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전에도..영국에서 당한 인종차별.ssul

조회수 2020. 2. 27. 14:0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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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unsplash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중국뿐 아니라 아시아계 전반을 향한 혐오 현상이 짙어지고 있다. 네덜란드 항공사 KLM은 '승무원 전용 화장실'을 한국어로만 고지해 잠재적 보균자로 한국인을 차별한 것이 아니냐는 지탄을 받았다. 공식 기자회견을 열었지만 인종차별을 제대로 인정, 사과하지 않았다며 더욱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다들 알다시피, 코로나 바이러스가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기 이전에도 인종 차별은 존재했다. 유럽 여행 중 직접 겪은 인종 차별 경험담을 소개한다.

2015년 여름, 뮤지컬 맘마미아를 보고 런던 노벨로 극장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거리에서 지도를 보며 숙소로 돌아가던 중 덩치 큰 영국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불량스러운 말투로 "야 아시안, 머리띠 예쁘다?"라고 건넨 칭찬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하는 사이 일이 벌어졌다.


본인의 칭찬에 답하지 않아 화가 났는지 빠르게 다가와서는 주먹으로 내 팔을 가격했다. 짧은 찰나에 두드려 맞은 나는 그 자리에서 황당한 표정으로 한참을 서있었다. 만약 한국이었다면 뭐 하는 짓이냐고 맞대응을 하거나 112에 전화를 걸어 신고했겠지만 첫 유럽 여행이었기에 빠른 대처가 어려웠다. 숙소에 돌아와 그가 남긴 멍 자국을 보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작게라도 소리를 지를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출처: gettyimagesbank

런던에서의 악몽을 뒤로하고 파리로 이동하는 날이었다. 터미널에는 유로스타 탑승 수속 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6개 줄 중 가장 짧은 곳에 섰는데 희한하게도 그 줄만 줄어들지 않았다. 이상하다는 생각에 앞을 확인해보니 히잡을 두른 여성에게 화를 내며 질문을 했다. 한참을 기다리다가 내 차례가 왔다. 

출처: unsplash(좌), gettyimagesbank(우)

수속 담당자는 파리에서 묵는 호텔 바우처를 요구했다. 유로스타 수속은 간단하다는 정보만 믿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항공 티켓은 가방에 챙겼지만 호텔 바우처는 캐리어 안에 넣어두었다. 돌아가는 비행기 티켓은 입출국 수속 프리패스 역할을 하기 때문에 정중하게 물었다. 바우처는 캐리어 안에 있으니 혹시 다른 서류로 대체할 수는 없겠냐고. 이내 답변이 돌아왔다.

지금 당장 캐리어 열어서 호텔 바우처 보여주세요.

500명 넘는 인원이 대기하는 수속장에서 캐리어를 열라니? 담당자의 강압적인 말투와 짜증난다는듯한 표정에 캐리어를 열 수밖에 없었다. 줄 서 있는 사람들 사이에 캐리어를 눕혀 개어진 옷들 사이로 손을 넣어 바우처를 찾았다.


빠르게 캐리어를 닫고 바우처를 건네려고 했더니 그가 위 아래로 훑어보며 하는 말. "바우처 없으면 돌아가는 비행기 티켓을 보여줘도 가능하긴 합니다." 이제서야 대체 가능한 서류를 말하다니. 지금 나랑 싸우자는 건가 싶었다.

출처: unsplash

그 와중에 더 황당했던 건 너무나 고고한 그의 태도. 입국 수속 도장을 들고 한국에서는 어디에서 사는지, 파리 다음 여행지는 어디인지, 언제 돌아가는지 등 여러 질문에 답을 듣고 나서 한참을 생각하더니 내 여권에 도장을 쾅! 찍었다. 도장 찍는 소리에 주변 시선이 집중됐고 나는 '문제 있는 여행자'가 된 기분이었다. 호텔 바우처를 준비하지 않은 대가라고 하기엔 분명히 과한 반응이었고 인종차별로 느껴졌다.

출처: gettyimagesbank

수속장을 빠져나오며 옆줄을 봤는데, 유럽 관광객이 유로스타 티켓을 보여주니 빠르게 여권에 도장을 찍어 주더라. 백인 관광객들은 별다른 질문 없이 빠르게 수속장을 통과했다. '저렇게 간단한데 왜 나는 10분 넘게 걸렸고 캐리어까지 열어야만 했을까'라는 생각에 씁쓸해졌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여러 인종차별 경험담을 읽으면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모르는 사람이 올린 글에 깊게 공감했던 이유는 나 역시 비슷한 일을 경험했고, 불쾌함을 느껴봤기 때문이다.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심은 인종차별의 타당한 이유가 될 수 없다. 코로나19 사태가 마무리되면서 타 인종에 대한 혐오도 함께 사라지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여행하는 평화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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