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중 대한민국 사람이라 기분 좋을 때

조회수 2020. 2. 20. 17:4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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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달력을 펼쳐놓고 따져보니, 해외에 총 13번 나갔더라. 여름휴가·겨울휴가 그리고 친지방문 등 개인적인 여행과 출장을 포함한 숫자다. 여행을 업으로 삼는 직업이다 보니 해외 출장이 잦다. 그래도 1년 중 13번 출국은 역대급 기록이었다.

1월 - 인도네시아
2월 – 태국 / 세이셸
3월 – 홍콩 / 두바이 / 홍콩
6월 - 영국
8월 - 인도네시아
9월 - 스위스
10월 - 이탈리아
11월 - 호주
12월 – 베트남 / 상하이

홍콩 빼고는 최소 6시간 비행기에 갇혀 있어야(?) 했다. 비행기는 타도 타도 적응이 안 된다. 친해지기 힘들다. 설렘은 공항 가는 길까지, 딱 거기까지만이고 이후부터는 현실이다. 좌석에 앉아 퉁퉁 부은 다리를 주물러 가며 일 분 마다 애먼 시계를 쏘아본다. 그렇게 여차여차 시간이 흘러 목적지에 내린다. 이제부터는 다른 미션이 기다리고 있다. 전 세계에서 온 생면부지의 기자들과 친해져야 할 시간이다. 안면근육을 있는 대로 써가면서 미소를 장착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출처: unsplash

보통 여행기자들이 가는 해외 출장은 두 종류가 있다. 한국 기자들끼리 가거나 단독 초청받아 다양한 국적 기자들과 함께 가는 것. 흔히 후자를 ‘인터내셔널 팸투어’라고 부른다. 10번 출장 중 3번이 후자였다. 6월 영국 출장, 9월 스위스 출장 그리고 10월 이탈리아 출장이 전부 인터내셔널 팸투어였다. 차라리 인터내셔널 팸투어가 좋을 때도 있다. 일주일 넘도록 머리에 쥐 나도록 영어를 쥐어짜야 한다는 단점도 있지만 전 세계에서 온 기자들과 지내는 게 오히려 설렌다. 그리고 더 신나는 건 외국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관심을 보이고 더 나아가 칭송을 할 때다.


영국 출장 멤버는 이랬다. 미국, 중국, 호주, 네덜란드, 영국, 이탈리아, 러시아 그리고 대한민국. 이야기를 먼저 꺼낸 건 미국 기자였다. 북미 정상회담을 언급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트럼프와 김정은이 만난 것이 전 세계적인 관심거리이긴 했나 보다. 그 자리에 있던 기자들이 전부 한마디씩 보탰다. 그 전에 김정은 이야기가 나오면 ‘크레이지 로켓 맨’이라는 우스갯소리만 하고 넘어갔던 분위기와 사뭇 달랐다.

가장 좋았던 기억은 10월 이탈리아 출장에서였다. 희한하게 그 출장엔 전부 아시아 기자들만 불렀다. 일본 기자 2명, 중국 기자 3명, 말레이시아 기자 2명, 베트남 기자 2명 그리고 한국기자 1명, 이렇게 총 10명이 일주일 동안 함께 다녔다. 멤버가 전부 아시아 사람인 건 처음이었다. 더구나 나만 혼자였다. 일본 기자들은 일본 기자들끼리 일본어로 대화하고, 중국 기자는 중국어로... 다들 영어보다 모국어가 편하니까, 이해는 한다만 왠지 주눅 드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첫째날 저녁을 먹고 호텔로 돌아오는데 베트남 여자 기자가 조심스레 말을 걸더라. 자기가 한국 드라마를 너무너무 좋아한다고, 혹시 OOOOOO 보냐고. (드라마 이름이 기억이 안난다. 베트남어를 힘들게 힘들게 번역해 한국 이름을 알아냈는데... 기억이...) 그 모습을 본 말레이시아 여기자도 방언이 터졌다. 자기는 슈퍼주니어때부터 K-Pop 팬이었다고. 한국 사람도 모르는 아이돌 이름을 읊어가면서 한참을 이야기했다. 


그는 자기 최애 드라마가 ‘꽃보다 남자’라고 했다. 아... 그건 나도 안다. “그거 원작이 일본 만화잖아.” 한마디 거들었다. 일본 기자도 아는 척을 했다. 문제는 말레이시아 기자의 반응. “난 만화는 몰라. 안 봤어.” 한국 드라마로 ‘꽃보다 남자’를 처음 알게 됐다는 그는 “일본, 대만 드라마보다 한국 ‘꽃보다 남자’가 제일 재밌지”라고 쐐기를 박았다. 

만화 이야기가 나오자 일본 이야기를 할 줄 알았는데, 한국 웹툰을 이야기하더라. 드라마에서 시작한 한국 찬양은 K-Pop, 웹툰 그리고 화장품과 음식까지 줄줄이 이어졌다. 참, 축구까지. 베트남 남자 기자는 박항서 감독 찬양을 30분 넘게 했다.

화장품 어디 브랜드 써?

평생 살면서 나한테 화장품 뭐 쓰냐고 물어본 건 중국인 여기자가 처음이었다. 26살 그의 피부는 마치 중학생 같았다. 뽀얗고 투명했다. 그런 그녀에게 화장품 뭐 쓰냐는 질문을 받다니. 평소 나는 화장에 별 관심이 없다. 특별한 날이 아니고서는 화장을 잘 안 하는데, 볕이 강한 곳으로 출장을 갈 때는 자외선 차단제부터 베이스와 파운데이션 등을 두껍게 바르는 편이다. 그래서였을까. “민낯일 때 보였던 모공이 화장 후 사라졌다”며 나에게 무슨 화장품을 쓰냐고 질문을 해왔다.


말레이시아 기자는 1년에 최소 한번 한국 여행을 온다고 했다. 그는 출장 내내 나를 “언니”라고 부르며 쫓아다녔다. 한류가 동남아에서 큰 인기라고 하더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생각해보니 2019년 1월에 인도네시아로 출장 갔을 땐 이런 일도 있었다. 족자카르타 보르부두르 사원에 갔을 때였다. 수학여행을 온 교복 차림 중학생들이 졸졸 따라다니면서 한국 사람이냐고 물어왔다. 그렇다고 대답하자 대뜸 사진을 같이 찍자고 핸드폰을 내민다. 혹시 우리가 큰 카메라로 영상을 찍고 있어서 오해했나 싶었다. 우리는 유명인이 아니고 취재 나온 기자들이라고 설명했지만 막무가내다. 그냥 한국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너무 좋아서 사진을 찍자는 거다. 뭐 이런 일이 다 있을까. 얼떨떨했다. 


몸소 느낀 한류의 힘은 상당했다. 내가 단지 대한민국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이 좋아하는 ‘오빠’들의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환대해준다. 문화의 힘이 이렇게나 대단한 거구나. 민간 외교관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이 새삼 자랑스러웠다.

국뽕 충만 주모 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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