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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사는 건 모욕적이다'고 분노한 어이 상실 순간들

조회수 2020. 11. 10. 16: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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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 살면서 겪은 일들에 대해 다 말하자면 며칠을 쉴 새 없이 떠들어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 가족도 친구도 없이 혼자 살아갔기 때문에 좋았던 기억보다는 힘들었던 기억이 더 많이 떠오른다. 프랑스 여러 도시를 다니며 지내봤지만, 가장 오래 머문 곳은 프랑스의 한 소도시. 영어로 소통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고 동양인은 도시 전체에 10명은 있을까 싶은 곳. 유일한 대중교통은 배차 간격 아주 긴 버스 몇 대. 

소도시를 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프랑스어만 사용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불어실력을 단기간에 확실하게 향상시키고 싶었던 점. 그리고 대도시에 비해 치안이 프랑스 내에서는 괜찮은 편이라는 점. 돌이켜 생각해봤을 때 그 도시를 택한 것은 후회하지 않는다. 다만, 나중에 프랑스에서 취업해서 계속 프랑스에서 살아가면 어떨까 했던 마음을 흔들리게 해준 경험이기도 하다. 대도시에서 살아갈 생각은 원래 없었다. 겁쟁이인 데다가, 유독 소매치기도 강도도 인종차별주의자들도 많이 마주쳤던 ‘글로벌 호구’였기 때문에.

자꾸만 미화되는 프랑스에 대한 기억, 그렇지만...

프랑스라는 나라는 내게 그야말로 ‘애증’이다. 그렇게 지겹고 힘들다며 툴툴댔던 내가 프랑스를 다시 입 밖에 꺼내고 추억하면 주변 사람들이 비웃는다. 여행도 원 없이 다니고 좋아하는 빵과 치즈도 실컷 먹고. 여행을 간절하게 원하다 보니 올 초까지 머물렀던 프랑스에 대해 좋은 기억만 자꾸 되짚게 된다.

최근 ‘미드나잇 인 파리’를 다시 보면서 프랑스에 대한 기억이 더욱 미화돼서, 그래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으로 힘들었던 과거를 떠올려본다. 물론, 도시마다 다 분위기가 다르고, 혼자였기 때문에 더 어려운 순간들이 많았을 터여서 일반화할 수는 없다. 그래도 나는 프랑스에 대한 기대를 확 무너뜨린 몇 개의 일화들. 그중 두 개를 함께 공유해본다.

1. 마트에서 ‘도둑 취급’...

동양인은 서러워서 살겠나

프랑스는 인권 침해 등의 이유로 한국보다 CCTV에 대한 반감이 심해 실내외 모두 감시카메라가 많이 보이지 않고, 설치돼있다고 해도 확인하는 절차가 매우 까다롭다. 그래서 동네 마트에서 장보고 계산할 때 가방 검사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 과정이 번거로워 가방을 마트 입구에 두고 지갑과 장바구니만 들고 들어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 도시에 도착하고 처음으로 집 앞 마트에 갔던 날. 입구에서부터 계산대에 있던 모든 직원들과 손님들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버스에서도 길거리에서도 이미 익숙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별생각 없이 카트를 끌고 장을 보기 시작했다. 첫 방문이라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몰라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돌아다녔다. 그때 무심코 직원들 쪽을 보니 모두가 굳은 표정으로 내가 움직이는 방향에 맞춰 고개까지 돌려가며 모든 행동을 지켜봤다. 그러다가 비싼 물건이라도 집으면 갑자기 직원이 다가와 “이거 살거냐”고 묻고, 그냥 본 거라고 하니 낚아채듯 가져가질 않던가. 머릿속이 멍해졌지만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마트는 여기밖에 없고, 앞으로 종종 와야 해서 애써 무시했다.

물건을 다 고르고 계산대에 가자 또 다른 수색(?)과정이 시작됐다. 갖고 있던 백팩의 모든 주머니를 다 열어보고, 심지어 옷 주머니까지 확인했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다른 사람들은 그냥 가방을 살짝 열어 보여주면 눈으로 확인하고 넘어가던데. 책이며 파우치며 모든 소지품을 밖에 꺼내고 빈 가방만을 확인하고 장바구니까지 마지막으로 탈탈 털고 나서야 마트 밖을 나올 수 있었다. 첫 방문에 너무 충격을 받아 이후로 며칠은 버스를 타고 삼십 분을 달려야 나오는 대형마트까지 가서 장을 봤다. 

잔뜩 긴장한 상태였기 때문에 괜히 더 민감하게 받아들였던 걸까. 이런 생각에 이후 다시 집앞 마트를 찾았다. 며칠간은 첫날과 비슷한 과정이 반복됐다. 시간이 지나니 내 얼굴을 기억했는지 다른 사람들처럼 간단한 가방 검사 정도만 하면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차가운 시선은 한국에 돌아오는 순간까지도 변하지 않았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마트라 가장 시간도 많이 보내고 지출을 많이 한 곳이지만, 프랑스의 모든 순간이 그리운 지금도 그 마트는 전혀 그립지 않다. 당장이라도 나가줬으면 하는 그들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2. “한국여권 파워 무시해?”

영국 못 간다며 비아냥거리던 공항 직원들

 한국 여권으로는 여행 목적으로 영국에 최대 180일 무비자로 체류 가능하다. 한국 여권 파워는 일본과 싱가포르(공동 1위)를 이은 2위로, 총 188개국을 비자 없이 여행할 수 있다. 차라리 비자를 요구하는 국가들을 확인하는 것이 빠를 정도다.

프랑스 내에서도 아주 작은 도시인데도 공항이 있었다. 물론 운행 노선은 아주 단순하고 하루에 몇 대 없다. 프랑스 내에서 이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영국행, 미국행 비행기가 하루에 한 번 정도 있다. 크리스마스 바캉스 기간, 친구와 런던에서 만나기로 해 설레는 마음으로 표를 구매했고, 출발 당일 비행기 이륙 3시간 전 공항에 도착했다.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공항에서 상상도 못 한 일이 벌어졌다. 당당하게 표와 여권을 내밀었지만, 공항 직원으로부터 받은 황당한 통보. “관광비자가 없어서 영국에 갈 수 없다”.

공항 직원이 비자체크 도장을 찍었다가 출국할 수 없다며 볼펜으로 지운 흔적. 이후 다시 새로 찍힌 도장(Checked Airport 000)

처음에는 이 사람들이 한국인을 본 적이 없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한국 여권은 가능하다고 한번 확인해달라고 차분하게 설명했다. 하지만 들려오는 답은 “무조건 안 된다”는 것이다. 중국인도 지난번에 한 번 비자 없어서 돌려보냈다며 자기들끼리 웃으며 “집에 가라”더라. 나 중국인 아니라고, 한국인은 된다고, 인터넷에 한 번 검색만 해봐도 나오는 건데 왜 확인을 안 해주느냐고. 계속 물었지만 말을 자르고 짜증 섞인 말투로 가라고만 한다. 순간 머리가 멍해지고 눈물이 핑 돌았다. 하루에 한 번 운행하는 이 비행기를 놓치면 오늘 영국에 갈 수 없고, 이런 이유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혹시나 주변 사람들이 도와주진 않을까 둘러봤지만, 다들 그저 눈을 피할 뿐.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을 거다. 공항 직원이 맞고 내가 우기는 거라고. 계속 지체되는 시간에 뒤에서도 비키라는 목소리들이 들려와 결국 옆으로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 친구들에게 전화해 도움을 요청하려 했지만 새벽 6시 반이었기 때문에 아무도 연락을 받지 않았다. 비행기 탑승 시간이 다가오고, 짐 부치는 카운터는 이미 종료됐을 시점. 자포자기 상태로 있다가 문득 억울하다는 생각에 공항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다 공항경찰로 보이는 사람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경찰은 카운터로 가 직원들을 다 불러모았다. 직원들이 경찰의 지시에 따라 컴퓨터에 모여 무엇인가를 확인하더니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사과했다. 한국 여권은 비자 없이 영국에 갈 수 있다며, 몰랐다고 한다.

그제서야 나는 안도와 억울함 서러움이 합쳐진 눈물이 터져나왔다.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곤 잘 나오지도 않는 불어로 ‘당신들 그러면 안 된다. 내 말을 조금이라도 들어보려고 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소심하게 따지는 것밖에 없었다. 짐을 부칠 수 없었기에 기내 수화물로 가지고 탑승할 수 있게 해주었고(다행히 대용량 액체류 등 기내반입금지 물품은 없었다), 비행시간이 때마침 지체돼 늦지 않고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여행으로는 가고 싶지만 살기는 걱정되는 곳

물론 프랑스에 대한 기억이 다 이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 한류 열풍으로 수많은 프랑스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고, 길을 헤매거나 도움이 필요할 때 선뜻 도와주던 친절한 현지인들도 여럿 존재했다. 그렇지만 소수의 몇 에피소드들이 마음에 깊게 상처로 남아, 프랑스에서 ‘비주류’로 살아가는 건 할 게 못 된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특히 혼자라면 더더욱.

다시 여행이 가능해진다면, 프랑스에 가고 싶다는 마음은 변치 않을 것이다. 여행으로 프랑스에 잠깐 머무는 것이라면 이전에 살았던 곳들이며 아직 못 가본 지역까지 샅샅이 다 가보고 싶다. 여러 가지 문제가 존재하지만, 프랑스는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행지임은 틀림없다. 다만, 여행의 즐거움과 감동만 믿고 선뜻 프랑스에서의 삶을 꿈꾸며 무모하게 감행하진 않으시길.

여행하는 마카롱 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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