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 동안 같은 목적지로 향하는 수상한 택시운전사

조회수 2017. 12. 22. 09:1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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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택시 운전사와 다를 바 없어 보였습니다. 지난 30여 년 동안 그가 운전한 택시의 진짜 목적지를 듣기 전까진 말이죠. 도움이 필요한 곳을 향해 달린다는 사랑 실은 교통봉사대 한건수 부대장을 위클리 공감이 만나보았습니다.


지난 12월 9일 오후 서울 대림동 소재 ‘사랑 실은 교통봉사대(이하 교통봉사대)’ 사무소로부터 크고 작은 대화 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교통봉사대는 봉사활동을 매개로 전국 38개 지역을 하나로 잇는 봉사단체입니다. 이날 사무소에서는 매달 두 번째 토요일 열리는 월례회의가 한창이었습니다. 지난 활동은 어땠는지, 앞으로 어느 곳을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 등이 오늘의 주요 과제였습니다. 교통봉사대원들의 대화에서 강한 책임감이 읽혔습니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건 한건수 부대장의 역할이었습니다. 한 부대장은 다른 봉사대원들과 마찬가지로 나눔 활동을 실천하면서 교통봉사대 지침을 벗어나는 행동을 규제하는 임무도 맡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그 공적을 인정받아 행정안전부가 주최한 ‘2017 대한민국 자원봉사대상’ 시상식에서 국민훈장 석류장을 수상하기도 했다고 하는데요.

사진=한건수 부대장이 수여 받은 훈장 | C영상미디어

“교통봉사대 대원 전부 자발적으로 봉사하는 분들입니다. 상을 받게 돼 영광이지만 다 함께 받아야 할 상을 제가 대표로 수상했다고 생각하면 미안함마저 들어요. 더욱 열심히 활동하라는 뜻으로 알고 처음과 같은 마음으로 봉사하겠습니다.”



교통봉사대가 출범한 때는 1986년 2월. 한 부대장이 교통봉사대원으로서의 활동을 시작한 것도 같은 해 11월이었습니다. 그가 교통봉사대의 지난 행적을 모두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교통봉사대의 발대 배경은 심장병 어린이 수술 지원이었습니다. 심장병을 앓는 자녀를 둔 택시 운전사가 막대한 수술비 걱정 탓에 생업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는 실정을 고려, 처음엔 동료를 돕는다는 생각에서 시작됐는데 지금까지 수술을 받은 어린이는 876명에 달합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교통봉사대의 나눔에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심장병 어린이가 과거보다 크게 줄자 교통봉사대의 손길은 다른 곳까지 닿았는데요. 무연고 독거노인의 장례를 치러주는 일이었습니다. 장례절차의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하며 1년에 한 번씩 합동 제사도 지냅니다. 2007년부터 현재까지 독거노인 300여 명의 마지막을 배웅했습니다. 또 김장 봉사와 수해복구, 장기기증, 골목길 어린이 교통사고를 예방하는 놀이터 가꾸기, 전국순회 교통안전 캠페인 등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간다는 게 교통봉사대의 이념입니다. 

사진= 마음처럼 따듯한 미소를 띄고 있는 한건수 부대장 l C영상미디어

“매년 교통사고 사망자가 5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 수치를 조금씩 줄여나가자는 취지로 한 달에 한 번 38개 지역을 순회하며 캠페인을 실시합니다. 250~300명의 대원들이 모여서 직접 제작한 플래카드와 전단지를 배포하는 형태예요. 앞으로는 시대에 맞춰 봉사 형태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교통봉사대의 명칭에서 미루어 알 수 있겠지만 구성원 중 80%는 택시기사입니다. 대원들이 운전하는 택시에는 교통봉사대 소속임을 보여주는 징표가 부착돼 있습니다. 유니폼 한편에 위치한 견장은 ‘어떤 어려움에도 웃음으로 대처하자’는 의미의 활짝 핀 무궁화를 형상화했습니다. 무궁화가 지닌 강인함을 본받아 변함없이 활동하자는 뜻도 담겼습니다.  

“봉사대 복장과 징표는 우리의 자부심이에요. 이 복장을 하면 불친절할 수가 없어요. 노약자나 무거운 짐을 든 승객이 안전하게 승하차할 수 있도록 나서서 돕고 있습니다.”

사진= 2013년 12월 충남 보령에서 봉사대원들이 무의탁 노인을 위한 김장 봉사를 하고 있다. l 사랑 실은 교통봉사대

가입원서 기준 봉사대원 수는 전국 1만 5250명으로 저마다 거주하는 지역의 이웃을 돕고 있습니다. 교통봉사대 출범 초기 경상도 대원들은 그곳에서 모인 기금으로 전라도 어린이의 심장병 수술을 지원하고, 전라도 대원들은 경상도 어린이를 도운 적이 있습니다. 한 부대장은 “이 사례가 뭐 얼마나 특별한 것이냐고 할 수 있지만 지역감정이 심화됐던 당시 화합을 이루기 위해 일조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고(故) 문성관 대원의 이야기도 전했습니다. 4년 동안 강릉 지역에서 활동했던 문 대원은 1999년 저수지에 빠진 아이를 구하고 목숨을 잃었는데요, 이후 그는 제52호 의사자로 선정됐고 그가 떠난 강변에는 흉상이 세워졌다고 합니다.

 

한 부대장은 개인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현장 모습도 생생하게 덧붙였습니다. 영하 10도를 웃도는 날씨에 청담대교에서 교통 캠페인을 하던 중 입이 얼어붙어 떨어지지 않았던 기억, 서울로 초대한 전남 여수 초도의 어린이들을 기다리며 대원들과 바깥에서 컵라면을 끓여 먹었던 기억 등. 

한 부대장에게 교통봉사대는 조금 더 각별합니다. 그의 둘째 아들도 교통봉사대의 후원을 받아 심장병을 치료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를 떠올리던 그의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금세 눈물이 차올랐습니다.

 

“수술 받은 아들이 이제 두 아이를 둔 아버지가 됐어요. 아들은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터라 여유가 생길 때만 봉사활동을 함께하고 있어요. 국민훈장 수여식에서 아들과 약속했습니다. 언젠가 우리(현재 활동 중인 대원들)가 하늘나라에 가게 되면 다음 세대인 너희가 봉사대를 이끌어달라고요.”  


건물 주차장 귀퉁이에서 자그맣게 시작된 사랑 실은 교통봉사대는 31년을 달려왔습니다. 그동안 한 부대장의 온기 담긴 택시도 달렸습니다. 인생의 절반에 가까운 시간이었는데요, 긴 시간 봉사해온 이유를 묻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좋으니까요.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는 것, 정말 가슴 벅찬 일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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