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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시차를 표시하는 이상적인 천체 시계

조회수 2018. 6. 14. 11:1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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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구와 황도/적도를 형상화한 다이어그램, 이미지 출처: Wikipedia

시태양시에서 평균태양시를 뺀 차이를 일컫는 균시차(均時差)는 영어로는 이퀘이션 오브 타임(Equation of Time), 프랑스어로는 에콰시옹 뒤 떵(Équation du temps)이라 칭합니다. 17세기 초반 독일의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가 밝혀낸 바와 같이 지구의 공전 궤도가 타원형인데다 지구의 적도와 태양의 궤도인 황도의 각도가 23.5° 정도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지구상에서 보는 태양의 운동속도는 일정하지 못하게 되고, 이렇게 해서 생기는 일주운동(시간)의 차이를 산술화한 것이 바로 균시차인 것입니다. 

총 33개 컴플리케이션 가운데 균시차를 포함한 파텍필립의 전설적인 칼리버 89
1989년 브랜드 창립 1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선보인 포켓 워치로 당시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시계로 통했다.
총 57개 기능을 하나의 시계 안에 응축한 바쉐론 콘스탄틴의 걸작, Ref. 57260
2015년 브랜드 창립 26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를 담아 발표, 현재까지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시계 타이틀을 자랑한다.

균시차는 이렇듯 천문학의 영역에 속하며 이를 하나의 기계식 시계 안에 구현하기란 상당한 기술력이 요구됩니다. 보통 퍼페추얼 캘린더와 기능적으로 쌍을 이루면서 함께 소개되며, 불과 지난 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손목시계 형태로는 거의 보기 힘들었습니다. 일부 하이엔드 시계제조사들의 그랑 컴플리케이션(혹은 그 이상의 수퍼 컴플리케이션급) 포켓 워치에서만 접할 수 있던 균시차 디스플레이를 최근에는 제법 여러 브랜드의 손목시계에서 만날 수 있게 되었는데요. 이러한 이례적인 붐 현상은 컴플리케이션 기능의 세분화와 특히 애스트로노미컬(천문) 혹은 셀레스티얼(천체) 컴플리케이션을 향한 시계애호가들의 관심이 그만큼 예전보다 높아졌음을 반증하는 결과라 하겠습니다. 

브레게의 마린 에콰시옹 마샹 5887
균시차 외 퍼페추얼 캘린더, 투르비용을 함께 갖춘 브레게의 야심작으로 2017년 바젤월드에서 첫 선을 보였다.
파네라이의 라스트로노모 루미노르 1950 투르비용 문페이즈 이퀘이션 오브 타임 GMT - 50mm Ref. PAM00920
독창적인 리니어 형태의 균시차 디스플레이와 투르비용, 고도로 정확한 문페이즈 디스플레이를 갖춘 파네라이의 2018년 신제품. 균시차를 표시하는 현행 손목시계 중 가장 모던하면서 브랜드 성격에 맞게 개성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오랜 세월 신비롭게만 여겨지던 균시차 컴플리케이션을 모던한 손목시계 형태로 선보이는데 앞장 선 제조사로는 블랑팡(Blancpain)을 또한 빼놓을 수 없습니다. 2004년 에콰시옹 뒤 떵 마샹(Equation du Temps Marchante)이란 불문 제품명으로 첫 선을 보인 해당 시계는 블랑팡 최초의 균시차 손목시계로서, 시태양시의 분에 해당하는 별도의 미닛 핸드와 함께 직관적인 플러스 마이너스 형태의 인디케이터로 균시차(-14~+16)를 따로 표시하고, 나아가 레트로그레이드 형태의 사실적인 문페이즈 디스플레이와 퍼페추얼 캘린더 기능까지 갖춘 당시 어느 브랜드에서도 본 적 없는 창의성이 돋보였습니다. 

블랑팡 빌레레 이퀘이션 오브 타임 레드 골드 버전 (188피스 한정)

이번 타임포럼 공식 리뷰를 통해서는 쉽게 접하기 힘든 블랑팡의 빌레레 이퀘이션 오브 타임(Villeret Equation of Time, 프랑스어 표기는 Villeret Équation du temps Marchante) 레드 골드 모델(Ref. 6638-3631-55B)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단 188피스 한정 제작되는 리미티드 에디션이며, 동일한 사양의 플래티넘 버전(Ref. 6638-3431-55B)은 더욱 수량이 적은 88피스 한정 제작되어 특별함을 더합니다. 빌레레 이퀘이션 오브 타임은 리미티드 에디션이지만 희소한 기능의 하이 컴플리케이션 제품 특성상 한 번에 전량이 제작되는 형태가 아닌, 정해진 기간(보통 수년)에 걸쳐 주문 제작 방식을 통해 해당 수량이 조금씩 소진되는 식으로 공급됩니다. 고로 한 해에 스위스 발레드주 르 브라쉬에 위치한 블랑팡 매뉴팩처에서 출고되는 빌레레 이퀘이션 오브 타임 시계의 수량은 적게는 5피스, 많아야 10피스 내외에 그칠 정도입니다. 

빌레레 이퀘이션 오브 타임의 케이스 직경은 42mm, 두께는 11.5mm로, 스텝 베젤이 돋보이는 빌레레 컬렉션 특유의 케이스 디자인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8K 레드 골드 소재의 케이스는 전체 미려하게 폴리시드 가공 마감되었으며, 케이스 방수 사양은 30m. 무엇보다 시선을 사로잡는 순백의 다이얼은 800도씨 이상 고온의 가마에서 수작업으로 일일이 소성해 완성한 화이트 그랑푸 에나멜 다이얼로 측면에서 봤을 때 살짝 볼록한(캠버) 형태를 띠고 있어 옛 포켓 워치의 느낌도 나름대로 재현하고 있습니다. 

매끈매끈한 화이트 그랑푸 에나멜 다이얼에는 블랑팡 컬렉션 고유의 얇고 고전적인 로만 인덱스가 프린트되었으며, 주요 기능을 별도의 인디케이션과 함께 일목요연하게 표시하고 있습니다. 토끼 귀를 연상시키는 얇고 길쭉한 골드 리프 핸즈로 시와 분을, 뱀을 연상시키는 구불구불하면서 끝에 태양을 형상화한 블루 핸드로는 시태양시의 분을, 3시 방향의 서브 다이얼과 핸드로는 날짜를, 9시 방향의 서브 다이얼과 핸드로는 요일을, 12시 방향의 서브 다이얼과 2개의 골드 핸드로는 각각 월과 윤년을 표시하며, 1시에서 2시 방향 사이의 부챗살 모양의 디스플레이와 블루 핸드로는 균시차 범위를, 10시에서 11시 방향 사이에는 지구의 공전 주기와 함께 발생하는 달의 공전 및 자전에 의해 바뀌는 삭망을 간결하게 표시하는 레트로그레이드 방식의 문페이즈 디스플레이를, 그리고 오픈 워크 처리한 다이얼 6시 방향의 핸드는 초를, 그리고 그 안에 위치한 타원형(혹은 숫자 8에 가까운 형상)의 독특한 인디케이션은 실제 지구의 공전 궤도에 따른 태양의 단계적인 경로를 보여주는 일명 ‘아날렘마(Analemma)’ 커브를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지구의 공전 궤도에 따른 태양의 단계적인 경로를 보여주는 아날렘마 커브를 형상화한 다이어그램, 이미지 출처: Wikipedia

과거 균시차를 표시하는 시계들은 시태양시를 별도의 서브 다이얼로 표시하되 균시차 계산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평균태양시와 대조하여 직접 환산해야 하는 불편함이 수반되었다면, 블랑팡의 빌레레 이퀘이션 오브 타임은 시태양시를 일반 상용시 즉 평균태양시와 함께 표시하는 것은 물론 별도의 인디케이션으로 수치화된 균시차 정보(1시~2시 방향)와 진행 흐름(6시 방향)을 입체적으로 표시하기 때문에 훨씬 파악하기가 용이합니다. 이점에서 블랑팡의 뚜렷한 성취를 되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해 브레게에서도 마린 에콰시옹 마샹 5887과 같은 모던하고 진일보한 균시차 시계가 출시됐지만, 따지고 보면 블랑팡이 시기적으로나 기술적으로 더 앞서는 측면이 있습니다. 2004년 런칭 이래 2011년 한 차례 리뉴얼을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는 블랑팡의 이퀘이션 오브 타임 라인업이 바로 그 부인할 수 없는 증거입니다.

해당 리뷰 촬영용 시계는 정상 작동은 하지만 판매용이 아닌 샘플용 모델인 만큼, 그리고 사전 세팅이 되지 않은 퍼페추얼 캘린더 모델 특성상 각각의 기능을 면밀하게 확인하기에는 애초 한계가 있었습니다. 균시차 관련 보다 자세한 작동 정보는 공식 제품 영상으로 확인해보시는 쪽을 권합니다.

가상의 태양을 기준으로 정한 평균태양시와 관측되는 시태양시의 차이를 보여주는 균시차 다이어그램
지구의 공전 궤도는 타원이므로 지구에서 바라본 태양의 시운동도 들쑥날쑥 일정치가 않다. 또한 적도면을 기준으로 황도가 약 23.5°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시태양시의 길이도 가변적이다. 캡처 이미지와 같이 균시차는 연 2회에 걸쳐 극대(11월 중반)와 극소(2월 중반)가 된다.

고도로 정확한 균시차와 문페이즈, 그리고 퍼페추얼 캘린더 기능은 총 397개의 부품과 39개의 주얼로 구성된 인하우스 자동 칼리버 3863으로 구동합니다. 30mm가 채 되지 않는 전통적인 사이즈(직경 26.8mm)의 무브먼트 안에 하이 컴플리케이션 기능을 내장하고도 칼리버 두께는 5.25mm에 불과해 기능에 비해 얇은 케이스 두께(11.5mm)도 이 시계의 또 다른 품격을 드러냅니다. 그럼에도 더블 배럴 구조로 이러한 류의 시계로는 드물게 72시간(약 3일간)의 넉넉한 파워리저브를 보장하는 것도 장점이라면 장점입니다. 

시태양시와 평균태양시의 차이(+16에서 -14분)를 정확하게 표시하기 위해 하나의 기어 트레인에 독립적으로 회전하는 디퍼렌셜 기어(Differential gear)를 추가하고(시태양시 미닛 핸드를 작동), 시태양시의 경로를 기계식으로 구현한 정교한 구조의 캠(Cam)과 함께 레버 형태의 부품을 더해 독자적인 균시차 디스플레이를 제어합니다. 캘린더를 포함한 주요 기능들은 하나의 크라운과 케이스백 양 러그 방향에 위치한 특허 받은 블랑팡 고유의 언더 러그 코렉터(Under-lug correctors)를 이용하면 간편하게 조정할 수 있습니다. 한편 사파이어 크리스탈 케이스백을 통해 수공으로 마감한 아름다운 무브먼트를 감상할 수도 있습니다. 로듐 도금 처리한 브릿지와 로터에 핸드 인그레이빙으로 지구와 달, 태양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형상화해 더욱 멋스럽습니다. 


스트랩은 브라운 컬러 앨리게이터 가죽 스트랩을 사용했으며, 탈착이 용이하면서도 탄성이 강한 블랑팡 특유의 폴딩 클라스프가 케이스와 동일한 레드 골드 소재로 제작되어 장착돼 있습니다.  


지금까지 대략적으로나마 살펴본 블랑팡의 빌레레 이퀘이션 오브 타임은 균시차 기능을 탑재한 시계 중 어쩌면 현존하는 가장 창의적이고 진일보한 손목시계 중 하나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다만 쉽게 접하기 힘든 모델이기 때문에 그 가치를 알기 어렵고, 애스트로노미컬(천문) 컴플리케이션에 관한 전반적인 이해와 인지도 또한 낮은 편이기에 다른 컴플리케이션 시계에 비해 주목을 덜 받는 경향이 없지 않습니다. 블랑팡은 브랜드의 시그니처인 카루셀이나 투르비용, 일련의 컴플리트 캘린더 라인업과 다이버 컬렉션인 피프티 패덤즈 외에도 꾸준히 다양한 시도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번 리뷰의 주인공인 빌레레 이퀘이션 오브 타임은 블랑팡의 숨겨진 면모, 화려하게 드러나진 않지만 묵묵히 빛을 발하는 내공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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