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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에게 물었다 코로나 이후 필수라는 '여행의 기술'

조회수 2020. 12. 8. 16: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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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언스플래쉬

언​제쯤 다시 여행을 떠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누군가 속 시원히 답을 줬으면 하는 요즘이다. 누군가는 2년 내, 누군가는 2025년 이후. 각기 다른 답을 내놓고 있는 상황에서 명쾌한 연도를 말해 주진 않아도 앞으로 어떤 여행의 기술이 필요할지 말해 주는 책을 발견했다. 정확하게는 ‘여행 준비의 기술’을 말하는 책이다.

‘여행의 기술’도 아니고 ‘준비의 기술’은 무엇일까. 항공권과 숙소를 예약한 뒤 일정을 세우는 것 말고 또 뭐가 있나, 싶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여행보다 ‘여행 준비’가 더 끌린다는 생각을 자연스레 하게 된다. ‘여행 준비도 여행만큼 맛스러움을 보여 준다’는 황동규 시인의 추천사를 빌려 『여행준비의 기술』을 소개해보려고 한다.

‘여행책’이 아닌 ‘여행준비’에 관한 책

이 독특한 책을 쓴 박재영 작가는 어떤 사람일까. 그는 의사이고, 책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청년의사라는 언론의 편집주간이기도 하다. 『개념의료』라는 의학서도 집필했지만, 『종합병원 2.0』이라는 장편소설도 썼다. 공중보건의사 시절 요리책을 써서 텔레비전에 출연했고, 응원단 주치의로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에 모두 참여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무엇보다 ‘프로 여행준비러’로서 지난 10년 동안 야심작을 구상해왔단다.

그렇게 세상에 나온 『여행준비의 기술』은 ‘여행책’이 아니고 ‘여행 준비’에 관한 책이다. 여행은 아무나 할 수 없지만, 여행 준비는 누구나 할 수 있으며 전염병은 여행을 못 하도록 국경을 막지만, 여행 준비에까지 손을 쓰진 못한다. 그래서 저자는 오랜 시간 갈고닦아온 ‘여행준비의 기술’을 여행이 가로막힌 시대에 내놓았다. 언젠가 하게 될 다음 여행을 미리 준비하자고 결의를 다지면서.

그리하여 티켓과 숙박을 어떻게 하면 싸게 예약할까 하는 이야기는 이 책에서 하지 않는다.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여행 준비 혹은 여행을 하면서 느끼거나 경험한 잡다한 이야기들을 모아놓은 소품’에 가깝다. 그저 여러 제약이 뒤따르는 상황에서도 여행 준비만큼은 재미있게 해보자는 것이다.

여행 준비 꼭 해야 하냐고요? 그 이유 알려 드립니다.

출처: 언스플래쉬

여행 준비는 무엇이며,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여행 유형을 크게 ‘계획형’과 ‘즉흥형’ 두 가지로 나눴을 때, 즉흥형 여행자에게 여행 준비란 불필요하게 느껴질 수도 있고 고역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저자는 ‘여행준비는 그 자체로 목적일 수 있는 행위이며, 여러 장점이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여행 준비를 하다 보면 내 욕구가 무엇인지, 나의 가치관은 무엇인지 알게 된다. 대화할 때 상대와 나눌 수 있는 화젯거리가 풍부해지기도 하며 타인의 취향까지 알게 되는 것은 덤이다. 이렇게 되면 가끔은 준비에만 그치고 여행을 못 가도 상관없다.

“구체적인 여행 계획이 없는 상태에서, 언젠가 꼭 가리라는 다짐도 없는 채로 느릿느릿하는 여행준비는 괴로울 까닭이 없다. 내가 이런 여행 계획을 세웠노라고 어디 가서 발표할 일도 없고, 내가 준비한 계획을 다른 사람의 것과 비교하며 잘했니 못했니 따질 필요도 없다. 그저 가고 싶은 곳의 목록을 하나 늘리고, 그곳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한두 가지 상상만 하면 된다.”

87쪽

세계는 넓고 갈 곳은 많지만 우리는 모든 곳에 다 가볼 수 없다. 수많은 선택지 속에서 남들이 알려주지 않는 ‘내가 큰 만족을 얻을 수 있는 곳’을 찾기 위해 우리에게 여행 준비의 시간이 꼭 필요한 것이다.

여행 준비의 가장 쉬운 첫걸음은

출처: 언스플래쉬

저자는 여행 준비의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로 ‘구글 지도에 별 찍기’를 제안한다. 신문을 보다가, 텔레비전을 보다가 흥미로운 지역이 등장하면 구글 지도를 열어 별을 찍으면 된다. 그렇게 구글 지도에 별을 찍어가기 시작하면 세계 곳곳에 나만의 별이 생긴다는 것. 혼자서 별을 모으는 것도 좋지만 함께 여행을 떠나고픈 상대와 함께 모으는 것을 추천하기도 한다. 쌓이는 별들은 좋은 대화 소재가 되기 때문.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훗날 여행의 목적지로 ‘유난히 많은 별이 반짝이는 곳’을 점찍어봐도 좋겠다.

짝꿍이 지도에 찍어놓은 별들을 하나씩 클릭해보면 미처 몰랐던 그의 숨겨진 욕망이 보일 수 있다. 그가 평소에 어떤 꿈을 꾸며 살고 있는지, 그 편린을 엿볼 수 있다. 여기에는 왜 가고 싶어? 여기는 어떻게 알고 별을 붙여놓은 거야? 이런 질문을 통해 대화의 물꼬를 틀 수도 있다. 앞에서도 대화의 기술을 이야기했지만, 좋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야말로 좋은 대화의 시작이다.​

93쪽

그렇다면 여행을 떠날 타이밍은 어떻게 잡아야 할까. ‘언제’를 결정하는 여행 준비의 기술은 무엇일까. 저자는 ‘여행의 명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열심히 일만 하다가 여행 갈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별생각 없이 여행을 떠났다가 근원을 알 수 없는 죄책감(너무 자주 놀러 다니는 게 혹시 아닐까, 이 돈을 저축했어야 하는 건 아닐까)에 시달리지 않도록 성실한 자세로 여행의 명분을 미리미리 쌓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더 자주 떠날 수 있고, 떠났을 때 더 당당하게 놀 수 있기 때문이다.

출처: 언스플래쉬

여행의 명분을 만드는 데 있어 저자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하나는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아도 시간만 지나면 저절로 찾아오는 시점을 기념하는 것이다. 결혼기념일이나 생일 때마다 여행을 떠나는 건 어렵다 하더라도, 결혼 5주년, 10주년, 20주년, 25주년 기념일이나 30세, 40세, 50세, 60세 생일은 여행을 떠날 충분한 명분이 되지 않나. 입사 10년, 20년도 자축할 만하고, 자녀의 초·중·고, 대학 졸업도 좋다.

다른 하나는 무엇이든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성취’를 기념하는 것이다. 우리가 살면서 뭔가 대단한 걸 이루기는 쉽지 않으니 적당히 만만하면서도 적당히 어려운,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스스로나 주변 사람을 치하해 줄 수 있는 뭔가를 목표로 설정하고, 그걸 이룬 기념으로 여행을 떠나면 된다. 다이어트에 성공했다거나, 악기를 배워 한 곡을 끝까지 연주하게 됐다거나, 책을 한 권 냈다거나 하면 여행을 떠난다. 기쁜 일을 여행으로 자축하는 것도 좋지만, 이런 명분을 세워두면 오히려 목표를 앞당겨 달성할 가능성이 커지니 일거양득이다.

준비한 자에게 뿌듯한 여행이 있나니


출처: 언스플래쉬

저자의 여행과 여행 준비에는 그만의 특징점이 있는데, 식도락을 좋아하는 그로서는 여행 준비 시간의 최소 30퍼센트를 식당 찾기에 할애한다. 여행 중에 잘 먹는 한 끼는 멋진 풍경보다 가슴에, 혀에, 머리에 더 깊이 남기 때문이다. 길을 가다 대충 골라 들어간 식당에서도 추억은 생길 수 있지만, 더 잘 준비하고 미리 예약할수록 식당에서 더 근사한 경험을 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주장이다.

이외에도 현지어를 얼마만큼 준비해서 갈까, 유용한 여행 회화로는 무엇이 있을까 등등 쓸모 있는 여행 준비의 기술들을 펼쳐놓는다. 그중 이탈리아 여행을 준비하며 이탈리아어 회화책 두 권을 사서 공부했다는 일화가 기억에 남는다. 3개월간 매일 조금이라도 책을 읽고 테이프를 들은 결과, 공부한 단어들을 현지의 식당 메뉴판에서 읽어낼 수 있었다는 이야기.

“아는 단어가 꽤 있었다. (모르는 단어가 더 많기는 했다.) 그런데 애피타이저 중 하나의 이름에 아는 단어가 세 개나 있었다. 튀김, 호박, 그리고 꽃. 궁금했다. … 과연 어떤 게 등장할지 긴장감(?)이 감도는 10분이 지난 후, 내가 시킨 음식이 나왔다. 얇은 튀김 옷을 입은 호박꽃 대여섯 송이가 접시에 놓여 있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호박꽃 튀김은 이탈리아에서 특히 봄철에 많이 먹는 유명한 요리였다.”

35-36쪽

출처: 언스플래쉬

사소한 여행 준비의 노력이 여행지에서 빛을 발하는 순간. ​누군가 골라 준 음식이었더라면, 영어 메뉴를 보고 고른 것이었다면, 무작위로 고른 메뉴 중 하나였다면 같은 감동은 없었으리라. 여행 준비의 가장 큰 장점은 여행이 풍성해지는 것도 있지만 추억이 풍성해지는 것이라는 저자의 말을 가슴속에 새겨 본다.

출처: 언스플래쉬

마치 실용서일 것 같은 이 책은 여행과 여행 준비의 에피소드가 가득한 이야기책이다. 여행에서 생긴 흥미로운 일화들은 앞으로의 여행을 기대하게 만든다. 이를테면 이탈리아, 영국, 네덜란드, 미국, 일본, 호주, 타이 등에서 관람한 스포츠 경기로부터 통찰해낸 각국의 국민성 이야기는 꽤 흥미롭다.

그 밖에 남은 이야기들은 책에서 만나볼 것을 권해야겠다. 마지막 보너스 트랙으로 수록된 ‘가보니 참 좋았던 곳 일곱 군데’와 ‘가서 먹으니 참 좋았던 식당 일곱 군데’, ‘가보면 참 좋을 (아직 안 가본) 곳 일곱 군데’도 놓치지 않길. 이번 연말엔 앞으로 도래할 여행의 기회를 잡기 위해 슬슬 여행 준비를 해보는 건 어떨까. 준비의 설렘을 찬찬히 받아들이며 삶의 스트레스에서 한발 물러날 수 있을 것이다.

심수아 여행+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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