으면 해요. 청자가 시를 듣고 머릿속에 그림 하나를 그려냈다면 그게 바로 시적 순간을 향유하는 거죠.
출처: 시간
시간은 격월로 정기공연을 열고 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시간에서는 ‘시를 읽는다’는 표현보다 ‘시를 듣는다’는 표현이 적합해요. 낭독하는 사람의 목소리로 먼저 시를 접하고 의미를 되새기는 건 그다음이에요. 지면이라는 대표 매개체에서 벗어나 듣는 행위를 기반으로 시를 소비하는 거예요. 강 대표가 여타 콘텐츠에 비해 무게감이 느껴질 법한 문학에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한 결과입니다. 


그는 글을 읽을 때 행간을 이해하기 위해 들이는 힘보다 들을 때 드는 힘이 훨씬 적다고 합니다. 음원 서비스를 결심한 배경이 여기에 있어요. 지난해 6월에 시작해 지금까지 제작한 음원은 50개. 몇 분 남짓한 낭독 음원과 낭독 과정 이야기, 후일담을 담은 팟 캐스트 등 시와 관련한 다양한 청각 콘텐츠에요. 


분량으로 따지면 스낵 컬처라고 분류될 수 있지만 강 대표는 “시간은 결코 스낵 컬처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어요. 소비 시간은 짧아도 청자의 마음에 오랫동안 남는 콘텐츠이기 때문이에요. 오히려 넘치는 스낵 컬처 속에서 문학 장르가 살아남을 수 있는 전략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출처: 시간
시간은 격월로 정기공연을 열고 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어떻게 해야 문학과 소비성 텍스트가 맞붙을 수 있을지 생각했는데 그게 시였어요. 다른 문학 장르보다 짧아서 청자에게 전달하기 좋거든요. 일상을 반복하는 우리에게 특정 상황에 처하지 않고선 그 이상의 감정을 느끼는 건 드물잖아요. 그런 중에 시는 낯선 감정을 주곤 해요. 그래서 특별하죠.

시, 낭독자 구성 각양각색

출처: 시간
IF 2018에 참가한 모습

시간은 계간지나 월간지에 실린 시인의 신작시를 선정한 뒤 해당 작가와 저작권 계약을 맺어요. 그 이후엔 오디션을 거쳐 시와 어울리는 목소리를 찾는데요. 한국방송예술교육진흥원 성우학과와 제휴를 맺어 그곳 재학생, 졸업생을 중심으로 낭독자를 뽑습니다. 


성우가 정해지면 배경음악을 제작합니다. 인디 뮤지션에게 낭독 음원을 들려주고 그 분위기를 한껏 돋울 수 있는 음악 작곡을 요청하는 방식이에요. 가요로 치면 낭독자가 보컬이고 시가 가사가 되는 셈이에요.


제작 초기만 해도 음원 한 개를 제작하는 데 한 달여 정도가 소요됐어요. 회의하는 시간만 두 달이 걸린 적도 있는데요. 시를 이해하는 데 정답이 없는 만큼 강 대표와 낭독자 사이의 이견을 좁히는 것부터 뮤지션에게 시적 순간을 온전히 설명하는 것까지 긴 조율이 필요했어요. 


시행착오를 지나 체계가 어느 정도 자리 잡힌 요즘은 모든 과정이 2주면 거뜬해요. 강 대표는 순탄치만은 않은 녹음 과정이라도 거기서 느끼는 즐거움은 또 다른 희열을 안긴다고 했습니다.

출처: 시간
뮤지션들이 낭독 음원에 배경음악을 녹음하고 있다.
낭독자에게 ‘이 시를 읽으면 어떤 그림이나 색이 떠오르는지’ 늘 물어요. 혹 저와 다르게 느껴도 좋아요. 본인 감정이 뚜렷한 사람이어야 표현도 분명하게 할 수 있거든요. 낭독자가 애매하게 읽으면 청자도 애매하게 느껴요. 특히 편견 없는 표현을 위해 낭독자들에게 시인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요. 자신만의 감성으로 시를 전달해줬으면 해서요.

낭독하는 사람만큼 시도 각양각색이에요. 한 번 들어도 고객을 끄덕이게 하는 시, 여러 번 들어야 비로소 이해하는 시, 들을 때마다 다른 느낌을 전하는 시 등을 적절히 섞는데요. 어떤 작품의 스트리밍 횟수가 가장 많았는지, 재생시간은 얼마나 됐는지 등을 수집해 그것을 바탕으로 시를 선정하기도 해요. 이와 함께 격월로 정기공연을 열고 현장을 찾은 사람들의 의견을 반영해 작품을 고릅니다. 


정기공연은 서비스 이용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통로임과 동시에 시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에요. 그때마다 다른 장소에서 다른 콘셉트를 선보이는 유목식 공연이에요. 새 낭독 음원을 발표하고 그것을 들은 참가자들이 대화하는 시간은 늘 있어요. 독자가 주체가 돼 작품 해석이 이루어진다는 개념의 ‘수용 미학’의 장을 마련하고 싶은 강 대표의 바람이 담겼습니다.

대학생 시절 독일에 교환학생을 다녀온 적 있어요. 독일은 모든 문학 장르에 관한 오디오북이 발달해 있을뿐더러 낭독회도 흔하더라고요.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자신이 느낀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누던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출처: 시간
Seesoul 10th: 청춘 Bomb 공연 장면

강 대표는 청자뿐 아니라 낭독자에게도 색다른 경험이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화면 뒤에서 목소리만 냈던 성우들이 무대에서 자신의 얼굴과 감정을 고스란히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적기 때문이에요.

보통 낭독자는 무대 뒤에 숨어 있는데 저희 공연은 모습을 드러내요. 콘셉트에 맞는 화장과 의상을 준비하고요. 고정 팬들이 생긴 낭독자도 있어요.

시간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 팔로우나 정기공연 참석자를 바탕으로 서비스 이용 패턴을 분석하기도 해요. 그 결과에 따르면 시를 잘 아는 사람보다 시를 접하고 싶은 사람들이 시간을 더 많이 찾는다고 해요.

창작자에게도 좋은 플랫폼 돼야

출처: 시간
시 낭독자가 덕수궁 돌담길에서 버스킹 공연을 하고 있다.
이용자 중에서 시간 애플리케이션을 백색 소음처럼 틀어두는 경우도 있어요. 문학의 일상화가 이뤄지는 과정이라고 봐요. 음원을 들으면서 스쳐가는 시어들을 일상으로 불러들여 어느 순간 집중하게 만들죠.

낭독 음원 말고도 일상 정보의 접점을 활용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특징이에요. 이를테면 실시간 날씨와 어울리는 작품을 큐레이션 하는데요. 시간에 맞춰 알람시계가 울리는 것처럼 말이에요. 타깃층이 문학 독자만이 아님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시간은 대중 독자와 문학 독자 모두 타깃으로 삼고 있어요. 다만 향후 유료 구독서비스를 위해서는 핵심 서비스를 이용하는 문학 독자를 주 소비층으로 하고 있어요.


시를 들려주고, 이야기한다는 콘셉트만 조명하면 시간이 기업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는데요. 과연 문학을 기반으로 돈을 벌 수 있겠느냐는 우려도 생깁니다. 그러나 시간은 엄연히 수익을 내야 하고, 내고 있는 회사입니다.

사업 영역이 문학이라고 하면 성장성을 왜 그렇게 낮게 볼까요. 책만이 문학 매개체의 전부가 아닌데 말이죠. 낭독 음원부터 굿즈, 정기공연 등 다양한 형태로 문학을 활성화할 수 있어요. 무엇보다 시간은 정기구독이라는 안정적인 비즈니스모델이 있어요. 대다수 콘텐츠 플랫폼이 광고 수익을 지향하는데 그게 장기화되면 창작자나 관리자들이 양질의 콘텐츠 제작에서 벗어나 수익만 좇게 돼요. 저희는 조금 오래 걸리더라도 지속가능한 수익 판로를 모색하려 합니다. 플랫폼으로서 역량도 키울 계획이에요. 자체 음원을 생산하는 것을 넘어 어느 시가 드라마, 광고 등에 쓰일 때 중간자가 되려고요.”

강 대표는 ‘시인은 돈을 벌기 힘든 직업’이라는 편견을 깨뜨리고 싶어 합니다. 출판계에선 흔하지 않다는 디지털 계약을 고수하고, 비즈니스 저작권을 공부하는 팀원을 두고 있는 것도 그래서예요. 저작권 계약에 어두운 작가들에게 때에 맞춰 수익을 나눠주고 그것이 더 나은 창작 환경을 조성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에요.


마지막으로 시 그리고 문학이 어떤 존재인지 묻자, 그가 웃으며 대답했어요. “애증이요.” 그것들이 자신에게 좋은 영향력을 안기는 존재임은 분명하나, 그것을 통해 무언가를 얻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너무 크다고 했습니다. 시간 서비스 이용자들은 그런 부담감을 내려놓았으면 합니다.

시를 듣는다고 하니 무언가 정확히 이해해야 할 것 같고 쫓아가야 할 것 같은 느낌을 갖는 분들이 있어요. 즐겁게 시를 누렸으면 하는 의도로 만든 서비스가 결국 스트레스가 될 수 있는 부분이에요. 더 나은 낭독 서비스를 연구해야 하는 이유기도 하고요.

스마트폰이 보편화되면서 세대를 막론하고 유튜브나 SNS를 통해 다양한 정보를 접하고 있어요. 특히 청소년과 어린이들은 스마트폰을 많이 사용하다 보니 책과 점점 멀어지고 시와 같은 문학작품과도 만날 기회가 줄어들 수도 있는데요.


좀 더 쉽고 가깝게 일상에서 시를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시간(詩間)과 같은 플랫폼을 통해 부담 없이 시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귀뚜라미 우는 가을밤, 아름다운 시 한 소절 들어보고 깊은 가을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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