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버스기사'가 말하는 1일 2교대 단축근무의 나비효과

조회수 2018. 6. 14. 12:1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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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부터 저녁 11시까지, 총 18시간 근무. 버스 기사님들의 흔한 노동 시간이에요. 이처럼 고된 격일제 근무를 하던 버스 기사님들도 오는 7월부터 노동 시간 단축으로 1일 2교대 근무를 하게 되었죠.

저녁이 있는 삶, 기사 부족 대란 등 전문가들 사이에 여러 의견이 오가는 요즘, 위클리 공감은 얼마 전 버스 기사의 삶에 대한 책을 펴낸 현직 기사 허혁 씨를 만나봤어요. 2교대 근무 중인 버스 기사님이 들려주는 이야기, 지금부터 함께 들어볼까요?

“1일 2교대 단축근무, 저절로 승객에 미소짓죠”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늦은 밤 버스에 탄 이들은 피로한 인생을 사는 이들이고, 그들이 탄 버스 역시 과로사회의 최전방을 달리고 있어요. 동트지 않은 새벽에 라이트를 켜고 운행을 시작해 어둑한 밤길에 버스를 몰아 종점에 들어가면 기사는 초주검이 되죠. ‘친절’, ‘미소’ 등의 캠페인은 녹아내리는 육신 앞에서 구호일 뿐이었어요. 


하지만 1일 2교대 시범근무로 바뀐 뒤로는 억지로 웃으려고 하지 않아도 입가가 가벼웠어요. 그전부터 이미 일주일에 두 편씩 꾸준히 글을 써왔죠. 몸이 살만 해지자 글도 순해졌어요. 그렇게 모인 글이 한 권의 책이 된 거죠. 완성된 책을 보고 있노라면 괜히 울컥 눈물이 나기도 했어요. 전주에서 시내버스를 운전하는 허혁 씨가 쓴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는 길의 글이고, 글의 길이에요.


“작가보다 기사라고 불러주세요”

출처: 전주 전일여객에서 근무하는 버스기사 허혁 씨 ⓒ 유슬기

허혁 씨는 올해 쉰둘이에요. 마흔다섯 살 때부터 대형버스 운전을 했죠. 관광버스 운전을 2년 했고, 시내버스로 갈아탄 지는 5년이 됐어요. 그 전에는 스무 해 가까이 가구점을 했어요. 가구점이 문을 연 오전 9시부터 저녁 9시까지는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떠나지도 못한 채 네모난 가구들에 갇혀 빚을 갚았죠. 가구점 문을 닫고 버스를 모니, 다른걸 떠나 멀리 나갈 수 있어 좋았대요. 정해진 길을 성실히 왕복하기만 하면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도 좋았구요.


“가구점을 할 때는 글을 쓰지 못했어요. 빚을 갚아야 하니까 마음에 여유가 없었어요. 대신 책을 많이 읽었어요. 가구점의 일은 기다리는 시간이 많거든요. 책이 마음에 새겨져서 육화(肉化)가 될 때까지 읽었어요. 그 시절 책은 저에게 ‘구원’이었습니다.”


쌓여진 문장들은 버스를 타고 달리면서 글이 됐어요. 승객이 버스기사를 선택할 수 없듯 기사도 승객을 선택할 수 없어요. 승객과 기사의 연은 길에서 만들어져요. 버스를 운행하는 이들은 때로 버스의 일부처럼 ‘투명인간’ 취급을 받아요. 그림자처럼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듯한 자리에서 바라보는 세상의 풍경은, 그야말로 투명하죠.


“착한 기사를 만드는 비결, 단축 근무와 글쓰기”

출처: 허혁 씨가 쓴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 ⓒ 수오서재

“책을 내고 난 뒤에 가장 보람 있는 말이 ‘버스 기사를 다시 보게 되었다’는 말이에요. 저뿐 아니라 저마다 생활 반경에서 이용하는 버스 기사들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다시 돌아보게 됐다는 말을 들으면, 정말 기분이 좋죠.”


바깥에서 보는 버스는 평화로운 여행 중이지만, 버스 안은 항상 아수라장이에요. 기사는 운전원이면서 승무원인 동시에 청소원이에요. 언제 누가 음료를 쏟아 버스 안을 어지럽힐지, 누가 내릴 차례를 잊고 벨을 뒤늦게 눌러 발을 동동 구를지에 대비해야 하고, 횡단보도에서 버스를 타겠다고 도로를 가로지르는 사람에게 문을 열어줄지 고민하는 동안에, 문을 열면 뒤에 따라 들어오는 차나 오토바이는 없는지 주시해야 하죠.


“원래 나쁜 기사는 없고 현재 그 기사의 여건과 상태가 있을 뿐이다. 누구나 잘하고 싶지 일부러 못하고 싶은 기사는 없다. (…) 그러나 나쁜 상태를 좋은 상태로 즉각 돌리기가 어려웠다. 내 신경증이 뿌리 깊은 데다 장시간 운전을 견디기 힘들었던 탓이다.”(<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44~45쪽)


운전 경력 3년이 지나면서 일에 익숙해졌어요. 무엇보다 꾸준한 글쓰기는 그를 ‘착한’ 기사로 만들었죠. 안팎으로 동요하던 마음이 훨씬 순해졌어요. 여기에는 구조의 변화도 영향이 있었다고 해요.


“격일제 근무에서 1일 2교대 근무로 바뀌면서 일상이 달라졌어요. 퇴근하고 가족과 함께 ‘무한리필 삼겹살’도 먹을 수 있게 됐어요. 그전에는 퇴근도 늦었지만 쉬는 날에는 피로를 풀면서 또 18시간 근무할 수 있는 몸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마음에 여유가 없었어요. 교대 근무로 바뀌면서 그야말로 ‘저녁이 있는 삶’이 시작됐죠. 단축 근무를 하면서 저는 버스 일이 더 좋아졌어요. ”


“버스 기사가 늘어나면 승객이 안전해집니다”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버스 기사는 자신뿐 아니라 승객의 생명을 안고 달려요. 그가 도로에서 만나는 숱한 생명들도 함께 책임지죠. 최근 잇따라 발생한 버스의 대형 교통사고를 보면 대부분이 졸음운전이었어요. 사고를 낸 기사 탓만 하기엔 이들을 둘러싼 노동 조건이 가혹하죠. 허혁 씨는 이를 두고 “시한폭탄이 달리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라고 말했어요. 그럼에도 단축 근무를 시행하면 버스 운전자가 부족해져 ‘버스 대란’이 일어날 것이라는 지적이 나와요. 한국교통연구원은 올해 7월부터 버스 운전자가 1만 3000명 부족할 것이라고 예상했어요.


“버스 운전사가 부족하다면 양성하면 되지 않을까요? 운전기사는 노동환경만 개선된다면 정말 좋은 일자리입니다. 현재의 노동 조건에서는 젊은이들이 기피할 수밖에 없습니다.전국의 기사들을 관리하고 보호하는 ‘시내버스청’ 같은 제도를 만들어 새로운 기사들을 육성해 기사를 채용하면 승객의 안전도 보장되고, 안정적인 일자리가 공급돼 실업률도 줄이는 효과가 있을 겁니다.”


전주 시내 굽이굽이를 운전하는 버스 기사 허혁 씨는 버스의 안과 밖뿐 아니라 버스의 미래도 내다봐요. 그의 책은 제도가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유의미한 증언이죠. 미래를 바꿀 정책은 책상 위가 아닌 도로 위에 있을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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