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줄 서서 먹어요? 시간 아깝게"라는 질문에..

조회수 2020. 12. 24. 23: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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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특별한 이유는 언젠가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 때문이 아닐까.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 여행을 결심하고 준비해 떠나지만, 꿈만 같은 나날을 보내다가도 정해진 시간에 다다르면 아쉬운 발걸음을 다시 돌리는 것. 그게 여행이다. 그래서 즐겁다가도 아쉽고, 떠나기 전부터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하면 더 알차게 쓸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여행 중 계획대로 풀리지 않으면 흘러가는 시간을 보며 초조해하기도 한다.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니고, 여유 갖고 쉬는 것도 여행의 매력일 수 있는데. 항상 내 여행은 다급했고, 빽빽했고, 실패를 두려워했다. 

출처: 이미지 출처 = unsplash

이런 내가 여행을 준비할 때 가장 고민되는 순간이 바로 ‘맛집’. ‘이왕 OO까지 왔는데 여기서만 먹을 수 있는 거 먹고 싶다’는 생각에 열심히 검색하다 보면 점점 골치가 아파져 온다. “웨이팅 기본 2시간 SNS 핫플” “현지인만 아는 숨겨진 ‘찐 맛집’” “유명인 OOO도 인정한 스타의 선택” 등. 식당을 수식하는 말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정보 없이 아무 곳이나 들어가고 싶다가도, 여행을 망칠까봐 다시 주섬주섬 스마트폰을 꺼내 든다.  

강릉 '동화가든' 앞 대기 손님들

평소 “음식이 다 거기서 거기지 얼마나 더 특별하겠어”라는 생각에 웨이팅 몇십 분씩 하고 밥 한 끼 먹는 걸 꺼리는 편이다. 그런 나도 낯선 곳에 여행객으로 가면 “인기 맛집”의 유혹을 져버리기 힘들다. 멀리까지 왔는데, 평소와는 무언가 다르고 싶으니까. 그렇게 한 시간 이상씩 기다리며 입소문 난 맛집에서 몇 차례 밥을 먹어봤다.  

다른 지역, 다른 음식을 먹는데도 긴 웨이팅 끝에 음식을 맛볼 때마다 항상 같은 생각이 든다. 맛있다. 그런데 이 음식이 정말 특출나게 맛있는 건지, 오랜 시간 기다린 게 아깝기 싫어서 내심 더 맛있었으면 바라며 자기최면 걸고 있는 건 아닐지. 먹으면서도 계속 다른 곳과 차별화되는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 애쓰고 있는 날 발견했다. 그 오랜 시간 기다리고 먹는데, 세상 즐겁게 먹어도 아까울망정 이렇게 불편하게 식사를 하다니... 

모 지역 전통시장에서 꼭 먹어봐야 한다는 두 곳에서 오래 줄을 서 하나씩 구매했다. 기대를 가득 안고 맛을 봤는데, 어디에서도 흔히 먹어본 맛. 음식이 나오자마자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느라 살짝 식은 상태에서 먹어서일까. ‘실망스럽다’고 인정하는 게 두려워 동행한 친구와 의미부여를 한다. 어딜 가든 그 지역 전통시장은 한 번쯤 경험해보는 게 좋다며, 음식 자체보다는 분위기를 봤으니 충분히 의미 있었다며 애써 웃어본다. ‘아까운 시간 낭비했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우린 결국 서로 솔직한 마음을 터놓지 못했다. 그렇지만 너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겠지. 

유럽여행 때 모든 게 낯설어 검색에만 의지해 ‘검증된 맛집’에서만 식사를 하던 내가, 딱 하루 아무 곳에나 들어가서 먹어보자고 결심해 기대 없이 들어간 카페에서 ‘인생 디저트’를 찾았다. 가게 이름을 검색해봤지만 한국인 리뷰가 단 하나도 없을 때 그 뿌듯함이란. 

그러다 문득, ‘웨이팅 2시간’ 인기 절정의 맛집을 궁금해하는 내 모습이 겹쳐 보이니 멋쩍은 웃음이 나왔다. 남들 다 가는 곳 나만 안갈 수 없다는 마음도, 남들이 아무도 모르는 ‘비밀 맛집’을 찾아 나만 알고 싶다는 마음도 동시에 들다니. “욕심이 지나치다. 둘 중 한 가지만 하자”며 자각의 시간을 가져본다.  

출처: 이미지 출처 = unsplash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다시 여행을 떠나는 날이 온다면. 그땐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모르겠다. 맛집 앞에 줄 서 있는, 나를 포함한 이들에게 묻고 싶다. 무엇을 위해 기다림을 택했는지, 그 기다림이 실망으로 다가오더라도 인정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지. 

배고픈 팔랑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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