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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긱 노동'을 극빈층의 희망으로 만든 여성 창업가

조회수 2020. 2. 6. 18:4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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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Times=배소진 기자
출처: 사마소스 창업가 레일라 자나/사진=사마소스

배달기사처럼 중개 플랫폼을 통해 일거리를 구해 건당 보수를 받으며 일하는 사람들을 ‘긱(gig) 노동자’라 한다. 건당으로 일하기 때문에 노동자가 아니라 자영업자다. 그래서 이 단어는 ‘보호받을 수 있는 근로자’의 ‘보호받을 수 없는 자영업자화’, 즉 하향 평준화를 의미한다.

 

그런데 ‘긱(gig) 노동’을 통해 수많은 극빈층을 빈곤에서 벗어나게 한 사회적 기업 창업가가 있다. 이들에게 ‘긱’은 하향 평준화가 아니라 상향 평준화였다.


어린 시절 부모를 따라 미국에 이민을 온 인도 출신의 레일라 자나. 가난 속에서 힘겹게 공부해 2005년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경영 컨설턴트가 됐다. 그의 첫 업무는 인도 뭄바이 출장.


인력거를 타고 이동하는 슬럼가 거리에는 사람들이 아무 희망도 없는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녀는 이런 의문이 들었다고 한다. ‘인도가 아웃소싱으로 수백만 개 일자리가 생겼다고 하는데 이들을 위한 일자리는 아니다. 이들에게 일거리를 줄 수 없을까?’


그녀는 2008년 '사마소스'(Samasource)라는 사회적 기업을 창업했다. 그런 뒤 구글, 게티이미지 등 기술기업과 협약을 맺고 이미지에 태그를 붙이거나 데이터를 분류하는 온라인 일거리를 인도와 아프리카 극빈층 여성과 청소년들에게 연결했다. 현재 이 회사를 통해 일하고 있는 사람은 5만 명이 넘는다. 동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고용주로 꼽힌다.


10여 년 동안 ‘긱 노동’을 극빈층의 희망으로 만들어온 그녀가 최근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나이 겨우 37살. 그녀가 인생을 바쳐 빈곤과 싸워온 행보를 정리한다.

출처: 직원을 교육 중인 레일라 자나/사진=사마소스

1. ‘게티 이미지’ 사진 태그로 삶의 질을 높이고


사마소스를 굳이 분류하면 데이터 라벨링(data-labelling) 회사다. 사람들이 인터넷으로 정보를 찾을 수 있는 것은 검색이 가능하도록 정리돼 있어서다. 예를 들어 '강아지'를 검색했을 때 강아지 사진 수십만 장이 뜨는 것은 각 사진에 강아지라는 태그가 붙어있기 때문이다. 머신러닝 기술로 자동화하고 있다고 하지만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여전히 사람의 눈과 손을 거쳐야 한다. 이런 태그 작업을 아웃소싱으로 해결해주는 것이 사마소스의 역할이다.


이를 위해 사마소스는 인도와 아프리카에서 무료 교육을 제공한다. 컴퓨터를 전혀 다루지 못했던 사람들이 온라인에 접속해 업무를 수행할 수 있기까지 약 2주 정도 걸린다.


사진 판매 사이트 '게티 이미지'는 이 회사의 초창기 고객이다. 여러 사람이 등장하거나 얼굴에 그림자가 진 경우 자동태그가 잘못 생성되는 경우가 많아서 수작업이 꼭 필요하다.

출처: 업무 중인 직원/사진=사마소스

초보 직원들은 하루 8시간 사무실에 출근해 일하고 3달러를 번다. 숙련이 되면 임금이 늘어난다. 창업 후 3년 동안 일한 직원들의 연 수입은 평균 4배가 늘어났다. 이곳 주민들의 41%가 하루 1.25달러 미만을 버는 것을 고려하면 놀라운 수준이다.

 

예를 들어 케냐 나이로비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켄 키하라는 빈민가를 전전하며 고철을 모으거나 밀주를 빚어 생계를 꾸리다 사마소스를 통해 컴퓨터를 배웠다. 태그 붙이는 일을 한 지 1년 만에 가족과 함께 빈민가를 떠나 새집으로 이사할 수 있었고 3년 뒤에는 케냐 중산층 임금인 하루 16달러를 벌 수 있었다.


2. 인공지능을 훈련하는 라벨링으로 수익을 올리고


인공지능의 시대가 됐지만, 이들의 일거리는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인공지능의 성능은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정확하게 학습시키는 것에 달려 있다. 인공지능이 전방위로 비즈니스에 활용되고 있지만, 인공지능을 뒷받침해줄 알고리즘은 아직 걸음마 단계이기 때문이다. 수백만 장의 라벨(이름표)이 달린 예시를 소화해야 한다. 


예를 들어 자율주행 자동차라면 도로 위의 표지판이 무슨 뜻인지, 앞에 있는 것이 자동차인지 사람인지, 지나가는 강아지인지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하늘이 하늘이라는 것도 가르쳐 줘야 한다. 사마소스 직원들은 영상을 프레임 단위로 쪼개 각 화면에 보이는 모든 사물에 '나무' '사람' 등 라벨을 일일이 달아준다. 1시간 분량 영상에 라벨을 다는 데 8시간이 넘게 걸린다. 

출처: 사마소스 인공지능 데이터 입력 화면/사진=마사소스

현재 사마소스를 통해 AI 데이터 입력을 맡기고 있는 회사는 구글, MS, 페이스북, GM, 월마트 등 포춘 50대 기업 중 25%에 달한다. 고객이 늘어나자 사마소스는 기업들로부터 데이터를 받아 각 지역의 직원들에게 나눠주고 다시 수거하는 데이터 라벨링 전용 플랫폼 ‘사마허브'(Samahub)도 개발했다.

 

사마소스에 따르면 직원들이 입력한 라벨의 정확도는 99.9%. 다른 일보다 수익(하루 평균 9달러)이 높아 동기부여가 확실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3. ’긱(gig) 노동‘을 통해 상향 평준화


레일라 자나는 사마소스를 운영하며 교육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됐다. 짧게나마 교육을 받은 직원들은 사마소스를 떠난 뒤에도 경력을 쌓아 더 나은 월급을 받는 일자리로 옮겨갔다. 사마소스를 거쳐 간 직원들의 3년 뒤 연 수입을 추적해보니 평균 800달러에서 3,300달러로 상승해 있었다.

출처: 사마소스를 거쳐간 우간다 직원들의 대학 졸업식/사진=사마소스

그래서 그녀는 기술이 없는 저소득층을 훈련시키면 이들이 자립할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라 판단했다. 그녀는 2013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사마스쿨'(Samaschool) 실험을 시작했다. 캘리포니아 북부는 농촌 빈곤 문제가 심각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지역 대학들과 협력해 평생교육원에서 IT 교육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데이터 입력 등의 직업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관련 기술을 교육했고, 온라인에서 일자리 찾는 교육도 실시했다. 이 교육에선 업워크(Upwork)나 태스크래빗(TaskRabbit) 등 온라인 구직 플랫폼이나 우버, 리프트, 인스타카트 등에서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가르친다. 사이트에 가입해 프로필을 입력하는 법부터 일감을 받을 수 있도록 홍보문구를 작성하는 법, 앱을 통해 구인자와 연락하고 거래하는 방법, 모바일 금융거래 방법 등 모든 과정을 하나하나 알려준다. 한 마디로 긱(gig) 노동자를 종합적으로 양성하는 것이다.

출처: 퇴역군인의 IT분야 취업을 돕기 위한 수업을 진행 중인 사마스쿨/사진=사마소스

사마소스는 현재 케냐와 미국의 뉴욕, 아칸소주 등에서 오프라인 수업을 운영하고 있고 65개국 대상으로 온라인 수업도 진행하고 있다. 이런 교육이 필요할까 생각할 수 있지만, 미국에서도 앱 화면을 보는 것조차 낯선 디지털 문맹이 적지 않다. 인터넷을 통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회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의 한 흑인 청년은 자동차를 좋아하는 것 말고는 아무 경력이 없었다. 형제들은 모두 길에서 마약을 팔고 있었다. 그 지역에서 할 수 있는 경제활동이라고는 그것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사마스쿨을 통해 태스크래빗에서 첫 일자리를 구했다. 자동차에 오디오를 설치해주는 것이었다. 몇 달 만에 그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일을 하면서 수백달러를 벌게 됐다.


출처: 사마소스 창업자 레일라 자나/사진=사마소스

이렇게 레일라 자나는 아무 기술도, 희망도 없던 극빈층에게 아주 작은 기술로 시작할 수 있는 일을 주고, 이 기술을 활용해 더 나은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면서 이들이 자립하는데 짧은 생애를 다 바쳤다.


뉴욕타임스는 그녀가 세상을 떠나자 이렇게 추모했다. “레일라 자나는 항상 이렇게 믿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지성은 세계 경제에서 가장 큰 미개발 자원(the biggest untapped resource)이라고.”


“빈곤한 사람들이 의료, 교육, 깨끗한 물, 안전한 주거 등 기본적 생계를 누릴 수 있도록 돕고 싶은가? 그렇다면 그것들을 제공하지 말라. 그들에게 수익이 생긴다면 모든 것을 스스로 할 수 있다. 빈곤을 줄이는 가장 직접적이고, 장기적으로 작동하는 유일한 방법은 가난한 사람들이 현금을 벌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레일라 자나, 2017.9.26, 패스트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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