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때문에 파혼할뻔한 사연

조회수 2020. 10. 28. 10:1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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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가 종교가 다를 경우, 결혼식은 어떻게 진행될까?

10월, 코로나 여파로 맑은 공기를 맘껏 들이마시지 못했지만, 유난히 짙은 파란 하늘이 인상적인 날이었다. 하객으로 참석하기도 하객을 초대하기도 쉽지 않은 나날이 이어지고 있지만, 필자는 감사하게도 예식 몇 개에 연달아 초대받을 수 있었다. ‘프로하객러’의 마음으로 결혼식에 참석했다.


축의금을 받는 자리 근처엔 하객 답례품이 겹겹이 쌓여있고 식장 내에서도 입장을 엄격히 제한하는 등의 긴장감이 곳곳에 형성됐다. 그럼에도 차분히 진행된 결혼식. 인상적이었던 건 이들 결혼식에서의 주례가 ‘목사님’이셨다는 점이다. 대부분, 부모님의 축하인사와 덕담으로 대신되던 주례는 백발이 성성한 목사님이 담담히 맡고 계셨다. 


주변에 같은 종교를 가진 이가 없어 보기 힘들었던 기독교식 예식. 지인이 ‘신랑이 집안을 뒤집어 놓아 저 정도로 치르는 것’이라 덧붙였다. 듣고 보니 그랬다. 우리가 기도하거나 예배를 보고 있진 않았다. 그럼 그렇지, 머릿속 한켠에 비슷한 사례가 스쳤다.

결혼식 내내 눈물짓던
신부의 아버지(?)

친구 S의 결혼식 당시 사진을 다른 친구들과 둘러앉아 구경할 때였다. 결혼식 사진을 보며 ‘이 때로 돌아가고 싶다’, ‘결혼식에서 예뻤다’는 둥 여러 칭찬과 아쉬움이 가득 섞인 말을 하며 사진을 넘겨봤다. 그러던 중 신랑, 신부가 중간에 기도를 하는 사진을 발견했다. 이 친구가 언제부터 독실한 교인이었지? 궁금해졌다. 필자의 의문을 파악했다는 듯, 친구는 ‘남자친구 가족이 모태 신앙이었다’고 했다.

출처: 레인 컴퍼니 / 사진과 내용은 무관합니다

뭐 좋다. 모태신앙일 수는 있지. 그런데 우리가 알기론 친구의 집은 불교인데? 이 예식… 가족끼리 합의된 사안이었을까? 질문이 머릿속에 가득 차 꼭 묻고 싶었으나 친구의 작은 한숨과 함께 이어진 말 때문에 입을 다물었다.


“결혼할 당시 남자친구 부모님의 소원이셨는데 어쩔 수 없었어. 그 날 하늘의 은총을 꼭 받으셔야 한다고 하셔서. 지금은 나도 교회 나가고 주님 믿으니까 좋아!”


집에 가며 다른 친구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사뭇 달랐다. 행복한 것과는 별개로 그날 S의 아버지는 결혼식 내내 딸을 보며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셨다고 한다. 그날 당연히 목사님은 가정의 화평을 기원하셨을 텐데. 정말 축복과 평안이 깃든 게 맞았을까? 필자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래도 지금 행복하면 됐지. 할렐루야!  

내가 결혼하는 거지,
엄마 소원 비는 장이 아니잖아요

위 사례와 더불어 비슷한 경우는 또 있었다. 친구 B와 남자친구의 양가의 종교가 달랐던 것. B는 부모님을 따라 일 년에 몇 번, 종교시설을 찾아가는 정도의 얕은 신앙심을 가진 편이었다.


문제는 결혼식 형태를 정할 때부터 친구의 의사결정권은 그리 높은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데 있었다. 남자 친구의 말이라면 언제나 '좋다', '괜찮다' 하던 터라 결혼식이 상대방의 종교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데서 반대하지 못했다. 그렇게 그들의 결혼식은 일반 예식이 아닌 특정 종교의 방향성을 띄고 진행됐다.

출처: 황바울 인스타그램(@suedoung) / 사진과 내용은 무관합니다

그 사이 B의 속은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왜 중간에 말하지 못했느냐는 타박이 있었어도, 쉽게 꺼내기 힘들었을 거라 짐작된다. 이전이나 지금이나 시가는 어려운 법일 테니 말이다. 남자친구가 ‘너 정말 이렇게 결혼하고 싶어?’라는 말에 서러움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고 했다.


서글픔과 답답함이 담긴 B의 눈물을 보며 남자친구는 급기야 집에 가서 ‘이렇게 엄마 하고 싶은 대로만 하면 결혼 안 해요’라고 소리쳐 일반 예식으로 최종 결정됐다. 그 대신 결혼 전, 종교기관에서 진행되는 교육 참석은 필수라는 조건을 달고.

종교와 배려 사이

이 땅에 나라가 세워지고 각 왕조가 흥망성쇠 하는 동안 토속종교부터 기독교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다양한 종교가 뿌리내렸는지 모른다. 종교의 자유도 엄연히 살아 숨 쉬는 만큼 존중되어야 하는 것도 당연하다. 문제는 결혼이다. 배우자 간 같은 종교를 만나야 평안하다는 말이 있지만, 어디 우리 마음대로 그게 쉬울까. 살아온 세월이 다른 만큼 우리 모두 신앙의 근원은 각자 다를 것이다. 혹은 없을 수도 있고.

종교인에게 종교란, 떼려야 뗄 수 없는 절대적인 요소다. 종교 안에서 삶을 일궈나가는 이들이 태반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각 모든 사회의 구성원이 같은 신을 섬기지는 않는다. 섬기는 것이 신인지 혹은 나 자신인지도 알 수 없다. 그런 상황에 같은 신을 섬겨야 한다 강요하는 건 폭력이다.


종교 예식 강요도 이 논리의 연장선이다. 상대방의 가정을 배려하지 않는 문제와도 같다. 부디 모든 예비부부가 결혼식 전부터 첫 단추를 잘못 꿰어 마음에 멍드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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