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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내일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다

좋게 말하면 모험, 나쁘게 말하면 도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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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난 스페인 산티아고를 걷고 있다.

여태까지 걸은 거리 1800km,

신발 밑창이 다 닳아 벌써 세 번째 신발을 신고 있다.

왜 사서 고생을 하냐고? 글쎄. 

하고 싶은 일을 하면 하루하루가 행복하고 장밋빛 같을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어려서부터 기자를 꿈꿨다. 신방과에 진학, 잡지사 어시스턴트를 거쳐 어렵게 잡지 에디터가 됐다. 그야말로 꿈의 직장이었다. TV에서나 보던 연예인을 인터뷰하고 아직 출시되지도 않은 명품 신상품을 먼저 접했다.


하지만 빛과 그림자가 명확한 직업이었다. 화려함, 그 이면엔 밤샘 야근을 동반한 극한 노동의 연속이었다. 영화에서 악마는 프라다를 입지만 현실은 훌랄라 치킨을 시켜 먹기도 빠듯했다. 결국 매너리즘, 원형탈모와 함께 공황장애까지 찾아왔다.


직장 생활 7년 차, 머리에 탁구공만 한 구멍이 생기고 나서야 사표를 쓸 용기가 났다. 몇 주 동안 아무도 만나지 않고 집에만 처박혀 있었다. 그러다 오래전, 어느 책에선가 인생의 답을 찾기 위해서라면 ‘산티아고’를 찾으라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바로 짐을 쌌다.


좋게 말하면 모험이고 나쁘게 말하면 도피였다. 청승이고 유난이었다. 그게 싫었다. 배운 게 도둑질이니 뭔가 대외적으로 의미 있는 일도 하고 싶었다. 예전부터 관심을 가져왔던 위안부 문제를 알리기로 했다.


아니, 나처럼 철부지에 아무것도 모르는 놈일지라도 위안부 문제를 알리는 것이 어렵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가로세로 70cm의 작은 현수막을 제작했다. 그리고 위안부와 소녀상에 대한 설명을 적은 종이를 수백 장 인쇄했다. 전 세계인들이 다 모이는 산티아고 순례길. 그곳에서 만나는 모든 이에게 이 종이를 나눠주리라.

모두가 미친 짓이라고 했지만


산티아고는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인 ‘성 야고보’의 스페인식 이름. 그가 걸었던 순례길을 따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걷는 이 여정은 크게 7가지 루트로 나뉜다. 프랑스 생장에서 출발하는 프랑스길, 바닷길을 따라 걷는 북쪽길, 세비야에서 시작하는 은의 길, 포르투갈 길 등.


보통 한 루트를 걷는 데 2주에서 한 달 정도가 걸린다. 하지만 한 달이란 시간은 내게 너무 짧게 느껴졌다. 고민 끝에 산티아고 북쪽길과 프랑스길, 그리고 세상의 끝이라 불리는 피스테라까지 걷기로 했다. 거리는 약 2000km. 서울에서 부산을 무려 네 번이나 왕복하고 한 번 더 가는 거리.


정말 미친 짓이 아닐 수 없다(실제로 길에서 만난 모든 외국인 친구들이 그렇게 말했다). 순례길을 걷는 규칙은 간단하다. 각 길의 출발지에서 순례자용 여권 ‘크레덴시알’을 만든다. 이게 있어야 순례자 전용 숙소 알베르게에서 잘 수 있다. 알베르게는 호텔이 아니다. 좋게 말해 게스트하우스 감성.


큰 방에 이층침대를 잔뜩 들여 놓은 기숙사 같은 느낌이 풍긴다. 하루 숙박 비용은 5~10유로 정도. 가끔 날씨가 좋은 날에는 텐트에서 자기도 한다. 그렇게 먹고 자며 길가에 표시된 노란색 화살표를 따라간다. 마을 간 거리는 5~10km. 하루에 몇 개의 마을을 지날지 얼마나 걸을지는 각자 정하기 나름, 정해진 건 없다.

사서 고생, 그게 필요할 때가 있다


꼭 그럴 때가 있다. 여행지에서 왠지 한국인은 좀 피하고 싶은 기분. 첫 번째 코스로 산티아고 북쪽길을 걷기로 한 건 한국인이 거의 없기 때문이었다. 순례길 중에서도 거의 불모지와 같은 곳. 매일 산을 넘는 고행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사서 고생, 그게 필요했다.


실제로 무척 힘들었다. 발에 잡힌 물집을 모았다면 거짓말 조금 보태서 맥주 피처 정도 됐을 거다. 날씨는 제멋대로였다. 맑은 하늘에 난데없이 우박이 쏟아지기도 했다. 하루에 열 번 넘게 우의를 입었다 벗었다 한 적도 있다. 언젠가는 사흘 내내 비가 내렸다. 빨래를 해도 마르지 않았다.


몸과 옷가지에서 찌든 냄새가 났다. 근데 웃음이 나왔다. 행복했다. ‘샤워하고 깔끔한 옷을 입으면 뭐하나. 어차피 진흙탕을 걸으면 또 금방 더러워 질텐데’ 그렇게 생각하니 모든 게 편해졌다.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길바닥에서 자는 것도 차차 온돌방처럼 편해졌다. 길을 잃어도 그저 웃었다.

어차피 걸을 길은 많이 남았는데 뭘. 2000km 걷나, 2013km를 걷나 발이 아픈 건 매한가지. 북쪽길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경관이 훌륭한 바닷길을 걷는다는 데 있다. “와, 진짜 지린다.”는 말을 습관처럼 내뱉었다. 실제로 팬티도 몇 번 갈아입었다.


매일 바다가 보이는 산을 헉헉거리며 넘었다. 그리고 해변이 있는 마을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때는 8월, 햇빛이 쨍쨍한 오후에는 푸른 바닷물에 뛰어들어 수영을 했다.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피부는 검게 탔지만 그런 북쪽길이 좋았다.

세상의 끝에서 일몰을 놓치다


스페인 유심을 갈아끼우니 순례길에서도 언제든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었다. 좋은 걸 보면 보여주고 싶고, 맛있는 걸 먹으면 자랑하고 싶고, 가슴이 착잡할 때면 글로 표현하고 싶은 법. 이게 현대인의 고질병이다. 나 역시 그랬다.


대자연과 마주할 때나 오래된 유적지를 지날 때마다 눈이 아닌 휴대폰에 담기 바빴다. 몇 번이나 후회하면서도 그랬다. 양치기와 수백 마리의 양 떼를 만났을 때는 동영상을 찍느라 양들이 싼 배설물을 피하지 못하기도 했다. 그중 최고는 세상의 끝이라 불리는 ‘피스테라’에서 있었던 일이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기 전까지 유럽인들은 그곳을 땅의 끝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의 끝에서 바라보는 일출과 일몰 앞에 많은 이들이 그곳에서 눈물을 흘린다. 나 역시 절벽에 서서 일몰을 바라봤다. 입생로랑 키스앤블러쉬 5호보다 더 진한 해가 바다를 붉게 물들이며 장관을 연출했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러고는 ‘SNS에 뭐라고 올려야 감성 있어 보일까?’ 고민했다. 그러는 찰나, 갑자기 빛이 사라졌다. 해가 바로 져버린 것이다. 그깟 SNS가 뭐라고. 평생 한 번 보기도 힘든 피스테라 일몰을 놓쳤다(피스테라는 안개가 많이 끼는 지역이라 맑은 날씨에 일몰을 보기가 쉽지 않다).


콜럼버스가 알았으면 계란을 뒤통수에 던질 일이다. 그 뒤로는 걸을 때 휴대폰을 가방 깊숙이 두고 걷기로 했다. 우리 눈은 어떤 렌즈보다 화소가 좋으니까. 그리고 메모리 카드보다 머리에 저장하는 게 더 오래 남으니까.

걸어서 그림 속으로


북쪽길을 다 걷고, 이어서 걷기 시작한 프랑스길은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다. 제일 보편적인 길이라 숙소도, 먹을 데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식당과 숙소에는 한국어로 친절하게 설명이 붙은 곳들도 있었다. 한국 사람뿐 아니라 그냥 사람 자체가 많았다.


누구든 쉽게 친구가 될 수 있는 분위기다. 프랑스길의 백미는 첫날부터 넘는 피레네 산맥이라고들 한다. 고도 1400m, 구슬땀을 흘리며 피레네에 오르면 끝이 보이지 않는 넓은 대지가 펼쳐진다. 걷는 내내 “와, 와!” 탄성만 나온다.


푸른 초원에 솜사탕 같은 양떼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데, 그 길을 가로질러 걷는다. 산맥을 넘는 16km 내내 먹을 곳이 없지만 그야말로 풍경을 먹으며 걸었다. 이 멋진 길을 입장료 없이 걸을 수 있다니. 피레네 산맥을 넘으면, 그 이후부터는 비교적 평탄한 코스다. 물론 비교적이다.

끝없는 자갈밭이나 황무지를 걷기도 하고, ‘이런 게 순례길이구나’ 싶을 정도로 삭막한 길도 많았다. 하지만 길 곳곳에 같이 걷는 순례자들이 있어 혼자 걷더라도 외롭지는 않았다. 하루에 사람 몇 명 만나기가 어려웠던 북쪽길과는 정반대였다. 어느 길에서든 “Hola(스페인어로 ‘안녕’)” 한마디면 쉽게 말문이 트였다.


그렇게 다음 마을까지 자연스럽게 대화를 주고받으며 걷다가 또 자연스럽게 헤어졌다. 만남과 헤어짐이 자연스러운 길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은 스페인의 대도시를 만난다는 것도 매력적. 그야말로 걸으면서 스페인 전국 일주를 하는 셈이다. 하루하루 지루할 틈이 없다.

얻은 것보다 버린 것이 많은 길


위안부 문제를 알리기 위해 가져온 인쇄물과 현수막은 늘 지니고 다녔다. 처음부터 이 주제를 이야기하면 부담스러울 수 있으니, 하루 이상 알고 지낸 친구들에게 자연스럽게 “이건 우리가 친구가 됐다는 표시야”라며 종이를 건넸다. 돌아온 반응은 늘 의외였다.


정말 슬픈 일이라며 고국에 돌아가면 꼭 찾아보겠다고 웹사이트를 알려달라는 친구도 있었고, 다큐멘터리와 뉴스에서 봤다며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렇게 백여 명이 넘는 친구들에게 위안부 문제를 알리던 중, 우연찮게 스페인의 작은 지역신문과 인터뷰를 하게 됐다.


첫 번째 인터뷰가 나간 뒤, 몇 군데의 스페인 언론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메일이 왔다. 순례길을 걷는 중이라 모두 다 만날 수는 없었다. 그중 스페인에서 제법 영향력이 있다는 「Diadio de Leon」과 인터뷰를 했는데 그 내용이 무려 신문 1면에 실렸다.

대략 ‘산티아고길을 한 번에 두 코스나 걷는 동양인 청년이 있는데, 그 친구가 위안부 문제를 알리며 걷는다’는 내용. 언어만 통했더라면 더 심도 있는 내용이 실렸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한 명에게라도 더 위안부 문제에 대해 알릴 수 있었다고 생각하면 뿌듯하다.


이 길을 걸으면서 뭘 얻었냐고? 솔직히 얻은 건 없다. 오히려 많이 버리고 내려놨다. 길을 걷는 건 내 안의 짐을 버리는 과정이었다. 인생의 전환점이라든가 ‘과연 내가 뭘 하고 싶은가?’에 대한 정답을 찾지도 못했다. 사실 크게 깨달은 것도 없다.


다만 훌륭한 경험을 한 것은 분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매사에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낯선 이들과 소통하는 즐거움도 알게 되었다. 온몸이 근육통으로 만신창이인데다 병원비로 얼마가 나갈지는 모르겠지만 그만큼 멘탈은 더 단단해졌다.


앞으로 뭘 하든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붙었다. 매년 150만 명이 넘는 이들이 산티아고를 찾는다. 사람들이 몰리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와보면 너무 명확히 알 수 있다.


[831호 – TRAVEL]

Traveller 박한빛누리 noolwe@naver.com


대학내일 김신지 에디터 summer@univ.me

[대학내일] 20대 라이프 가이드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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