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나지 않은 여성의 이야기를 전하는 페미니즘 서점 '달리, 봄'의 류소연 대표

조회수 2020. 4. 23. 14:2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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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대표는 이야기가 닿는 곳에 변화가 일어난다고 믿는다.
출처: 사진: JUNHYUP KWON
류소연 대표가 서울 관악구 독립서점 ‘달리, 봄’에서 인사하고 있다.

유명인이 아닌 이상 여성의 이야기는 사회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가부장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은 결국 어머니가 되기 때문이다. 어머니라는 역할에 갇힌 여성의 이야기는 쉽게 사회로 빠져나오지 못한다. 그동안 한국의 수많은 어머니는 그렇게 남의 이야기를 위해 사는 사람들이었다. 또 이들의 삶은 무시해도 괜찮은 이야기였다.

서울 관악구에는 이런 숨겨진 여성의 이야기를 드러낸다는 목표로 2017년 차려진 독립서점이 있다. 10평 안팎 규모의 서점 ‘달리, 봄’이다.

서점을 운영하는 류소연(30) 대표는 남자친구 주승리(27) 팀장과 ‘평범한 여성들의 결코 사소하지 않은 이야기’를 모으고 나눈다. 이들은 여성의 이야기가 담긴 서적을 판매할 뿐 아니라 여성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 출판한다. 찾아오는 손님은 아직 여성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다. 하지만 이들은 이야기가 닿는 곳에 변화가 일어난다고 믿는다.

역사학을 전공한 류 대표는 처음 외할머니의 삶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을 했다. 1933년 황해도 연백군에서 태어난 할머니의 삶에는 한국전쟁과 피란, 이산가족과 같은 굴곡진 한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할머니의 자서전을 쓰면서 여성의 이야기를 엮고 나누는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VICE는 최근 이 서점에서 류 대표를 인터뷰했다.


VICE: 여성의 이야기를 드러내는 게 어떤 의미가 있나.

류소연: 앞에서 선언을 통해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이 있잖아요. 반면 저희는 뒤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드러내 세상을 바꾸고 싶어요. 사실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이나 소수자들은 애초에 가진 ‘마이크의 크기’가 달라요.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런 사람들에게 ‘당신의 이야기가 드러낼 만한 것’이라고 얘기해주고 싶어요. 이렇게 하려면 그 전에 더 많은 사람의 이야기가 세상에 나와야 하고요. 그러다 보면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꺼낼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용기를 낼 수 있겠죠.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닿아서 세상이 조금씩 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여성의 이야기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대학교 때 역사학을 전공했어요.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여성사는 부차적인 학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여성이라는 정체성에 관심을 두게 됐어요. 지금까지 인식하지 못했지만 불편하다고 느끼던 일들이 사실 여성이라는 정체성과 연관 있다고 느꼈어요. 저는 이 세대 여성에 머무르지 않고 다른 세대 여성까지 연결해 생각하고 싶었어요. 어머니, 할머니. 여러 세대 여성의 역사를 기록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어떤 자랑할 만한 성과를 이뤘나.

‘허스토리 편집부’라는 이름으로 책 두 권을 냈어요. 지난 1월에 출간한 책은 ‘그 여자의 자서전’이라는 책이에요. 어머니를 인터뷰하는 방법이 담긴 가이드북이에요. 4월에 나온 책은 ‘찌찌가 뭐라고’라는 책이에요. 가슴과 여성의 몸에 대해 여러 명의 인터뷰를 엮은 모음집이에요. 이 밖에 책 모임도 만들어서 하고 있어요. 사이버 성폭력 강연을 해주실 연사를 모셨고요. 초등성평등연구회 선생님 등 다양한 분들이 오셔서 강연하셨어요.

여성 독립 가수 중심의 공연을 기획하고 있어요. 동네에 음악 하시는 주민분이 원래 손님이셨는데 제안을 먼저 해주셨어요. 여성 뮤지션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려고 해요. 가요계에도 차별이 있잖아요. 이 공간의 특징과 여성 가수들을 연결하려고 계획 중이에요. 또 이분들과 여성 뮤지션의 이야기를 담은 앨범과 책을 낼 예정이에요.

책방을 운영하면서 느낀 보람은.

사람들이 이 책방을 안전한 공간으로 생각해줬을 때 보람을 느꼈어요.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공간. 오시는 분께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여기는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울어도 괜찮은 공간’이라고 말해줬을 때 으쓱했죠.

페미니즘을 내세워 부정적인 시선도 느꼈는가.

책방에 오시는 한 손님한테 들었던 이야기예요. 그분 아버지가 동네에 ‘달리, 봄’이란 책방을 알고 있느냐고 물어봤대요. 그러면서 남성 혐오를 조장하는 단체라고 하셨대요. 그 여성분이 오셔서 ‘이런 아저씨들한테 계몽 같은 것을 할 수 없을까’라고 물어보시더라고요(웃음). 동네 분들 중에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초기엔 중년 남성분들이 갑자기 들어와서 책 좀 공짜로 달라고 하시는 경우도 있었어요. 술 마시고 오시는 분들도 있으셨고요. 특히 제가 혼자 있을 때 그런 일이 많았어요. 여자가 혼자서 가게를 운영할 때 겪는 어려움인 것 같아요. 남자친구가 여기 있을 땐 그런 일이 없었고요. 여자들끼리 모임 할 때도 이런 일이 있었어요.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은 필요한가.

페미니즘은 한국 사회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지금까지는 이런 관점 자체가 없었잖아요. 다양한 사람들의 요구와 목소리를 드러나게 하는 것 같아요. ‘페미니즘이 민주주의를 완성한다’는 말에 동의해요. 그동안 드러날 수조차 없었던 목소리를 드러나게 하는 정치적인 언어가 페미니즘이라고 생각해요. 단순히 계급의 눈으로는 사회를 모두 볼 수 없고요. 페미니즘이라는 관점이 있어야 사회를 더 입체적으로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한 마디로 페미니즘은 일상이 정치여야 한다는 운동이에요.

동거에 보수적인 사회에서 동거를 밝히는 이유는.

사실 주변에 동거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딱히 특별하진 않아요. 하지만 부자연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두 세계에 걸쳐 있던 셈이죠. 다양한 삶, 가족, 사랑의 형태를 보여주고 싶어요. 혼자 살 수도 있고요. 가족이 동성 연인이거나 동물일 수 있어요. 애정 관계가 아닐 수도 있고요. 결혼할 수도 있고 결혼 안 할 수도 있고요. 이런 삶도 가능하다고 전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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