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과 성소수자 품은 콘돔 만드는 인스팅터스 박진아 대표

조회수 2021. 7. 1. 09:5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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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흐름에서 옳은 편에 서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지니고 있어요."

"역사의 흐름에서 옳은 편에 서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지니고 있어요."

인스팅터스 박진아 대표. 사진: VICE


사실 콘돔은 대부분 ‘비건 콘돔’이 아니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콘돔 대부분이 동물 실험을 거쳤거나 동물성 원료를 함유한다는 뜻이다. 비건의 개념은 사전적으로 엄격한 채식주의나 채식주의자를 뜻한다.

하지만 이제 이 개념은 음식을 넘어섰다. 패션과 화장품, 타투, 생활용품 등 생활의 전 영역으로 확장했다. 모든 영역에서 동물의 희생이 있었는지를 의식적으로 따지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유엔인구기금(UNFPA)에 따르면 한국뿐 아니라 대부분 국가에서 콘돔은 의료기기다.  

그래서 기업들은 엄격한 적합성과 안정성 평가를 통과해야 콘돔을 판매할 자격을 얻는다. 이 과정을 통과하기 위해 기업들은 토끼나 말과 같은 동물을 대상으로 실험해 얻은 결과를 정부 기관에 제출한다.

“암컷 토끼의 질 속에 콘돔 조각을 넣어 봉합해 뒀다가 죽이고 자궁을 적출해 콘돔의 신체 적합성을 판단하는 실험이에요. 시중의 콘돔은 대부분 개발 단계에서 이 실험을 거쳐요.”

최근 서울 성동구에서 만난 소셜벤처기업 인스팅터스 박진아(27) 대표는 동물 실험을 이렇게 설명했다. 인스팅터스는 국내 최초로 비건을 인증한 콘돔과 생리컵, 러브젤 등을 파는 섹슈얼 헬스케어 기업이다.

인스팅터스 박진아 대표. 사진: VICE

박 대표는 또 다른 공동창업자 성민현, 김석중 대표와 지난해 미국 경제지 포브스가 선정한 ‘아시아의 30세 미만 사회적 기업가 30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들에게 중요한 핵심 가치는 건강과 자연, 평등이다. 현재는 이 세 가지 키워드를 내걸고 한국을 넘어 아시아로 사업 영역을 확장할 준비를 한다.

박 대표는 콘돔의 적합성을 평가에 동물 실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체 실험으로도 충분히 가능한데 동물이 불필요하게 희생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동물 실험을 최소화할 방법을 연구해왔다.

인스팅터스의 제품은 국제동물보호단체 페타(PETA)의 공식 인증을 받았다.

이 인증은 동물에서 유래한 성분을 첨가하지 않고 동물 실험을 하지 않은 제품에 주어진다.

박 대표는 “(동물 실험을) 피할 수 있는데 피하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다”며 “희생을 줄여나가는 건 당연한 방향이라서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또 “지속가능성은 시대정신”이라며 “이런 생각은 전 세계적인 흐름이라서 무시하는 건 흐름을 놓치는 것이고 곧 도태를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인스팅터스 박진아 대표. 사진: VICE

요즘 소비자들은 단순히 제품을 보고 구매하지 않는다. 제품을 파는 기업의 가치를 보고 소비한다. 세계적 기업들도 비건 정책을 비롯한 사회적인 가치를 내세운다. KFC는 올해 비건 버거를 내놓았다. 화장품이나 패션에서는 이 흐름이 더 거세다. 사기업이 이런 조류에 동참하는 건 비건 친화적 제품에 관심을 두는 소비자가 많기 때문이다. 비건 친화적인 정책이 수익으로도 연결이 돼서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사회적인 가치를 내세우는 소셜벤처기업은 매출을 올리는 재주와 거리가 멀다는 편견이 있다. 하지만 인스팅터스는 가치를 내세우면서 사업에서도 성장하고 있다. 이들은 “2015년 설립해 4년 만에 매출 성장 50배를 이뤘다”고 밝혔다. 2015년 연 매출 5000만원, 2017년 15억원, 지난해 35억원을 돌파해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박 대표는 가치뿐 아니라 매출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회적 가치를 내세운 비즈니스도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인스팅터스가 추구하는 가치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아요. 그 사람들도 무시할 수 없는 게 결국 매출과 재무제표잖아요. 지표로 당당하게 증명하고 싶었어요."

남들과 다른 길을 가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엄청 어렵죠. 처음 사업할 때부터 다른 기업보다 훨씬 더 많은 장벽을 넘어야 했어요. 다른 곳은 얼마 주고 동물 실험해서 자료 제출하기도 해요. 저희는 어떻게든 동물 실험을 안 할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야 하니까요. 비용, 시간이 훨씬 더 들어요.”

박 대표가 동료들과 함께 신경 쓰는 건 동물뿐만이 아니다. 성적으로 소외된 사람들도 신경 쓰고 있다. “편견으로 콘돔을 구매하기조차 쉽지 않은 청소년, 무성의 존재로 인식돼 온 장애인, 타인의 왜곡된 시선 때문에 피임에 참여하기도 힘든 여성, 사랑할 권리마저 지탄받는 성소수자.” 이들도 동물과 마찬가지로 지구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충분히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 또 약자로 존재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인스팅터스의 콘돔 브랜드인 이브콘돔 상자 뒷면에는 이 문구가 적혀 있다.

“나이와 장애, 성 정체성, 성적 지향 등에 관계없이 누구나 안전하게 사랑할 권리가 있습니다.”


“제품이 팔릴 때마다 사회에 기여했으면 해요. 사람들은 성소수자가 주변에 없을 거라고 생각하잖아요. 청소년의 섹스도 생각하지 않고요. 문구를 보고 한 사람이라도 이런 사람을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또 이런 생각을 한다고 보여주고 싶어요. 이들을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문제의식이 공유가 되잖아요.”

박 대표가 동물이나 소수자와 같은 이들에게 신경을 쓰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

“사회가 약자를 대하는 방식이 그 사회의 성숙도라고 생각해요. 제가 사는 사회가 좀 더 좋은 사회이길 바라요. 강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더 많은 책임이 있는 거죠.”

사실 인권단체나 공공기관도 아닌 사기업이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는 일은 부담스러울 법도 하다.

사람들의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의견을 내세우는 건 기업의 이윤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사업 중간에 가치를 찾았던 것이라면 손실이 눈에 보였을 것”이라며 “초기부터 가치 중심의 선택을 했고 저희에게는 너무 당연한 일이라 한 번도 손실을 볼까 봐 두렵지 않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박 대표는 소비자들에게 볼멘소리를 들은 적도 있다.

“어느 날 '너네는 다른 건 다 좋은데 왜 게이들을 응원하느냐’는 내용의 메일을 받은 적이 있어요. 같은 맥락으로 이브가 서울퀴어문화축제의 주요 스폰서로 참여한 일도 비난받은 적이 있죠. 그때 여자들한테 돈 받아서 ‘똥꼬충’한테 준다는 식의 말을 들었어요. 하지만 이런 반응에 의연하려고 합니다.”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증명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사회적으로 옳은 방향이 비즈니스에서도 이득이 되는 길이니까요.” 박 대표는 “역사의 흐름에서 옳은 편에 서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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