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가난을 극복하고 세상을 바꿔나가는 미얀마 청년 이야기

조회수 2019. 10. 25. 11:5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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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방에서 액션스타 장 클로드 반담의 영화를 보고 보디빌더를 꿈꿨다.
출처: 미얀마 청년 섬두 뭉 반은 왼쪽에서 두 번째. 사진: SANA SENG LAT AWNG

미얀마 청년 섬두 뭉 반은 뼈만 앙상하게 남은 소년이었다. 그런데 북부 도시 미치나의 작은 비디오방에서 할리우드 액션스타 장 클로드 반담의 영화를 볼 땐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마음속으로 언젠가는 반담처럼 되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초등학교 시절 뭉 반은 해가 뜨기도 전에 일어나 남이 먹다 남은 음식을 받아먹었다. 그리고는 동네 체육관으로 가서 수업을 청강하는 조건으로 청소를 했다.

뭉 반은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보디빌딩 대회에 나가겠다는 꿈을 품었다.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선 정부에서 운영하는 체육관에 나가 훈련해야 했다. 하지만 막상 체육관에 가보니 감당하기 힘든 비싼 수강료를 내야 했다.

이제 36세가 된 뭉 반은 이 시절을 이렇게 회상했다. “대회에 간절히 나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트레이너가 운동을 시켜줄 때까진 집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해 질 무렵, 트레이너가 우두커니 서 있는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는 기회를 꼭 잡고 싶어 상의와 사롱(허리에 둘러 입는 천)을 벗고 식스팩을 보여줬다.

뭉 반은 VICE에 “속옷에 구멍이 나서 창피했지만 그래도 옷을 벗었다”고 털어놨다. 그동안 했던 훈련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그는 그날 무료 수강권을 손에 쥐었다. 결국 고교 대회에서 1등을 차지했고 국가 규모의 대회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제 포즈를 좋아했습니다. 당시 영화 속 반담처럼 다리를 찢었습니다."

미얀마는 2011년 군부독재 체제를 청산하고 민주주의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북부 도시 카친은 1961년부터 자치를 원하는 카친독립군과 미얀마군의 충돌 지역이었다.

두 세력은 2011년 휴전을 선포했지만 끊임없이 충돌했다. 이 때문에 1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중국의 윈난성과 국경을 맞댄 이 지역은 목재와 호박이 많이 나왔다. 그러나 부패로 인해 자원이 불법 유출돼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또 이 지역은 옥과 아편의 원료인 양귀비, 각성제의 일종인 필로폰의 주요 생산지이기도 했다. 부족한 일자리와 열악한 교육 환경에서 자란 이 지역 청년들은 마약에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

출처: 미얀마 청년 섬두 뭉 반이 운동하고 있다. 사진: SANA SENG LAT AWNG

뭉 반도 이런 환경에서 자랐다. 하지만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옥 채굴 지역으로 이사했다. 죽음의 경사로 악명 높은 가파른 절벽에서 옥을 채취해 조금씩 돈을 모았다. 이런 고난을 겪었지만 뭉 반의 머릿속은 온통 운동뿐이었다. 친구들이 달곰한 밀크티를 마실 동안 뭉 반은 ‘삶은 계란 청년’이란 별명을 얻을 만큼 계란을 많이 먹었다. 뭉 반은 2007년 미얀마 보디빌딩 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하루에 소고기와 계란 15알을 먹으면서 대회를 준비했다. 결국 그는 3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뭉 반의 다음 목표는 체육관을 오픈하는 일이었다. 친구들은 아무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모든 과정을 견뎠다.

“체육관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체육관 문화는 인기가 없었습니다. 이 점이 체육관을 운영하는 데 가장 힘든 점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신에게 기도했습니다. 언젠가는 좋은 장비를 구비한 멋지고 인기 많은 체육관을 열 수 있게 해달라고.”

뭉 반은 기대만큼은 아니었지만 친구와 함께 돈을 모아 작은 체육관 ‘더 킹(The King)’을 열었다. 하지만 첫 두 달이 지났는데도 회원은 단 세 명뿐 밖에 없었다.

자금이 점차 말라갔다. 뭉 반은 중국 국경 지역에서 일하는 벌목꾼을 지키는 보디가드 일을 시작했다.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업무 환경은 위험했고 상사는 거칠게 대했다. 하지만 중국 국경 지역을 오가면서 중국의 체육관을 들여다볼 기회를 얻었다.

뭉 반은 결국 2011년 4월 미치나에서 첫 현대식 체육관 ‘해머(Hammer)’를 오픈했다. 당시만 해도 미얀마에 소셜미디어가 널리 보급되지 않았을 때였다. 뭉 반은 오토바이를 타고 체육관을 홍보하러 다녔다. 웃통을 벗고 복근을 보여주면서 말이다.

“이제 페이스북을 쓸 수 있기 때문에 오토바이를 타고 홍보하러 다니지 않아도 돼요.” 뭉 반은 요즘 페이스북에 복근 사진을 올린다. 어떻게 보면 페이스북이 없었을 때부터 시대를 앞서 복근을 보여주고 다녔다. 그의 초기 회원들은 오전 4시에 단체로 몰려와 운동했다. 그래서 뭉 반은 그때부터 오후 10시까지 문을 열어 놨다.

하지만 금세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바로 정치적인 불안정. 2011년 6월 체육관을 개업한 지 두 달이 되는 달에 카친 지역에 내전이 다시 발생했다. 미얀마 전역의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해가 기울고 나서 활동에 제약이 많았다.

뭉반은 이제 더 이상 뼈만 남은 소년이 아니다. 지역의 건강한 운동 문화를 개척했다. 이제 미치나에는 뭉 반의 제자들이 운영하는 체육관이 20여곳이나 된다.

제자인 29세 라파이 자우 웡은 2017년 체육관을 열었다. 그도 뭉 반과 마찬가지로 역경을 겪었다. 부모님은 그를 지원해주지 못했다. 그래서 삼촌과 함께 살았다. 삼촌은 그를 대나무로 때려가면서 교육했다. 자우 웡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막노동을 했다. 훈련비와 식사비를 대기 위해 쉼 없이 일했다. 가족들은 도와주기는커녕 그에게 계란과 쇠고기를 나눠달라고 요구했다. 자우 웡은 체중을 늘리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출처: 미얀마 청년 라파이 자우 웡이 보디빌딩 대회 무대에 나가기 전 몸을 풀고 있다. 사진: LAHPAI ZAU AWNG

자우 웡은 현지 청년들이 건강한 생활 습관을 가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체육관을 열었다. 또 지역의 청년들이 마약이 아닌 운동에 빠질 수 있도록 격려했다.

“저도 집안이 가난하고 보살펴줄 수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약의 유혹에 빠져 방황했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운동 덕분에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않았습니다.”

자우 웡은 체육관 벽에 그와 다른 보디빌더들의 사진을 걸어 놨다. 또 몸 관리를 위한 조언도 적어 놨다. “체중을 줄이기 위해선 밥과 고기 껍질, 내장을 피하세요.”

매주 토요일 자우 웡은 출석률이 좋은 회원들을 대상으로 계란을 선물한다. 마을에 정전이 자주 돼서 러닝머신이 멈추는 일도 있다. 하지만 그는 기타를 꺼내 들고 어둠 속에서도 회원들이 힘을 내서 운동을 할 수 있도록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뭉 반은 자우 웡의 체육관을 비롯해 다른 제자들의 체육관을 경쟁상대로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체육관이 잘 될수록 오히려 자신의 성공이라고 여긴다고 한다.


“제자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저보다 더 많이 이룬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 사업이 사람들을 도울 수 있으면 좋겠어요.”

뭉 반이 8년 전 처음 체육관을 열었을 때, 현지 사람들은 운동에 빠진 사람들을 멍청하다고 생각했다. 또 그런 마니아들만 운동을 그렇게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뭉 반을 비롯해 보디빌더 500명을 훈련한 정부 체육관의 트레이너는 이렇게 말했다. “의사들은 운동하라고 말합니다. 당뇨병이 점점 더 흔한 질병이 되고 있습니다. 비만도요. 요즘 사람들은 영화배우 같은 몸을 갖고 싶어 합니다.”

출처: 미얀마 청년 섬두 뭉 반(왼쪽에서 세 번째)이 다른 보디빌더들과 서 있다. 사진: SANA SENG LAT AWNG

뭉 반은 수많은 성과를 얻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한다.

“아직 만족하지 않습니다. 꿈으로 가는 길의 반 정도 왔다고 생각해요. 언젠간 저희 체육관이 국제적인 모델이 되는 순간이 올 것이라 믿고 달려가고 있습니다.”

뭉 반의 다음 목표는 보디빌딩 대회를 주최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대회를 주최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다시 옥 채굴 현장에 나가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거래자로. 뭉 반에게 지금 이룬 여러 성과 중에 무엇이 가장 자랑스러운지 물었다.

그는 자랑스럽게 ‘몸’이라고 강조했다.

“친구들은 대부분 뱃살이 나왔죠. 전 36세지만 여전히 식스팩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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