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레슬러'로 돌아온 유쾌한 해진 씨의 진솔한 인터뷰

조회수 2018. 5. 17. 12:1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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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내내 유쾌한 웃음을 선사했던 영화 ‘럭키’ 이후 또 한 번 찾아온 유해진 표 코믹 영화 ‘레슬러’. 이번에도 역시 실망시키지 않았다는 평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어떤 배역도 실제 자신인 듯 무섭게 몰입하는 모습 뒤에는 여전히 라디오를 즐겨듣고, 크고 작은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소탈한 사람 ‘유해진’이 있어요. 오늘은 유쾌한 해진 씨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봐요. 


“갈수록 부모님 생각이 사무쳐요.”

“늘 겸손해라.”


유해진이 아버지에게 늘 듣는 말이라고 해요. 유해진은 같은 소리를 반복하는 아버지에게 “아 또 그 소리, 네네 알겠어요” 하고 넘어갈 때가 많죠. 마치 영화 ‘레슬러’ 속 귀보(유해진)와 성웅(김민재) 부자 같아요.


그의 말대로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는지, 부모는 자식을 항상 ‘짝사랑’해요. 그 한없이 지고지순한 사랑 이야기가 유해진의 마음을 울렸다고 해요. ‘레슬러’는 어버이날 다음 날인 5월 9일 개봉했어요. 아직 부모가 되어보지는 않았지만 갈수록 부모님 생각이 사무치는 유해진은 이번에도 덥석 ‘아버지’ 역할을 맡았어요. 자랄 때는 아버지의 말씀을 건성으로 듣는 둥 마는 둥 했다고는 하지만, 그 숱한 말들은 이미 그의 몸에 새겨져 피가 되고 살이 되었죠. 


언제 만나도 그는 늘 겸손해요. 조연이었다가 주연이 됐다고 해서, 악당이었다가 주인공이 됐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아요. ‘바다 해(海)’에 ‘참 진(眞)’ 자를 써 ‘참바다’ 씨라 불리는 그는 어느새 ‘모두에게 사랑받는’ 배우가 되었어요. 인터뷰 자리에도 ‘삼시세끼’에서 입었던 것 같은 바람막이 점퍼에 군용모자 차림이었던 그. 작품 안의 인물과 바깥 인물 사이에 위화감이 없었어요. 그래서 그가 머물던 촬영장에서는 여러 미담이 들려와요. 대전에서 ‘레슬링’을 촬영하던 더운 여름날에는 근처에서 소방훈련을 받는 대원에게 “고생한다”며 아이스커피를 대접하기도 했어요. 그 미담은 제보자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지만 유해진은 곤혹스러워하며 “매일 같은 장소에서 만나는 이들이라 그런 건데, 내세울 일도 아니다”라고 손을 저었어요. 칭찬이 이어지거나 멋쩍은 순간이 오면 쑥스러운 듯 모자를 벗고 괜히 머릿속을 긁적여요. 나이가 많든 어리든 사람들은 그에게 마음을 열어요. 영화에서나 예능에서나 그를 바라보는 마음은 한결같이 다정하죠. 유해진이 그곳에서나 이곳에서나 한결같아서일 거예요. 그럼에도 그는 “어이구, 무슨요”라며 손사래를 쳐요. 


아날로그 감성의 참바다 씨

출처: 롯데엔터테인먼트
5월 9일 개봉 영화 ‘레슬링’ 에서 프로레슬러이자 프로살림러인 귀보 씨를 맡은 유해진

인터뷰 장소에서 유해진은 기자가 가진 IT 장비들에 관심을 보였어요. “요즘에는 이런 것을 쓰느냐”면서 도리어 질문을 건네기도 했고요. 자신은 신문물에는 영 젬병이라며 신기하게 바라봤어요.


“아침에 일어나면 라디오를 듣거나 등산을 가요. 산에서 걷는 걸 좋아하거든요. 돌아오면 또 라디오를 들어요. ‘배철수의 음악캠프’는 오랫동안 들어왔죠. 요즘도 가끔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붉은 돼지’를 틀어놓고 볼 때가 있어요. 뭔가 거칠고 투박한데 저는 그런 감성에 마음이 흔들리더라고요.”


‘레슬러’는 프로레슬러이자 프로살림러인 귀보 씨의 일상을 담았어요. 운동도 프로답게, 살림도 프로답게 하는 게 유해진에게 맡겨진 역할이었죠. 레슬링은 배워야 했지만, 살림은 배울 것도 없었다고 해요. 빨래판에 손빨랫감을 올려놓고 비누 거품을 내서 박박 문질러대는 일은 늘 하던 일이거든요. 집안 청소나 설거지도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린 일이 없다고 해요. 작품을 하지 않을 때는 늘 집에 머무는데 굳이 일하는 사람의 도움을 받을 이유가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에요. 반면 레슬링은 달랐다고 해요. 등산도 다니고, 자전거도 꾸준히 타서 체력은 웬만큼 괜찮을 줄 알았는데 프로레슬러의 몸을 갖는 일은 쉽지 않았죠. 뜨거운 여름, 체육대학교 연습장에서 비지땀을 흘리며 레슬링을 몸에 익혔어요. 몸이 레슬링의 동작을 기억할 정도가 되자, 그 숨 가쁜 동작 속에서도 감정을 담을 수 있게 됐다고 해요.  


“귀보가 아들과 경기를 하면서 아들한테 들려서 넘어가잖아요. 내가 키운 내 자식인데, 그렇게 넘어가는 장면이 너무 슬프더라고요. 실제로 그 장면은 찍을 때도 슬펐고 보면서도 슬펐어요. 눈물이 나서 혼났어요.”  


대본에는 여러 말이 적혀 있었지만, 유해진은 그저 “미안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고 했어요. ‘아빠 때문에 네가 힘들었다면, 아빠가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그런 마음이었죠. 


“저도 그런 자식이었죠. 부모님이 연기를 못하게 하셨을 때 그렇게 서럽더라고요. 제가 뭘 해달라는 게 아니고 연기만 할 수 있게 해달라는데 그걸 왜 막으실까 싶어서요. 지금은 그게 어떤 마음이셨는지 알겠어요. 고생길을 가게 하고 싶지 않으신 거죠.” 


군대에서 휴가를 나오면 집에 가기가 그렇게 싫었다고 해요. “제대하면 뭐 할 거니?” 부모님이 하는 말씀이 똑같았기 때문이죠. 물론 유해진의 답도 같았어요.  


“몇 번을 말씀드려요. 저 연기할 거라고요.” 


그런데 말년 휴가를 나왔을 때는 달랐다고 해요. 제대하면 뭐 할 거냐고 물으셔서, 연기하겠다고 했더니 “그래, 그럼 열심히 해라.”라는 대답이 돌아왔어요. 연기를 하겠다고 고집을 피워 연기자가 된 막내아들이 잘되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어머니는 지금도 유해진의 마음을 아프게 해요. 이제 유해진도 그때 어머니의 나이 정도가 됐는데, 어머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를 자꾸 되짚어보게 된다고 해요.


“전에는 잔소리라고 생각했는데, 제 안에 다 남아 있더라고요. 지금 워낙 고령이라 아버지는 편찮아서 누워 계시는데 찾아뵐 때마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려고 해요. 형들은 아직도 못해요(웃음). 근데 저는 이제 하려고 노력하니까 되더라고요.” 


전에는 엄하고 무서웠던 아버지가 지금은 작아 보인다고 해요. 형들은 아직도 아버지가 무섭다고 하는데 유해진 눈에 이제 아버지는 귀여울 정도니까요. 


“아버지가 병원에 계세요. 환자복 주머니에 늘 손수건을 두고 계시다가 닦을 게 생기면 닦으시고요. 제가 한번은 병원을 갔는데 주머니를 뒤지시는 거예요. 저는 ‘어유, 아버지 됐어요. 됐어. 저 용돈 있어요’ 하는데도 계속 찾으세요. 나중에 봤더니 손수건 꺼내려고 하시는 걸 제가 못하게 막은 거죠. 겨우 주머니에서 꺼내신 손수건을 보면서 아버지도 저도 엄청 웃었네요.” 


기회는 늘 오는 게 아니죠. 잘해드리고 싶을 때 부모님은 곁에 계시지 않거나 건강하지 않으니까요. 그 기회를 놓친 아쉬움이 작품 안에도 묻어 있다고 해요.  


“제가 아들 때문에 속 썩으니까, 제 어머님 역으로 나오는 나문희 선생님이 그러시잖아요. ‘얘, 너는 자식 때문에 20년 속 썩었지? 나는 40년을 속 썩었어!’ 근데 또 자식은 그 말이 듣기 싫잖아요. 그런 건가 봐요(웃음).” 


“이제는 잘해드릴 수 있는데…”

출처: 롯데엔터테인먼트
5월 9일 개봉 영화 ‘레슬링’ 장면

유해진은 이 영화가 결국 성장하는 이야기라 좋았다고 했어요. 자식을 레슬링 금메달리스트로 만드는 데 인생을 걸었던 귀보는 천천히 자기의 인생을 찾아가요. 아들에게는 아들의 인생이, 자신에게는 자신의 인생이 있음을 깨닫고 이 둘을 분리해나가죠.


“제가 자식이 있더라도 저 역시 그렇게 쿨하게 대하지는 못할 것 같아요. 부모자식 사이가 ‘어, 너는 그렇게 생각하니? 그렇구나’ 하고 넘어갈 수 있는 사이가 아니잖아요. 제 자식이 저처럼 연기를 하겠다고 해도 ‘그래, 그럼 해봐라’ 하지는 못할 것 같아요.” 


‘레슬러’를 마치고 새삼 놀란 게 있다고 해요. 영화를 찍으면서는 귀보가 굉장히 일찍 결혼해 아이를 낳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자신의 나이를 돌아보니, 그렇게 일찍도 아니었던 거죠.  


“가만있어 보자. 제가 지금 마흔아홉이니까… 스무 살짜리 아들이 있다고 해도 그렇게 일찍 낳은 건 아니네요? 어허허, 정말 그러네. 야… 정말 그렇구나.” 


유해진은 늦둥이예요. 어머니 나이 마흔에 막내아들을 낳았죠. 청주에서 자라 연극을 하고 싶어 무작정 극단생활을 시작했어요. 충청대학교에서는 의상디자인을 전공했지만, 군 제대 후 다시 시험을 쳐서 서울예대 연극학과에 들어갔어요. 그 사이에는 쭉 극단생활을 했고요. 극단에서 해보지 않은 일이 없다고 해요. 무대를 지었다가 부수는 일부터 작은 소품, 의상 하나도 직접 만들었어요.  


“‘삼시세끼’에서 제가 보여준 모습도 아마 그런 데서 온 걸 거예요. 필요하면 만들어서 써야 된다는 생각이 있거든요. 차승원 씨도 늘 음식을 만들어왔으니까 거기서도 그렇게 만든 거죠. 평소에 인터넷이나 책 보면서 만들었다면 그런 모습이 안 나왔겠죠?” 


평소 모습이 작품에도 묻어나요. 작품에 들어가기에 앞서 철저하게 준비하는 건 그런 이유에서고요. 나도 모를 정도로 그 인물 안에 들어와 있어야 그 인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아들에게 실없는 농담을 던지는 애드리브나 아재개그도 그런 열심에서 나왔다고 해요. 아빠들은 늘 재미없는 농담을 하고 혼자 웃으니까 말이죠.  


“아들로 나오는 김민재가 참 열심히 했어요. 그 친구가 한 레슬링은 다 진짜예요. 그래서 제가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너무 욕심내지 말라’고 했어요. 우리는 이 한 장면, 한 작품 하고 말 게 아니잖아요. 그렇게 열심히 하는 후배들을 보면 참 좋아요. 제가 이번에 작품 복도 있고 파트너 복도 있었던 것 같아요.” 


‘너무 무리하지 마라’, ‘너무 욕심내지 마라’는 그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해요. 아직도 ‘좀 더 해봐야 하는 순간’과 ‘여기서 멈춰야 하는 순간’의 균형을 찾는 게 어렵지만, 그 균형을 찾는 게 또 배우의 일이니까요. 지금도 비가 오면 쑤시는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라고 해요. 몸을 버리면 하고 싶은 연기도 하지 못하게 되는데 말이죠.  


너무 욕심내지 않고, 그저 겸손하게

출처: 롯데엔터테인먼트

그래서 유해진은 다시 부모님의 말씀을 생각해요. “꼭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과, 어떤 순간에도 “겸손해야 한다”는 당부. ‘택시운전사’와 ‘1987’에 이어 ‘레슬러’까지 개봉을 맞은 유해진은 곧 ‘완벽한 타인’과 ‘말모이’에서도 모습을 드러낼 참이에요. 가장 쉬지 않고 일하는 배우이자, 타율이 높은 배우이기도 한데 여전히 ‘믿고 볼 수 있는 배우’가 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아요.


“현장에 있을 때가 제일 좋아요. 작품에 들어가기 전에는 물음표였던 순간들이 현장에서 느낌표로 바뀔 때가 있거든요. 그게 안 찾아질 때는 괴롭지만, 그 순간이 딱 찾아오면 정말로 행복해요. 그런 날은 술을 한잔 해도 기분이 좋고, 함께 밥을 먹어도 맛있고요.” 


현장에 있지 않은 날에도 현장을 꿈꾸며 사는 배우는 요즘 요리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고 해요. 대단한 요리는 아니고, 기본적인 찌개와 국을 끓이는 정도지만요. 그중에서도 최근에는 나물에 관심이 많다고 해요. 나물 요리 하나만 있어도 밥을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그는 특유의 사람 좋은 웃음으로 부지깽이나물을 추천했어요.  


“부지깽이나물 드셔보셨어요? 그게 울릉도에서 나는 건데 맛이 기가 막혀요. 그걸 맛있게 좀 무쳐 먹고 싶은데, 아직은 내공이 부족하네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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