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밤 운치 뿜뿜, 시(詩) 들려주는 앱 '시간' 개발 스토리
가을이 깊어지면 노래 한 소절, 시 한 구절에도 왠지 센티멘털해지곤 하는데요. 이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감성을 불어넣는 아름다운 시(詩)를 시와 어울리는 배경음악과 함께 들을 수 있는 플랫폼이 있습니다.
읽는 시가 아니라 일상에서 공유되는 듣는 시를 제공하는 스타트업 '시간(詩間)' 강지수 대표를 만나봤습니다.
언젠가부터 한 손으로 스마트폰을 쥔 채 무언가에 몰두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지극히 평범하게 다가오는데요. 보다 자극적이고 빠르게 소비할 수 있는 콘텐츠가 쏟아지면서 바쁜 일상의 짧은 여유를 누릴 수 있는 방법이 됐기 때문이에요. 대개 음악과 영상, 만화 등을 소재로 한 ‘스낵 컬처’입니다. 애써 해석하거나 이해하지 않아도 다채로운 이야기를 흡수할 수 있는 게 장점이에요.
다만 이런 콘텐츠는 ‘읽는 행위’와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들게 합니다. 문학을 다루는 스낵 컬처를 찾기 힘든 이유이기도 해요. 문학은 책으로만 접할 수 있으며, 책은 재빠르고 쉬운 소비가 어려운 영역이라는 생각에서입니다. 이에 대해 강지수 ‘시와 시 사이 시간’(이하 시간) 대표는 편견이라고 말하는데요. 책은 문학의 대표적 매개체일 뿐, 유일한 매개체는 아니라고 말해요. ‘시간’을 시작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시간은 시 낭독 음원을 직접 제작하고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으로 제공하는 스타트업이에요. 시 시(詩)와 사이 간(間)을 합쳐 만든 회사 이름은 이곳의 목표를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인데요. 강지수 대표는 ‘시와 시 사이, 나의 시간을 나답게’라는 슬로건 아래 시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다소 추상적으로 들리기도 하지만, 언제 어디서나 시를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싶다는 지향점을 명확히 하고 있어요.
시간에서는 ‘시를 읽는다’는 표현보다 ‘시를 듣는다’는 표현이 적합해요. 낭독하는 사람의 목소리로 먼저 시를 접하고 의미를 되새기는 건 그다음이에요. 지면이라는 대표 매개체에서 벗어나 듣는 행위를 기반으로 시를 소비하는 거예요. 강 대표가 여타 콘텐츠에 비해 무게감이 느껴질 법한 문학에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한 결과입니다.
그는 글을 읽을 때 행간을 이해하기 위해 들이는 힘보다 들을 때 드는 힘이 훨씬 적다고 합니다. 음원 서비스를 결심한 배경이 여기에 있어요. 지난해 6월에 시작해 지금까지 제작한 음원은 50개. 몇 분 남짓한 낭독 음원과 낭독 과정 이야기, 후일담을 담은 팟 캐스트 등 시와 관련한 다양한 청각 콘텐츠에요.
분량으로 따지면 스낵 컬처라고 분류될 수 있지만 강 대표는 “시간은 결코 스낵 컬처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어요. 소비 시간은 짧아도 청자의 마음에 오랫동안 남는 콘텐츠이기 때문이에요. 오히려 넘치는 스낵 컬처 속에서 문학 장르가 살아남을 수 있는 전략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시, 낭독자 구성 각양각색
시간은 계간지나 월간지에 실린 시인의 신작시를 선정한 뒤 해당 작가와 저작권 계약을 맺어요. 그 이후엔 오디션을 거쳐 시와 어울리는 목소리를 찾는데요. 한국방송예술교육진흥원 성우학과와 제휴를 맺어 그곳 재학생, 졸업생을 중심으로 낭독자를 뽑습니다.
성우가 정해지면 배경음악을 제작합니다. 인디 뮤지션에게 낭독 음원을 들려주고 그 분위기를 한껏 돋울 수 있는 음악 작곡을 요청하는 방식이에요. 가요로 치면 낭독자가 보컬이고 시가 가사가 되는 셈이에요.
제작 초기만 해도 음원 한 개를 제작하는 데 한 달여 정도가 소요됐어요. 회의하는 시간만 두 달이 걸린 적도 있는데요. 시를 이해하는 데 정답이 없는 만큼 강 대표와 낭독자 사이의 이견을 좁히는 것부터 뮤지션에게 시적 순간을 온전히 설명하는 것까지 긴 조율이 필요했어요.
시행착오를 지나 체계가 어느 정도 자리 잡힌 요즘은 모든 과정이 2주면 거뜬해요. 강 대표는 순탄치만은 않은 녹음 과정이라도 거기서 느끼는 즐거움은 또 다른 희열을 안긴다고 했습니다.
낭독하는 사람만큼 시도 각양각색이에요. 한 번 들어도 고객을 끄덕이게 하는 시, 여러 번 들어야 비로소 이해하는 시, 들을 때마다 다른 느낌을 전하는 시 등을 적절히 섞는데요. 어떤 작품의 스트리밍 횟수가 가장 많았는지, 재생시간은 얼마나 됐는지 등을 수집해 그것을 바탕으로 시를 선정하기도 해요. 이와 함께 격월로 정기공연을 열고 현장을 찾은 사람들의 의견을 반영해 작품을 고릅니다.
정기공연은 서비스 이용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통로임과 동시에 시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에요. 그때마다 다른 장소에서 다른 콘셉트를 선보이는 유목식 공연이에요. 새 낭독 음원을 발표하고 그것을 들은 참가자들이 대화하는 시간은 늘 있어요. 독자가 주체가 돼 작품 해석이 이루어진다는 개념의 ‘수용 미학’의 장을 마련하고 싶은 강 대표의 바람이 담겼습니다.
강 대표는 청자뿐 아니라 낭독자에게도 색다른 경험이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화면 뒤에서 목소리만 냈던 성우들이 무대에서 자신의 얼굴과 감정을 고스란히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적기 때문이에요.
시간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 팔로우나 정기공연 참석자를 바탕으로 서비스 이용 패턴을 분석하기도 해요. 그 결과에 따르면 시를 잘 아는 사람보다 시를 접하고 싶은 사람들이 시간을 더 많이 찾는다고 해요.
창작자에게도 좋은 플랫폼 돼야
낭독 음원 말고도 일상 정보의 접점을 활용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특징이에요. 이를테면 실시간 날씨와 어울리는 작품을 큐레이션 하는데요. 시간에 맞춰 알람시계가 울리는 것처럼 말이에요. 타깃층이 문학 독자만이 아님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시간은 대중 독자와 문학 독자 모두 타깃으로 삼고 있어요. 다만 향후 유료 구독서비스를 위해서는 핵심 서비스를 이용하는 문학 독자를 주 소비층으로 하고 있어요.
시를 들려주고, 이야기한다는 콘셉트만 조명하면 시간이 기업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는데요. 과연 문학을 기반으로 돈을 벌 수 있겠느냐는 우려도 생깁니다. 그러나 시간은 엄연히 수익을 내야 하고, 내고 있는 회사입니다.
강 대표는 ‘시인은 돈을 벌기 힘든 직업’이라는 편견을 깨뜨리고 싶어 합니다. 출판계에선 흔하지 않다는 디지털 계약을 고수하고, 비즈니스 저작권을 공부하는 팀원을 두고 있는 것도 그래서예요. 저작권 계약에 어두운 작가들에게 때에 맞춰 수익을 나눠주고 그것이 더 나은 창작 환경을 조성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에요.
마지막으로 시 그리고 문학이 어떤 존재인지 묻자, 그가 웃으며 대답했어요. “애증이요.” 그것들이 자신에게 좋은 영향력을 안기는 존재임은 분명하나, 그것을 통해 무언가를 얻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너무 크다고 했습니다. 시간 서비스 이용자들은 그런 부담감을 내려놓았으면 합니다.
스마트폰이 보편화되면서 세대를 막론하고 유튜브나 SNS를 통해 다양한 정보를 접하고 있어요. 특히 청소년과 어린이들은 스마트폰을 많이 사용하다 보니 책과 점점 멀어지고 시와 같은 문학작품과도 만날 기회가 줄어들 수도 있는데요.
좀 더 쉽고 가깝게 일상에서 시를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시간(詩間)과 같은 플랫폼을 통해 부담 없이 시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귀뚜라미 우는 가을밤, 아름다운 시 한 소절 들어보고 깊은 가을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